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부부동성제’가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산케이신문 등 현지 언론이 12일 보도했다. 선거 때마다 테이블에 오른 의제이지만, 이번엔 개혁 목소리가 강한 온건 보수 세력과 당내 극우 세력으로 찬반이 갈려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부동성제 개정 논의에 또다시 불을 지핀 것은 최근 당 총재 선거의 ‘다크호스’ 후보로 떠오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다. 그는 지난 6일 출마 회견에서 “가족의 본연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며 “내가 총리가 되면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인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국민적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 성으로는 부동산 등기를 할 수 없다”며 부부동성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 출사표를 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도 “부부가 성을 달리하면 가정이 무너진다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논리”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을 선택할 수 없어 불이익을 받는 것은 해소돼야 한다” 등 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고노 다로 디지털상도 “(별성에 반대하는) 당론의 구속을 해제하고 표결하는 게 좋겠다”며 변화에 적극적이다.
일본은 현재 민법상 부부동성제를 시행하고 있다. 첫 명문화는 1898년이다. 부부가 같은 성을 써야 한다는 ‘동성’에 방점을 찍어뒀지만, 현실에선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르는 경우가 90% 이상이라고 한다. 결혼한 여성이 남편 성을 따르는 등 관행은 세계 여러 나라에 있지만, 부부간 별성 사용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으로부터 차별적이란 지적도 받았다.
이에 일본 내에선 결혼한 부부가 같은 성을 쓸지 다른 성을 쓸지를 개인 선택에 맡기자는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주장이 나오곤 했지만, 사회 전반 보수적 분위기에 집권 자민당의 보수적 스탠스가 겹쳐 좀체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헌법재판소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도 2015년에 이어 2021년 부부동성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가토 가쓰노부 전 관방장관은 부부별성 도입에 소극적이다. 그는 지난 10일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가족 동성제도는 유지하면서 우선 법적, 사회적 불편을 해결하자”면서 “구성(결혼 전에 쓰던 성)을 법률상 성으로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자”고 했다.
일본 내에선 자이니치 등 외국인을 중심으로 법률상 정식 명칭인 본명 외 업무용 이름이나 친구·가족끼리 부르는 이른바 ‘통명(통칭)’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행정에서도 적극 받아주겠다는 뜻이다. 부부동성제는 일단 유지하겠다는 의미여서 소극적 태도로 해석된다.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역시 지난 9일 출마 회견에서 부동산 등기 등 행정 업무를 할 때 구성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일본 여론 다수는 변화에 찬성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공영방송 NHK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9%, 반대는 24%였다. 앞서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도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정부에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촉구하는 등 사회 분위기가 변하는 추세다. 정치권에서 민법 개정안도 여러 차례 나왔다.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은 최근 NHK 여론조사를 인용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뤄져야 할 정치 과제 1순위가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35%), 2순위가 경제·재정 정책(26%) 등이고 선택적 부부 별성은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1%이니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적으로 임할 긴급 과제라고는 할 수 없다”고 제도 변화에 이날 반대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