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거나 외롭거나…김지현을 ‘믿보배’로 꼽는 까닭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9.08.26 16:0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8.26 16:37

김지현, 신뢰의 이름

드라마 <저스티스>에 출연중인 배우 김지현. |KBS

KBS <저스티스>는 다양한 인물이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다. 이태경(최진혁)과 서연아(나나)에게는 태경 동생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여성배우 연쇄 실종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며, 송우용(손현주)과 탁수호(박성훈)는 그들이 마주하는 악의 최종 보스다.

비교적 목표가 명확한 이들에 비해 사건이 진행될수록 노선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부장검사 차남식(김지현)이다. 철저한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에 적극 동조함으로써 권력을 얻은 명예남성이자 정의를 향한 후배를 억압하는 상사가 그가 맡은 롤이다. 하지만 서연아의 수사를 만류해달라는 서동석(이호재)의 부탁에 이어지는 차남식의 질문, “7년 전 제가 그 사건 팠을 때 멈추게 하신 이유와 같은 겁니까?”는 그의 과거와 앞으로의 행동을 궁금하게 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과 고저가 없는 화법의 건조함으로 무장한, 그래서 더욱 속을 알 수 없는 인물.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연극 <프라이드> 속 김지현.|달컴퍼니, 연극열전

차남식 역을 맡은 배우 김지현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스무 편이 넘는 뮤지컬과 연극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차분하거나 신비롭고 어두운 분위기의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때때로 다른 결의 인물도 만났지만,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서는 외로움이었다. 부모의 학대를 피해 술과 마약에 의지한 일세(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와 모든 것을 가졌으나 가장 열망하던 것을 얻지 못해 파멸에 이르는 진성여왕(뮤지컬 <풍월주>), 자유로운 삶이 불가능했던 애나(연극 <만추>)가 그랬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과정은 매 작품에서 김지현이 마주한 숙제였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나 연극 <프라이드>처럼 먼저 움직여 상대를 자극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때가 많았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은 뮤지컬 <모래시계>와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로 외로움을 지워갔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일탈이거나 누군가를 상처 내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저스티스>의 남식은 이 연장선에 있다. 조직에 대한 순응은 학연과 지연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혈혈단신 움직여야 했던 그가 선택한 방법이다. 때문에 그가 사회적 가면 안에 자신을 가두고 쌓아온 힘의 방향이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의 의인화처럼 보이는 남식은 튀지 않고 극에 스며들어 보편의 정서를 만들어온 김지현과 만나 그 깊이를 더한다. 흑과 백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캐릭터가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종종 사연 있는 악역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지현은 10월 개막하는 <스위니토드>의 러빗 부인으로 캐스팅됐다.|오디컴퍼니

그런 그가 최근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러빗 부인으로 캐스팅됐다. 김지현은 해외 뮤지컬보다는 우리의 정서를 담은 창작뮤지컬을, 극단의 감정보다는 섬세하게 결을 고르는 연기를 주로 해왔다. 그런 그에게 스위니 토드의 복수를 돕고 인육파이를 제안하는 러빗 부인은 완전히 새로운 범주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가 산업혁명 당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작품이라는 것을 떠올려 봤을 때, 그들의 고군분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김지현은 매번 복잡한 상황을 탈피하는 인물을 그려왔고, 그런 그의 캐스팅은 2019년의 <스위니 토드>가 사회구조 안에서의 개인을 들여다보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준다. 배우의 이름이 작품 자체의 신뢰로 이어지는 것, 김지현이 일궈낸 성취다.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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