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상으로 불똥 튄 미국의 문화전쟁…이탈리아 “예술과 포르노 혼동하는 우스꽝스러운 일”

정원식 기자

6학년 미술 수업 중 다비드상 사진 보여줘

학부모 “사전 통보 안 한 것도 잘못” 항의

피렌체시 “예술·포르노 혼동, 우스꽝스러워”

다비드상으로 불똥 튄 미국의 문화전쟁…이탈리아 “예술과 포르노 혼동하는 우스꽝스러운 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사진을 수업시간에 보여줬다가 ‘포르노’라는 학부모의 항의를 받고 학교장이 사임한 사태는 미국 보수파들이 벌이고 있는 ‘문화전쟁’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당이 장악한 플로리다주는 성정체성이나 인종차별에 관한 토론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가르칠 경우 사전에 학부모에게 통지토록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LGBT에 대한 콘텐츠가 포함된 책도 ‘포르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된 바 있는데, 급기야 이제는 다비드상도 포르노라는 학부모의 항의를 받게 된 것이다.

다비드상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는 “예술과 포르노도 구분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의 보도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탤러해시 클래식 스쿨 교장 호프 캐러스킬라 교장은 지난 20일 비상 소집된 학교 이사회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

캐러스킬라 교장은 학교 이사회로부터 사임과 해고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수업 시간에 다비드상 사진을 보여준 데 대해 학부모 세 명이 학교에 항의한 것과 관련돼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미켈란젤로(1475∼1564)의 대표작인 다비드상은 성경에 등장하는 다비드(다윗)가 골리앗을 제압하기 직전의 모습을 대리석에 담아낸 약 5m 높이의 대형 조각상이다. 피에타(1499년)와 함께 미켈란젤로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서양 미술사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학부모 중 한 명은 다비드상이 포르노라고 항의했고, 다른 두 명은 학생들에게 다비드상 사진을 보여줄 것이라고 사전에 학부모들에게 통보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탤러해시 클래식 스쿨 이사회 의장인 바비 비숍은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제나 사진을 배우는 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비숍 의장은 또 캐러스킬라 교장이 학부모에게 사전에 통지해야 하는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WP에 말했다.

캐러스킬라 교장이 퇴출된 배경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젠더와 인종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 내 ‘문화전쟁’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해당 학교가 위치한 플로리다주의 론 드샌티스 주지사는 공화당 내에서도 문화전쟁의 가장 전위에 서 있는 인물로 꼽힌다.

드샌티스 주지사는 지난해 3월 유치원과 초등학교 1~3학년 교실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수업과 토론을 금지해 ‘게이 언급 금지법’으로 불리는 ‘부모의 교육권리법’에 서명했다. 이 법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가르칠 경우 사전에 학부모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드샌티스 주지사는 지난해 4월에는 공립학교에서 인종 불평등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올해 1월에는 주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도서를 수업 시간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플로리다 주정부는 오는 4월부터 게이 언급 금지법의 적용 대상을 전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비숍 의장은 WP에 “드샌티스 주지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주지사의 교육 정책을 지지한다”면서 “부모의 권리는 귀중하다”고 말했다.

탤러해시 클래식 스쿨은 “미국 보수주의의 성채”로 불리는 미시간주 소재 기독교계 사립대학 힐스데일 칼리지가 2020년에 설립한 차터스쿨(자율형 공립학교)다.

이탈리아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로마에 있는 아메리칸 아카데미 인문학 연구 책임자 마를라 스토네는 이번 사건은 미국 내 ‘문화 전쟁’의 또 다른 사례라면서 “역사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다비드상의 성기 부분을 미국을 상징하는 ‘엉클 샘’ 캐릭터로 가린 뒤 ‘망신(vergogna)’이라고 적은 만평을 26일자 신문 1면에 게재했다.

다비드상을 전시 중인 피렌체시 다리오 나르델라 시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캐러스킬라 교장에게 도시를 방문해 달라는 초대장을 보냈다면서 예술과 포르노를 혼동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캐러스킬라 교장은 초청을 받아 기쁘다고 밝혔다.

다비드상이 전시된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세실리 홀베르그 관장은 학교 이사회, 학부모, 학생회를 초대해 작품의 ‘순수함’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그는 “다비드가 포르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내용과 서양 문화는 물론 르네상스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