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시내를 내려다보는 김일성과 김정일…예술은 이들을 어떻게 신격화했나?

이무경 칼럼니스트
입력2019.01.02 11:0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1.02 13:33

■ 만수대 동상은 거대한 신전 평양을 지탱하는 북엔드!

만수대 김일성 부자 동상.

유럽의 성당에 들를 때마다 정문 앞에서부터 일종의 기호에 가까운 특정한 도상들을 보게 됩니다. 성당 문 앞에는 성경의 4대 복음을 상징하는 동물과 사람이 새겨져 있고,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표현하는 그림들이 탄생에서부터 승천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왼쪽)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오른쪽)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ㅣ 위키피디아

일정한 건축 공식에 따라 지어진 성당에 들어서면,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여러 성인들을 그려 넣은 제단화가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많은 서양의 명화들이나 동상들은 바로 성당이나 수도원이 주문한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작품들은 물론이고, 성모 마리아나 성 히에로니무스, 성 프란체스코 등 여러 성인들은 특유의 동작과 지물을 통해 성경 속의 성스러운 장면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 전 기독교가 실질적으로 유럽을 지배했던 과거의 유물인 셈이죠.

금수산태양궁전 중 일부.

그런데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소위 백두혈통에 대한 우상화는 북한을 지탱하는 하나의 종교이자 현재진행형입니다. 평양의 거리 곳곳에는 김일성 부자의 대형 사진과 그림, 그리고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에서 발행되는 달력의 첫 표지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문구가 영문과 함께 인쇄되어 있습니다. 사망한 두 지도자가 여전히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셈입니다.

‘당의 참된 딸’ 우표.

올해 초 북한을 방문한 한 외국인은 오전 5시에 갑자기 평양 전역에 울려 퍼지는 이상한 노랫소리 때문에 잠이 깨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음악의 정체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이라는 노래로 북한 5대 혁명가극 중 하나인 ‘당의 참된 딸‘의 주제가입니다. 일부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 장군님은 그 어데 계실가
창문가에 불 밝은 최고 사령부
장군님 계신 곳은 그 어데일가”

가극에서 이 노래는 한국전 당시 북한 군인들이 김일성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였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이 노래를 크게 호평하는 바람에 수 십 년 동안 인기곡으로 불리고 있으며, 김일성 사후에는 노래 속 ‘장군’이 김정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1967년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내세운 이래 북한 미술의 주체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를 앞세운 북한 특유의 미술적 지도이념이 되어버렸습니다. 조선화 중심의 회화, 기념비 중심의 조각, 선전화 중심의 출판미술, 그래픽과 도안을 일컫는 산업미술, 공예, 건축장식미술, 영화 및 무대 미술, 서예가 북한 미술의 8가지 종류입니다. 이 중에서도 조각은 김 씨 일가의 우상화에 있어서 매우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민대학습당의 조각상. ㅣ 올리버 웨인라이트의 사진비평서

김정일은 <미술론>에서 조각이 기념비미술에서 가장 중요하며, 특히 혁명적 기념비 조각이 그 중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혁명적 기념비 조각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각상을 중심에 모시고 거기에 다주제군상을 통일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수대기념비, 즉 만수대 언덕에 세워진 김 씨 부자의 거대한 동상을 그 모범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북한 전역에 세워진 크고 작은 김일성 동상과 김정일 동상의 수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4만 개가량이라고 합니다. 웬만한 동네마다 김 씨 부자의 동상이 서 있다는 뜻이죠. 그중에서 크기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상징성이 있는 것이 바로 만수대 기념비로 불리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 동상입니다. 평양 만수대 언덕은 약 60미터 높이의 구릉으로 대동강과 보통강이 감싸 흐르는 중심부에 위치해 평양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형입니다.

만수대 김일성 부자 동상.

1972년 김일성의 60세 생일을 기념해 세워진 높이 23미터의 거대한 동상의 표면에는 번쩍이는 금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1978년 방북했던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금빛으로 번쩍이는 김일성 동상을 보고 그 동상에 중국의 지원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따지듯 물었다고 합니다.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이 보기에, 중국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원조 받는 북한 지도자의 황금 동상은 어불성설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북한은 슬그머니 동상에서 금을 제거했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북한의 유일한 반우상화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진에서처럼 김일성 동상은 금을 벗긴 청동상이 되었습니다.

2014년 4월에는 김일성 동상 옆에 김정일 동상이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평양시민들에게 있어서 만수대 동상 참배는 연례 행사일 뿐 아니라, 결혼이나 입당, 입학, 졸업 등 중요한 일을 앞두고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수대 동상 참배는 외국의 관광객들에게도 첫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만수대 김일성 부자 동상. ㅣ 위키피디아 Bjørn Christian Tørrissen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허리에 댄 김일성은 긴 코트를 입었고, 김정일은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지퍼 달린 짧은 인민복 위에 반코트 차림입니다. 이들은 대동강이 흐르는 평양 시내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소련 전역에 동상을 세웠고, 중국의 마오쩌둥 역시 수많은 동상을 건립했지만 지금은 모두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김일성 부자의 동상은 여전히 살아있는 신의 재현입니다. 외국 관광객이라 해도, 이 동상 앞에서 공손히 손을 모으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는 안내원들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합니다.

2015년 평양을 방문한 이후 2018년 평양 건축물에 대한 사진비평서 를 펴낸 영국의 건축비평가 올리버 웨인라이트(Oliver Wainwright)는 만수대의 김 씨 부자의 동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이 두 동상들은 평양이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변치 않는 덩어리로서 지탱하게 해주는 ‘북엔드(bookend)’와 같은 구실을 한다.”

만경대 고향집.

조형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흥미로운 분석입니다. 평양 전체를 내려다보는 만수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동상은 주체탑과 더불어 평양의 조형적 랜드마크일 뿐 아니라, 김 씨 일가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충성으로 평양을 묶어주는 이데올로기적 랜드마크입니다. 즉 평양이라는 도시는 김일성 일가에게 바쳐진 하나의 거대한 신전이며, 김일성 부자 동상은 만수대라는 중심 제단의 가운데 모셔진 신상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만수대 기념비 남서쪽으로는 김일성의 탄생지로 알려진 ‘만경대 고향집’이 성역화되어 위치해 있습니다. 북동쪽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방부처리되어 누워있는 금수산 태양궁전이 있습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원래 금수산의사당, 일명 주석궁으로 불린 김일성 집무실이었습니다. 김일성 서거 1주기인 1995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명되었고, 김정일 사후인 2012년 2월 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금수산태양궁전.

북한에서 어떤 건물에 들어가더라도 제일 처음 보게 되는 것은 김일성 부자의 사진입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는 두 초상사진을 향해 예를 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청소하다가 훼손되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처럼 모든 것을 감시하는 보이지 않는 눈이 김 씨 부자의 사진 뒤에 있을 것만 같습니다.

북한달력 2종표지.

이러한 신격화는 보이는 이미지뿐 만이 아닙니다. 내년도 북한 달력에는 2019 숫자 옆에 주체 108년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원년으로 계산해 주체 연도를 병기한 것입니다.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15)과 김정일 생일 광명성절(2.16)은 북한의 7대 명절에 속해 있을 정도로 큰 기념일입니다. 김일성은 62살이던 1974년부터 자신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했고, 광명성절은 김정일이 40살이던 1982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4월과 2월에는 이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축제와 행사가 계속되며, 북한의 대형 건물과 기념비는 대개 이들의 생일을 전후하여 준공됩니다.

2011년 북한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한 외국인은 교내에 위치한 김일성학연구실 앞에서 매일 밤 순번을 정해 경비를 서는 학생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합니다. 죽은 김일성에 대한 추모를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4시간 경비를 서는 것은 모든 대학에서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형건물과 지하철역 내부 벽에는 어김없이 김일성과 김정일이 인자한 모습으로 신격화되어 재현된 모자이크 작품이나 벽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객차 내부에도 김 씨 부자의 사진이 걸려 있고, 사람들의 가슴에도 역시 김일성 배지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북한 어디에서나 무소부재한 김일성 부자의 신과 같은 눈초리를 느끼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에서 오랫동안 미술담당 기자를 지낸 필자는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석사를 마치고 현재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이무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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