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부터 ‘렌트’까지...겨울에 듣기 좋은 뮤지컬 넘버들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8.12.19 15:56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8.12.19 16:26

겨울 뮤지컬 넘버

본격 겨울이 돌아왔다. 유자차와 허브차를 포함한 각종 감기 예방차와 새콤달콤한 제주산 귤 한 박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 종일 추위에 지친 몸을 지져줄 따끈한 온수 매트, 폭신폭신한 수면 잠옷 등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는데도, 무언가 빠진 것 같은 이 기분. 그렇다. 겨울을 위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아직 준비해 두지 않은 것이다.

따뜻한 조명이 비치는 나의 공간에서 포근한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하루의 고단함도 스르륵 사라질 것만 같다. 차곡차곡 좋아하는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쌓아두고 월동 준비를 해둔다면 시린 겨울 적어도 마음에는 한파가 불어오지 않을 터.

누구나 마음속에 나만의 아이돌은 하나쯤 있으니 플레이리스트를 선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현상을 보이며 각국 ‘아미’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힙합 아이돌 BTS의 ‘Fake Love‘나, ’클래식계의 아이돌‘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모차르트 콘체르토, 극장가에 싱어롱 열풍을 불러온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수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겨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겨울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뮤지컬 넘버를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 결혼식장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나, 노래방에서 애창곡으로 손꼽히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의 시대’ 말고도 가슴을 따뜻하게 울리는 뮤지컬 넘버는 아주 많으니까 말이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오디컴퍼니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넘버 ‘눈 속의 천사들(Angels in the Snow)‘은 두 주인공 앨빈과 토마스가 함께 부르는 곡이다. 섬세한 멜로디와 눈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깊이 기억되는 노래이다. 관객들이 흐뭇하게 웃으면서도 눈물이 차오르고 만다는 마성의 넘버로, 겨울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노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2016년 공연 중 ‘Angels in the Snow’ (홍우진, 강필석)

여기에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잘 알려진 뮤지컬 <겨울왕국(Frozen)>의 ‘같이 눈사람 만들래?(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까지 추가한다면 금상첨화. 펑펑 내리는 눈 때문에 길 막히는 도로 위에서 짜증 날 때, 두 곡을 들으면 어느덧 어린 시절의 한 장면으로 시간 여행을 떠날게 될지도 모른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마스트엔터테인먼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주인공 안나의 대표 넘버로 불리는 ‘눈보라’에서도 겨울의 정점을 느낄 수 있다. 브론스키를 만나고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진 안나의 마음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표현되는 이 곡. 무대에 구현되는 러시아의 풍경과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귀를 즐겁게 한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중 ‘눈보라’ (정선아)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겨울이라면 역시 뮤지컬 <렌트>를 빠트릴 수 없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모티브로 만든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의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이다. 라슨은 프리뷰 공연 하루 전날 뉴욕타임스 기자와 인터뷰를 갖고 집으로 돌아간 후 급성 대동맥 혈전으로 세상을 떠난다. 실제 본인의 친구들의 죽음과 아픔을 뮤지컬로 만들려고 했던 조나단 라슨은 비록 막이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남은 친구들이 혼신의 힘을 실어 <렌트>를 올렸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과 꿈, 갈등과 우정을 주제로 마약, 에이즈, 동성애 등 1996년 초연 당시에는 뮤지컬에서 다루지 않았던 현실적인 소재들을 가져왔다. 파격적인 록 뮤지컬 작품으로 개막과 동시에 브로드웨이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1996년 초연된 이후 토니상, 오비상, 드라마 데스크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하며 화제작으로 등극한다.

조승우가 로저 역으로 출연한 <렌트> 2007년 국내 공연|신시컴퍼니

2005년에는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초연 뮤지컬 무대를 함께 꾸몄던 배우들이 출연해 의미를 더했다. 앤서니 랩, 아담 파스칼, 이디나 멘젤 등 지금은 유명한 배우들이지만, <렌트>에 캐스팅되었을 때만 해도 커피점에서 알바를 겸하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들이었다. 2008년에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렸으며, 마지막 공연은 실황으로 영상화되어 DVD로 남겨졌다. 국내에서는 2000년 초연을 시작으로 남경주, 최정원, 조승우, 이건명, 정선아, 김호영, 배지훈, 최재림 등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했다.

<렌트>는 록 음악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가스펠, R&B, 탱고,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한다. ‘렌트(Rent)’ ‘원 송 글로리(One Song Glory)’ ‘라 비 보엠(La Vie Boheme)’ 등 주옥같은 넘버들이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시즌스 오브 러브(Seasons of Love)’는 <렌트>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다. 뮤지컬에서는 2막 첫 장면에서 전체 캐스트가 일렬로 서서 부르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 년의 시간, 즉 52만 5600분을 다양한 측정 기준 중에서 ‘사랑’으로 채워보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렌트>의 ‘Seasons of Love’ 장면

조나단 라슨은 이 노래를 극중 등장하는 캐릭터 엔젤의 장례식에 자연스럽게 이었는데, 실제로 라슨이 급작스레 사망한 후 추모하기 위해 배우들과 관객들이 극장에서 불렀던 노래 역시 이 곡이다.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27개 국어로 공연된 만큼 독일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 버전이 존재한다. 1996년 초연 공연 당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발매했는데, 이때 가수 스티비 원더가 ‘시즌스 오브 러브’의 얼터너티브 버전 피처링에 함께했다. 2013년에는 인기 드라마 <글리>에서 노래가 리메이크되면서 빌보드차트 미국 팝 디지털 송 23위에 기록된다.

미국 FOX 채널에서 방영을 앞둔 뮤지컬 <렌트> 라이브|FOX

국내에도 브로드웨이에서도 막을 내렸기 때문에, 그동안 <렌트>가 그리울 땐 OST나 영화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겨울에는 그리운 <렌트>를 브라운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다. 미국 채널 FOX에서 2019년 1월 27일 저녁 7시(미국 현지 시간) 라이브로 방영될 예정. FOX는 그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뮤지컬 드라마 <스매쉬(SMASH)>를 방영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아론 트베잇이 주연한 뮤지컬 <그리스>를 라이브로 보여주었다. 이번 FOX 라이브 뮤지컬 <렌트>에는 가수 티나셰가 미미 역으로,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의 바네사 허진스가 모린 역, 뮤지컬 <해밀턴> 출신의 브랜든 빅터 딕슨이 콜린스 역, 가수 조던 피셔가 마크 역에 캐스팅되었다.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This is Me’를 불렀던 케알라 세틀도 출연해 완벽한 ‘시즌스 오브 러브(Seasons of love)‘를 들려줄 예정이다.

영화 <렌트> 중 ‘Seasons of Love’

차지연, 정선아, 홍광호 등이 참여한 2010 더 뮤지컬 어워즈 ‘Seasons of Love’ 한국어 축하공연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우리들 눈앞에 놓인 수많은 날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일 년의 시간
날짜로 계절로 매일 밤 마신 커피로
만남과 이별의 시간들로
그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
어떻게 말해요 산다는 것을
그것은 사랑
느껴봐요 소중하고 아름다워”
- 뮤지컬 <렌트> ‘Seasons of love’ 중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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