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 유독 ‘금사빠’가 많은 이유는?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9.03.27 18:09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3.27 18:36

프랑스 뮤지컬 속 ‘금사빠’

꽃샘추위도 서서히 지나가고 이제 벚꽃놀이의 시즌이 다가온다. 겨우내 입었던 두터운 외투를 벗고 살랑거리는 마음으로 전국 각지의 꽃놀이 명소와 시기를 체크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친구와 가족, 동료들과 함께 꽃놀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 또는 썸남, 썸녀와 함께한다면 만개한 벚꽃이 더 아름다워 보일 터. 봄에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사실 이는 기분 탓이 아닌 연구로도 증명되었다. 2006년 하버드대 연구팀은 인간은 꽃을 보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증가하고 우울한 감정이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처럼 설렘 가득한 계절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늘 가슴속에 호감 가는 사람을 한 명 이상 품어두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맘속에서 혼자만 급하게 앞서가다, 어느새 마음이 식어버리는 이들’이 바로 금사빠다.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이런 성향을 가진 인물들을 찾기 쉬운데, SNS에서도 금사빠 테스트, 성향 분석, 유머 등이 공유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의미 없는 다정함은 범죄’라고 생각하는 금사빠들에게 별생각 없이 꽃구경 가자고 했다가는 벌써 귓가에서는 종소리가, 머릿속에는 별빛이 내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금사빠를 더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뮤지컬 무대에서 만나는 주인공들. 뮤지컬에 금사빠가 많은 이유는 단순하다.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사이의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만나고 사랑하고 배신하고 헤어지고, 방대한 이야기를 바쁘게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금사빠적 모멘트’로 채워진다. 그 많던 배우가 다 사라지거나 음악이 멈추고, 두 사람만의 넘버가 연주된다. 특히 낭만이 가득하다고 불리는 프랑스 뮤지컬에서는 힘들지 않게 금사빠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뮤지컬 속 금사빠 캐릭터들은 누가 있을까.

“<로미오 앤 줄리엣>의 로미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리는 로미오.|이룸이엔티

고전 중의 고전이자, 금사빠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미성년자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들이 사랑에 빠져 함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고작 5일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이다. 특히 로미오는 금사빠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원래는 짝사랑하던 인물이 따로 있었다. 원수였던 캐플릿 가의 파티에 참석한 것도 로미오가 짝사랑하던 로잘린을 보러 가기 위했던 것. 그러나 그곳에서 금사빠의 조건 ‘금방 빠지고 또 금방 식는’ 면모를 발휘해 로잘린은 어느새 맘속에서 사라지고 줄리엣만이 인생의 사랑이 된다.

콩깍지가 심하게 씐 두 사람은 만난 첫날 사랑에 빠져 다음날 바로 결혼을 해버린다. 이 정도면 금사빠의 원조 조상님 격이라고 불릴 만한 열정이다. 그들도 이런 급행 사랑이 조금은 무안했던 것일까.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넘버 ‘발코니(Le Balcon)’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하늘이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어느 별, 어떤 신에게 이 사랑을 감사해야 할까. 누구의 뜻이었을까’라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페뷔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중 ‘아름답다(Belle)’ 장면. 페뷔스(오른쪽)는 약혼자 플뢰르 드 리스와 에스메랄다 모두를 사랑하게 된다.|마스트엔터테인먼트

흔히들 금사빠 기질이 강한 이들은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젊고 잘생긴 근위 대장인 페뷔스는 라틴어로 ‘태양’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만큼 자신만만한 청년이다. 그러나 에스메랄다를 보고 한눈에 반해 약혼자인 플뢰르 드 리스를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가장 유명한 노래인 ‘아름답다(Belle)‘에서 페뷔스는 ’오, 플뢰르 드 리스,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원하는 사랑은 에스메랄다‘라고 뻔뻔히 노래하는가 하면, 솔로곡 ’괴로워(Dechire)‘에서는 ‘날 사랑하는 두 여자 사이에서 행복에 겨운 남자인 것이 내 잘못인가’라며, ‘내가 바람피워도 너는 바람피우지 마’를 뛰어넘는 역대급 ‘내로남불’ 가사를 선사한다. 물론 페뷔스는 모든 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할 테지만 말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국내 공연에서 페뷔스를 연기했던 배우 최수형이 부른 ‘괴로워(Dechire)’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

<벽을 뚫는 남자>의 주인공 듀티율.|쇼노트

프랑스의 소설가 겸 극작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2006년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여러 시즌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프랑스 뮤지컬이다.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주인공 듀티율이 벽을 통과하는 신비한 능력이 생기면서, ‘뚜네뚜네’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이 되어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벽을 뚫는 능력을 가졌으니, 빵, 보석, 비밀 서류 등 갖고 싶은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는 그였지만, 같은 거리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이사벨만은 가질 수가 없었다. 유부녀인 이사벨이 검사인 남편에 의해 자유를 억압당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벨을 처음 본 순간 듀티율은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점점 유명한 사람이 된다.

원래 듀티율은 갑자기 생긴 벽 뚫는 능력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극 중 뮤지컬 넘버 ‘사랑에 빠진 듀티율’에선 벽을 뚫는 능력이 이사벨을 만나기 위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인생은 그대를 향해 어떤 벽도 뚫고 가리라’라고 노래한다. 주인공 듀티율은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성스루 뮤지컬인 만큼 뮤지컬 넘버가 48곡이나 되는데, 그중 듀티율이 소화해야 하는 것은 무려 29곡이다. 그간 박상원, 남경주, 임창정, 이종석, 마이클 리, 김동완, 이지훈, 유연석 등 쟁쟁한 스타들이 듀티율을 연기해 사랑받았다.

“<킹아더>의 귀네비어”

뮤지컬 <킹아더> 중 귀네비어와 아더의 결혼식 장면(왼쪽)과 귀네비어를 연기하는 배우 간미연|알앤디웍스

신흥 금사빠가 등장했다. 2019년 3월 14일부터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킹아더>의 주연 배역인 귀네비어의 이야기다. 뮤지컬 <킹아더>는 2015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십계>의 프로듀서 도브 아띠아가 참여해 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원탁의 기사, 엑스칼리버 등으로 서구에서 유명한 아더 왕의 전설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로 변주되어왔다.

이번 한국 초연은 프랑스 원작을 각색해 새로운 느낌을 주었는데, 화려한 안무와 편곡이 특징적이다. 극의 초반에 멜레아강의 약혼자로 등장하는 귀네비어는 이후 엑스칼리버를 뽑은 아더 왕과 결혼을 하고, 랜슬롯과 바람을 피우며 희대의 금사빠의 면모를 보여준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면도 있지만, 귀네비어의 넘버 ‘자유를 원해’를 보면 사랑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아더 왕 전설 속에서 귀네비어는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는 설도 있으며, 우아한 여인보다는 투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뮤지컬 <킹아더>에서 귀네비어는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자유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충성과 신의를 강조하던 기사들의 시대에서 귀네비어는 좀 더 미운털이 박혀 보인다.

뮤지컬 <킹아더>
2019.03.14 ~ 2019.06.02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장승조,한지상,고훈정,임정희,간미연,이지수,임병근,장지후,니엘,김찬호,이충주,강홍석,리사,박혜나,최수진,지혜근,김지욱,정다영 등 출연
기본가 6만~14만원
8세 이상 관람 가능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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