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에서 ‘베르테르’ 되기까지…‘더블캐스팅’ 우승자 나현우를 만나다

글·사진|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08.28 10:4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08.28 11:02

뮤지컬 <베르테르> 배우 나현우 인터뷰

올해 20주년을 맞는 뮤지컬 <베르테르>. 엄기준, 카이, 유연석, 규현 등 쟁쟁한 배우들과 더불어 다섯 번째 베르테르로 이름을 올린 신인 배우가 있다. tvN 뮤지컬 앙상블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 캐스팅’에서 지난 4월 최종 우승을 거둔 나현우다.

1993년생인 나현우는 2014년 연극 <햄릿, 여자의 아들>로 데뷔했다. 이후 소극장 뮤지컬 <창문너머 어렴풋이>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대개 대극장 뮤지컬의 앙상블로 무대에 섰다. 나현우는 ‘더블 캐스팅’ 출연 초반부터 훤칠한 키와 풋풋한 이미지, 그리고 깔끔한 가창력으로 주목받았다. <베르테르> 주연 자리가 걸린 결승 무대에서는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우승을 거뒀다.

우승 후 네 달이 지난 지금, 나현우는 8월 28일 개막하는 <베르테르> 연습에 한창이다. 롤모델이라는 배우 조정석이 소속된 잼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대극장 주연이 됐지만, 나현우는 차분하고 겸손했다. 아래는 오래도록 진실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나현우와의 일문일답.

배우 나현우

◇ 상상도 못했던 ‘더블 캐스팅’ 우승

<더블 캐스팅> 출연 당시, 처음 선보였던 ‘에어포트 베이비’ 때부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우승을 예상했나요?

전혀요. (웃음) 방송에 나가서 한 번만이라도 내 노래를 보여주고 싶다, 작은 배역이라도 무대에 서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출연했던 거라 우승은 생각도 못 했죠.

그런데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거뒀어요.

준결승에서 <디어 에반 한센> 넘버를 부르기 전까진 언제 떨어져도 행복하다는 마음이었어요. 결승전까지 나가게 되니 그때부터 욕심이 나기 시작했죠.

마침내 최종 우승자가 되어 <베르테르>에 출연하게 되었을 땐 어떤 기분이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그땐 기쁨보단 ‘이제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더 컸어요. 그날 뒤풀이에서도 “저 어떡해요”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 <더블 캐스팅> 결승전 무대

지금은 어떤가요. 베르테르 역에 캐스팅된 5명의 배우 중 유일한 신인인 데다 막내이니,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겠죠.

맞아요. 그런데 (베르테르 역을 같이 맡은) 형들이 정말 잘 챙겨줘요. 조광화 연출님도 너무 잘 지도해 주고 계시고요. 이 부담감은 어차피 극복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방법인 것 같아요. 훌륭한 제작진과 선배님들, 그리고 스스로를 믿고 매일 연습실에서 제 자신을 내던지고 있어요.

다른 배우들이 해준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모든 분들이 “너는 당연히 다른 주연 배우들만큼 해낼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신인인 제가 갑자기 다른 선배들만큼 해내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라고요.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던지면 좋겠다고 말해주셨어요. 그 말이 가장 제 긴장을 풀리게 해준 것 같아요.

대극장에선 주로 앙상블을 하다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어요. 어떤 차이에 신경을 쓰며 연습하고 있나요?

앙상블은 중간마다 짧게 대사를 치거나 솔로 파트를 하잖아요. 그래서 그 짧은 순간에 개성을 보여주려고 힘을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보다 긴 호흡을 갖고 큰 흐름을 이어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모든 시선이 주인공을 따라가니까 부담도 되고요.

◇ 나현우의 ‘베르테르’

배우 나현우

<베르테르>의 대본을 처음 받아봤을 때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아무래도 연기하는 사람이다 보니 작품 전체보다는 베르테르라는 인물 위주로 보게 됐어요. 그때 첫인상은 베르테르가 여리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소설만 읽었을 땐 베르테르가 단순히 사랑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여리고 아픈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뮤지컬 대본을 보니 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이란 걸 느꼈어요. 베르테르는 18세기 독일의 계몽주의 시대에 갑자기 떨어진 이단아예요. 사랑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 사랑을 꿈꿨던 사람이었죠.

조승우, 임태경 등 많은 스타들이 거쳐 간 캐릭터이기도 해요. 그들을 참고한 편인가요, 아니면 자신만의 베르테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제가 아무리 참고한다고 해도 그분들을 흉내 낼 수는 없어요. 연출님은 나현우란 사람이 본래 가진 것들을 베르테르와 맞춰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과정을 함께 밟아가는 중이에요.

그렇다면 나현우 베르테르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주변에서는 베르테르와 나이대나 상황이 워낙 비슷하다 보니 굉장히 잘 어울리고 시너지가 난다고들 해주세요. 베르테르와 비슷한 나이에 역할을 맡았던 분들이 별로 없다 보니 그 부분이 강점인 것 같아요.

배우 나현우

<더블 캐스팅> 선곡을 봤을 때 본인에게 어떤 게 어울리는지 잘 파악하는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오디션에서 흔히 부르는 클래식한 넘버들이 아닌, 본인 이미지와 나이에 어울리는 곡들을 선곡한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모르겠어요 사실. (웃음) 그냥 제 취향대로 선곡한 거였거든요. 제가 클래식한 곡엔 약하기도 하고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연기’라는 지점은 계속 놓지 않고 고민했어요. 연기를 전공했다 보니 제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부분은 연기와 캐릭터 분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경연곡마다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베르테르> 넘버는 어떤가요? 본인과 잘 맞는 것 같나요?

잘 맞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내악이라고, 현악기 위주로 편성된 음악인데요. 너무 클래식하지도 않고, 노래보다는 말에 가까운 음악이에요. 음악감독님과 연출님도 “뮤지컬보다는 음악이 가미된 연극이라고 생각하면 좋다”고 하셨어요. 말하는 것처럼 노래할 수 있어서 편안해요.

<베르테르>가 배우로서 큰 성장의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

조광화 연출님을 만나고 나서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제가 ‘은사님’이라고 부를 정도예요. 그분의 예술적 능력은 커다란 강이나 바다 같아요. 저는 숟가락 하나로 그분의 역량을 퍼 담는 중이고요. 그렇게 퍼 담는 것만으로도 제 인생과 연기론이 뒤엎어질 정도예요. 물론 혼도 많이 나고 제 부족함을 많이 느끼기도 하지만, 전 워낙에 이런 걸 늘 원했거든요

◇ 영화관을 좋아하던 소년, 뮤지컬 배우가 되다

배우 나현우

배우의 꿈은 어떻게 처음 꾸게 됐나요?

어머니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영화관에 자주 갔어요. 지금도 영화관에 가면 힐링이 되고 팝콘 냄새만 맡아도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 꿈도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가 됐죠. 어머니가 성룡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땐 액션 배우를 꿈꾸기도 했어요. (웃음)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무슨 확신이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부터 계속 배우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저희 집이 가난한데도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셨어요.

<베르테르>에 출연하게 됐을 때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겠어요.

저는 지금 어머니에게 거의 종교가 되었어요. (웃음) 몸이 조금 안 좋으신데 제 사진만 봐도 씻은 듯이 나은 것 같다고 하세요. 저만 보면 ‘꺄르르’ 웃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도 힘이 나요.

다른 장르가 아닌 뮤지컬 배우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조정석 선배님에게 빠졌어요. 그분의 영상을 다 찾아보다가 뮤지컬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노래하면서 연기, 춤까지 하다니, 나도 저런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특히 그때 본 <헤드윅> 영상은 제 배우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어요.

‘대학로 뮤덕’이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너무 많아요. 일단은 <헤드윅>을 빼놓을 수 없고요. 대학로 뮤지컬에 사로잡힌 계기가 된 <여신님이 보고 계셔>도 좋아해요. 대학로 작품은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대학로 뮤지컬은 극장도 작고 인물 수도 많지 않잖아요. 그 적은 인원이 작은 공간에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게 배우로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뮤지컬 <록키>예요. 비록 공연은 무대에 올라오지 못했지만, 그걸 해서 나중에 <나폴레옹>도 하게 됐고 이후에 <드라큘라>에도 출연하게 됐거든요. 공연이 엎어졌을 땐 다들 엄청 속상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기 있던 앙상블 배우들이 다 지금 엄청 잘 풀렸어요. 저뿐만 아니라 조원석 형, 황두현 형, 김환희 누나, 김려원 누나, 그리고 지금 드라마 잘 하고 있는 한규원 형까지 모두가요. 그때 만난 박은석 형도 지금 <베르테르>에서 알베르트 역으로 만나서 엄청 신기했어요.

배우 나현우

의외의 특기인데, ‘뮤지컬계 팔씨름 1위’라고요.

고등학생 때 팔씨름이 너무 재밌어서 아마추어 팔씨름 선수 같은 걸 꿈꿨어요. (웃음) 지역 대회도 나가고 그랬는데 저희 지역에선 제가 제일 셌죠. 뮤지컬 쪽에서 저랑 맞먹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나폴레옹>을 할 때 만났어요. 배우 기세중 형이 그 지역에서 1위였대요. 서로 ‘설마 내가 뮤지컬 배우한테 팔씨름을 지겠어’ 하고 붙었는데, 무릎이 다 까질 만큼 혈전을 벌였죠. 결국 제가 이겼어요. 세중이 형이 워낙 뮤지컬계에서 팔씨름으로 유명해서 그 형을 이겼으면 끝난 거거든요. (웃음)

롤모델이나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조정석 선배님은 항상 저의 마음속 1위시고요. (웃음) 전미도 선배님과도 꼭 한 번 연기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전미도 배우가 <베르테르>를 안 해서 아쉬웠겠어요.) 아니에요. 오히려 만났으면 너무 긴장했을 거예요. 유연석 형도 학교 선배시고 나중에 꼭 작품에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만나서 감회가 새로워요. 나중에 다른 역할로도 만나서 대사를 주고받아 보고 싶어요. 엄기준 형이랑도 나중에 형제 역할 같은 걸로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소속사인 정상훈 선배와도 같이 연기하면 너무 행복할 것 같고요. 아, 서경수 선배와도 만나보고 싶어요! 정말 팬이거든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디어 에반 한센>의 에반을 너무 하고 싶고요. <헤드윅>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라이선스 초연 작품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다른 배우들이 거쳐가지 않은 역할을 처음으로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코믹한 역할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진중함의 끝을 달리고 있는데, 사실 제가 코미디 연기에 자신이 있거든요. 그리고 뮤지컬 외에도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드는 올라운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조정석 선배처럼요.

배우로서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전 연기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 직업에 있어서만큼은 진실되고 싶거든요. 제가 요행을 부리지 않고 성실히 하는 사람이란 걸 스스로 아니까, 오래도록 이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래오래 진실되게 공부해가면서 다양한 역할을 창조하는 배우,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도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 뮤지컬 <베르테르>
2020.08.28 ~ 2020.11.01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8세 이상 관람가
공연 시간 155분
엄기준, 카이, 유연석, 규현, 나현우, 김예원, 이지혜, 이상현, 박은석, 김현숙, 최나래, 송유택, 임준혁 등 출연

<글·사진|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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