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의 IT기업에 다니고 있는 후링은 출근하면 사무실 책상에 놓인 바나나 화분부터 살핀다. 수경재배로 키우는 바나나 열매가 하나 둘씩 노랗게 변한 것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SNS)에 올린다. 그가 올린 바나나 사진에는 글귀가 적힌 카드가 걸려 있다. ‘바나나녹색금지(禁止蕉绿)’
중국 사무직 직장인 사이에서 바나나 수경재배가 유행하고 있다. 중국 남부 지방에서 재배되는 광시기장바나나 또는 사과바나나를 재배하는데 이 품종은 줄기부터 열매까지 모두 초록색이라 ‘푸를 록’자를 붙여 자오뤼(蕉绿)라고 불린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마음을 졸인다’는 의미의 단어 자오뤼(焦虑)와 발음이 같다.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 ‘좌절금지’란 문구가 유행한 것처럼 ‘근심금지’, ‘불안금지’에 해당하는 문구가 유행하는 것이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열매마다 ‘바나나녹색금지’ 외에도 다양한 소망이 적혀 있다. ‘내적 마찰 없음’, ‘안전행복’, ‘매일 행복’ 등의 문구가 자주 보인다. 이들은 소망을 적은 바나나 열매가 하나둘씩 노랗게 변해가는 걸 보면서 활력을 얻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전한다. 바나나 수경재배 세트는 개업선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해진다.
바나나 외 파인애플, 방울토마토, 시금치, 연꽃, 밤나무 등 다양한 식물의 수경재배도 덩달아 유행하고 있다. 돈을 벌다(生財)와 동음이의어인 상추(生菜)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
네티즌들은 사무실 수경재배 식물 사진과 함께 직장생활과 관련한 애환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시시(斯斯)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한 네티즌은 수경재배 땅콩 사진을 올리면서 “땅콩이 자라는 데 20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 월급도 이렇게 올랐으면 좋겠네”리고 말해 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받았다.
바나나를 비롯한 식물 수경재배는 올해 초부터 유행했는데 ‘불안금지’로 연결시킨 사람은 기업가 린원하이(32)이다. 그는 IT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귀향해 농산물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네티즌들이 직접 재배한 꽃이나 바나나 등의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포장에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함께 ‘바나나녹색금지’란 문구를 사용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린원하이 공장의 매출액은 껑충 뛰었다. ‘바나나녹색금지’가 지난달부터 폭발적으로 유행하면서 누적 주문량은 10만 건을 넘어섰으며 온라인 평점 후기도 1만 건에 달한다.
중국 관영매체 광명넷은 “사무실에서 바나나를 키우고 노랗게 익어가는 과정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은 직장인들의 새로운 교류 방식이 됐다”며 “불안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신세대 노동자”들의 유행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린원하이가 한창 바쁠 때 하루 5시간 밖에 쉬지 않고 주문을 처리했다며 미담처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