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추천 리스트는 가라! 2019ver. 영화 속 클래식 ①편

올댓아트 박찬미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8.01 15:41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8.01 15:43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은 우리를 더욱 넓은 클래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아마데우스(1984)>의 모차르트 작품들이나 <파리넬리(1997)>의 헨델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죠. 이 영광을 이어나갈 최신 영화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클래식 음악을 다채롭게 활용하고 있는 최근 개봉작들을 두 편의 포스트에 걸쳐 소개합니다.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2017)
(맞춤법 상 ‘됭케르크’와 ‘크리스토퍼 놀런’이 맞다고 합니다만, 이 포스트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통용되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첫 번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음악보다도 전투기가 날아가는 소리나 상공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먼저 떠올리실 수도 있겠습니다.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고 있던 1940년, 프랑스 북부 도시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34만여 명의 영국·프랑스·벨기에 병력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삼은 영화인데요.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하루가 천 년처럼 느껴졌을 고립의 상황을 버텨내는 병사들과, 이들을 구하기 위해 작은 범선에 몸을 실은 한 부자와 소년, 그리고 이 구조선들을 엄호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영화의 플롯을 채웁니다. 30만이 넘는 병사들이 무사히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스스로를 자책하는 한 청년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는 못할망정 비루하게 구조되어 오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이 여겼을 수도, 자신에게 돌아올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맞이하는 영국 국민들은 한 병의 맥주를 권합니다. 수고했다고, 무사히 돌아와 주어 고맙다고 말이죠. 여기에서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이 있었으니, 바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입니다.

*영상의 2분 20초부터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의 주선율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Dunkirk - Ending Scene & Plane Landing (2017 HD)

‘덩케르크’의 음악감독은 영화 음악의 대가로 손꼽히는 한스 짐머였는데요. 영화에서 들어볼 수 있는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는 한스 짐머와 제작에 참여했던 작곡가 벤자민 월피시의 편곡 버전입니다. 이 버전은 ‘15번째 변주’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엘가의 원곡이 하나의 주제와 14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다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죠. 주요 선율은 그대로 살아 있으니, 위 영상을 통해 먼저 영화 버전을 감상해볼까요?

다이나모 작전 당시, 대형 구축함과 더불어 징발된 민간 화물선·어선·유람선 등은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덩케르크 해안으로 항해해갔고, 그 덕분에 9일 동안 860척에 달하는 선박이 모여 약 34만여 명에 달하는 청년들을 구했습니다. ‘작은 배들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작전은 영국 국민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하죠. 영화 속에서 엘가의 ‘님로드’는 그 감동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했습니다. 아래의 영상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와 영국 출신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 경의 지휘로 엘가의 원곡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Elgar: Enigma Variations / Rattle · Berliner Philharmoniker

에드워드 엘가. (1905)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엘가는 대표적인 영국의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우리에게는 흔히 ‘사랑의 인사’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그는 자신의 조국인 영국에 헌정하는 곡들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로 대영제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작위를 받기도 하였는데요. 모두가 아는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Op. 39)’ 또한 엘가의 작품으로,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사용할 목적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이후 ‘위풍당당 행진곡’은 관례적으로 영국의 공식 모임에서 연주되는 영광을 누리다,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릅니다.

Elgar‘s Enigma Variations Nimrod Remembrance Sunday 2011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 또한 영국의 국가 행사에서 자주 연주됩니다. 위 영상은 지난 2011년, 영국의 현충일과도 비슷한 ‘리멤버런스 선데이’ 행사 당시 금관 편성으로 편곡 및 연주된 ‘님로드’입니다. ‘님로드’ 선율은 여전히 영국 국민에게 과거를 회상하게 하고 또 그를 위로하는 동시에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힘을 가졌나 봅니다. 영화 ‘덩케르크’에서, 전쟁터로부터 돌아온 청년들과 영국 시민들을 한마음으로 엮었던 것처럼 말이죠.

#팬텀 스레드 (폴 토마스 앤더슨, 2017)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한국에서는 2018년 3월 개봉한 영화, ‘팬텀 스레드’입니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긴 하지만 씨네 21에서 선정한 ‘2018년 해외 영화 베스트 5’ 리스트에도 이름 올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일반 관람객과 전문가 모두를 사로잡은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음악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라는 평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최근에는 김연아 선수가 ‘2019 올댓스케이트’(클릭하시면 무대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갈라 프로그램으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중 메인 테마인 ‘하우스 오브 우드콕(House of Woodcock)’을 선택해,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영화 ‘팬텀 스레드’ 극중 인물 디자이너 레이놀즈의 모습.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1950년대 영국 런던, 왕실과 사교계 드레스 디자인을 주름잡고 있던 디자이너 ‘레이놀즈’와 젊고 당찬 ‘알마’의 연인 관계를 집중 조명합니다. 한때 레이놀즈와 알마는 서로를 인생 최고의 뮤즈로 여기며 뜨겁게 사랑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둘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죠. 하지만 레이놀즈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 알마는 그를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리는 데요. 영화는 사랑과,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숨겨진 인간의 폭력성 사이를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라디오헤드 시절 조니 그린우드. |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스

이 영화의 음악감독도 모두가 아실 만한 사람입니다. 바로 라디오헤드의 멤버로 잘 알려져 있는 조니 그린우드죠. 그는 밴드 활동 시절부터 기타와 키보드는 물론 비올라, 실로폰, 글로켄슈필, 심지어 현대악기 옹데마르트노까지 섭렵하는 수준급의 악기 실력을 보여주었는데요. 다양한 악기와 장르에 대한 관심은 곧 영화 ‘벨벳 골드마인(1998)’ 삽입곡 제작 참여로 이어졌고, 다큐멘터리 ‘바디송(2003)’에서 그는 처음으로 영상 음악 제작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조니 그린우드가 영화 음악 감독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팬텀 스레드’의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과의 인연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2007년작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가 이들이 함께한 첫 작품이었죠. 이를 신호탄으로 두 사람은 ‘마스터(2012)’ ‘인히어런드 바이스(2014)’ ‘주눈(2015)’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작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팬텀 스레드’는 긴 협력의 시간을 거쳐 두 사람의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는데요.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팬텀 스레드’의 음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직접 작곡한 곡들은 물론, 여러 클래식 곡을 활용해 장면의 표현력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조니 그린우드가 선택한 클래식 한 곡을 아래에서 감상해볼까요?

Phantom Thread (2017) - The Fashion Show Scene (3/10) | Movieclips

극중 레이놀즈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선보이는 살롱 패션쇼가 열립니다. 여기에 알마는 모델로 서게 되죠. 젊고 당찬 매력의 소유자인 알마는 레이놀즈의 붉은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앞에 등장합니다. 이때 함께 흘러나오는 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제2번 중 1악장이죠. 곡은 시시각각 매력적인 선율로 변화하면서 살롱 문화의 우아함을 보여주기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알마의 당찬 발걸음을 표현하기도, 또 무대 뒤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스태프들의 모습을 비추기도 합니다. 아래의 영상 3분 10초부터 영화의 장면에 등장한 곡을 호로조브스키 트리오의 연주로 감상해볼 수 있습니다.

*영상 3분 10초부터 위 장면에 등장한 선율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 Horszowski Trio LIVE -- Schubert Trio No. 2 in E-flat, Op. 100, D. 929

영화 ‘팬텀 스레드’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제2번은 2악장으로 유명합니다. ‘어디선가 분명 들어본 그 선율’의 주인공이죠.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Barry Lyndon, 1975)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는 물론, 광고계도 사로잡은 매력을 지녔습니다. 내 마음이 괜히 다 미어지는(?) 애수와 행복한 꿈속을 떠다니고 있는 듯한 서정성이 모두 녹아들어있는 주옥같은 악장이죠. 위 영상의 17분 20초부터는 2악장을 감상해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슈베르트의 작품 이외에도 프랑스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돌리 모음곡‘ 중 1번 ’자장가‘와 드뷔시의 현악 사중주 중 2악장 등 극중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선처럼 어스름한 매력을 가진 곡들이 등장합니다. 원곡이 그대로 연주되기도 하고, 조니 그린우드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모습으로 선보여지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음악들의 선율을 캐치해보는 것도 감상을 더욱 풍성히 만들어 줄 것입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도 매력적인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네이버 공연전시 올댓아트에서 소개되었으면 하는 ‘영화 속 클래식’을 알고 계시다면 댓글로 추천해주세요!

사진·영상 | 네이버 영화, 위키미디어커먼스, 유튜브

<올댓아트 박찬미 인턴 allthat_art@naver.com>

클래식 기사 더보기

이런 기사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