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 치매 노인, 발레 무대 설 수 있을까?…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4.19 18:31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4.19 18:32

노인과 발레 이야기? 꿈꾸는 모두의 이야기!

조지훈의 시 ‘승무’에도 나오는 ‘나빌레라’는 ‘나비일레라’(나비이구나)라는 뜻으로 나비가 날아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한 말이다. 일흔의 나이에 발레에 도전하는 덕출과 재능이 있지만 방황하는 청년 채록의 두 견습 발레리노가 날아오르는 과정을 남은 웹툰 ‘나빌레라’가 무대로 돌아온다.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캐스팅 사진 | 서울예술단

2016년 7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1년이 넘는 연재 기간 내내 다음웹툰 연재 랭킹 1위, 독자 평점 1위를 유지한 이 작품은 세대를 넘어선 덕출과 채록의 우정과 그들을 응원하는 어딘가 있을 법한 따뜻한 주변인들의 모습을 그린다. 자극적인 표현 없이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꿈’과 ‘가족’이라는 주제로 울림을 선사한다.

2019년 4월 17일, 개막을 보름가량 앞두고 서울 서초동 서울예술단 연습실에서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의 연습실 공개가 있었다. 장면 시연과 함께 창작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대로 간 화제의 웹툰”

웹툰 그림이 그려진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포스터 | 서울예술단

웹툰, 영화, 뮤지컬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사랑받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작가 HUN(최종훈)이 스토리를 쓰고, 한국과 일본에서 소년, 액션 만화를 그려온 지민 작가가 그림을 그린 ‘나빌레라’는 발레를 매개로 청년과 노인 간의 교감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일흔의 덕출과, 재능이 있지만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스물셋 청년 채록을 주인공으로 발레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꿈을 향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발레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덕출의 가족들, 채록 주변의 발레단원, 학창시절 동창들을 통해 여러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대립보다는 인물 간 연결에 집중한다. 한국판 <빌리 엘리어트>를 꿈꾼다는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웹툰은 어떻게 무대로 옮겨졌을까.

“노래로 다시 태어난 명대사”

이날 시연에서는 덕출과 채록이 처음 만나는 장면과 채록이 과거를 떠올리며 좌절하는 대목, 두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시연 장면은 발레를 배우기 위해 문경국 발레단을 찾은 덕출과 그에게 발레를 가르치게 된 발레단 유망주 채록의 만남이다. 이 장면은 극의 도입부로 채록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담은 넘버 ‘발레의 시작’, 발레를 시작하고 설레는 날들을 보내는 덕출의 마음을 표현한 넘버 ‘매일이 새롭다’로 채워졌다. 특히 ‘매일이 새롭다’는 발레 용어를 가사에 녹여내 꿈을 향해 도약하는 덕출의 모습을 시청각적으로 전달했다.

“쁠리에(plie).
더 깊이 구부렸다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
가장 깊게 내려가 더 높은 곳을 위해서

그랑 쥬떼(grand jete).
더 높이 차올라 있는 힘껏 다릴 뻗어
더 멀리 날아오르기 위해”
-‘매일이 새롭다’ 중-

발레를 시작한 덕출의 설레는 마음을 담은 넘버 ‘매일이 새롭다’ | 플레이디비

두 번째 시연 장면에서는 방황하는 채록에게 용기를 주는 덕출의 모습과, 상처 입은 채록의 과거 모습이 나타난다. 넘버 ‘그건 꿈이라서 그런 것’에서는 원작의 명대사로 손꼽히는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취미지. 힘들고 괴롭고 화가 나는 건 꿈이라서 그런 것”이 멜로디와 함께 가사로 녹여져 감동을 전한다.

‘그건 꿈이라서 그런 것’ 넘버 시연 중인 덕출 역의 최정수 | 서울예술단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래시계>를 각색한 작가 박해림, 뮤지컬 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작곡가 김효은과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출신 안무가 유회웅이 창작진으로 합류하면서 원작 특유의 밝지만 가볍지는 않은 극의 무게를 지켜준다. 워낙 인기 있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창작진들의 부담감이 컸을 터. 작곡가 김효은은 “나빌레라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자극적인 음악보다는 따뜻함을 구현할 수 있는, 드라마에 잘 붙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며 소감을 밝혀 나머지 넘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화면을 뚫고 나온 캐릭터”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는 충무로 대세 배우 진선규를 덕출 역에 캐스팅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따뜻하고 성실한 덕출은 치매 환자라는 본인의 상황이나 주변 사람들의 무시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캐릭터다. 영화 <범죄도시>, <극한직업>의 성공으로 충무로 러브콜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선규가 차기작으로 <나빌레라>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진선규는 2006년 밀양여름연극축제에서 <돌고, 돌아!>로 남자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 등 다양한 무대에 올랐다. | 서울예술단

<여신님이 보고 계셔>, <아가사> 등 연기 활동을 공연 위주로 해왔던 그는 “천천히 꿈을 향해가던 나의 초심을 떠올리며 꿈을 가진 사람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서재형 연출은 그를 “꿈과 열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배우”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덕출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이번 공연을 통해 정식 발레를 처음 해본다는 진선규는 “3월부터 지금까지 발레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이렇게 연습해서 5월 무대에 오르면 덕출의 상태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덕출 역에 더블 캐스팅 된 진선규와 서울예술단원 최정수는 1977년 생으로 40대 동갑내기이다. 몸이 성하지 않은 일흔 노인을, 그것도 발레 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최정수는 노인 역을 소화하기 위해 여러 노인을 보고 연기에 이입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참고하기도 했다. 서울예술단 맏형으로 무용수에서 배우로 이어지는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최정수. 노인을 동떨어진 사람이 아닌 지금의 나에서 몇 년 후를 생각하며 연기한다고 전한 그는 <나빌레라> 속 덕출로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를 모은다.

덕출과 채록 콘셉트 사진. | 서울예술단

방황하는 청춘의 내면과 발레리노 기대주로서 외면적인 모습을 갖춰야 하는 캐릭터 채록 역으로는 <다원 영의 악의 기원>, <금란방>, <윤동주, 달을 쏘다>에 출연한 서울예술단원 강상준과 보컬 그룹 브로맨스 출신으로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 출연했던 이찬동이 캐스팅되었다. 재능 있는 발레리노를 연기해야 하는 두 배우 역시 발레 연습이 쉽지 않았음을 밝혔다.

채록 역의 강상준. | 서울예술단

강상준은 발레리노처럼 보이기 위해 10kg 가량 감량하는 열정을 보였다. 발레의 기본 동작인 턴 아웃(Turn out, 발레 동작에서 무릎뼈와 발끝이 바깥쪽을 보도록 다리를 회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려면 몸이 제대로 스트레칭 되어야 한다. 그는 “다른 춤은 리듬이나 동작으로 속일 수 있는데 발레는 서있고, 걷고, 앉는 기본적인 것에서 태의 아름다움이 나온다. 그것이 어렵지만 또 매력적이었다”라고 연습 소감을 전했다.

채록 역의 이찬동. | 서울예술단

이찬동 역시 보컬그룹 출신으로 몸의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힘들었지만 “고통을 참는 시간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것이 매력”이라며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공자가 아니면서 완벽한 발레 모습을 단 몇 달 만에 연습해서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요령보다는 단단한 기본기로 보여주겠다는 배우들의 의지가 돋보였다.

“나는 극을 구성할 때 확대 해석을 하지 않는다. <나빌레라>는 꿈과 열정,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인과 발레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소재이다. 중요한 것은 정말 노인이 발레를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이야기 안에 있는 진정한 의미를 보는 것이다. (웹툰 작가 HUN 간담회 인터뷰 중)”

원작자 HUN은 <나빌레라>가 단순히 노인과 발레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닌 꿈과 열정,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오랫동안 꿈꿔온 것을 도전하기 위해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붙잡는 덕출, 현실의 무게를 떨쳐내고 비상하고자 하는 채록의 모습은 중력을 거스르고, 발끝으로 세상을 등진 무용 ‘발레’와 닮아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해 매일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5월 1일 개막하는 <나빌레라>는 과연 무대 위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날아오르게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2019.05.01. ~ 2019.05.12.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기본가 6만 ~ 9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150분
진선규,최정수,강상준,이찬동,정유희,김백현,이혜수,신상언,금승훈,김용한,유경아 외 출연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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