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없는 세상을 위해 ‘불편한’ 연극을 만드는 극단 신세계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6.28 15:18

극단 신세계의 공연은 항상 ‘불편하다’는 수식어와 함께 이야기된다. 우선은 작품의 주제부터가 그렇다. 신세계의 연극은 한국 사회가 외면해온 ‘불편한’ 주제들을 들춘다. <공주들>에선 일본군 ‘위안부’부터 기지촌, 기생 관광으로 이어져 내려온 성 착취의 역사를 그렸다. 올해 제42회 서울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생활풍경>은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몇 년 전 실제 일어났던 주민 토론회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에선 남녀의 사회적 지위가 뒤바뀐 가상의 세계를 그린 원작 소설과 한국 사회의 미투 이슈를 교차시키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연극 <공주들>|극단 신세계

그러나 신세계는 단순히 이런 주제를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신세계는 사회가 눈감아온 폭력과 차별의 현실을 무대 위에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들의 사전에는 ‘적당히’나 ‘포장’이란 단어가 없다. 때로는 관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2015년 <그러므로 포르노>에서 수십 리터의 물을 마시는 배우를 보다 못한 관객이 공연 중단을 요청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신세계가 이토록 ‘불편한’ 연극을 만드는 이유는 ‘더 이상 불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사회가 쉬쉬해왔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만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세계는 무대 위뿐만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실현시키려 노력한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극단 내 시스템을 정비했다. 신세계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직접 창작에 참여한다. 그리고 구성원 간에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이를 발언하고 사과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극단 내부에 성?위계폭력 지침서 또한 마련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관객들에게도,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확실한 색깔을 가진 극단으로 알려지며 자리를 잡았다. 수평적인 작업 환경을 원하는 배우들, 공연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싶은 배우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어느새 24명의 팀원이 함께하고 있다.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 앞에 때로는 좌절도 하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극단 신세계. 김수정 연출과 배우 김보경?고용선?이강호, 그리고 연출부의 전웅을 만나 그들이 꿈꾸는 ‘신세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극단 신세계는 어떤 극단인가요?

김수정: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집단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불편하고 외면해왔던 이야기를 직접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변화가 일어나고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 모두 아프지 않고 잘 살기 위해 이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극단 신세계와 어떻게 처음 함께하게 되었나요?

이강호: 저는 김수정 대표님이 학교에서 공연을 올릴 때부터 봐왔어요. 그리고 저의 연기 선생님이 신세계 단원이셨거든요. 계속 신세계 작품을 관람하면서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운이 좋게 단원으로 들어오게 됐죠.

전웅: 신세계 공연을 보면 팸플릿에 항상 참고문헌이 빽빽해요. 그걸 보면서 ‘여기서 작업하면 내가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신입단원 모집 공고를 봤고, 오디션을 통해 단원이 됐습니다.

김보경: <그러므로 포르노>란 작품이 정말 좋았어요. 당시 너무 힘들었던 게, 전 분명 배우인데도 공연을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런데 이 공연은 처음으로 ‘이걸 만든 사람들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쉽고 직관적이었죠. 이런 공연의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신세계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고용선: 신세계 이전에 많은 극단에서 수많은 위계 폭력에 노출되어 상처를 받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계속하고 싶어서 고민하던 찰나, 지인들로부터 신세계의 창작 환경과 작품 주제에 대해 추천을 받았죠. 마침 단원 모집 공고가 떠서 들어오게 됐고, 굉장히 만족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연극 <공주들>|극단 신세계

신세계의 작품들은 항상 ‘가감 없는’, ‘적나라한’, ‘불편한’ 같은 수식어와 함께 이야기되는 것 같아요.

김보경: 저희는 저희가 살아가는 있는 세상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불편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외면해왔기 때문이죠. 오히려 폭력의 재현이나 자극적인 요소로 소비될 수 있는 장면들은 공연에 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공주들>은 성 착취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지만, 강간이나 섹스 장면이 직접 나오진 않아요.

김수정: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평도 많이 들었어요. 일상에 존재하는 폭력인데, 무대 위에 가감 없이 올려놓았기 때문에 ‘불편하다’, ‘세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작년 중장기 창작지원을 통해 <생활풍경>, <사랑의 오로라>를 선보이면서 ‘젠더트러블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이강호: 젠더트러블 프로젝트는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역할이 우리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라는 주제에서 시작했어요. 젠더의 경계에서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죠. 처음에는 성 정체성에 국한해서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작업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사회가 부여한 역할이란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개념을 확장해서 공연으로 만들어본 것이 <생활풍경>과 <사랑의 오로라>예요.

<사랑의 오로라>|극단 신세계

<사랑의 오로라>는 기존 신세계 작품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작품인 것 같아요. 상업 무지(無知)컬이라는 수식어나, 상업 작품들의 클리셰를 과장?풍자한다는 아이디어가 재밌었는데요. 어떻게 기획한 작품인가요?

김보경: 혜화동 1번지 동인으로 활동할 때 ‘상업극’이란 주제로 페스티벌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두근두근 내 사랑>이라는 작품을 공연했는데요. 상업극에 무지한 극단 신세계가 뮤지컬 형식의 공연을 만들었다는 뜻에서 ‘상업 무지(無知)컬’이란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올해 <사랑의 오로라>란 제목으로 다시 올리면서는 가부장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지에 대해 탐구해보려고 했습니다.

<공주들>은 극장 입구를 ‘윗구멍’, ‘아랫구멍’, ‘뒷구멍’으로 나누어 관객들이 선택해 들어가게 한 점이 독특했어요. <생활풍경> 역시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관객들이 찬성?반대를 선택해 앉도록 공간을 구성했는데요. 이런 형식을 통해 관객들이 어떤 경험을 하길 기대했나요?

전웅: <공주들>의 경우에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김공주란 인물의 몸으로 상정해서, 극장에 들어가는 행위를 김공주의 몸에 침입하는 것으로 연출했어요. 관객 역시 서사의 일부가 되도록 한 것이죠. <생활풍경>은 관객들을 주민토론회에 참석하는 주민으로 상정했어요. 관객들이 입장을 선택하고 입장하는 경험을 해보도록 만들었죠.

김수정: 저희가 지향하는 공연은 관객들이 그냥 바라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극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공연이거든요. 무대 위 환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변화를 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신세계 공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관객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김수정: <그러므로 포르노>란 작품을 할 때, 관객이 장면을 끊고 발언하신 적이 있어요. ‘이제 알겠으니까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셨죠. 그밖에 감사했던 관객 반응은 ‘고맙다, 너희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아픈 것만 보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해 주신 어른들도 계셨고요. 처음에는 저희 작업이 호불호가 심했는데, 계속 반복되고 의도를 알게 되니까 저희를 지지해 주는 관객분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능력이 되는 한 계속 마주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극 <생활풍경>|극단 신세계

신세계의 모든 작품은 공동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들었어요. 이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전웅: 우선 스터디 과정부터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서 작품의 키워드를 도출해냅니다. 그 키워드를 바탕으로 모든 구성원이 장면을 써 와서 발표해요. 작품당 장면이 80개에서 100개까지 나오기도 하죠. 그걸 기반으로 회의를 거쳐 각 장면에서 채택할 요소들을 정해요. 그러면서 작품의 플롯을 같이 구상하고, 그걸 바탕으로 작가분들이 초고를 완성합니다. 그러면 리딩을 거쳐 피드백을 하고 다시 텍스트를 수정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하죠.

그 과정에서 수평적인 의견 교환을 지향한다고요. 이를 위해 지키고 있는 원칙이 있다면.

김수정: 피드백과 디렉션을 구분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어요. 디렉션은 연출가가 프로덕션이 가야만 하는 방향성을 선택해서 제시하는 것이죠. 반면 피드백은 본인이 원할 때만 줘요. 정해진 약속이 있을 때만 정해진 공론장에서 피드백을 주는 것이죠. 그리고 극단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회사처럼 시설관리팀, 기록관리팀, 운영사업팀 등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중에 복지지원팀이 있어요. 문제가 있을 때 대표에게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중간 소통을 담당하는 매개자를 만들어 놓은 거죠. 나름대로 교육도 받고, 불편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들어 놓았어요.

극단 내부에 성·위계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매뉴얼도 있다고 들었어요.

김수정: 구성원 전원이 모여서 문장 하나하나를 수정해가며 만든 문서예요. 이걸 매 작품마다 함께 읽고 시작하죠. 이 문서를 만들면서 굉장히 많은 매뉴얼을 참고해봤어요. 저희 문서의 차별점은 모든 경우에 대한 지침이 다 적혀있다는 거예요. 내가 가해 당사자가 됐을 때, 피해 당사자가 됐을 때, 또는 주변인이 됐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다 적혀있죠. 이런 게 있다고 해서 저희 집단에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속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뉴얼이 존재하더라도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기까지는 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모든 구성원이 매뉴얼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이강호: 불편함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줬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순간에 불편함을 준 사람일 뿐, 그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 말자.’라는 약속을 함께 했어요. 불편하면 편하게 이야기하고, 먼저 사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죠.

연극 <공주들>|극단 신세계

이런 과정을 통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다 보면, 실제 삶의 태도나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이강호: 공연 하나를 할 때마다 새로운 눈이 생기는 기분이에요. <공주들>이나 <생활풍경>을 하면서 전엔 인지하지 못했던 폭력과 차별에 대해 알게 됐거든요. 이전에는 불편한 말을 듣더라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참고 넘어갔는데, 이제는 제가 본 것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김보경: 저는 공연을 하는 매 과정이 괴롭고 고통스러워요. 제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나쁜 사람이었는지 깨닫는 과정이거든요. 어떨 때는 ‘내가 굉장히 많이 당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정말 속 편하게 살았네’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생활풍경>을 하면서는 제가 지금까지 장애인을 차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죠. 공연을 한다는 게 스스로를 마주하는 과정 같아요.

김수정: 공연을 만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속 찾아가는 것 같아요.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우리가 이렇게 ‘으쌰 으쌰’ 작업을 했는데, 극장 밖에 나와서 전혀 변하지 않은 세상을 마주할 때예요. 그럴 때 굉장한 한계와 무력감을 느껴요. ‘예술이 뭐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무력감을 느낄 때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수정: 극단 신세계의 동료들이죠. 가장 솔직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망각댄스>|극단 신세계

극단 신세계의 추후 공연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강호: 8월에 <별들의 전쟁>이라는 공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있었던 민간인 학살 사건과 일본군 ‘위안부’ 사건, 그리고 2021년 우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사회가 규정한 젠더 규범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공주들>에서 다뤘던 담론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는 작품이에요.

김수정: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선 가해 당사자였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서는 피해 당사자의 입장이었잖아요. 그 두 가지를 교차시키는 과정을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김보경: 그리고 2017년부터 계속 해오던 <망각댄스>를 올해는 온라인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극단 신세계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강호: 계속 무대에 서는 걸 꿈꾸고요. 배우이자 창작자로서 신세계가 이야기하는 주제들을 통해 동력을 많이 얻어요. 그래서 신세계가 이 방향성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웅: 신세계를 통해 계속 공부하고,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고 싶어요. 도태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보경: 신세계에서 활동한 지 6년 정도 됐는데요. 그동안 신세계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고, 비로소 연극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신세계를 통해 동력을 얻었던 것처럼, 이제는 제가 신세계의 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를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거든요. 신세계 유튜브가 더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고용선: 싸이와 BTS가 이렇게 성공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저희도 지금은 매번 작품을 하면서 변하지 않는 세상에 힘들어하고 있는데요. 언젠가는 신세계로부터 어떤 불씨가 시작되어 세상이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수정: 저는 상처받지 않고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가 고민을 포기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신세계를 만든 후에 굉장히 달라졌거든요. 앞으로도 제가 변화할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하는 집단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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