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추천 리스트는 가라! 2019ver. 영화 속 클래식 ②편

올댓아트 박찬미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8.02 14:4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8.02 14:47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은 우리를 더욱 넓은 클래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아마데우스(1984)>의 모차르트 작품들이나 <파리넬리(1997)>의 헨델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죠. 이 영광을 이어나갈 최신 영화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 포스트에 이어 클래식 음악을 다채롭게 활용하고 있는 최근 개봉작 두 편을 소개합니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미미 레더, 2018)

세상을 바꾼 변호인 (On the basis of Sex)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한국에서는 지난 6월 선을 보인 ‘세상을 바꾼 변호인’입니다. 영화는 교내 여자 화장실조차 없던 시절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해 미국 대법관이 된 실존 인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담았는데요. 1950년대 당시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녀는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고, 같은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마틴 긴즈버그의 아내이기도 했죠.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나간 그녀는 컬럼비아 법학대학원편입의 이유는 영화나 전기, 다큐멘터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길!을 공동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여성에게 변호사 자리를 내어주는 로펌은 없었고 결국 그녀는 한동안 법학 교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On the basis of Sex)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던 중, 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남편 마틴 긴즈버그를 통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한 사건을 맡게 되는데요. 노부모를 모시는 것을 여성의 책무로 당연시했던 사회의 차별을 역으로 보여준 ‘남성 부양자’를 만나게 된 것이죠. ‘미혼 남성 부양자는 세금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긴즈버그는 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 수 있는 열쇠임을 직감하고 재판에 나섭니다. 재판의 과정과 그 결과를 영화 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 영화 속에서는 어떤 클래식을 만날 수 있을까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재판을 준비하고, 가족과 식사를 하는 집안 곳곳에는 사실 클래식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클래식 애호가였습니다. 특히 오페라와 가곡들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지난 2012년 뉴요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앨범들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베르디의 ‘아이다’와 ‘오셀로’, 모차르트의 ‘돈 지오바니’ ‘피가로의 결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푸치니의 ‘토스카’ 등 많은 오페라 작품을 섭렵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집에서 일을 할 때에는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여러 가곡들을 즐겨 듣는다고 덧붙여 소개했습니다.

아침 식사 중인 긴즈버그 가족 뒤로 주세페 푸치니의 ‘라보엠’ 포스터가 보인다. | 사진 유튜브 트레일러 캡처

스토리와 연관은 없지만, 긴즈버그가家 곳곳에 남겨진 클래식의 흔적들은 극의 사실감을 높입니다. 루스 긴즈버그가 실제로 좋아했던 곡들을 바탕으로 꾸며졌기 때문이죠. 루스가 법학 교수로 취직되었다는 소식을 남편 마틴에게 전하는 장면에서는 앞서 언급한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Song to the Moon)’가 흘러나옵니다. 그녀가 변호사로서 활동하길 바랐던 마틴은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는데, 곡이 그 감정을 더욱 잘 살려주고 있죠. “샴페인이나 따자”며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한 루스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LP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 장면 뒤로는 오페라 ‘아이다’의 포스터가 비추어지기도 했네요.

안토닌 드보르자크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마틴의 아쉬운 마음을 따라 흐른 음악, 오페라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입니다. 오페라 ‘루살카’는 체코의 대표적인 작곡가 드보르자크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하우프만의 ‘물속에 가라앉은 종’ 등의 동화들을 종합한 야로슬라브 크바필의 대본을 토대로 작곡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동화들은 모두 ‘물’과 이에 얽힌 전설을 소재로 하죠. 드보르자크의 ‘루살카’도 보헤미아의 숲과 물안개라는 신비로운 배경이 덧붙여진 작품입니다. 물의 요정인 루살카와 인간 세계의 왕자 사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주요 내러티브죠. 그래서 체코어판 인어공주 이야기라고도 불립니다.

극중 아리아 ‘달에게 부치는 노래’는 달님에 자신의 사랑을 전해줄 것을 염원하는 루살카의 노래입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죠. 이 곡은 하프의 아름다운 음색으로 시작되는데요. 신비로운 호숫가 전경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몫을 합니다. 한편 소프라노의 고백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게 되더라도 인간이 되어 왕자를 만나겠다는 절절함이 느껴지죠.

공식적으로 이곳에 공유할 수 있는 영화 클립은 없어, 원곡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을 아래에 준비했습니다. 미국의 국민 소프라노로 불리는 르네 플레밍의 목소리로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를 들어볼까요?

Dvorak - Song to the moon - Renee Fleming, Last night of the Proms - SEP 2010

영화 속 루스 긴즈버그와 두 남매의 모습. 막내아들 제임스 스티븐 긴즈버그는 클래식 음악 레이블 창립자로 성장한다. | 사진 유튜브 트레일러 캡처

이곳저곳 클래식의 흔적이 가득했던 긴즈버그 가족의 집, 이런 가정 환경에서 영향을 받으며 자랐을 인물이 있습니다. 영화의 서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그 주인공은 바로 루스의 아들 제임스 스티븐 긴즈버그인데요. 제임스 스티븐 긴즈버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1898년 클래식 음악 전문 레이블인 세디유 레코드를 창립하여 현재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 << ‘세상을 바꾼 변호인’ 속 클래식 음악 >>
모차르트 |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 아리아 Atto Primo: Non piu andrai farfallone amoroso
슈만 |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54 2악장 인터메쪼
베토벤 | 바이올린 협주곡 Op. 61 3악장 론도
슈베르트 | 피아노 오중주 ‘송어’ 실내악 편곡 버전
베르디 | 오페라 ‘오셀로’ 중 Inaffia l’ugola!
푸치니 | 오페라 ‘토스카’ 중 Visi d’arte
모차르트 | 오페라 ‘돈 지오바니’ 중 La ci darem la mano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오페라 ‘장미의 기사’ 중 Hab’ mir’s gelobt, ihn lieb zu haben in derrichtigen Weis
메노티 | 오페라 ‘미디엄(The Medium)’ 중 Monica’s Waltz
브람스 | 14개의 어린이의 민요 중 ‘Sandmannchen’, WoO 31, No. 4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요르고스 란티모스, 2018)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번엔 이른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배경은 영국의 왕궁입니다. ‘18세기 초, 유럽’이라. 이 영화에서는 ‘바로크 음악’이 주로 들려올 것 같은데요.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2관왕(여우주연상, 심사위원대상),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어워즈 여우조연상 등의 기염을 토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입니다. 18세기 초 영국 여왕으로 군림했던 앤, 그녀와의 오랜 친분으로 권력의 실세를 쥔 사라, 그리고 신분 상승을 노리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하녀 애비게일 세 실존 인물의 관계를 바탕으로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대해 신랄히 풍자하죠.

영화는 넓고 화려한 궁전 안, 의회 연설을 마치고 돌아온 앤 여왕을 비추면서 시작됩니다. 첫 대사를 내뱉기 전까지 그녀는 위엄과 기품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요. 이 장면에서 엄근진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왕궁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활용된 곡은 헨델의 합주협주곡 작품번호 6번 중 제7번의 1악장입니다.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대표적인 바로크 시대 작곡가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죠.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오프닝씬 내에서 헨델의 같은 곡이 두 번 등장한다. | The Favourite (2018) Opening scene

Portrait of 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헨델은 사실 1685년 독일 태생의 작곡가입니다. 그는 하노버 궁정 악장까지 역임하며 독일 내에서 인정받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오페라 작업에 집중할 수 없음을 깨닫고 1년의 휴가를 얻어 런던을 방문하죠.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행하고 있던 런던에 금세 매료된 헨델은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영국 시민권까지 얻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곳에서 작곡 활동을 이어갔죠.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영국 사람들이 헨델과 그의 음악을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여기며 자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생전, 그를 사랑했던 또 한 명의 영국인이 있었으니 바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중심에 서 있는 앤 여왕입니다. 그녀의 총애를 받은 헨델은 런던 왕실 악장에 임명되기도 했죠.

연희를 즐기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는 또 한 번 헨델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영화 후반부, 애비게일은 자신을 흠모하던 귀족 마샴과 결혼해 귀족이라는 타이틀을 되찾습니다. 그러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죠. 한껏 술과 유희를 즐기는 애비게일의 모습이 비추어지는 장면에는 왠지 모를 공허함이 극대화되는 느린 음악이 실려있습니다. 헨델의 수상음악입니다.

조지1세에게 ‘수상음악’을 소개하고 있는 헨델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그림 중앙이 헨델, 그 오른쪽이 조지1세로 보임. I of Great Britain, traveling by barge on the Thames River while musicians play in the background. The painting is an artist‘s rendering of the first performance of Handel’s Water Music in 1717.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수상음악은 물 위에서 연주되었던 음악을 의미합니다. 앤 여왕의 뒤를 이어 영국의 국왕이 된 조지 1세가 ‘뱃놀이 연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은 헨델이 연회 중 선보이기 위해 작곡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1717년 여름 런던의 템스강에서 헨델과 함께 배에 탄 50명의 연주자들이 조지 1세가 탄 배 근처를 맴돌며 이 곡을 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래는 17세기 실제로 연주되었던 고악기의 모습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는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의 공연 영상입니다. 3분 8초부터 영화에 등장한 2악장 아다지오 에 스타카토가 재생됩니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의 헨델 수상음악 전곡 연주. 3분 8초부터 영화에 등장한 2악장 아다지오 에 스타카토가 재생됩니다. G.F. Handel: Water Music - Akademie fur alte Musik Berlin - Live concert HD

헨델의 음악 이외에도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는 여러 바로크 음악이 포진해있습니다. 영화가 전개되며 오르간 음악이 몇 차례 흘러나오는데, 대부분 헨델과 같은 해에 태어난 대표적인 바로크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작품입니다. 그의 아들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의 작품도 두어 번 등장하죠.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각 시퀀스를 나누는 구분점이 존재한다는 것인데요. 이 장면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강렬한 현악 사운드를 지닌 곡 하나가 반복적으로 등장해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이 음악은 비발디의 ‘비올라 다모레*를 위한 협주곡 A단조’ 중 1악장 비바체입니다.

*비올라 다 모레: ‘사랑의 비올라’라는 의미의 비올라 다모레는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찰현악기이다. 바이올린 족의 비올라와 유사한 크기의 악기로 비올라처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연주한다. 이름에 걸맞게 사랑의 신 큐피드가 악기 머리에 조각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사랑의 불꽃을 비유하는 듯한 횃불 모양의 사운드홀을 갖는다. | 출처 네이버 악기백과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이미지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세 여자의 다툼 사이, 미묘한 감정선을 전달하는 데에는 낭만 시대 음악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사라가 앤 여왕과 애비게일이 함께 밤을 지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는 장면에는 슈만의 피아노 오중주 중 2악장이 삽입되었습니다. 사라가 느낀 배신의 감정을 극적으로 전달하죠. 또, 영화의 엔딩, 사랑과 권력을 좇던 다툼의 끝에 과연 무엇이 남았는지 의문이 피어나는 장면에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중 2악장이 공허한 울림을 전합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엔딩 The Favorite ending scene

■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속 클래식 음악 >>
헨델 | 합주 협주곡B♭ Op. 6, No. 7, HWV. 325 1악장 라르고
W. F. 바흐 | 하프시코드 협주곡 A단조 F. 45 3악장 알레그로 마 논 탄토
비발디 | 비올라 다모레를 위한 협주곡 A단조 RV. 397 1악장 비바체
헨리 퍼셀 | 트럼펫 소나타 D장조 Z. 850 2악장 아다지오
메시앙 | 주의 성탄(La Nativite du Seigneur) 중 Jesus accepte la Souffrance ? Olivier Latry
J. S. 바흐 | 판타지아 C단조 BWV. 562
J. S. 바흐 | 프렐류드와 푸가 G단조 BWV. 542
W. F. 바흐 | 하프시코드 협주곡 D장조 F. 41 2악장 안단테
비발디 |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RV. 277
헨델 | 수상음악 제1번 F장조 HWV. 328 2악장 아다지오 에 스타카토
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B♭장조 D.960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
사진·자료 | 네이버 영화, 위키미디어커먼스, 네이버 악기백과, 유튜브 ‘세상을 바꾼 변호인’ 트레일러

<올댓아트 박찬미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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