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원짜리 악기 산산조각 난 이유? ‘제발 살살 다뤄주세요’

정혜원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9.01.07 16:33

연주자 따라 비행기에 탑승하는 악기들

자신의 짐을 수하물로 부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소중한 내 캐리어가 어디서 굴러다니다 온 건지 먼지는 기본이요, 마구 던져져 흠집이 잔뜩 난 상태가 되고 만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악기를 수화물로 부치고 싶은 연주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평소에 나는 악기를 가지고 다니는 연주자들이 부러웠다. 늘 연습하던 자신의 악기로 연주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항상 첼로 자리까지 티켓팅하던 친구가 항공사 측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악기를 수하물로 부쳤을 때, 비행 내내 불안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악기를 휴대하지 않는 피아니스트임에 감사할 정도였다.

산산이 부서진 연주자 미르나 에르조그의 악기 ‘비올라 다 감바’ | 미르나 에르조그 페이스북

올해 초, 2억 원이 넘는 악기가 산산조각 난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연주를 위해 알리탈리아 항공(AZ, Alitalia-Linee Aeree Italiane)을 이용한 미르나 에르조그(Myrna Herzog)는 수화물 찾는 곳에서 처참히 파손된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를 마주했다. 비올라 다 감바는 16~17세기에 사용된 악기로 첼로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1708년에 만들어진 에르조그의 악기는 세계에 몇 남지 않은 희귀한 악기였다. 보통은 악기 좌석까지 구매해 기내에 가지고 탑승해 왔지만, 사건이 벌어진 날은 승객이 많아 악기 좌석을 내어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수하물로 부쳤다고 한다. 악기 파손에 대한 분쟁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으며, 최악의 항공사 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알리탈리아는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정말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악기와 함께 비행해야 하는 연주자들은 많은 요소들을 대비하고 확인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 하곤 한다. 일단 악기와 함께 기내에 무사히 탑승했다 해도 환승하는 경우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으니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오죽하면 해외 음악 관련 블로그에는 ‘음악인들이 피해야 할 최악의 항공사(The world‘s worst airlines for musicians)’ 리스트가 있을 정도다.

2018년 음악인들이 피해야 할 최악의 항공사(The world’s worst airlines for musicians) 리스트 | slippedisc.com

물론 기내 반입이 가능한 악기도 있다. 가로, 세로, 높이의 합이 115cm 이내인 경우,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같은 크기가 작은 악기가 이에 속한다. 하지만 직접 가지고 탑승해도 악기는 공기압과 습도에 민감하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첼로나 기타 같은 대형 악기를 기내에 반입하려면 성인 탑승료와 똑같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악기를 수하물로 부칠 경우엔 하드케이스 핸들에 ‘Fragile’ 카드를 달아준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항공사에 위임하며 파손이 발생해도 항공사의 책임이 없다는 ‘면책 대상품’ 문서에 서명해야 한다.

네덜란드항공(KLM) 수하물로 부쳐진 첼로의 운반 모습. ‘Fragile’ 태그가 붙더라도 전혀 조심히 다뤄지지 않는다. | Youtube

매번 수하물로 부쳐도 무사히 악기를 만났다는 이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가. 작은 충격에도 치명적인 악기를 이렇게 다루다니 정말 충격적이다. 그나마 요즘은 일부 항공사에서 수하물로 부쳐진 악기의 운반 방법을 교육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트러블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 유나이티드 항공(UA, United Airlines)을 이용한 Andrew Arceci의 악기. 그는 미르나 에그조르의 동료이다. | Andrew Arceci 페이스북

최근 일본항공(JAL, Japan Airlines) 웹사이트에 ‘기타를 수하물로 맡기려는데 맞는 크기의 케이스가 없어서 곤란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후 항공사는 외부의 충격과 압력을 견딜 수 있게 제작된 악기 전용 케이스를 사이즈별로 준비해 일본 국내 전 공항에 배치했다. 비록 일본 내 국내선에 한해 시행하는 서비스지만, 항공사의 대처는 아주 칭찬할 만하다.

일본항공 홈페이지에는 소형 악기 케이스, 대형 악기 케이스 및 기타 케이스에 대한 안내가 명시되어 있다. 대형 악기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약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 JAL 공식 홈페이지

퍼스트 클래스에 악기를 앉히고 본인은 비즈니스에 앉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정도로 연주자에게 악기는 소중하다. 아직은 미비하지만 몇몇 항공사에서는 악기 운반 교육을 시행하고 악기 케이스를 비치하는 등 발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루빨리 항공사마다 악기 운반 시스템이 구축되고 피해 보상 방안도 마련되어, 연주자들이 악기와 함께 마음 편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정혜원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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