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2년

유럽 전장의 탄약고가 된 남북…한반도 안보엔 짙은 그림자

박은하 기자

신냉전에 흔들리는 한반도 정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안보 지원 등을 약속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안보 지원 등을 약속했다. 대통령실 제공

고립됐던 북·러의 밀착, 무기 거래로 흘러
한국은 우크라 요청에 무기수출국 급부상
정부 “2024년, K방산 도약의 해” 발표에
시민단체 “전쟁 예방 노력은 전무” 지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한반도에도 한층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방산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북한 역시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며 국제고립을 탈출하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남북한이 70년 넘게 군비경쟁을 벌이며 쌓아온 무기 제조 능력과 비축 물량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벌이는 모양새가 됐다. 남북한 모두 경제적 기회를 확보했지만 남북한에 ‘무기고’ 역할을 요구할 정도로 불안이 심화하고 있는 국제정세는 한반도 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앞두고 지난해 4월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국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한 화상연설에서 “러시아 탱크와 배를 막을 수 있는 군사장비가 한국에 있고 한국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며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국방부는 안보 상황과 군의 대비태세 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대공 살상 무기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방탄 헬멧, 천막, 모포 등 군수물자와 개인용 응급처치 키트, 의약품 등 의료물자를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살상 무기는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은 실질적으로는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무기를 제공한 국가로 꼽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해 2월 한국은 미국에 155㎜ 포탄을 최대 50만발 ‘대여’해주기로 합의했다. 155㎜ 포탄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꼭 필요한 무기이다. 미군이 보유한 포탄은 국제사회에서 금지하는 집속탄이며 증산을 해도 필요량 10분의 1 정도만 공급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자 미국은 한국에서 포탄을 빌려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했다. WP는 “한국은 궁극적으로 모든 유럽 국가를 합친 것보다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해당 보도를 부인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포탄이 부족해지면서 한국의 무기 성능과 비축량, 생산 능력 등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단적으로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7월과 10월 한국 기업들과 173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방산 계약을 체결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유럽 국가들이 방위력 확보에 나서면서 지난해 대부분의 거래가 한국, 이스라엘, 튀르키예 기업을 상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미국과 유럽의 무기 제조업체들은 노동력 부족, 치솟는 비용, 공급망 불안정성으로 생산 능력을 크게 늘릴 수 없는 반면 이 세 나라는 이미 전쟁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무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발생한 지난해 10월7일 이전부터 팔레스타인을, 튀르키예는 분리독립운동을 벌이는 쿠르드족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해왔다. 준비된 방산은 ‘준내전’의 산물인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양측은 군사 협력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 |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양측은 군사 협력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 | 연합뉴스

북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뛰어들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해 7월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지난해 9월 전격 성사됐다. 북·러 정상 간 공식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많은 전문가가 군사 협력이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는 “김정은은 푸틴이 즐겨 쓰는 ‘신냉전’이란 말을 일관되게 긍정적 의미로 쓰는 거의 유일한 지도자”라며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 패권질서가 무너지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8월 포탄 10만발 분량의 컨테이너를 실은 기차가 북한을 출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포탄 창고로 이동한 사실을 포착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한 포탄이 100만발이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포탄 공급 대가로 러시아에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한 무기는 불량품이 많아 전장에서 크게 도움 되진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북·러 연대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뒤흔드는 전략적 변수로 등장했다. 러시아는 핵개발을 포함한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뒷받침하면서 이를 외교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러시아 지원을 믿고 올 상반기 군사 도발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자국 스푸트니크 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다면 한·러 양국이 파트너십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레드라인은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의미한다.

전쟁이 심화할수록 남북한은 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편, 격화하고 있는 전쟁이 다시 남북한의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백우열 연세대 교수는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 거래는 동아시아와 중부 및 동유럽의 안보를 더 긴밀하게 연결시킨다”며 “남북한이 유럽 안보 전장에 발을 들였다”고 말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수천㎞ 떨어진 유럽에서 남북한 무기가 서로를 직접 겨냥할 수도 있다”며 “군비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으며 한반도와 전 세계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접어드는 올해 한국은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 예산을 대폭 늘렸다. 직접적 무기 지원엔 신중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동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방산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실은 21일 자료를 내고 “2024년을 K방산 도약의 해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날 수출입은행의 법정 자본금을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상향하는 수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수은 자본금 규모가 폴란드 방산 계약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상한 ‘K방산’에 대해 국익으로만 접근하는 관점이 위험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전쟁은 무기 팔이 이득을 챙기는 행위에서 시작된다”며 “전쟁이 막대한 비극을 초래하는 시대에 윤석열 정부는 전쟁을 중단하거나 예방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전쟁으로 돈 벌 궁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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