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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해외 사례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매주 일요일이면 홍콩 센트럴 인근 광장과 상가는 신문이나 깔개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여성들로 가득 찬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텐트를 치고 쉬는 모습도 흔하다. 이들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 온 가사노동자로,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을 맞아 고용주의 집에서 나와 시간을 보낸다. 197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받기 시작해 현재 약 33만8000명(2022년 기준)이 일하고 있는 홍콩에서 익숙하게 굳어진 풍경이다.


2014년 1월,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이  HSBC 건물 아래에서 만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2014년 1월,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이 HSBC 건물 아래에서 만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세계는 가사노동자를 내보내고 받아들이는 망으로 연결돼 있다. 국제가사노동자연맹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각 가정에 고용돼 돌봄·청소·운전·경비 등을 하는 15세 이상 가사노동자는 전 세계 약 7560만명이다. 이 중 76%는 여성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사노동자는 여성 고용의 4%, 남성 고용의 1%가량을 차지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주 가사노동자는 전체 가사노동자의 15%에 해당하는 1150만명에 달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들여온 나라는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국 여성의 사회 참여 욕구를 뒷받침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활성화함으로써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학대와 차별, 고민해 본 적 없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제도’의 민낯[플랫]

하지만 앞서 도입한 나라들 사례에 비춰봤을 때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돌봄 노동을 해결하기 위한 ‘손쉬운 해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한 사회가 그동안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새로이 맞닥뜨리게 될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국민감정’ 불태운 외교관계 ‘도화선’


“도망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그가 내게 뜨거운 물을 붓는 꿈을 꿔서 잠을 잘 수가 없다.”

2009년 인도네시아인 가사노동자 시티 하자르가 말레이시아에서 고용주에게 3년 동안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고용주는 그를 지팡이로 구타하고 끓는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그는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가사노동자로 취업했으나, 결국 살기 위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는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노동자가 약 30만명에 달했기에 그가 겪은 일이 ‘모두의 문제’로 번지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시위대는 말레이시아를 규탄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까지 나서 ‘새로운 보호 조치가 시행될 때까지’ 말레이시아에 자국민 인력 송출을 금지했다.


2014년 1월 홍콩 코즈웨이 베이에서 한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가 가사노동자의 학대 사실을 보도한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2014년 1월 홍콩 코즈웨이 베이에서 한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가 가사노동자의 학대 사실을 보도한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그러나 이후에도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자가 계속 나왔다. 인도네시아인 가사노동자가 팔다리가 묶이고 온몸에 멍이 든 상태로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례, 체중이 불과 26㎏인 채로 병원에 실려와 도착하자마자 사망한 사례 등이 잇따랐다. 2009년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하는 가사노동자 학대 건수가 연간 1000건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양국이 개선 방안을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해 인력 송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지난 6월에도 인도네시아 정상은 말레이시아 정상과 만나 자국 출신 가사노동자 보호 조치를 또 한번 약속받았다.

가사노동자를 해외로 활발히 보내는 필리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아파트 냉동고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후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필리핀 대통령은 쿠웨이트에 가사노동자 파견을 금지했다. 이후 필리핀과 쿠웨이트 간 협정이 체결돼 고용주가 가사노동자의 여권을 압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도입했으나, 학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 정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까지 보고된 학대 사례는 모두 2만4000건이 넘는다. 고용주에게서 도망친 가사노동자를 보호하는 시설은 수용 인원을 초과한 상태다.

올해 초 쿠웨이트 사막에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의 시신이 발견되자 필리핀은 또다시 쿠웨이트에 가사노동자 파견을 중단했다. 쿠웨이트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때 필리핀 국민에 대한 모든 신규 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제도와 차별에 묶인 ‘21세기 노예’

앞서 언급된 피해자 시티 하자르는 “모든 말레이시아 고용주에게 내 이야기가 가사노동자를 동물처럼 대하지 말라는 교훈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전 세계 곳곳에서 가사노동자가 신체적·성적으로 학대당하는 ‘현대판 노예’ 취급을 받고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반복돼왔다.

학대와 차별, 고민해 본 적 없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제도’의 민낯[플랫]

제도가 이들의 노예화를 부추기기도 한다. 홍콩의 경우 가사노동자는 해고되면 2주 이내에 홍콩을 즉시 떠나야 한다. 이 때문에 가사노동자는 학대하는 고용주에게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또한 가사노동자가 고용주의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상주 규정 때문에 혹사당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알자지라는 지적했다. 휴식은 일주일에 하루만 허용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봉쇄된 기간 동안 가사노동자에 대한 성적 학대와 괴롭힘이 3배나 증가했다는 현지 인권단체의 보고도 있다.

전체 노동자 중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80%대에 달하는 걸프만 국가의 카팔라 제도 또한 악명이 높다. 카팔라 제도는 보증인 제도를 뜻하는데,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의 보증인이 됨으로써 입국과 비자 문제, 고용주 변경(이직) 등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는다. 이는 가사노동자가 고용주의 초과노동 강요나 학대 및 성폭력에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인도 등 남아시아 국가는 걸프 국가에서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자국 여성을 일정 연령 이상으로 제한했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은 카팔라 제도 폐지를 여러 차례 촉구했다. 여기에 더해 가사노동자를 들여오는 그 자체가 특정 국가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공고히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고용주, 즉 이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정의 구성원과 국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피고용이라는 권력관계에 인종적 편견과 차별까지 더해진다. 수용국이 이들의 출신국보다 대부분 부유하기 때문에 기존에도 이러한 경제 수준 차이에서 비롯된 ‘미묘한’ 우월의식이 있었다면, 여기에 ‘이 나라 사람들은 궂은일을 하는 이들’이라는 인식까지 강화되는 것이다.

청소기를 인도네시아인 가사노동자에 빗대 물의를 빚은 말레이시아 업체의 광고. 트위터 갈무리

청소기를 인도네시아인 가사노동자에 빗대 물의를 빚은 말레이시아 업체의 광고. 트위터 갈무리

2015년 2월 한 청소기 광고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문제가 된 건 말레이시아 업체의 진공청소기 광고였다. 이 광고는 청소기의 효능을 강조하기 위해 “당장 인도네시아인 가정부를 해고하세요!”란 문구를 사용하면서 ‘인도네시아인’에 강조용 밑줄을 그었다. 인도네시아인 가사노동자를 청소기에 빗댄 것이나 다름없는 연출로, 인도네시아를 폄하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말레이시아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이 광고는 매우 충격적이다.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완전히 모욕적”이라는 성명을 냈고, 유수프 칼라 당시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이를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한 “괴롭힘의 한 형태”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하필 양국 정상 만남을 앞두고 일이 터지면서 두 나라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지 못하고

자극적인 학대 사례가 알려지면 각국에선 개선 목소리가 으레 뒤따랐다. 그간의 논의를 보면 신체적·성적 학대를 금지해야 한다는 데까지는 합의가 용이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사노동자의 지위와 권리는 더디게나마 진전을 보여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1년 6월16일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하며 이날을 국제가사노동자의날로 지정했다. 가사노동의 가치와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명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사실상 한계가 정해져 있다. 홍콩·말레이시아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 끝까지 손대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최저임금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시급을 내국인 기준과 동일하게 맞추는 것만큼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굳이 이들을 외국에서 데려오는 이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외국인 사노동자의 지역별 분포

외국인 사노동자의 지역별 분포

최서연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사는 이것이 국가 간 경제 격차 및 고용주와 가사노동자의 계급 격차에 기반한 가사노동의 국제적 분업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공동 저서 <오늘을 넘는 아시아 여성>에서 “가사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원래 가사와 돌봄을 담당하던 가족이 버는 것보다 적어야 하며 보통 내국인 구직자가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무른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이는 이들의 노동력이 ‘오로지 출신 국가에 근거해’ 차별을 받는다는 뜻이다. 홍콩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월 4730홍콩달러의 최저임금이 허용되는데, 이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일반 최저임금인 시간당 40홍콩달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대만 또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월 2만대만달러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2만6400대만달러)보다 현저히 낮다.

이 밖에도 대다수 국가에서 가사노동자는 다른 분야 노동자와 달리 아무리 오래 일해도 영주권·시민권을 신청할 수 없다. ‘비공식 노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회보장 혜택에서도 소외되며, 노동분쟁 절차나 고용보험 등 노동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누릴 수 없다.


2015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 2명이 처형당한 것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게티이미지

2015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 2명이 처형당한 것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 같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에는 ‘어쨌든 자국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많이 벌지 않느냐’ ‘가사노동자의 해외벌이 송금이 본국에 큰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작용한다. 그러나 국제 노동·인권계는 이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ILO는 2021년 가사노동자 협약 채택 10주년을 맞아 발행한 보고서에서 가사노동이 비공식 노동에 머무르는 이유로 “노동 및 사회보장법에서의 배제, 법이 적용되지 않거나 법을 따르지 않음, 법적 보호의 부족”을 꼽았다. 그러면서 “법적 차이를 줄이기 위해선 각 정부가 가사노동의 특수성에 부합하는 적정한 최저임금을 위한 논의에 관계자를 참여시켜야 하며,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6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는 법안이 발의된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인권위는 “가사노동이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 없는 노동이며 저발전 국가에서 이주한 여성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차별적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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