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단원이 모두 착석한 후 악장이 등장하고, 오보에 연주자에게 사인을 보낸다. A음을 달라는 신호다. 오보에가 A음을 내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그리고 다같이 조율을 한다. 왜 오보에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왜 A음에 맞춰 조율(tuning)을 하는 걸까?
오보에는 겹리드(double reed)를 사용하는 목관악기이다. 오보에가 조율을 맡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겹리드를 사용해 음의 변동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악기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음을 맞추기 까다로운데, 오보에는 다른 악기에 비해 비교적 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다른 악기에 맞추기도 어렵다) 그리고 비브라토가 거의 없고 소리 자체의 전달력이 좋기 때문에 수십 명의 단원들에게 기준음을 보다 잘 전달할 수 있다.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 목관악기에 대해 설명할 때면 플롯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클라리넷까지는 얼추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오보에 사진을 보여주면 ‘이게 뭐지? 처음보는 악기인데.’ 하는 반응이다. 생김새가 익숙지 않을지언정 Gabriel’s Oboe를 들려주고 이 소리의 주인공이 오보에라고 설명하면 모두들 ‘이 소리가 오보에 소리였어?’ 라며 반가워한다. 특유의 음색이 주는 따뜻하면서도 묘한 느낌의 오보에가 오케스트라 공연 시작 전 듣게 되는 그 소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A음으로 조율을 하는 이유는 왜일까? 악기들은 개방음일 때 가장 안정적인 소리를 낼 수 있다. 현악기의 경우 줄을 누르지 않고 현만 그을 때, 관악기는 키를 누르지 않고 내는 소리가 개방음이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개방음이 다 다르지만 비교적 많이 겹치는 음이 A음이기 때문에 조율음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클라리넷이나 호른같은 몇몇 악기는 A음을 낼 때 키를 많이 눌러야 하기 때문에 Bb으로 다시 조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항상 오케스트라 조율을 오보에가 하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 협연의 경우, 무대 앞에 그랜드 피아노가 배치되는데, 악장이 피아노의 A음을 누른 후 조율하면 다른 단원들도 그 음에 맞춘다. 관악 없이 현악 오케스트라일 경우엔 당연히 악장이 조율을 하고, 앙상블의 경우도 피아노가 있으면 피아노가, 현악 앙상블일 경우에는 제1바이올린이 조율을 맡는다.
국악 앙상블의 경우는 더 어렵다. 마치 J.S.Bach의 시대처럼 Prelude를 연주하며 직접 조율을 한 것처럼 원래 국악은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맞춰가는 방식이었다. 국악기의 특성상 서양악기처럼 음이 정확하지 않은데, 현대에 와서 서양악기와 합주를 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 노출되다 보니 해결책이 필요했다. 국악기가 비교적 통일하기 쉬운 Eb을 사용해 조율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양 관악기와 국악관현악이 합주를 할 경우에는 Bb으로 조율한 후 Eb으로 한 번 더 맞춰보기도 한다. 그래도 정확한 음높이를 통일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계속 조율하며 연습하곤 한다. 이것은 국악 관현악이 활성화되면서 악기들도 점차 현대화게 맞게 변화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케스트라 공연 시작마다 형식적으로 똑같은 음을 내보며 손을 푼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튜닝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수십명의 연주자들이 가진 악기가 모두 제각각이라 튜닝을 하지 않으면 조화로운 소리를 얻을 수 없다. 일류 오케스트라는 튜닝부터가 듣기 좋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드물지만 현대에 와서는 조율기계의 음에 맞춰 조율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특정 악기의 기준음을 듣고 조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앞으로 공연 전 조율을 할 때 악기마다 음높이를 정확히 맞춰가는 그 과정을 유심히 들어보자. 그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심한 노력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뜻깊은 순간을.
▶Edgar Varese가 오케스트라 조율하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
<정혜원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