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원폭 행사에 이스라엘 배제
주영 대사 “불참” 반발···미국도 보류
일본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중동 분쟁으로 뜻밖의 외교적 고민거리를 안게 됐다. ‘평화’를 앞세운 국제 행사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쪽을 초청하느냐에 따라 나라 안팎의 반응이 달라져서다.
7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나가사키시는 오는 9일 개최 예정인 ‘피폭 79주년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 평화기념식’에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이스라엘의 주일 대사를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나가사키는 미국이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5년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역으로, 시 당국은 원폭이 투하된 8월 9일에 맞춰 매년 희생자 위령 및 평화 기원 행사를 열고 있다. 나가사키시는 이스라엘 대사를 초청 대상에서 뺀 이유로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할 위험” 등 행사 운영상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적인 판단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했다. 길라드 코헨 주일 이스라엘 대사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세계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게 될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에서도 냉랭한 반응이 나왔다. 줄리아 롱바텀 주일 영국 대사는 “자국을 지킬 권리를 행사하는 이스라엘이 러시아나 벨라루스와 같은 취급을 받는 데 대해 염려한다”며 행사 불참 의사를 밝혔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도 참석 보류를 결정했다.
일본 내 또다른 원폭 피해 지역인 히로시마에선 이와 정반대 논란이 일었다. 앞서 히로시마는 지난 6일 원폭 피해 79주년 행사를 열었는데, 이스라엘은 초대하고 팔레스타인 측은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역시 태평양전쟁 도중인 1945년 8월6일 원자폭탄에 피폭돼, 매년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주일 팔레스타인 상주대표부 왈리드 알리 시암 대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비판적인 현지 시민단체가 전날 밤 개최한 집회에 온라인으로 참여해 “나가사키가 평화와 정의에 기반한 결단을 했다”며 “히로시마의 대응 방식은 위선”이라고 말했다.
아사히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는 움직임이 국제사회에서 확산되는 가운데, 히로시마시는 향후 (행사) 초대 기준을 재검토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