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 스타: VR 감독 이혜리 : “VR은 블루오션...예술의 문턱 낮추고 싶어요”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7.11 15:0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7.11 15:06

※ 네이버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매달 영 아티스트들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지금 아트씬에 두각을 나타내며 등장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봅니다.

낯선 신기술에서 이젠 우리의 생활 속에 친숙히 다가온 VR. 게임방은 물론이고 박물관, 전시장에서도 VR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 단순한 ‘360도 영상’을 넘어 ‘VR을 통한 예술의 체험’을 꿈꾸는 감독이 있다. 한예종 멀티미디어영상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혜리다. 그는 지난 2019년 3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네이버가 공동 주관한 VR 콘텐츠 공모전 ‘VRound’에서 르네 마그리트를 주제로 한 VR 작품으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혜리 감독을 만나 그가 꿈꾸는 VR 세상에 대해 들어 보았다. (https://tv.naver.com/v/9050569)

VR은 어떤 매체인가요?
VR은 ‘Virtual Reality’의 약자인데, 말 그대로 ‘가상현실’이란 뜻이에요. 현실과 달리 시공간의 제약이 없고, 일반 영상과도 다르게 직접 그 안에 들어간 것처럼 특정한 상황을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죠. 때문에 게임, 영화 같은 엔터테인먼트적 콘텐츠는 물론이고 의료적, 군사적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사용되기도 해요.

많은 영상 매체 중 VR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단순 관람이 아닌 ‘경험’으로 다가온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평소에 어떻게 하면 예술 작품이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VR이 그 답이 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명화의 경우에도 미술사나 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큰 감동을 얻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유명한 작품이구나’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평면적인 그림을 단순히 응시하는 것으로는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힘든 거죠. 그래서 명화나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서 VR로 체험하게 하면 예술작품을 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2018년 으로 VRound 대상을 수상했어요. 어떻게 기획하게 된 작품인가요?
처음엔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스터디 차원에서 시작했던 프로젝트였어요. 다른 친구들은 애니메이션·모델링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기술적인 부분을 맡고, 제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명화를 접목시킨 VR 콘텐츠를 구상하면서 어떤 작가가 VR에 가장 적합할까 생각하다가, 초현실주의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초현실을 다루니까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걸 체험하게 해주는 VR과 잘 맞는다고 판단했죠. 많은 초현실주의 작가들 중 르네 마그리트를 택한 건 기술적인 이유가 컸어요. 마그리트 하면 파이프, 사과, 모자 같은 구체적인 오브제들이 떠오르는데 이런 것들이 3D로 구현하기 좋거든요.

‘Empty Your Brain’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직역하면 ‘너의 뇌를 비워라’라는 뜻이에요. 기존에 갖고 있던 통상적인 생각을 비우고, 새로운 자세로 이 가상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제목입니다.

캡처

복제인간 ‘모구레토’가 안내를 해준다는 독특한 설정이 눈에 띄는데요.
모구레토는 마그리트의 생각을 물려받은 복제인간이자, 전시장의 큐레이터 같은 역할을 하는 안내자 캐릭터예요. 마그리트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히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거든요. 그래서 마그리트의 생각을 전달해주는 안내자 역할로 평범한 인간보다는 영원히 사는 복제인간을 떠올려봤습니다. 모구레토라는 이름은 마그리트의 이름에서 자음은 그대로 두고 모음만 바꾼 이름이에요. 별 뜻 없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름을 지은 과정 또한 마그리트의 작업 방식과 비슷한 것 같네요.

작품에 등장하는 ‘네 개의 섬’은 어떤 공간인가요?
이 작품을 기획하면서 마그리트에 대한 책을 전부 빌려와서 읽었어요. 그러면서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비슷한 주제끼리 분류해봤더니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지더라고요. 그 네 가지 주제를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 ‘네 개의 섬’입니다. <빛의 제국>이란 작품을 기반으로 한 ‘Time warp’, 파이프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This is not’, 그리고 시각의 확장성에 대한 ‘Extension’과 파괴된 물리의 세상 ‘Unphysical’까지, 총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작품의 어떤 점이 공모전에서 높은 평가를 샀다고 생각하나요?
일반적인 전시 VR 콘텐츠는 기존 그림을 그대로 구현해서 사실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에요. 저희 작품처럼 스토리텔링이 들어간 전시 콘텐츠가 드물어서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스터디를 위해 시작했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다 같이 공부도 하고 회의를 진행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고민하는 과정이 길었어요. 그런 고민을 심사위원분들이 알아봐 주신 것 같아요.

연출적으로 스스로 만족했던 부분을 꼽아보자면?
마지막 ‘Unphysical’ 월드에서 사용자가 좁은 방 안에 놓이게 돼요. 거기서 벽을 넘으면 무한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연출을 했는데요. 사실 VR에서는 원래 벽이 뚫린다는 게 문제점으로 인식되거든요. 그걸 역이용해서 새로운 연출을 시도한 거죠.

반대로 아쉬움이 남는 점은 없나요?
전체 구성이 사실적이기보단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형태로 되어 있는데요. 보다 실제 인물 같았다면 조금 더 몰입도가 높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또 VR 장비와 관련해선 장갑 같은 형태의 컨트롤러가 있으면 정말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도 물건을 잡는 인터랙션이 있긴 하지만, 리모컨 같은 형태의 컨트롤러로 조작하기 때문에 가상현실에 있다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거든요.

앞으로 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해주세요.
201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이 돼서, 한국 VR 초청전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지금 <르네 마그리트, 더 리빌링 이미지> 전시가 전 세계를 순회 중인데요. 이 전시가 경주로 옮겨가면서 저희 작품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7월부터 경주 우양미술관에서도 보실 수 있어요.

전시와 이 만나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나요?
마그리트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배경지식을 보다 쉽게 접하고 작품에 대한 흥미를 가질 기회가, 또 이미 미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생각을 더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이혜리 감독

명화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예중·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물론 그땐 실기 위주로 수업을 들었고 미술사나 이론에 대해 엄청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미술, 예술을 편안하게 느끼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미술에서 영상으로 진로를 바꾼 거네요?
저 스스로 그림으로 먹고 살 만큼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그림은 혼자만의 싸움인데 영상은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서, 대학은 영상과로 진학하게 됐어요.

미술을 전공했던 경험이 지금도 도움이 되나요?
VR 역시 시각적으로 뭘 어떻게 표현할지 계속 선택을 내려야 하는 작업이니까 미술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화면의 색감이나 모델링의 형태 같은 것에도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고요. 또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여러 전시에 갔던 경험도 지금 작업을 하는 데 좋은 바탕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마그리트 외에 VR로 다뤄보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현대인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휴식이잖아요. 모네나 르누아르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작품 속에 들어가서 그 속의 캐릭터와 대화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는, 그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동양화 쪽에선 책화도라는 정물화 장르가 있는데, VR을 통해 다양한 시점에서 보면 흥미롭지 않을까 싶어요.

VR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시간, 금전, 공간, 인력처럼 현실적인 부분이요. 내가 연출하고 싶었던 걸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지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 같아요.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흥미롭고 재밌는 점은 무엇인가요?
VR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다 보니, 무엇이 사람들에게 새롭게 느껴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굉장히 흥미롭고 성취감 있어요. 아직 블루오션이라 제가 깃발을 꽂을 곳이 많다는 점도 좋고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다른 사람이 했겠지’라는 두려움보단 도전정신과 용기가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VR의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기술 개발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VR 기술이 정점을 찍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기술보다는 콘텐츠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자기 전공에만 갇혀있기보다는 다른 분야와 접목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융복합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네트워킹을 많이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VR이 아직 낯선 독자들에게 VR에 입문할 방법을 추천해줄 수 있을까요?
영화제에 가시는 걸 강력 추천해요. 지금 가장 보편적인 VR 체험존 같은 경우 콘텐츠가 게임 위주로 한정되어 있거든요. ‘VR이 이만큼 확장 가능한 매체구나’ 하는 걸 느끼려면 영화제가 좋은 것 같아요. 이번 부산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VR 코너가 있는데, 좋은 콘텐츠들이 많아서 VR의 가능성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상 중이거나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은 어떤 건가요?
모나리자를 주제로 졸업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모나리자에 대해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이 많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잖아요. 그 모순점에 매력을 느껴서 ‘진짜 모나리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VR로 풀어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VR을 넘어서 이머시브 콘텐츠들을 통해 예술 작품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연구해보고 싶어요.

2019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작년에 너무 바쁘게 달렸기 때문에 올해는 졸업과 휴식만이 목표예요. 졸업 후에는 전문사(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에요. 취업을 해버리면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 힘들 것 같아서, 전문사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기술적, 인문학적, 예술적 지식을 쌓으려고 합니다. 영어 공부도 해서 장기적으로는 해외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게 목표예요.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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