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뮤지컬 안에서만’ 살아 숨 쉬는 작품들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9.06.20 10:17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6.20 10:20

뮤지컬 속 극중극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우는 액자식 구성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김만중의 ‘구운몽’을 위시하여, 우리는 여러 소설과 희곡,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액자식 구성의 매력을 느껴왔다. 그중에서도 극중극은 대표적인 액자식 구성일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장치는 이야기의 몰입과 구성을 높여 작품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다.

뮤지컬 <마틸다>에서 마틸다는 도서관 사서 페르스 선생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극중극은 극의 후반부에서 흥미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 신시컴퍼니

뮤지컬에도 다양한 극중극을 차용하는 경우가 있다. 심야 극장에서 동시 상영되고 있는 영화 속의 이야기라는 설정의 <록키호러쇼>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공연하기 위해 모인 배우들 사이에 벌어지는 무대 안팎의 이야기를 다룬 <키스 미 케이트>, 주인공 그윈플렌과 데아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유랑극단의 쇼로 풀어낸 <웃는 남자>, <마틸다>가 도서관 사서에게 들려주는 공중곡예사와 탈출 마술사의 옛날이야기,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연극을 하는 <햄릿>, 감옥에서 본인의 희곡을 죄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세르반테스 작가의 <맨 오브 라만차>, 변사가 곁들여진 무성영화가 등장하는 <미인>, 두 편의 극중극 ‘브루클린 브리지의 전설’과 ‘미아 파밀리아’가 울려 퍼지는 <미아 파밀리아>, 망작을 만들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직후 ‘히틀러의 봄날’을 무대 위에 올리는 <프로듀서스>. 이 밖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극중극을 작품에 녹여낸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오직 뮤지컬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극중극을 찾아보았다.

“뮤지컬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쇼
<오페라의 유령>, <브로드웨이 42번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경매장에 나온 샹들리에에 담긴 ‘오페라의 유령’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것 자체만으로 이미 액자식 구성이지만, <오페라의 유령>속에는 세 편의 오페라가 극중극으로 등장한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주인공 팬텀은 이곳에 몰래 살고 있는 뛰어난 작곡가라는 것이 기본 콘셉트. 그 때문인지 극장에서 오페라를 준비하는 리허설과 공연, 분장실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에는 3개의 오페라가 등장하며, 극의 재미를 더한다. | 설앤컴퍼니

처음으로 등장하는 오페라는 ‘한니발’이다. 리허설 도중 사고가 일어나자 주인공 칼롯타는 출연을 거부한다. 이에 무명이었던 크리스틴이 대역으로 나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르는데, 뮤지컬 넘버 ‘생각해줘요(Think of me)’가 등장하는 오페라가 바로 ‘한니발’이다. 이후 팬텀은 객석 5번 좌석을 비우고, 크리스틴을 오페라 ‘일 무토’의 주인공을 할 것을 극장주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칼롯타를 내세운 공연은 중단되는 지경에 이른다. 2막에서 신작 ‘돈 주앙의 승리’를 쓴 팬텀은 이를 공연할 것을 또다시 극장에 지시한다. 극장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그를 잡기 위해 ‘돈 주앙의 승리’를 올리게 된다. 2막에 흐르는 뮤지컬 넘버 ‘공연직전 (The Opera House Before the Premiere)’과, ‘돈 주앙의 승리(A Rehearsal for Don Juan Triumphant)’, ‘돌아갈 수 없는 길 (The Point of No Return)’은 극 중 오페라 ‘돈 주앙의 승리’의 공연 전·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에 등장하는 세 오페라 작품은 모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창작곡이기 때문에 뮤지컬 안에서만 만날 수 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주인공 페기 소여는 극중극 ‘프리티 레이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 CJ ENM

<오페라의 유령>에 ‘돈 주앙의 승리’가 있다면,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프리티 레이디’가 있다. “줄리안 마쉬가 새로운 작품을 준비한대”라는 대사가 들리면,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시그니처 장면인 수많은 다리가 탭댄스를 추는 오프닝이 시작된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연출가 줄리안 마쉬는 신작 ‘프리티 레이디’를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첫 공연 날, 여주인공 도로시 브록이 무대에서 사고를 당하고 만다. 공연은 취소될 위기에 놓이고, 코러스였던 페기 소여가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며 새로운 스타로 우뚝 서게 된다. 무대 위의 뻔한 클리셰 같지만, 데뷔작 하나로 브로드웨이의 스타가 된 페기 소여. 그녀를 만들어준 작품은 바로 <브로드웨이 42번가>속 극중극인 ‘프리티 레이디’였던 것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넘버 ‘Think of Me’(생각해줘요)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경계를 넘나드는 극
<시티오브엔젤>, <더 픽션>”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그 반대로 작품 속 인물이 작가를 변화시키는 경우는 어떨까. 뮤지컬 <더 픽션>과 <시티오브엔젤>, 이 두 뮤지컬은 극 중에서 작품 속 주인공과 작가의 이야기가 얽혀 일어나는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뮤지컬 <더 픽션>은 소설과 현실이 뒤집히는 독특한 설정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재연 공연을 올렸다. | HJ컬쳐

<더 픽션>은 1932년 뉴욕을 배경으로 소설과 현실이 뒤집히는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되었다. 눈에 띄는 상상력과 구성력으로 2016 창의인재동반사업, 2017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지원사업, 2018 KT&G 상상마당 창작극 지원 사업에 연달아 선정되며, 체계적인 디벨롭 과정을 거쳐 본 공연에 대한 기대를 높인 뮤지컬이다. 극 중 등장인물은 그레이 헌트, 와이트 히스만, 휴 대커 세 캐릭터로, 3인 극으로 공연이 이루어진다. 작가 그레이 헌트는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를 집필하는데, 소설 속 주인공 블랙이 현실에 등장하며 사건이 벌어진다. 블랙은 범죄자를 살해하는 살인마이기 때문. 소설 속 범행이 현실에서 재현될수록 사람들은 헌트의 소설과 블랙에 열광한다. 살인마 블랙과 작가 그레이의 관계에 의문을 품은 경관 휴 대커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작가의 담당 기자인 와이트 히스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지난해 초연을 올리고, 관객들의 사랑에 힘입어 재연되고 있는 중이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2014년 런던 돈마웨어하우스에서 리바이벌 공연으로 올려져,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 돈마웨어하우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198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토니어워즈에서 베스트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이다. 국내에서는 오는 8월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한국 프로덕션으로 첫 선을 보인다. 본격 누아르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1940년대 미국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그 당시를 휩쓴 누아르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유명 소설 작가 스타인이 자신의 탐정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시나리오 속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또한 작가의 현실 세계와 영화의 허구 세계를 컬러와 흑백으로 대비해 교차시키는 것이 포인트. 2014년 런던 돈마웨어하우스에서 사만다 바크스가 출연한 리바이벌 공연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연일 매진 사례를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 공연은 오경택 연출이 맡았으며, 배우 최재림, 이지훈, 강홍석, 테이, 정준하, 임기홍, 백주희, 가희, 박혜나, 김경선, 방진의, 리사가 출연한다.

■ 뮤지컬 <더픽션>
2019.04.13 ~ 2019.06.30
서울 대학로 TOM 1관
공연시간 85분
만 13세 이상 관람 가능
박유덕, 주민진, 박규원, 유승현, 박정원, 강찬, 황민수, 박건, 김준영, 안지환 외 출연

■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2019.08.08 ~ 2019.10.20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중학생 이상 관람 가능
기본가 6만 ~ 14만 원
최재림, 강홍석, 이지훈, 테이, 정준하, 임기홍, 백주희, 가희, 리사, 방진의, 김경선, 박혜나 외 출연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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