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왕비, 비올라 켜는 왕, 첼로 연주하는 공주

장지영 공연칼럼니스트
입력2019.05.27 10:56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5.27 10:58

일본 왕실의 클래식음악 사랑…어릴 때부터 악기 연주 배워

지난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이 즉위했다. 일본에서 천황(天皇)으로 불리는 왕의 생전 퇴위는 202년만이다. 아버지인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고령을 이유로 2년전 양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좋든싫든 일본이 한국과 밀접한 관계인만큼 한국 언론은 나루히토 일왕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클래식음악 애호가라면 나루히토 일왕의 비올라 연주가 수준급이라는 구절에 시선이 갔을 것 같다. 사실 나루히토 일왕의 비올라 연주는 지난 2004년과 2007년 도쿄에서 열린 ‘한·일 우호 특별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로 나선 정명훈과 두 차례 협연하면서 국내에도 알려진 바 있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와 나루히토 왕세자는 클래식 애호가다. 지난 5월 1일 새 일왕으로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의 비올라 연주는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일본궁내청, ANN 방송캡쳐

나루히토 일왕은 어릴 땐 바이올린을 켰지만 가쿠슈인대학에 입학하면서 비올라로 전향했다. 도호학원 음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구보타 료사쿠에게 두 악기 모두 배웠다고 한다. 두 악기의 주법은 비슷하지만 튀지 않고 조용한 나루히토 일왕의 성격을 고려할 때 비올라가 더 어울린다.

비올라에 대한 나루히토 일왕의 애정은 유명하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것은 물론 졸업 이후에도 동문 오케스트라의 정기공연에 거의 매년 참여하고 있다. 또한 바흐 탄생 300주년이었던 지난 1985년엔 일본 고음악 단체 ‘바흐 콜레기움 도쿄’의 객원단원으로 여러 콘서트는 물론 런던에서 가진 녹음에도 참가했다. 다만 즉위 이후에도 예전처럼 가쿠슈인 동문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등 비올라 연주를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나루히토 일왕만이 아니라 일본 왕실은 대대로 클래식음악 애호가였다. 1912~1926년 다이쇼(大正) 시대부터 클래식음악이 왕족 교육의 필수과목으로 자리잡으면서 왕족들은 어릴 때 악기를 배우는 게 당연시 됐다. 쇼와(昭和) 일왕의 부인이자 아키히토 일왕의 어머니인 고준(香淳) 왕비가 큰 역할을 했다.

쇼와(昭和) 일왕의 부인이자 아키히토 일왕의 어머니인 고준(香淳) 왕비는 왕족들의 클래식 교육에 큰 역할을 했다|일본궁내청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화를 적극 추진한 일본에서 다이쇼 시대부터 왕족들이 사진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때 안팎의 주목을 받은 왕족은 1918년 히로히토 왕세자와 결혼이 내정된 나가코 공주였다. 상류층을 위한 가쿠슈인학원 소학교를 졸업한 뒤 신부 수업을 받은 나가코 공주는 사진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테니스를 즐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공주 자신도 피아노, 서예, 그림, 사진 등을 배우는데 열심이었다고 한다. 1924년 결혼한 나가코 공주는 2년 뒤 남편의 즉위와 함께 고준 왕비로 책봉된다.

2000년 97세로 타계할 때까지 왕실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고준 왕비는 장남인 아키히토 등 자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왕실 업무를 담당한 궁내청은 일왕 가족이 피아노 치는 사진을 종종 공개했고, 일본 국민은 클래식음악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됐다. 고준 왕비가 1952년 넷째 아쓰코 공주의 결혼 혼수품으로 피아노를 넣은 것이 알려지면서 중산층 가정에서 피아노를 놓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또 고준 왕비의 환갑을 기념해 1966년 왕궁 안에 200석 규모의 콘서트홀 도카가쿠도(桃華樂堂)가 건립됐다. 고준 왕비의 제안으로 1971년부터 이곳에서 일본 음대 졸업생들의 연주회를 열리고 있는데, 왕비와 왕자비의 참석이 관례화 됐다.

그런데, 고준 왕비가 피아노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주 실력은 별로였다. 일본 주류 언론에선 다루지 않고 있지만 음악 관계자들은 고준 왕비에게 재능이 없었다고 전한다.

고준 왕비에 이어 일본 왕실을 클래식 애호가로 확실히 만든 것은 아키히토 일왕의 부인인 미치코 왕비다. 미치코 왕비가 재벌그룹인 닛신 제분을 운영하는 쇼다(正田) 가문의 딸이었지만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고준 왕비에게 오랫동안 구박받은 것은 유명하다. 무서운 시어머니 고준 왕비가 그나마 미치코 왕비를 인정했던 부분은 클래식음악에 대해 소양이었다. 미치코 왕비는 독일 유학파로 클래식음악을 좋아했던 친정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음악 관계자들도 인정할 만큼 피아노를 잘 쳤으며, 하프도 수준급으로 다룬다.

음악 관계자들이 인정할 만큼 피아노를 잘 치는 미치코 왕비는 2013년부터 구사츠 페스티벌에서 레슨을 겸한 연주를 해왔다.

궁내청이 왕세자비 시절 피아노 치는 사진을 공개했지만 위엄을 중시하는 왕실 분위기상 미치코 왕비가 대중 앞에서 직접 피아노를 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1993년 9월 바티칸 방문을 계기로 뛰어난 피아노 실력이 확실하게 알려지게 됐다. 당시 왕으로 즉위한지 4년째였던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유럽 순방길에 오르게 됐는데, 미치코 왕비가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을 때 즉흥적으로 구노의 ‘아베 마리아(성모송)’ 합창을 반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연주는 왕비에게 타격으로 돌아왔다. 원래 바티칸은 아키히토 일왕 부부의 유럽 순방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미치코 왕비의 요청으로 추가됐다. 유럽 순방을 앞두고 여성지가 이 내용을 전하면서, 미치코 왕비가 일본식보다 서양식 생활을 선호하는데다 고유 민족신앙인 ‘신도(神道)’보다 기독교에 더 친화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다른 매체에서도 미치코 왕비가 국민이 바라는 왕실의 주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실 보수우익 사이에서 미치코 왕비는 이전부터 가톨릭 신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친정 식구들 대부분 세례를 받은데다 미치코 왕비도 가톨릭 재단 세이신학원이 운영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졸업했기 때문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재위 기간 내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는 등 평화주의 노선을 견지한 것도 보수우익 사이에선 미치코 왕비의 입김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치코 왕비가 바티칸에서 ‘아베 마리아’를 연주한 것은 가톨릭 신자라는 의심을 확산시켜 보수우익의 거센 공격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바티칸에서 돌아온지 두 달도 안돼 공식행사 도중 쓰러진 미치코 왕비는 몇 달간 실어증으로 칩거했다. 보수 언론매체들의 비난에 스트레스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왕비와 친분이 있는 피아니스트 다네토 이즈미를 왕궁에 초청하는 등 클래식음악으로 아내의 기운을 북돋았다고 한다. 이듬해 건강을 회복한 미치코 왕비가 “어떤 비판이라도 자신을 반성하는 것으로 삼겠다”며 고개를 숙이면서 보수우익의 공격은 사그라들었다.

미치코 왕비가 피아노 실력을 대중 앞에 실제로 드러낸 것은 시어머니 고준 왕비가 타계하고도 한참 뒤의 일이다. 2013년 9월 미치코 왕비는 전문 연주자를 지망하는 학생 대상의 아카데미를 겸한 구사츠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서 강습에 참여했다. 왕세자비 시절에도 종종 와서 연주자들을 격려하고 콘서트를 관람했지만 강습에 참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미치코 왕비는 해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합주해 큰 화제를 모았다. 또 2015~2018년에도 구사츠 페스티벌에서 성악가, 첼리스트, 호르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과 레슨을 겸한 연주를 가졌다. 올해 남편의 퇴위와 함께 공식 업무에서 해방된 만큼 앞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좀더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미치코 왕비와 아키히토 일왕. 아키히토 일왕은 왕세자 시절인 1970년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 궁내청

아내의 영향 때문인지 아키히토 일왕은 왕세자 시절이던 1970년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도쿄예대 교수였던 시미즈 가쓰오에게 25년간 꾸준히 배웠지만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진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궁내청은 아키히토 일왕 부부와 아들 나루히토 왕세자가 함께 연주하는 사진을 자주 공개했다.

연주 실력과 별개로 아키히토 일왕은 클래식음악을 좋아해서 아내와 함께 공연을 보러 다녔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의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인 낸시 여사와 함께 요요 마의 첼로 연주를 관람하는 등 그는 왕실 외교에 클래식음악을 적극 활용했다.

참고로 일본 왕실에서 첼로 연주는 아키히토 일왕의 사촌동생 다카마도노미야(1954~2002) 친왕이 유명했다. 다카마도노미야 친왕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축구협회 명예총재를 맡아 일본 왕족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 서울을 방문했던 인물이다. 그는 일본첼로협회 후원자이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협회 명예회장이었다. 그가 연주하던 첼로는 아키히토 일왕이 준 것이었다. 그는 베를린필 12첼리스트의 제안으로 1998년 일본에서 개최된 ‘1000명의 첼로 콘서트’에 딸과 함께 연주자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도쿄에서 열린 한일 친선 콘서트에서 한국 및 일본 아티스트들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월드컵이 끝난지 얼마 안돼 그는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2012년 타계 10주기를 겸해 일본에서 열린 ‘1000명의 첼로 콘서트’에는 한국 첼리스트 나덕성(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참석했다. 당시 콘서트에서 연주자들은 한국 동요 ‘고향의 봄’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그가 조카인 나루히토 부부 사이에서 큐피드 역할을 한 것이 새삼 화제가 됐다. 왕세자 시절 나루히토가 1986년 외교관이던 마사코에게 호감을 가진 뒤 7년 동안 구애한 순애보는 유명한데, 다카마도노미야 친왕이 중간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여러 차례 주선했다. 특히 나루히토가 마사코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접지 못하자 1991년 피아니스트 나카무라 히로코의 자선 콘서트에서 두 사람을 재회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마사코는 나루히토에게 마음을 열고 청혼을 받아들이게 됐다.

나루히토와 마사코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는 어릴 때부터 첼로를 배웠다 |ANN 방송 캡쳐

마사코 왕비는 어린 시절 취미로 피아노를 배웠다. 결혼 이후엔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1999년 기자회견에서 왕족들이 대부분 피아노나 현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자신은 관악기를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마사코 왕비는 2001년 아이코 공주를 낳고 2003년 적응장애 판정을 받은 뒤 공식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동안 플루트 연습을 지속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나루히토와 마사코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는 어릴 때부터 첼로를 배웠다. 가쿠슈인학원 소학교 4학년 때부터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고등학생인 지금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예회용 음악을 직접 편곡하는 등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학교와 중학교 때 이지메를 당하거나 거식증으로 고생할 때도 첼로 연습을 이어갔다고 한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아이코 공주는 우수한 성적과 의젓한 자세로 평판이 매우 좋다. 남성에게만 왕위 계승 자격을 준 일본 왕실전범이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올 가을부터 후계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아이코 공주가 여론의 지지를 업고 왕위 계승자가 된다면 일본에서는 아키히토 일왕부터 3대째 클래식음악 애호가이자 현악기 연주가 가능한 왕을 배출하게 된다.

<장지영 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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