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페라 거장 바그너, 한국에서 아직은 ‘먼 그대’

장지영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8.11.19 10:17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8.12.03 12:55

한국의 바그너 공연 역사

리하르트 바그너(1882).|위키피디아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베르디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쌍벽을 이루는 독일 오페라의 최고봉이다. 그리고 북유럽 신화와 게르만 전설을 토대로 바그너가 직접 각본을 쓰고 작곡한 <니벨룽의 반지>(이하 <반지>)는 바그너 음악의 총결산이다.

<라인의 황금>(2시간 40분), <발퀴레>(5시간), <지그프리트>(4시간 45분), <신들의 황혼>(5시간 30분) 등 4부작으로 구성된 <반지>는 원래 4일간 연이어 공연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 Festival)을 제외하고는 한 작품씩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바그너를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바그네리안(Wagnerian, 바그너의 팬을 일컫는 말)’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관객들에겐 인내심이 요구될 만큼 대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왼쪽)와 그가 LA오페라에서 연출한 <반지> 1편 <라인의 황금>의 해외 공연 장면.|월드아트오페라

한국 제작사 ‘월드아트오페라‘는 2018년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공연되는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3년에 걸쳐 <반지> 4부작을 공연할 예정이다. 작품당 30억 원, 총 12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 84)가 연출을 맡았다. 표현주의 화가로도 활동하는 프라이어는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과장된 분장의 인형과 가면들을 활용해 새로운 <반지>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솔직히 올해 <라인의 황금> 이후 나머지 세 작품이 계획대로 무대에 오를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이어의 부인이기도 한 소프라노 에스더 리가 이끄는 월드아트오페라가 국내 첫 <반지> 제작에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 열렬한 바그너 애호가들은 있지만 저변이 넓지 않은 국내 오페라계에서 민간 제작사가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라인의 황금>은 한국 이후 독일 본 극장(Theater Bonn)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이번 <반지> 프로젝트로 국내 관객들의 바그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바그너 애호가들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개막을 앞둔 2018년 <라인의 황금> 무대 설치 현장.|월드아트오페라

베르디가 전통 위에서 뛰어난 선율과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면, 바그너는 오페라의 기본 구조인 아리아-레치타티보의 구분을 없애고 ‘음악극(Musikdrama·무지크드라마)’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 등 바그너의 전반기 작품이 전통적인 오페라에 속한다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부터 <반지> 4부작, <파르지팔> 등 후반기 작품은 음악극으로 정의된다.

선배 작곡가들처럼 대본작가와 협업했던 베르디와 달리 대본을 직접 쓴 바그너는 드라마와 음악의 완결성을 위해 무한선율과 유도동기 기법을 창안했다. 무한선율이란 막이 열린 동안 종지가 명확하지 않은 선율이 이어지는 것이며, 유도동기란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나타내는 음악적 동기를 설정해 계속 변주해나가는 기법이다. ‘트리스탄 코드(Tristan Code)’라 불리는 특유의 반음계 화성이나 잇단 조 바뀜 등 그의 작곡 기법은 현대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882년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의 전경(왼쪽)과 극장 내부 모습.|위키피디아

하지만, 세계 오페라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될 만큼 대중적인 베르디와 달리 바그너에 대해 관객들의 호오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바그네리안들은 바그너의 오페라(음악극)가 담고 있는 예술적 이상과 신화적 관념을 숭고하다고까지 표현한다. 바그너의 열성팬이었던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는 그를 후원하기 위해 바이로이트에 극장을 지었는데, 이곳은 매년 여름 페스티벌 기간 동안 10만 명 안팎의 바그네리안들이 운집하는 장소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바그너가 아무리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평범한 관객들에겐 문턱이 너무 높다. 바그너의 반유태주의나 비윤리적인 여성 편력, 공격적인 성격 등 음악 외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중세 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구원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들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다른 오페라에 비해 공연 시간도 길다.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는 “바그너의 작품 중 좋은 부분은 몇 순간이고 지루한 부분은 몇 시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네리안이 의외로 많은 것은 그의 음악극(오페라)이 매우 비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범함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즉 바그너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공연을 자주 접할수록 이해의 속도도 그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바그너의 작품이 전막으로 공연된 경우는 일일이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게다가 해외 프로덕션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직접 제작한 경우는 더더욱 적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탓도 있지만, 바그너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전문 성악가, 즉 폭넓은 음역대와 파워풀한 성량을 바탕으로 독일어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바그너 가수’가 한국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그너의 작품에서는 금관악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대부분 국내 오케스트라의 금관 파트가 약한 것도 꼽지 않을 수 없다.

1974년의 <방황하는 화란인(네덜란드인)>은 한국 오페라 역사상 최초로 바그너 오페라가 전막으로 무대에 오른 공연이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작품들 가운데 쉬운 편이어서 첫 도전작으로 낙점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극장(현 국립극장)이 1973년 10월 남산에 개관한 후, 이듬해 5월 전속단체였던 국립오페라단이 오현명 연출, 홍연택 지휘로 이 공연을 올렸다. 연주는 국립중앙극장의 또 다른 전속단체였던 국립교향악단(지금의 KBS교향악단)이 맡았다. 국립오페라단 단원을 비롯한 한국 성악가들이 공연에 출연해 한국어로 번안한 무대를 선보였다.

오페라를 원어로 공연하는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처음 시작돼 1990년대 중반에야 국내에 정착했다. 1980년대 초반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성악가들이 아리아를 원어로 불러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면서부터다. 지금은 보편화된 한국 성악가와 해외 성악가의 동반 출연도 원어 공연이 정착되면서부터 이뤄졌다.

1974년 5월 1일 동아일보 5면에 실린 <방황하는 화란인> 관련 기사.|동아일보

어쨌든 당시 국립오페라단의 <방황하는 화란인>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면, “1948년 한국의 첫 오페라 <춘희> 공연과 맞먹는 의미를 지닌다”면서 “한국 오페라 가수들의 역량이 발전한 것과 함께 신축 국립극장의 무대가 현대화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쓰여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후 1976년 10월 <로엔그린>과 1979년 11월 <탄호이저>를 올렸다. 두 공연 모두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마찬가지로 한국 성악가들이 한국어로 공연했다. 하지만 <로엔그린>은 연출가와 지휘자를 오스트리아에서 데려왔으며, <탄호이저>는 독일 연출가와 독일 유학을 마치고 온 지휘자 홍연택이 맡았다. 원작의 정서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의 <탄호이저>를 끝으로 국내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전막으로 다시 보기까지는 26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됐다. 하지만 1988년 독일에서 활동하던 베이스 강병운이 동양인 최초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입성한 일은 국내 음악계의 쾌거로 받아들여지며 바그너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 강병운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니벨룽의 반지>(다니엘 바렌보임 지휘·하리 쿠퍼 연출) 4부작에서 하겐, 훈딩, 파프너 역할로 출연하는 등 10년 넘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왼쪽부터 <니벨룽의 반지>에서 하겐, 훈딩, 파프너 역할로 출연한 강병운(Philip Kang)의 공연 장면.|강병운 공식 홈페이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1876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막 초연으로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음악축제이다. 1883년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뒤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 바그너를 비롯해 아들, 며느리, 손자와 증손녀에 이르기까지, 바그너 집안은 4대에 걸쳐 이 축제를 이끌어오고 있다. 독일 오페라극장에서는 바그너의 작품에 아무리 많이 출연했더라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 서지 않으면 ‘바그너 가수’로 인정받지 못한다.

강병운의 활약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1993년 ‘한국바그너협회’가 발족했다. 창립 당시 발기인 70여 명 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은 1977년부터 강병운에 앞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참가해 30년간 활동한 경력으로 유명하다.

예술의전당은 개관 10년을 맞은 1997년 한국바그너협회와 함께 ‘바그너 축제’를 열었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 연주와 <발퀴레> 1막의 콘서트 버전 공연이었다. 그래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휘했던 한스 발라트(Hans Wallat)를 필두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각 파트 수석, 금관 연주자 24명이 내한해 KBS 교향악단과 연주했다는 점은 국내 바그너 공연 역사에서 큰 진전이었다. 당시 <발퀴레> 콘서트 버전 공연에는 강병운과 함께 바그너 전문 테너 르네 콜로(Rene Kollo)와 소프라노 안나 토모바-신토브(Anna Tomowa-Sintow)가 출연했다.

오페라 <파르지팔> 2013년 공연 영상. 영상 속 구르네만츠 역이 연광철이다.|KBS1

강병운 이후 또 다른 한국인 베이스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등장했다. 1996년 데뷔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터줏대감이 된 연광철이다. 그는 1996~2000년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의 야경꾼, 2002~2004·2014년 <탄호이저>의 헤르만 영주, 2003·2004년 <파르지팔>의 티투렐, 2005·2006·2012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왕, 2006~2010년 <라인의 황금> 파졸트, 2006~2010·2014~2015년 <발퀴레>의 훈딩, 2008~2012년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 2014~2015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달란트 선장 등을 연기했다. 작은 역할로 시작했지만, 그는 2002년을 기점으로 베이스로서 중요한 역할을 모두 섭렵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사랑하는 연광철은 현재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국 로열오페라, 이탈리아 라스칼라 등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세계 최정상급 성악가다.

성악가 사무엘 윤.|서울시향

연광철 외에도 1999년 베이스 전승현, 2004년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 각각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해 수년간 출연했다. 특히 사무엘 윤은 <파르지팔>의 2번째 성배 수호 기사로 출발해 <탄호이저>의 라인마르츠 폰 페터, <로엔그린>의 헤어루퍼 등 점점 비중 있는 역할을 맡다가, 2012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타이틀롤을 맡았다. 당초 그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주인공의 커버 배우였지만 주역이 중도 하차하면서 전격 발탁됐고, 이후 4년간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섰다. 또한, 국내 테너로는 처음으로 김석철이 2016년 <파르지팔>의 세 번째 시종으로 데뷔한 바 있다. 김석철은 이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카타리나 바그너가 연출한 어린이용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역인 에릭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00년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비롯한 유럽 극장에서 바그너 무대에 서는 한국 성악가들이 여럿 나왔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바그너는 음반이나 DVD로만 접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2005년 갑자기 바그너 작품 2편이 잇따라 한국 무대에 올랐다. 2편 모두 해외 프로덕션의 내한공연이었다. 6월에는 일본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이 한·일 우정의 해 기념행사 일환으로 초청돼 <탄호이저>를 선보였고, 9월에는 마린스키 오페라극장이 <반지> 4부작을 가지고 왔다.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은 후지와라 오페라단과 함께 일본의 양대 오페라단으로 꼽히는 니키카이 오페라단의 간사이 지부다.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의 <탄호이저>는 국내 첫 독일어 원어 바그너 오페라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연주만 서울시향이 맡고 연출을 비롯한 주요 스태프와 지휘자, 성악가가 모두 일본인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앞선 일본의 바그너 오페라 제작 능력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마린스키 극장의 <반지> 중 <라인의 황금>(왼쪽)과 <발퀴레> 공연 장면.|마린스키 극장·CMI

마린스키 극장의 <반지> 중 <지그프리드>(왼쪽)와 <신들의 황혼> 공연 장면.|마린스키 극장·CMI

마린스키 오페라극장의 <반지> 공연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국내에서는 <반지>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 4부작을 한 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르기예프의 지휘로 러시아 성악가와 스태프, 연주자 등이 참여한 마린스키 극장의 <반지>는 공연 전부터 장안의 화제였으나,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막상 개막을 하고 보니 객석점유율이 70% 이상이었으며, 관객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당시 공연을 앞두고 관련 서적과 DVD가 잇따라 발매됐으며, 클래식 동호회를 중심으로 <반지> 강좌와 토론이 활발히 열리면서 새로운 바그네리안들을 배출한 것으로 보인다.

마린스키 극장이 올린 <반지>의 성과에 힘입어 예술의전당은 개관 20주년을 맞은 2008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 제작 <파르지팔>을 선보이기로 했다. 작곡가 바그너의 손자이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볼프강 바그너(Wolfgang Wagner)의 1989년 연출작이 그대로 국내 무대에 올려진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모았다. 캐스팅 역시 연광철과 사무엘 윤 등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단골들과 김재형 등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 성악가들이 출연할 예정이었다. 리바이벌 연출을 맡은 볼프강 바그너의 딸 카타리나 바그너(Katharina Wagner)는 2007년 내한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공연 중 화재가 발생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바그너에 대해 잠깐 반짝했던 관심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국내 음악계에서 바그너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13년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부터였다. 두 작곡가의 오페라 전곡을 담은 음반과 영상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2012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오페라 콘체르탄테(콘서트 오페라) 버전으로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며 선두에 나섰다. 서울시향은 2013년 <반지>의 관현악 모음곡 등 바그너 특별 콘서트를 공연한 뒤 2014~2015년 <반지> 가운데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를 오페라 콘체르탄테로 선보였다.

하지만, 박현정 전 대표의 폭언 논란 이후 서울시향을 둘러싼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2015년 말 정명훈 음악감독이 사퇴했고, <반지> 4부작의 오페라 콘체르탄테 공연은 <발퀴레>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서울시향 이후에는 국내 여러 지역 오케스트라들이 바그너 콘서트를 잇따라 올렸으며, 부천필은 2016년 <탄호이저>를 오페라 콘체르탄테로 선보였다. 부천필의 <탄호이저>에는 30대의 젊은 국내 성악가들이 출연했는데, 바그너 전문이라는 타이틀은 없었지만 힘 있는 가창으로 호평을 받았다. 대구오페라페스티벌도 2012년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1년 앞두고 독일 칼스루에(Karlsruhe) 국립극장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선보였다. 대구오페라페스티벌은 2013년 칼스루에 국립극장의 <탄호이저>, 2015년 비스바덴 국립극장의 <로엔그린> 등 독일 극장 제작 바그너를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 공연 장면.|국립오페라단

바그너 탄생 200주년이던 2013년, 한국 바그너 공연 역사에서 또 다른 전기가 마련됐다. 국립오페라단 제작의 <파르지팔>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1970년대 한국어로 번안됐던 바그너 오페라 3편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바그너 오페라였다. 연광철의 첫 국내 오페라 데뷔작이었던 <파르지팔>은 국제적 명성을 지닌 바그너 가수들과 지휘자, 연출가가 호흡을 맞춘 무대로 바이로이트와 비교해도 손색없다는 호평을 받았다. 나아가 한국에서도 마침내 바그너를 제대로 제작할 수 있게 됐다는 자신감을 안겨줬다.

국립오페라단은 당초 <파르지팔>에 이어 2014년부터 1년마다 <반지> 4부작을 차례차례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하지만 김의준, 한예진, 김학민 단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퇴하는 과정에서 무산됐다. 대신 국립오페라단은 2015년 연광철과 김석철이 출연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2016년 김석철과 서선영이 출연한 <로엔그린>을 무대에 올렸다. 두 작품 모두 독일을 중심으로 바그너 작품 경험이 많은 지휘자와 연출가들을 초청했다. 국내 합창단들이 만만치 않기로 유명한 오페라 속 합창을 맡았는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국립오페라단에 이어 성남아트센터가 2017년 <탄호이저>를 제작하면서 국내 오페라계가 바그너와 관련해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졌음을 보여줬다.

개막을 앞둔 2018년 <라인의 황금> 리허설 현장(왼쪽)과 공연에 쓰이는 가면들.|월드아트오페라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계기로 국내에서 불었던 바그너 오페라 공연 붐이 잠시 주춤해진 가운데, 아힘 프라이어의 <반지>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할지 궁금하다.

<니벨룽의 반지_라인의 황금>
2018.11.14~2018.11.18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기본가 5만 ~ 40만 원
공연시간 160분
8세 이상 관람 가능
출연
김동섭,양준모,마르쿠스 아이헤,나건용,탄젤 아키자벡,임홍재,아놀드 베츠옌,양준모,미셸 브리드트,김지선,에스더 리,나디네 바이스만,양송미,세르게이 레퍼쿠스,오스카 힐레브란트,볼프강 그라츠마이어,김성진,전승현,김일훈,칼-하인츠 레너

공연 칼럼니스트 장지영은
서울대 고고 미술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성균관대 공연예술 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기자협회 지원으로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문화자원 학과에서 연수했다.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문화부 스포츠부 사회부 국제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다. 2003년 문화부에서 처음 공연을 담당하면서 공연계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기자로서만이 아니라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밌게, 재밌는 것을 진지하게, 진지한 것을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것을 어디까지나 유쾌하게”라는 일본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격언을 따르려고 노력 중이다.

<장지영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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