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저 상품인가”…바티칸 박물관 직원들, ‘노동권 개선’ 진정서 냈다

최혜린 기자
2021년 2월1일 바티칸 박물관 직원들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2021년 2월1일 바티칸 박물관 직원들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적인 명소로 꼽히는 바티칸 박물관의 직원들이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노조 결성이 금지된 바티칸시국에서 이같은 쟁의는 이례적인 데다 교황청이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AP통신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큐레이터, 서점 관리자 등으로 일하는 박물관 직원 49명은 바티칸시국 행정부에 진정서를 내고 “교황은 우리를 그저 상품의 일부처럼 취급했다”면서 “불공정하고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직원들의 존엄과 건강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물관 측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운영을 중단한 기간 직원들이 받은 급여를 반환하라고 요구한 것이 집단행동의 결정적 계기였다. 직원들의 변호를 맡은 라우라 스그로 변호사는 바티칸 노동법에 무급휴직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진정인들은 병가를 낸 직원의 집을 찾아가 부재중인 경우 징계를 내리도록 하는 박물관 규정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그로 변호사는 “이들은 주치의를 만나기 위해 한 시간만 외출해도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직원들은 승진 체계의 투명성 제고, 초과근무 수당 인상, 건강권 보장 등을 박물관에 요구했다.

스그로 변호사는 “직원들은 수년에 걸쳐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49명이지만 앞으로 이 숫자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7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바티칸 행정부는 진정서 내용을 바탕으로 조정 절차에 들어간다. 스그로 변호사는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교황청 행정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노조 결성이 허용되지 않는 바티칸시국에서 집단행동이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AP통신은 직원들의 노동쟁의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치에 대한 이례적이고 공개적인 도전”이라며 “바티칸의 관행과 규정이 나머지 유럽 국가들의 규범과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로마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시국은 일종의 신권 국가로, 교황이 행정·입법·사법 권력을 모두 갖고 있다.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세계 최대 박물관 중 하나다. 박물관은 고대 로마·이집트의 유물과 르네상스 예술 3대 거장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 7만 점이 넘는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바티칸 박물관은 매년 수백만 유로를 벌어들이는 바티칸시국의 주요 수입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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