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과 추억의 애니 ‘디지몬 어드벤처’의 공통점은?

올댓아트 송지인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3.25 14:36

(왼쪽부터) 영화 <밀정> 공식 포스터, TV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 홍보 이미지 |각각 네이버 영화, 위키피디아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밀정>, 평범한 일본의 초등학생들과 디지털 월드의 몬스터 ‘디지몬’들의 모험 이야기를 담은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 이 두 작품은 각각 어떤 사건이나 스토리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독립운동 단체 ‘의열단’과 소설 ‘15소년 표류기’) 말고는 딱히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이는데요.

아래 영상을 통해, 두 작품의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면에 공통된 요소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정답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각 작품의 클립 영상을 감상해볼까요?

영화 <밀정> 스틸컷. |네이버 영화

먼저 영화 <밀정>입니다. 극중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이자 일본 경찰인 이정출(송강호)은 의열단을 소탕하기 위해 리더인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하는데요. 여러 사건을 겪으며 결국 의열단의 독립운동 활동에 함께하게 됩니다. 아래 장면은 이정출이 자신의 상사였던 히가시 부장을 배신하고 그가 주최한 파티에 폭탄을 설치,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합세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화 <밀정>의 한 장면.|Youtube

한편, 추억의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후반부에는 디지털 월드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붕괴되자 악당 디지몬들이 현실 세계에 침입, 곳곳에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래 장면은 주인공의 파트너 디지몬이 악당 디지몬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입니다.

TV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한 장면.|Youtube

눈치채셨나요? 정의의 편에 선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이라는 것 외에, 두 영상의 공통점은 바로 ‘배경음악’에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장면을 살리는 음악으로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볼레로(Bolero)’를 선택한 것인데요. 희미하게 들려오는 작은북과 팀파니의 소리로 시작해,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등 관악 파트가 악기 편성을 바꿔가며 주제 리듬을 이끌어가다가, 후반부부터 오케스트라의 전체 악기가 함께 이루어 내는 풍성한 화음, 클라이맥스로 곡을 끝맺는 것이 특징인 이 곡은 이 외에도 여러 CF,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바 있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 지휘는 정명훈. |Youtube

원래 ‘볼레로’라는 단어는 18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전통 무곡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라벨의 볼레로는 이 춤곡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으나, 곡의 절반 이상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는 타악기 리듬은 어느 춤의 반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곡은 실제 무용을 위해 작곡되었는데,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였던 이다 루빈슈타인이 라벨에게 무대에서 공연할 음악을 의뢰해 탄생한 곡이라고 합니다. 이 음악이 연주되는 공연 속 장면에서는 무용수가 홀로 술집의 탁자 위에서 춤을 추다, 이내 그에게 동화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다 같이 춤을 추게 됩니다.

(왼쪽부터) 작곡가 모리스 라벨,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를 공연할 당시의 이다 루빈슈타인. |위키피디아

인상주의 표현 방식을 지향했던 그는 같은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를 당대 최고의 작곡가라 칭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해 왔습니다. 그러나 몽환적인 작풍의 드뷔시에 비해 라벨은 더욱 분명하고 이국적인 리듬이 두드러지는 음악을 작곡했는데요. ‘볼레로’는 ‘물의 유희’와 함께 그의 대표곡으로 불리는 만큼 다양한 악기 군으로 편곡되기도 했습니다. 아래 영상에서는 ‘빈 첼로 앙상블’이 원래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인 이 곡을 무려 첼로 단 한 대(!)로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빈 첼로 앙상블이 한 대의 첼로로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 |Youtube

그렇다면 많은 영상 작품 연출가들이 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음악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단조로운 리듬으로 시작해 점점 고조되는 이 곡의 진행 방식이 극중 서사의 변곡점 혹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장면의 몰입감을 배가시키기 때문인데요. 2011년 영국에서 방영된 TV프로그램 ‘Dancing On Ice’의 파이널 무대에서는 영화 <파가니니 :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주인공 파가니니 역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가렛이 네 대 현악기의 스타카토 반주에 맞춰 밴드와 함께 볼레로를 연주했습니다.

‘Dancing On Ice’ 파이널 무대에서 라벨의 볼레로를 연주하는 데이비드 가렛.|Youtube

인상주의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 때문일까요?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마에스트로의 주요 무대에서도 ‘볼레로’를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래 세 개의 영상에서는 세계적인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발레리 게르기예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구스타보 두다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카라얀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 구스타보 두다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Youtube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단원의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떤 지휘자가 어떻게 지휘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마에스트로의 손짓에 따라 악기의 미세한 음정도, 크기도, 속도도 달라지기 때문에 전체 곡의 분위기와 흐름이 좌우되기 때문인데요. 같은 곡에 대한 서로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비교하며 듣는 것은 클래식 음악의 또다른 묘미이기도 합니다.

먼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볼레로를 감상해보겠습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세계 여러 유명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아 온 만큼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음악가입니다. 러시아 출신답게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휘와는 달리, 마치 이쑤시개처럼 가느다랗고 뾰족한 지휘봉으로 지휘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의 볼레로는 가냘픈 무희가 추는 춤이라기엔 훨씬 강인하고, 단호한 느낌이 두드러집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 지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 |Youtube

이번에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가 낳은 최고의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에 맞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볼레로를 들어볼까요? 어느 곡을 지휘하든 특유의 열정적인 몸짓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두다멜은 원곡에 표기된 악기 음정의 크기와 속도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지휘자입니다. 아래 영상에서 감상할 수 있는 두다멜의 볼레로는 게르기예프의 볼레로보다 훨씬 변화무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곡을 지휘할 때보다 훨씬 감정을 절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 지휘는 구스타보 두다멜.|Youtube

세계 최고 명성의 콩쿠르가 ‘카라얀 콩쿠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지금껏 카라얀을 따라잡을 지휘자는 감히 없을 정도로 그는 명실상부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황제입니다. 생애 무려 3,500회가 넘는 연주회를 가졌던 카라얀은 81세 나이로 숨을 거두기 3개월 전까지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는데요. 눈을 감고 지휘하는 모습은 카라얀의 트레이드 마크로, 아래 영상은 그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오케스트라’를 실현하고자 한평생을 바친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볼레로 연주입니다. 앞선 두 지휘자의 볼레로보다 더 부드럽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느낌의 연주에 집중하며 음악을 감상해볼까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 지휘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Youtube

사진·자료|Youtube, 위키피디아, 네이버 영화.

<올댓아트 송지인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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