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미터 ‘킹콩’부터 실제 쥐·염소까지...무대 위 동물들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2.25 14:09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2.25 14:52

지난 2019년 1월 서울에 상륙한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가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4층까지 전석 매진되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라이온 킹>이 스타 배우 한 명 없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을 무대 위로 생생하게 구현해낸 놀라운 연출력이다.

뮤지컬 <라이온 킹> 공연 장면|Joan Marcus ⓒDisney

<라이온 킹>에는 사자는 물론 코끼리, 기린, 코뿔소, 얼룩말, 하이에나, 가젤, 누 등 수십 종의 동물이 등장한다. <라이온 킹>의 무대화가 결정되었을 때, 공연계에선 이 동물들이 어떻게 구현될지 추측이 난무했다. <캣츠>처럼 배우들 얼굴에 동물 분장을 하는 방법, 인형 탈을 쓰는 방법 등 수많은 방법이 언급되었지만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동물의 종류에 따라 마스크, 퍼펫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되 그것을 조종하는 배우의 모습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테이머가 ‘더블 이벤트(double event)’라고 부르는 이 방식 덕에 관객들은 완성된 동물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배우가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까지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CG가 불가능한 라이브 공연의 아날로그적인 한계를 오히려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테이머는 <라이온 킹>으로 공연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에서 여성 최초로 연출상을 수상했다.

뮤지컬 <캣츠> 중 럼텀터거(왼쪽)와 그리자벨라|클립서비스

그밖에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무대 위 동물로는 또 어떤 작품이 있을까. <라이온 킹>과 함께 가장 유명한 동물이 주인공인 뮤지컬로는 <캣츠>를 꼽아볼 수 있다. <라이온 킹>보다 16년 앞선 1981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이 뮤지컬은 T.S.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원작으로 한다. 뚜렷한 스토리라인 없이 각양각색의 고양이를 소개하는 것이 특징인데, <라이온 킹>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이 고양이들을 구현해낸다. 마스크나 퍼펫 등 외부적인 장치 없이 오직 배우의 신체만으로 고양이를 표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고양이처럼 움직이기 위한 고강도의 훈련을 받는다. 진짜 고양이처럼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하는데,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연습용 꼬리’를 달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꼬리 수여식’으로 불리는 이 의식은 다른 뮤지컬엔 없는 <캣츠>만의 독특한 전통이다.

배우들은 또한 매 공연마다 직접 분장을 한다. 인간에서 고양이로 변신하는 과정을 거치며 진짜 고양이가 된 것처럼 마음을 다잡는다고. 각 고양이의 종과 성격에 따라 분장의 디테일도 달라진다. 반항아 고양이인 ‘럼텀터거’는 사자처럼 풍성한 털과 화려한 얼굴이 특징이다. 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든 고양이 ‘그리자벨라’는 번진 마스카라 자국이나 이마에 난 커다란 상처로 지나온 세월을 짐작게 한다.

연극 <워 호스> 공연 장면|Brinkhoff Mo?genburg

연극 <워 호스> 역시 실감 나는 동물 구현으로 화제를 모았던 공연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군마로 차출된 말 ‘조이’와 소년 ‘알버트’의 우정을 그리는데, 퍼펫을 활용해 실물 크기의 말을 무대 위에 재현해냈다. 영국 내셔널씨어터는 남아프리카의 ‘핸드스프링 퍼펫 컴퍼니’와 손을 잡고 이 퍼펫을 만들었다. 세 명의 퍼펫티어가 조종하는 이 말은 진짜 말처럼 무대 위에서 걷고, 뛰고, 사람과 교감한다. 이 경이로운 과정이야말로 <워 호스>가 주는 감동의 핵심. 2007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내셔널씨어터의 공연 영상화 사업인 ‘NT Live’를 통해 우리나라 국립극장에서도 여러 차례 상영되며 인기를 모았다.

뮤지컬 <겨울왕국>에서 스벤이 구현되는 모습을 소개한 영상

지난 2018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한 뮤지컬 <겨울왕국>에도 퍼펫을 통해 구현된 동물이 나온다. 바로 크리스토프의 절친인 순록 ‘스벤’이다. 원래 스벤은 무대화 과정에서 구현이 어려울 것을 염려해 캐릭터 자체가 삭제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라이온 킹>에서 줄리 테이머와 함께 퍼펫을 공동 디자인했던 퍼펫 아티스트 마이클 커리(Michael Curry)가 참여하면서, 다행히도 엘사·안나와 함께 무대에 나란히 설 수 있게 되었다. 스벤은 무용을 전공한 퍼포머 앤드루 피로치(Andrew Pirozzi)가 특수 의상을 입고 연기한다. 고도로 훈련된 움직임과 눈까지 깜빡이는 리얼한 퍼펫 덕에 얼핏 보면 안에 사람이 들어있다고 믿기 힘들 정도. 의상 안엔 목 부근에 스크린을 설치해 배우가 앞을 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뮤지컬 <킹콩> 공연 장면|공식 홈페이지(kingkongbroadway.com)

무대 위에 구현된 동물 중 가장 거대한 건 아마도 지난 2018년 11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킹콩>일 것이다.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뮤지컬은 6m짜리 퍼펫을 통해 그 유명한 고릴라를 무대 위에 재현해냈다. 거대한 킹콩을 조종하기 위해 총 14명의 퍼펫티어가 투입되는데, 그중 10명은 무대 위에서 직접 팔다리를 움직이고 4명은 무대 뒤에서 기계장치를 이용해 엉덩이, 어깨, 머리, 얼굴 표정 등을 조종한다고 한다. 뮤지컬은 여기에 영상 효과를 더해 킹콩이 뉴욕 도심을 달리고 빌딩을 기어오르는 등의 장면을 연출해냈다.

뮤지컬 <킹콩> 공연 하이라이트 영상

뮤지컬 <애니> 브로드웨이 초연의 ‘샌디’(왼쪽)와 2018년 서울시뮤지컬단의 <애니>에서 샌디를 연기한 ‘달봉이’|위키피디아, 서울시뮤지컬단

이처럼 배우의 움직임이나 퍼펫을 활용해 동물을 구현해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진짜 동물이 무대 위에 오르는 작품들도 있다.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197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가족 뮤지컬 <애니>다. 작품엔 고아 소녀 애니가 길거리에서 만난 유기견 ‘샌디’가 등장하는데,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실제로 보호소에서 데려온 유기견이 무대에 올라 샌디를 연기했다. 훈련을 거쳐 무대 위에서 애니가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는 등의 장면을 소화해냈다. 실제 이름도 ‘샌디’라고 붙여진 이 개는 이후 7년 동안 무려 2377회의 공연을 소화해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샌디는 백악관에서도 공연했고, 샌디의 이름을 딴 동물 보호 기금도 생겼다. 지난 2018년 연말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서울시뮤지컬단의 <애니>에서는 모델견 출신의 골든 레트리버 ‘달봉이’가 샌디를 연기했다.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도 똑같이 ‘샌디’라는 이름의 개가 등장한다. 2015년 한국 공연에선 프로듀서 김수로가 키우는 골든 레트리버 샌디가 무대에 올라 역할을 소화해냈다. 극중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샌디를 안아드는 장면이 있는데, 공연 초반엔 아기 강아지였던 샌디가 갈수록 커져 배우들이 힘들어했다는 후문.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웨스트엔드 공연에서는 샌디뿐만 아니라 크리스토퍼의 애완 쥐인 ‘토비’ 역도 실제 쥐가 맡는다.

실제 개와 쥐가 출연하는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왼쪽)과 염소와 닭이 출연하는 뮤지컬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Brinkhoff Mogenburg, 인스타그램(@lydia.d)

2017~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된 뮤지컬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에는 특이하게도 실제 염소와 닭이 출연한다. <애니>의 샌디처럼 훈련을 통해 특정한 장면을 연기하지는 않지만,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를 활보하며 실감 나는 섬의 모습을 구현하는 데 일조한다.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처럼 장기 공연이 기본인 환경에선 실제 동물이 등장할 경우 두 마리 이상이 번갈아가며 출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쥐 토비와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의 염소, 닭 모두 두 마리가 돌아가며 역할을 맡았다.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의 경우 배우들이 동물들과 충분한 교감을 쌓아 동물들이 공연에 출연하는 것을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전담 훈련사가 공연을 위해 동물들을 데리러 가면 서로 자기가 출연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고 한다.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2019.01.09 ~ 2019.03.28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19.04.11 ~ 2019.05.19
부산 드림씨어터

기본가 6만~17만원
8세 이상 관람 가능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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