우크라이나 1년

우크라이나인들은 묻는다 “세계는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

키이우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우크라이나 키이우 9박10일 취재후기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키이우 외곽 숲 묘지공원 전사자 묘역에서 딸 키라를 데리고 찾은 리나가 남편의 묘를 찾았다. 리나의 남편은 지난 1월 루한스크에서 전사했다. 키이우|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키이우 외곽 숲 묘지공원 전사자 묘역에서 딸 키라를 데리고 찾은 리나가 남편의 묘를 찾았다. 리나의 남편은 지난 1월 루한스크에서 전사했다. 키이우|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1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15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행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좌석의 약 70%가 차 있었다. 부모와 함께 탄 어린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약 5시간 가량 버스가 달리는 동안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보채는 소리는 단 한번도 들리지 않았다. 폴란드의 국경 검문소 화장실에서야 엄마에게 잠시 보챈 뒤 다시 몇 시간의 버스 이동을 감내하는 다섯살 남짓한 아이를 보면서 ‘전쟁 중인 나라의 아이들’이란 이런 모습인가 생각했다.

키이우에서 열흘 간 머물면서 서른 명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2월 초 우크라이나 여론조사 업체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약 95%는 자국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평화협상보다 계속 싸우기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담긴 마음의 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키이우 시내에서 자동차를 타고 4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타티아나 자하르첸코(52)의 집을 찾았다.

타티아나의 집은 겉보기에는 소박한 단독주택이지만 내부는 미술관을 방불케 했다. 우크라이나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의 초상화와 민속용품의 모습을 담은 정물화 아래 전통 방식으로 알록달록하게 채색한 도마, 접시, 부활절 달걀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타티아나가 직접 그린 것이다. 타티아나는 직접 재배한 체리로 만든 잼이 들어간 우크라이나 전통빵과 차를 간식으로 내왔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타티아나 자하르첸코가 키이우 외곽 자신의 집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의 집은 우크라이나 전통 그림과 접시 등으로 빼곡히 채워져 우크라이나 전통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키이우|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타티아나 자하르첸코가 키이우 외곽 자신의 집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의 집은 우크라이나 전통 그림과 접시 등으로 빼곡히 채워져 우크라이나 전통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키이우|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타티아나의 집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전쟁을 견뎌낸 곳이기도 하다. 그는 개 4마리와 고양이 1마리,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어머니를 모시고 피란을 갈 수 없었다고 했다. 29살인 딸 만큼은 러시아군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 피란을 보내라고 이웃들이 권했지만 딸도 어머니 곁에 남았다.

마을에 피란민이 몰려오자 타티아나는 이들과 함께 자신의 집 지하 창고에서 대피 생활을 했다. 원래는 식료품 등의 보관 장소였던 습하고 먼지투성이인 창고에서 12명이 함께 버텼다. 키이우 인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그는 지하 창고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자수를 하며 불안을 달랬다. 타티아나는 지금도 마을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딸도 우크라이나어로 시를 쓰며 공포를 견뎠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타티아나 자하르첸코가 러시아군에 의해 키이우가 포위됐을 때 동네 마을 주민 12명과 함께 대피생활을 했던 지하 창고를 보여주고 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타티아나 자하르첸코가 러시아군에 의해 키이우가 포위됐을 때 동네 마을 주민 12명과 함께 대피생활을 했던 지하 창고를 보여주고 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타티아나는 “우리는 단결로 전쟁의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민속 박물관 같은 타티아나의 집은 단결의 현장이었다. 타티아나에게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려는 의욕에 충만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승리 외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 대학생이었던 타티아나의 아들은 현재 우크라이나 국방군 소속으로 전방에서 싸우고 있다. 타티아나의 사촌 역시 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 복무하고 있다. 타티아나는 그렇지만 단호하게 “우리는 크름반도까지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타티아나의 친구 잔나 스트리젠코(56)도 크름반도까지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잔나의 어머니는 크름반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강제병합한 이후 외가는 더는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병합 이후 크름반도에서는 저항하는 시민들과 친우크라이나 세력을 찾아내 탄압하는 러시아 당국 사이 끊임없는 폭력과 분쟁이 악순환처럼 이어지고 있다. 잔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돈바스의 미래가 크름반도와 같을 것이라고 본다.

잔나는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다섯살 손자의 안전을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피란을 떠났다가 지난달 키이우로 다시 돌아왔다. 베를린에서의 삶이 꼭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피란길에서 만난 폴란드와 독일 시민들에게 인류애와 고마움을 느꼈다고 했다. 시민들은 앞다퉈 난민들을 맞이했고 기꺼이 음식과 집을 내줬다. 잔나는 문명화되고 품위있는 삶에 대해 이전보다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베를린까지 전해오는 소식들은 그를 무척 힘들게 했다. 친한 친구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폭격에 사망했다는 소식은 그를 무너지게 했다. 때로는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질문도 받았다. “독일에서 언론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영토를 포기하고 평화협상을 하는 건 어떤가요?’라고 묻더라고요. 독일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까지 분단상태였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잔나에게 ‘평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삶의 품격과 인류애를 말하던 잔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 없는 평화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훨씬 멀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푸틴을 전범재판에 기소해서 전 세계에 문명과 ‘존엄’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타티아나 자하르첸코(왼쪽)와 그의 친구 잔나 스트리젠코가  지난달 23일 전쟁과 평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타티아나 자하르첸코(왼쪽)와 그의 친구 잔나 스트리젠코가 지난달 23일 전쟁과 평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존엄’(dignity)이란 말은 키이우에 머무는 동안 만난 우크라이나인들로부터 가장 자주 들은 단어 중 하나였다. 키이우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난 상이군인 올레크 시모로스(25)와 돈바스에서도 싸웠던 현역 군인 니콜라이 코발(39)은 “우리는 존엄함을 위해 싸운다”고 했다. 군인 가족 지원 조직 ‘베테랑 허브’에서 일하는 마리아 스테치우크(36)도 “나는 ‘존엄혁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리아가 말한 ‘존엄혁명’은 2014년 2월20일 발생한 ‘유로마이단 혁명’을 뜻한다. 경찰특공대가 유럽연합(EU) 가입을 요구하며 독립광장(유로마이단)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100여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일어난 날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혁명을 존엄혁명으로 부른다.

마리아는 “그때 우크라이나는 거대한 러시아 연합 아래 있을 것인가, 유럽의 길을 택할 것인가 갈림길에 있었다”며 “존엄혁명은 독립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탈식민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부패와 과두제가 지배하는 러시아의 길을 벗어나 공정한 사회를 원했기에 혁명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 스테치우크가 지난달 20일 키이우의 군인 가족 지원 단체 베테랑 허브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키이우|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마리아 스테치우크가 지난달 20일 키이우의 군인 가족 지원 단체 베테랑 허브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키이우|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지난달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기뻐했던 것도 단순히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수동적 안도의 기쁨은 아니었다. 독립광장에서 만난 막심(45)은 “바이든이 유로마이단 혁명 9주년에 맞춰 키이우를 찾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올 때마다 개혁을 요구했다. 부패를 해소해라, 투명성을 강화하라…. 바이든은 우리의 친구”라고 말했다.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전쟁의 원인을 우크라이나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친유럽 노선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키이우에서 의미하는 ‘친유럽’이나 ‘친서방’은 정치적 진영 논리의 언어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살고 싶은 사회 개혁의 이상을 의미했다. 이들은 “피는 우리가 흘릴 테니 자유와 독립, 민주주의의 이상을 지키는 데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전쟁을 강대국 간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이런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를 떠나기 전 이르핀의 폐허가 된 아파트 앞에서 로스티슬라우(68)·베라 도미니키(68) 부부를 만났다. 건물 안쪽까지 새카맣게 타 버린 내부 기물도 파손된 아파트는 이 부부가 살던 곳이다. 은퇴 전 에너지 업계 노동자였던 로스티슬라우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 본사를 비롯해 러시아 각지를 방문해 본 경험이 있다. 그에게 러시아는 부패와 독재의 온상이 아니라 친근한 나라였기에 침공에 대한 충격은 더욱 컸다.

로스티슬라우·베라 도미니크 부부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포격을 당해 폐허가 된 자신의 아파트 앞에 서 있다.  이르핀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로스티슬라우·베라 도미니크 부부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포격을 당해 폐허가 된 자신의 아파트 앞에 서 있다. 이르핀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로스티슬라우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독재자(푸틴)를 쫓아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티슬라우는 “하도 울어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지 않게 됐다. 내가 겪은 경험을 계속 증언하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2년째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결론을 두고 우크라이나 안팎의 온도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지난달 25일 좌파당과 독일의 유명 여성운동가인 알리체 슈바르처가 중심이 된 무기지원 반대 시위가 열렸다. 주최 측은 “매일 약 1000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3차 세계대전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향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무기지원으로 전쟁을 부추겨 더 많은 살상자를 낳게 해서는 안 되며 국제사회가 전쟁 중단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와 평화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개전 초부터 일관되게 무기지원을 반대해 온 평화활동가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식량난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남반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돈으로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해소해달라고 말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지난달 25일 전후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의 부패나 분열 문제를 짚는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키이우를 방문해 5억 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약속했지만 지난해부터 공화당을 중심으로 미 정치권에서는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선을 긋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키이우에서 만난 시민들은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전쟁 1년을 앞두고 러시아의 총공세가 시작될 것이라는 뉴스가 쏟아져 나오자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품위있는 표정이 나오도록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전쟁으로 연인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조차 “러시아에게 피의 보복을 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침략에 대한 분노와 보복의 감정은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는 절제된 언어로 표현됐다. 공습으로 남편, 딸, 사위, 아들, 할머니를 한꺼번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체르니히우의 스비틀라나조차 “가족들 곁으로 가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군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전쟁의 비극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절제하고 또 절제하는 모습에 슬픔이 밀려왔다. 이들에게 승리가 절실한 이유는, 존엄과 품위에 대한 열망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 열망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말’을 통해서 전해져 왔다.

올하 야키멘코(44)는 6개월 전부터 전기와 물이 끊긴 최전방 한 마을에서 혼자 집을 지키며 직접 기른 가축과 농작물로 자급자족 중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크라이나 국기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것이고 군 복무 중인 아들과 남편은 무사히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며 연신 밝은 모습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올하 야키멘코(44)는 6개월 전부터 전기와 물이 끊긴 최전방 한 마을에서 혼자 집을 지키며 직접 기른 가축과 농작물로 자급자족 중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크라이나 국기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것이고 군 복무 중인 아들과 남편은 무사히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며 연신 밝은 모습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평화는 아름다운 말이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에 나서야 할 때라는 주장이 ‘현실적’인 선택으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존엄한 사회’, ‘품위있는 삶’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열망까지 주저앉혀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가 정녕 평화일 수 있을까. 침략을 당한 국가의 자유와 존엄한 사회에 대한 열망을 주저앉힌 국제사회가 군축을 합의하고 가난한 세계를 지원할 수 있을까.

“인류가 살고 싶은 세상은 대체 어떤 세상인가” “전쟁범죄가 단죄되지 않는 세계가 과연 존엄하고 정의로운가”라고 묻는 키이우 시민들의 말에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 <시리즈 끝>

<취재 도움 : 다큐앤드뉴스 코리아>

▶시리즈 더 읽어보기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모아보기


Today`s HOT
여자배구 국가대표 은퇴선수 간담회 베트남 환영식에 참석한 푸틴 미국 6월의 폭염 실향민 돌아오길 기원
조지 워싱턴 저택에서 발견된 18세기 유리병들 러시아 군사학교 합동 졸업식
올림픽 앞두고 훈련하는 수영 국가대표팀 푸틴 환영하는 평양시민들
케냐 세금인상 항의 시위 우크라이나 군인, 목표는 푸틴 24년만에 방북한 푸틴 중국 광둥성에 쌓여있는 폭우 잔해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