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김홍도가 그린 실경산수화 경치에 취하다

올댓아트 박찬미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7.30 09:37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7.30 09:39

■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 2019년 7월 23일 9월 22일 | 국립중앙박물관

《해산도첩海山圖帖》 중 <해금강> 김하종, 조선, 1816년, 비단에 색 |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산과 강 등의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동양화의 한 종류인 산수화. 그중에서도 ‘실경산수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화가가 직접 경험한 경치를 그려 그가 느꼈던 감흥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인 데요. 그간 교과서나 책에 작게 실린 ‘실경산수화’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새로 개막한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전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화가의 세심한 붓터치가 느껴지는 원화의 감동에, 그림 속 풍경에 푹 빠져 볼 수 있도록 한 전시장 구성이 더해져 ‘실경산수화’를 제대로 만끽해볼 기회일 것 같은데요. 이번 전시에서 실경산수화를 120% 즐겨볼 수 있도록 약간의 배경지식을 탑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들과 함께 조선 산수여행을 떠나 볼까요?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실경산수화의 흐름을 살펴보고 화가의 창작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고려 말부터 조선 말기까지 국내외에 소장된 실경산수화 360여 점을 만나볼 수 있고, 전시측의 주관으로 제작된 영상 다큐를 통해 실경산수화가 그려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부 ‘실재하는 산수를 그리다’에서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중기 실경산수화의 전통과 제작배경을 살펴봅니다. 우리나라 실경산수화의 전통은 고려시대로 올라가지만, 그 제작이 활발했던 것은 조선시대였는데요. 조선의 실경산수화는 관료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나 은거한 선비의 거처를 그린 유거도, 별서도, 회화식지도 등으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유교문화, 한국만의 독특한 풍수개념 등이 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죠.

더불어 선비들의 유람문화가 실경산수화의 발달에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게 느껴지는데요. 유람에서 만난 빼어난 경치를 노래한 문학작품으로 특정 장소가 명승지로 알려졌고, 화가들은 그런 명승 현장에서 받은 인상을 우리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로써 조선 산천에 걸맞은 실경산수화가 무르익어 갔고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가 등장하는 바탕이 되죠. 1부에서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16세기 작품, ‘경포대도’, ‘총석정도’가 최초로 전시되어 실경산수화의 오랜 전통을 확인하는 기회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수가 천하에 이름이 높은데 금강산의 기이한 형상은 가장 으뜸이다. 또 불경에는 담무갈보살이 이 산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세상 사람들은 인간세계의 정토라고 일컫는다.”
- 이곡, ‘가정집’권3 기記 중

정선 신묘년풍악도첩 중 단발령망금강산 | 사진 (왼쪽)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올댓아트 박찬미

첫 번째로 만나볼 화가는 우리나라 산수화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곤 하는 겸재 정선입니다. 위 작품은 정선이 금강산을 방문하여 그린 ‘단발령망금강산’인데요. 제목을 풀이하자면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입니다. 단발령은 ‘이곳에 오는 사람마다 머리를 깎고 중이 되고자 했다’는 데서 비롯된 지명으로, 금강산의 초입 부분이죠. 금강산은 정선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자주 작품 소재로 삼은 장소입니다. 금강산은 중국인들까지 ‘고려국에 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았으면’ 할 정도로 유명한 산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도 다양한 화가들의 시선으로 포착된 금강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와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화첩. 《해악전도첩海嶽全圖》 중 <백운대> 김응환, 조선, 1788~9년, 비단에 색 |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2부는 ‘화가, 그곳에서 스케치하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낱말인 ‘스케치’로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이번 전시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여행을 떠난 화가들이 현장에서 자연을 마주하고 그린 ‘초본’입니다. 간략하게 그린 초본에는 경치를 보는 화가의 즉각적인 반응이 담겨 있습니다. 풍경의 요점을 잡아내고, 현장에서 떠오른 감정을 화면에 써 놓기도 하였죠.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 김홍도는 1788년 정조의 명을 따라 관동지역과 금강산을 사생했다. |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최근 동서양, 사조 등과 상관없이 순간의 감흥을 담은 ‘드로잉’ 작품에 대한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데요. 이와 같은 관점에 따르면, 실경산수화의 초본도 화가의 시선을 생생히 증언하는 또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2부에서는 1788년 정조의 명을 따라 관동지역과 금강산을 사생한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을 비롯하여 친구와 함께 유람을 하며 남한강의 풍경을 스케치한 정수영의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배 위에서 남한강 신륵사를 그렸다는 정수영 화백의 시선을 따라 오늘날 같은 곳을 다시 찾아가보는 영상물도 감상할 수 있죠.

제3부 ‘실경을 재단하다’에서는 화가가 작업실로 돌아와 초본과 기억 등을 바탕으로 산과 계곡, 바다, 나무와 바위, 정자 등의 경물을 재구성하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거대한 산수를 2차원 평면에 옮기기 위해 구도를 고민하죠. 경관을 바라보는 시점을 선택하고 부채, 두루마리, 병풍과 같은 화면 형식에 알맞도록 그림을 그려넣었습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그림 속 화가의 위치를 상상하며 그들의 시점과 구도의 관계를 짚어보고, 화첩, 두루마리, 선면 등 다양한 매체에 따른 구성과 여정의 편집을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산수화의 구도는 크게 위처럼 나뉜다. 전시 전경 일부.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마지막으로 제4부 ‘실경을 뛰어넘다’는 화가가 경치를 재해석하여 실제 모습에서 자유로워지거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에 주목하였습니다. 화가들은 실경을 뛰어넘어 형태를 의도적으로 변형하거나 과감하게 채색하고 붓 대신 손가락, 손톱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요. 더나아가 원근과 공간의 깊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양의 투시도법을 시도하는 등 화가들이 고민했던 흔적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유람을 추억하며 그린 산수화는 실경과 닮지 않았더라도 화가의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냅니다.

김윤겸 영남기행첩 중 극락암. 대표적인 ‘심원’ 구도 작품으로, 아득하게 보이는 산맥의 풍광이 감상포인트 중 하나. 작품 속 풍경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이 관람객의 마음까지 고요를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은 산수화가 가장 어려운데, 그것은 산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 진경을 그리는 것이 어려운데, 닮게 그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진경을 그리는 것은 더 어려운데, 실제를 놓친 것을 숨기기 어렵기 떄문이다. 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지역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어림짐작으로 닮게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 강세황 ‘도산도’ 발문 중

허필 ‘묘길상’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위는 허필 화백이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억을 되살려 그린 묘길상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불상의 요소를 모두 생략하고 서 있는 수도승으로 왜곡하여 그린 것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해석하는데요. 화가 스스로를 은둔처사로 표현하기 위해 실경을 해체하고 재해석한 자전적 문인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아래에서 한 작품을 더 살펴볼까요?

윤제홍 ‘옥순봉’ 1833년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사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먹이 칠해진 부분들이 다소 둔탁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는 윤제홍 화백이 손가락에 먹을 찍어 과감하게 그린 옥순봉의 모습인데요. 윤제홍은 선배 화가인 이인상의 옥순봉 그림을 참고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원본과는 다른 정자를 등장시키는 등 실경에 없는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온전히 상상의 산물을 더한 것이었죠.

“땅은 그 곳과 인연을 맺은 사람 때문에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지, 단지 경치가 빼어나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 강세황, 송도기행첩 중

화폭에서는 켜켜이 쌓인 시간까지 함께 느껴집니다. 수백년 전 화가들이 보았을 경관은, 아마 지금의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다신 볼 수 없을 과거 우리 땅의 모습이, 그리고 이를 바라보며 화가들이 느꼈을 전율이 그나마 종이와 비단 위에 새겨져 공감할 수 있다니, 다행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전시명 :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전시기간 : 2019년 7월 23(화) ~ 2019년 9월 22일(일)까지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티켓가 : 성인 5,000원 / 어린이 및 청소년 (8-25세) 3,000원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올댓아트 박찬미

<올댓아트 박찬미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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