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부터 한국무용까지…예술이 사랑한 여자 ‘장녹수’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5.29 16:5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5.29 16:54

정미애 한 폭의 그림 떠오르는 시원시원한 열창 ‘장녹수’♬ [내일은 미스트롯] 10회 20190502

전국에 트로트 열풍을 불러일으킨 TV조선 음악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2위를 거머쥔 정미애는 결승전 인생곡 미션에서 전미경의 ‘장녹수’를 열창했습니다. 이 노래는 1995년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장녹수>의 삽입곡이기도 했는데요.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 양 간 곳 없고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라는 가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연산군을 등에 업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권력의 역풍을 맞아 한순간에 져버린 장녹수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궁: 장녹수전>에서 녹수의 독무 장면 | 정동극장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폭군 ‘연산군’. 그의 이야기는 훗날 영화, TV 드라마, 연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로 재탄생했습니다. 연산군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죠. 바로 희대의 요부 후궁 ‘장녹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젖먹이 다루듯 하고,
왕을 희롱하기를 마치 노예 다루듯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화가 났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렸다.”
-‘연산군일기’ 47권, 연산 8년(1502년) 기록 중

영화 <왕의 남자>(2005) 속 장녹수와 연산군 | 네이버영화

왕족 제안대군의 노비였던 장녹수는 결혼 후 노래와 춤을 배워 기생이 되었습니다. 가난해서 시집도 여러 번 가고 자식까지 있었지만, 빼어난 기예로 연산군의 눈에 들어 왕의 기녀 흥청에서 종 3품에 이르는 숙용까지 올랐습니다.

연산군이 장녹수를 끔찍하게 아꼈던 이유 중 하나가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실제 장녹수는 연산군보다 10살 정도 나이가 많았고 외모가 빼어난 편은 아니라고 전해집니다. 조선의 ‘신데렐라’라는 별명처럼 순식간에 신분상승한 장녹수는 연산군의 총애를 입고 권세를 휘둘렀습니다.

장녹수의 드라마틱 한 이야기는 훗날 다양한 장르의 소재로 등장합니다. 유난히 색(色)을 밝힌 왕으로 전해지는 연산의 이미지와 더해져 주로 섹슈얼한 캐릭터로 그려지곤 했습니다.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치명적인 악인, 권력자의 모습으로 가공되면서 말이죠.

그러나, 최근 들어 장녹수의 예술가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해석도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장녹수는 외모가 아닌 뛰어난 춤과 노래 실력으로 연산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영화 <간신>(2015)에서 장녹수는 화자의 역할을 겸하며 판소리로 내레이션을 진행합니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장녹수 역할을 맡아 직접 판소리를 소화하면서 예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17년 방영된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장구춤을 선보이는 장녹수의 모습을 담기도 했는데요. 국악을 전공한 배우 이하늬가 장녹수 역을 맡아 이 장면을 소화했고, 아름다운 한국 무용 장면은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하늬는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국악풍의 OST ‘길이 어데요’를 부르면서 극중 장녹수처럼 가무에 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아가 2019 정동극장 상설 기획공연 <궁: 장녹수전>은 장녹수의 예술가적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최소한의 대사로 구성된 넌버벌 무용극인 이 작품은 노비 시절부터 최고의 권세의 이르기까지의 장녹수의 인생을 전통 무용과 연희를 통해 그려냅니다. 매체를 통해 접하던 요망한 모습보다는 천진난만하고 말괄량이 같은 어린 시절, 춤을 출 때의 우아한 자태 등 예술가로서, 성인으로서 성숙해져 가는 장녹수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장녹수라는 인물에 대한 부담감과 편견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인물의 또 다른 면모를 찾아내 그려내는 일이 즐거웠다. 역사적 맥락을 따르면서 공연 안에서 인물의 당위성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했고, 결국 장녹수가 예인(藝人)이라는 점, 그녀가 보여준 기예를 통해 답을 찾아갈 수 있었다.”
-<궁: 장녹수전> 정혜진 안무가-

<궁: 장녹수전>은 프롤로그에서 관객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콩주머니 던지기를 시작으로 ‘정업이 놀이(’짚으로 만든 인형을 가지고 하는 놀이) ‘가인전목단’(아름다운 사람이 모란을 꺾는다는 뜻의 궁중 무용) ‘장고춤’(장구를 두드리며 추는 춤, 장구춤이라고도 함) ‘선유락’(화려한 배를 끌고 나와 배 가는 시늉을 하는 춤),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연희꾼들의 가위치기, 커튼콜에서의 상모돌리기 등 다양한 전통 예술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궁 안의 여성들이 비, 빈, 숙원 등 후궁의 명칭에 성씨를 붙여 기억되는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장녹수’는 본명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희대의 요부였던, 빼어난 예술가였던 그의 인생은 후대에서 장르불문 예술이 사랑하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장녹수’의 새로운 면모는 2019년 12월 28일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2019 정동극장 상설공연 <궁: 장녹수전>
2019.03.15. ~ 2019.12.28.
서울 정동극장
기본가 4만 ~ 6만 원
공연시간 85분
48개월 이상 관람 가능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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