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로 뭉친 그녀들의 시스터후드…뮤지컬 ‘메노포즈’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8.12.07 17:0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8.12.10 10:14

'메노포즈', 언니들의 시스터후드

2018 <메노포즈> 공연 장면 | 달컴퍼니

생리.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생리’는 오해 속에 산다. ‘그날’이라는 대명사로 지칭될 때가 가장 많고, 생리용품을 판매하기 위한 CF에서도 제 색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보다 더 이야기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 생리의 마지막, 완경이다. 물론 여성으로서의 기능이 끝났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폐경’ 대신 임무의 완성이라는 의미의 ‘완경’이라 부르자는 흐름이 있다. 그러나 이 단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대로 불리지 못하니, 정작 그 시기를 지나는 여성들의 고통이 제대로 그려질 리가 없다. 이들의 존재는 찾아보기 드물며, 어떤 콘텐츠에 등장했다 하더라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에 지쳐가는 주변인’에 더 주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8 <메노포즈> 공연 장면 | 달컴퍼니

2001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한 뮤지컬 <메노포즈>는 아예 제목을 ‘완경기’라고 지어버렸다. 무대에는 이 시기를 힘겹게 보내는 네 명의 여성만이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전업주부, 전문직 여성, 한물간 연속극 배우, 웰빙 주부라는 위치만 있을 뿐 이름이 없다. 사회가 그동안 중년 여성을 어떻게 불러왔는지에 대한 거울인 셈이며, 한편으로는 이렇게 직업도 생김새도 환경도 다른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세 친구가 된다는 문장의 증명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보여준 패기처럼 <메노포즈>는 뭐든지 직진이다. 작품은 백화점 속옷할인매장에서 우연히 만난 네 여성이 장소를 옮겨가며 다양한 갱년기 증상을 하나씩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유도 없이 화가 나고, 수시로 소변이 마렵고, 건망증과 불면증이 심해지고, 우울감에 빠지고, 식탐이나 성욕이 늘어난다. 뚜렷한 기승전결은 없다. 하지만 <메노포즈>는 이토록 다양한 증상에 대한 구체성이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발현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밀고 나간다.

2009년 <메노포즈> 공연 하이라이트

60~80년대 히트 팝송들은 이런 직진에 힘을 보태는 든든한 아군이다. ‘Only you’, ‘YMCA’ 같은 익숙한 멜로디에 쉬운 가사들이 더해지자 그 어느 때보다도 이들의 감정이 세밀하게 객석으로 전달된다. 흥겨운 리듬은 변화하는 자신의 삶에 매몰되기보다는 현재를 긍정하며 자조를 선택한 네 여성의 태도를 응원한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해 넷의 화음으로 풍성해지는 노래는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감싸는 과정 그 자체를 직관적으로 표현해내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달라진 자신의 위치와 외모에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라며 속상해하던 이들이 100분 후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이렇게 외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아. 확신을 갖고 이대로 당당한 나의 인생.”

2018 <메노포즈> 공연 장면 | 달컴퍼니

<메노포즈>의 결론은 공연을 보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지금을 긍정하고,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이 시기를 잘 이겨낼 것. 당연히 뻔하다. 하지만 <메노포즈>는 여성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고통을 위트 있고 구체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이 뻔한 솔루션을 진심으로 바꿔나간다. 그리고 무대 위의 50대 현역 여성 배우는 ‘한물간 연속극 배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배우가 나이 먹는다고 할 역할이 없나?”

무대 위의 자신과 극 안의 캐릭터 모두를 아우르는 이 짧은 문장에도 소중한 마음들이 그득그득 담겼다. <메노포즈>는 ‘아줌마’들의 뮤지컬이 아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나의 이야기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시스터후드가 여기에 있다.

뮤지컬 <메노포즈>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18.11.27~2019.1.20
VIP석 12만원, R석 10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120분(인터미션 없음)
만 15세 이상 관람가
출연
이경미, 조혜련, 박준면, 문희경, 홍지민, 신효범, 김선경, 백주연, 주아, 황석정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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