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르누아르…뮤지컬 무대에서 노래하는 명화들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9.04.03 18:02

뮤지컬과 명화

공연장을 자주 찾는 이들이라면 전시회장 역시 지나칠 수 없는 공간 중에 하나이다. 대규모의 공연장 건물에는 전시회장도 함께 있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공연장 근처에는 걸어서 갈만한 거리의 뮤지엄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양질의 무료 전시회부터 해외 유명 화가의 전시회까지 한발 한발 내디디며 관람을 하다 보면, 공연장에 익숙해진 무거운 엉덩이와 머리가 살짝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는 SNS 속 감성용 전시들도 유행을 타고 20대 관람객의 발길을 꾸준히 잡아끌고 있다. 한때의 유행인 것만 같았지만, 이제는 어엿한 하나의 문화로 굳어버린 지 오래. 인스타그램 속 인증샷은 이미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전시가 되고 있을 정도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찾은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의 모습(왼쪽),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 1967, 캔버스에 아크릴리, 242.5×243.6cm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오른쪽) | BTS 트위터, 서울시립미술관

음악과 글, 연기와 무대를 사랑하는 이들도 색다른 예술 작품들로부터 서로 영감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많은 셀럽들도 전시회장을 찾고 있다. 오는 4월 12일 컴백을 앞두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최근 핫한 전시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 출신의 작가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그린 생존 미술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무대 미술에 참여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각>을 포함해 다수의 오페라 무대 디자인을 맡아, 독특하고 미니멀한 그만의 감성을 담아내기도 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개인 소장하고 있는 셀럽도 있는데, 빅뱅의 태양은 호크니의 봄 시리즈 중 ‘3월’과 ‘4월’ 두 작품을 구입했다. 태양은 미술품 수집 애호가로 유명한데, 이우환, 조나스 우드,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집안 곳곳에 비치해두었다고. 2017년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당시, 자택에서 백남준 작가의 ‘수사슴(Stag)’를 볼 수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만약 이처럼 유명한 작품들을 살아 움직이는 채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뮤지컬 무대에서 노래하는 그림들을 만나보자.

데이비드 호크니가 참여한 1975년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난봉꾼의 행각>은 40여 년 전의 작품임에도 무대 디자인이 세련되고 독창적인 것을 볼 수 있다.

“18세기 낭만파 화가와의 <컨택트>”

뮤지컬 <컨택트>는 노래 없는 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이다. 연기하는 댄서와 춤추는 배우로 구성되어, 노래를 하지 않는 독특한 형식으로, 초연부터 뮤지컬의 범주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초연 이후 토니어워즈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뮤지컬의 범위를 더 넓힌 공연으로 댄스시어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는 발레리노 김주원이 캐스팅되어 2010년, 2017년 두 차례 공연된 바 있다.

(왼쪽부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1766년경, 81×64cm, 런던 월리스 컬렉션, 프라고나르의 ‘그네’에서 영감을 받은 뮤지컬 <컨택트>의 장면 | 네이버 미술대사전, 오디컴퍼니

안무가 수잔 스트로만과 극작가 존 와이드만이 사랑에 관한 세 가지 에피소드를 담았는데, 그중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는 18세기 낭만파 화가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프랑스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Swing)’을 무대에 옮겼다. 실제로 극장에 입장하면 액자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 관객을 맞이한다. 극이 시작되면 막이 열리고 그림이 움직이듯 무대에는 그림과 같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그네를 탄다. 그녀는 주인과 하인의 복장을 한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과 쾌락이 공존한다.

그네를 타는 귀족의 한가한 사랑 놀음 장면처럼, 실제로 화가 프라고나르는 자유롭고 쾌활하며 관능적인 주제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마도 그가 21세기에 살았다면, 환락이 넘치는 클럽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으리라.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화가의 삶은 크게 달라져 초라한 행색을 면치 못하고 빈궁하게 삶을 마감하였다.

“움직이는 점묘화, 손드하임의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

19세기 말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살아있는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손을 거쳐 오랫동안 사랑받는 뮤지컬로 변신되었다. 뮤지컬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는 실제로 조르주 쇠라의 일생을 픽션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1막에서는 주인공 조지가 작품에만 매진하며 주변 사람들과 겪는 갈등을 담아내고, 2막에서는 그의 증손자인 조지가 그랑드 자트 섬을 방문해 증조할아버지의 노트를 읽으며 그림 속 등장인물들을 상상 속에서 만나, 예술과 창작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내용이다.

(왼쪽) 조르주 쇠라의 대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6, 캔버스에 유채, 207×308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오른쪽) 뮤지컬<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의 2017년 리바이벌 공연의 한 장면.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주인공 조지 역을 맡았다. | 네이버 캐스트, Photo by Matthew Murphy

1984년 뉴욕 부스 시어터에서 초연되어, 브로드웨이에서만 3차례 리바이벌 공연되었으며, 그 외에도 런던, 독일, 호주 등 프로덕션의 다양한 버전으로 사랑받아 왔다. 1막의 마지막 장면과 2막의 시작 장면은 명화의 그것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화가 조르주 쇠라는 색채학과 광학 이론을 연구해 작품에 적용하여 점묘법을 창시하며, 신인상주의를 이끌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화가가 2년간 60여 점의 드로잉 습작을 거쳐 만든 작품이다. 한 그림 안에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 당시 세태에 대한 은근한 풍자가 깃들어있다. 뮤지컬에서도 화가의 학구적이며, 열정적인 모습은 그대로 그려진다. 비록 삶에서는 균형을 잡지 못했지만, 그림을 통해 색에 대한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보여준 그의 작품은, 손드하임과 제임스 라파인의 음악과 대사를 만나 경이로운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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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그림 속 소녀에서 <아멜리에>로”

뮤지컬 <아멜리에>를 보지 못했더라도 영화 <아멜리에>를 봤다면, 르누아르의 ‘선상 위의 점심 식사’는 낯익게 다가올 것이다.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은 빛나는 색채 표현으로 보는 이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선사해 준다. 르누아르가 전쟁과 산업화의 격변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보다 인생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강조되어있다.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무비컬 <아멜리에>는 2017년 3월 뉴욕 월터커씨어터에서 초연되었다. 주인공 아멜리에의 이웃이자 화가인 듀파엘과 아멜리에의 듀엣곡 ‘The Girl with the Glass’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이 등장한다. 듀파엘은 20년간 ‘선상 위의 점심 식사’를 그려왔다고 이야기하며,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을 모두 그릴 수 있지만, 유리잔을 든 소녀만은 표정을 알 수 없다고 노래한다. 그는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아멜리에는 ‘어쩌면 그녀는 단지 조금 다른 것뿐’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실어 화답한다. 뮤지컬 넘버처럼 뮤지컬 안에서 그림 속 유리잔을 든 소녀는 주인공 아멜리에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 외에도 여러 뮤지컬에서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과 생애를 다루고 있다. 한국인들이 유달리 사랑하는 아티스트 고흐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로 만들어졌다. 무대 벽면을 활용한 3D 프로젝션 맵핑 기술로 고흐의 그림을 입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오는 4월 24일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 용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에서도 고흐의 이야기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위대한 그림들이 천사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뮤지컬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에서는 ‘최후의 만찬’을 앞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 외에도 서머싯 몸의 동명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뮤지컬 <달과 6펜스>에서는 고갱의 그림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올해 브로드웨이 기대작인 무비컬 <물랑루즈>에서 화가 툴루즈 로트렉크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사뭇 기대가 된다.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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