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무대에서 ‘전설’이 된 배우들…조승우·류정한·옥주현·박은태·김준수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9.02.08 11:04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2.08 11:05

레전드 초연 캐스트

2019년 1월 27일 미국 폭스티비에서는 뮤지컬 <렌트>라이브를 방영했다. 라이브 방송을 위해 마련된 세트는 1990년대 뉴욕의 이스트빌리지 알파벳시티를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입체감을 선사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출연진에 대한 평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반쪽짜리 라이브 방송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게 만든 주인공, 로저 역의 브레닌 헌트의 역량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의 목소리도 많았다.

브레닌 헌트는 라이브 방송을 앞두고 전날 다리를 다쳐 어쩔 수 없이 당일 깁스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제작진은 고심 끝에 리허설 라이브 녹화를 부분적으로 내보낸 것이다. 이에 반쪽짜리 라이브라는 평과 함께 참여한 배우들의 역량 역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평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뮤지컬 초연 오리지널 캐스트가 함께 무대에 서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감동의 장면이 연출된다.

폭스티비에서 방영된 <렌트> 라이브 중 ‘Seasons Of Love’ | RENT

뮤지컬 <렌트>는 뮤지컬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정도로 획기적인 작품이었고, 그에 따른 ‘렌트헤즈’라 불리는 열정적인 관객들도 전 세계에 무수히 많은 뮤지컬이다. 이런 그들에게 언제나 레전드라고 불리는 뮤지컬 <렌트>의 캐스트는 1996년 오리지널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틀림없다. 심지어 창작자 조나단 라슨과 함께했던 유일한 배우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번 <렌트> 라이브 무대의 마지막에 함께 올라 ‘Season of Love‘를 불렀을 때의 감동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렌트> 뿐만 아니라, 초연 오리지널 캐스트는 레전드라는 명예를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첫사랑에 대한 잊지 못할 각인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국내에서도 창작이든 라이선스이든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의 경우 참여한 배우, 스태프 그리고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초연 캐스트이다. 그렇다면 초연 무대에서 레전드라 꼽히는 배우들은 누가 있는지 살펴보자.

■<지킬앤하이드> 류정한, 조승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초연에서 같은 역에 캐스팅된 류정한과 조승우는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지금까지 후배들이 인정하는 레전트 캐스트를 보여주었다.|오디컴퍼니

2004년 초연되어 올해까지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한국 뮤지컬계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비록 미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하였으나, 국내에서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으며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다. 그 이유에는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번역과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 귀에 감기는 뮤지컬 넘버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초연부터 함께한 류정한과 조승우는 특히 이 ‘지킬/하이드’역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뮤지컬계에서 엘리트의 이미지를 가진 류정한과 연기의 호흡으로 노래를 이끄는 조승우의 마력이 <지킬앤하이드>를 만나면서 폭발한 것. 특히 단정하고 신사적이면서 열정적인 류정한의 ‘지킬’과 냉정하지만 들끓는 조승우의 ‘하이드’는 단순한 플롯에 개연성을 불어넣을 만큼 전설의 초연 캐스팅으로 남았다.

■<삼총사>의 엄유민법

뮤지컬 <삼총사> 초연에서 ‘엄유민법’이라 불리며 극강의 케미스트리를 선보인 네 명의 배우는 10주년 기념 공연에서도 함께 무대에 설 뿐 아니라, 함께 콘서트를 할 정도로 무대 안팎에서 친분을 과시했다.(왼쪽부터 김법래, 유준상, 엄기준, 민영기)|메이커스프로덕션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 <삼총사>는 2009년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되었다.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주인공 달타냥과 전설의 총사 아토스, 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 왕을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내용이다.

본디 체코 뮤지컬인 이 작품은 유명 팝가수 브라이언 아담스의 히트곡 ‘All for Love‘를 메인 테마곡으로 한다. 명작 동화로 익숙한 원작에 영화 O.S.T로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인기곡까지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재창작이 가능한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왕용범 연출의 손을 거쳐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다.

한국적 감성을 잘 살리며, 유쾌하고 경쾌한 템포를 이끌었던 초연 배우들 중에서도 관객들에게 레전드 캐스트라 불린 ‘엄유민법’이 있다. 배우 엄기준, 유준상, 민영기, 김법래가 그 주인공. 네 사람을 지칭하는 특별한 줄임 명칭이 생길 정도로 캐릭터와 융화되면서 큰 사랑을 받은 네 사람은 10년 후, 10주년 기념 공연에 다시 한 번 함께해 나이를 잊은 케미를 보여주었다.

■<엘리자벳> 옥주현, 박은태, 김준수

뮤지컬 팬이라면 한국에서 꼭 공연되길 바라는 해외 작품이 하나 둘쯤은 있을 것이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기대해왔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베스타 르베이와 미하엘 쿤체 콤비의 작품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이라 더욱 기대치가 컸다. 이처럼 개막 전에 이미 기대를 가득 받은 <엘리자벳>은 2012년 블루스퀘어에서 그 막을 올린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역시 캐스팅이었는데 오랜 기대에 부응하리만큼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다.

특히 이 작품을 통해서 출연한 주연배우들은 새로운 평가를 받으며 확실한 주역으로 인정받게 된다. ‘엘리자벳’ 역을 맡은 옥주현은 앞서 <아이다>를 통해서 명실상부하게 주인공의 자리를 인정받았지만, 그 외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뉘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엘리자벳’의 모습을 풍성한 목소리로 연기하며, 쉽지 않은 뮤지컬 넘버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어 관객과 업계 관계자들의 인정을 한 번에 받았다.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는 그녀를 오스트리아로 초대할 정도로 신뢰감을 보였으며, 독일에서 열린 <엘리자벳>20주년 기념 콘서트에 한국 대표로 초청되어 무대에 올랐다.

토드 역의 김준수 역시 이전 작품 <모차르트!>와 <천국의 눈물>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또 다른,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을 보여주며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루케니 역의 박은태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바른 이미지에서 벗어나 똘끼로 충만하며 냉정한 해설자의 면모를 보여주어, 은케니라는 별명을 추가한다. 두 사람은 탄탄한 연기력과 더불어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고.

뮤지컬 <엘리자벳>의 초연 캐스트 공개 당시 뮤지컬 팬들은 많은 걱정을 내비쳤지만, 막이 오르자 (상단 왼쪽부터) 옥주현, 김준수, 박은태를 비롯한 캐스트들은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레전드 캐스트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EMK뮤지컬컴퍼니

초연 공연의 캐스트는 재공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초연의 그 설렘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오는 법이다. 보다 능숙하고 여유로운 연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첫 시작의 풋풋한 짜릿한 기운은 다시 만나기 쉽지 않다. ‘결코 지난 공연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앞으로 개막될 많은 초연 작품들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레전드 캐스트가 더욱 많이 탄생되길 기대해본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2018.11.13 ~ 2019.05.19
서울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엘리자벳>
2018.11.17 ~ 2019.02.10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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