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살았던 과학자, 갈릴레이…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올댓아트 박송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4.19 18:3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4.19 18:33

지난 10일 인류가 최초로 관측한 블랙홀 사진이 공개됐다. 검은 바탕에 도넛 모양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간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블랙홀이 눈으로 확인된 셈이다. 5500만 광년 떨어진 거리였다. 천체를 관측한다는 건 나, 인간, 지구라는 좌표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자각하는 일이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왼쪽부터 어린 안드레아(이윤우)와 갈릴레이(김명수). | 국립극단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의 충돌”

만약 과학자를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과학자의 뿌리는 코페르니쿠스가 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는 우주는 신이 부여한 질서를 따라 작동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계승해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이 세상을 지배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하늘과 땅이 바뀌었다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이야기는 당대의 대중들에게 빠르게 번져나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근거해 자신의 권위를 세워왔던 교황청은 당황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고, 지동설을 주장한 지오다노 브루노를 화형에 처했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갈릴레이(김명수). |국립극단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는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가 충돌했던 16~17세기, 그 한복판을 건너온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삶을 다룬다. 새로운 세계가 왕성한 에너지로 움트고 있었으나 낡은 세계가 그들의 질서를 고수하기 위해 고집스레 이를 억압했던 시대,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천재 과학자의 삶은 어땠을까.

“입체적인 인물, 갈릴레이”

연극은 갈릴레이의 다면적인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신앙인이었고 눈이 멀 때까지 망원경으로 하늘을 쳐다보던 외골수이면서도 안정적인 연구를 위해 아홉 살짜리 피렌체 대공에게 굽신거릴 줄 아는 처세가기도 했다. 흑사병이 돌 때는 연구를 위해 피렌체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과학에 헌신하면서도 육체적 고통에 대한 공포에 굴복해 한순간에 지동설을 부정하는 나약한 인간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갈릴레이의 삶을 관통한 것은 이성의 힘에 기반한 과학에 대한 열정이었다. 갈릴레이는 브루노의 화형을 거론하며 그의 앞날을 걱정하는 친구에게, 또 신의 질서를 들이밀며 그를 굴복시키려는 사제들에게 반복해서 말한다. “눈으로 보는 것이 진실이다.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갈릴레이는 자신은 코페르니쿠스나 브루노와는 다르게 실제 관측과 계산을 바탕으로 지동설을 증명해낸 만큼 사제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무대 뒤편 커다란 화면에서는 극 중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관측한 우주의 모습이 띄워져 있다. 왼쪽부터 사그레도(김정환), 갈릴레이(김명수). |국립극단

연극은 이 같은 갈릴레이의 신념을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해 특별한 무대장치를 사용한다. 객석을 향해 돌려진 망원경을 갈릴레이가 들여다보면 무대 뒤의 대형화면에서는 망원경 렌즈에 포착된 우주의 진실들이 펼쳐진다. 웅덩이가 패인 달의 표면, 목성의 위성, 은하수의 모습 등 당시 갈릴레이가 실제로 관측했을 법한 천체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갈릴레이가 느꼈을 경이로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가면을 쓴 시대”

갈릴레이는 그 시대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신앙인이기도 했다. 이성에 대한 신뢰,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은 그의 신앙과 충돌하지 않았기에 그는 “당신의 우주 체계 안에서 신은 어디 있나”라는 교황청의 추궁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교황청은 표면적으로는 갈릴레이의 신앙을 문제 삼았으나, 속내는 지동설이 민중에게 퍼지면서 교회의 권위, 기득권의 질서가 무너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쩌면 교황청의 사제들에게 신이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알리바이였을 뿐이었다. 이는 극 중 사제와 귀족들이 가면을 쓰고 나와 갈릴레이를 회유?협박하는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민낯을 드러내지 않고 얼굴을 가린 채 홀로 가면을 쓰지 않는 갈릴레이를 희롱한다. “우리는 선생을 필요로 해요 선생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만들어야 할지도 몰라.” 그들을 설득하려던 갈릴레이는 어느새 무력감을 느끼며 비틀거린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귀족들이 가면을 쓰고 갈릴레이를 희롱한다. | 국립극단

학자의 양심과 억압적인 현실 사이에서 갈릴레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다. 꾸며진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지동설을 부인한 종교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연극은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부정하고 난 후의 갈릴레이의 모습을 지극히 인간적으로 그린다. 그는 교황청이 자신을 협박하기 위해 내보인 고문 기구를 본 후, 바로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철회했고 그의 학문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에게 분노하며 그를 저주하고 침을 뱉으며 떠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양심을 부정한 것에 대해 위악을 부리지도 않고, 또 제자나 지인들에게 애써 자신을 변명하지도 않는다. 대단한 식탐가였던 그는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교황청의 눈을 피해 연구를 몰래 진행하기도 한다. 수년 후 그를 떠났던 제자 안드레아가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 그를 찾아오자 ‘역학과 공간 운동에 대한 논의와 수학적 논증’이라는 논문을 네덜란드에서 출판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 논문을 본 안드레아가 스승에 대한 증오를 거두며 그가 지동설을 부정한 이유를 남아 있는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석하자, 그는 자신이 쓰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썼을 거라며 제자의 들뜬 해석을 일축한다.

“과학, 사회개혁의 불씨”

무사히 네덜란드로 떠나는 안드레아의 모습은 갈릴레이라는 천재 과학자의 생애가 낡은 시대에서 새 시대로 넘어가는 교두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성열 연출가는 인터뷰에서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의 충돌로 보았다“라며 “과학/종교, 관념/감각, 지배계급/피지배계급, 이성/미신 등 다양한 요소들의 대립과 갈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세계의 경계에 있는 갈릴레이의 생애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충분히 의미 있고 시의성 있는 작업이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노년의 갈릴레이(김명수). |국립극단

<갈릴레이의 생애>의 원작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이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사회개혁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갈릴레이의 생애>에서도 과학은 체제 전복의 불씨로 작동하고 있다. 극 중에서 갈릴레이를 지지하고 따르는 안드레아와 페데리쪼니, 키 작은 사제는 낮은 계급이지만 편견 없이 진리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과학자였던 갈릴레이의 입에서는 새로운 체제에 대한 열망이나 민중을 위한 과학 같은 정치적인 언사들은 들을 수는 없지만, 그가 구심점이 되어 낡은 권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추동이 이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갈릴레이의 생애>
2019.04.5~2019.04.28
서울 명동예술극장
R석 5만원, S석 3만5천원, A석 2만원
14세 이상(중학생 이상)
170분(인터미션 15분 포함)
김명수 이호재 강진휘 김정환 박가령 박건령 박경주 박지아 이원희 이윤우 장지아 정현철 황미영

<올댓아트 박송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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