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조’ 실리콘밸리은행은 왜 48시간 만에 붕괴했나읽음

최서은 기자
실리콘밸리은행. 신화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 신화연합뉴스

지난 40년 간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 이후 이틀 만에 파산하면서 초고속 몰락의 원인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왜 무너졌나

실리콘밸리은행의 CEO 그렉 베커. AFP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의 CEO 그렉 베커. AFP연합뉴스

SVB가 이틀 만에 무너진 이유는 단순했다. SVB는 언제든지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예금자들로부터 저금리를 주고 단기 자금을 끌어모아 급속도로 성장했다. 저금리 시기 수익률을 높이려고 장기 자산에만 투자하면서 몸집을 불린 것이 SVB의 발목을 잡았다.

SVB는 미국 금리가 오르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1년 전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SVB는 이자율이 낮던 시절에 미국 장기 국채를 너무 많이 사들인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이자율이 오르자 이들 장기채는 사실상 헐값이 됐다. 이는 SVB가 보유한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금리가 높아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공개(IPO) 시장까지 둔화하자 SVB의 주 고객층은 자금 조달 어려움을 겪게 됐고, 은행에 예치한 자금을 인출했다.

결국 SVB는 고객의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한 현금 확보 목적으로 지난 8일 장기 채권 210억달러(27조 7800억원)어치를 매각했다. SVB는 이 과정에서 18억달러(약 2조38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도화선이 돼 뱅크런이 가속화됐다. 발표 직후 주가가 60% 이상 폭락하고, ‘빨리 자금을 빼야한다’는 벤처캐피털 회사들의 경고까지 나오면서 고객들의 예금 인출은 더 늘어났다. SVB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22억5000만달러(약 2조9700억원) 규모의 증자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뱅크런을 멈출 수는 없었다.

뻔한 위험 앞에 “당국은 뭐했나” 책임론

실리콘밸리은행. AFP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 AFP연합뉴스

눈앞에 뻔히 도사린 위험을 두고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은 당국에 대한 책임론도 이어지고 있다. SVB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며 단 1년 만에 예금을 거의 두 배로 늘렸다. SVB의 자산과 예금의 급격한 증가는 대차대조표에 적혀있었고, 채권 보유 손실의 증가는 재무제표에 분명하게 기록돼있었다. 은행 자문 회사인 페더럴 파이낸셜 애널리틱스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감독에 관련한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가 이토록 빠르게 덩치를 키우면서 이자율 위험을 그만큼 높게 떠안았는데도 감독 당국은 어떻게 이를 놔둘 수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SVB가 미국 스타트업들의 ‘자금줄’인 만큼 정부가 개입해 그 여파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예금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미국 내 정치적 폭풍을 촉발할 수 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일부 기술 신생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 투자가들은 SVB를 다른 은행이 인수하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벤처 투자가 데이비드 삭스는 트위터를 통해 “파월은 어디에 있나? 옐런은?”이라며 “지금 이 위기를 멈추고 모든 예금이 안전할 것이라고 발표하라”고 말했다. 억만장자 투자자 빌 애크먼도 트위터에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바로잡을 시간이 48시간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기존 규정을 벗어난 ‘예외적 구제’라는 새로운 선례가 만들어지면 다른 금융기업들도 위기에 봉착했을 때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정부의 구제금융 결정을 두고 “납세자의 돈으로 월가 거물들을 도와주나”라는 비난을 받았던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제의 대상이 스타트업 테크기업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양상이 다를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SVB 파산과 관련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대책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대통령과 주지사가 실리콘밸리은행과 이 상황을 다루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 대화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SVB의 파산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업 전체로의 위기로 번지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많다. 실리콘밸리 은행 고객이 미 테크 산업에 집중돼 있어 전반적 위기 전이는 제한적이라 게 일반적인 금융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모건스탠리는 고객 노트에서 “SVB가 맞닥뜨린 현재의 압력은 매우 특이한 경우로, 다른 은행들과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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