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명의 배우가 채우는 무대... 대학로에서 찾은 사랑의 ‘트라이앵글’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8.23 16:17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8.23 16:19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연극, 뮤지컬의 메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일대는 소극장으로 가득 차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공연으로 한창이다. 500석 이내의 작은 극장은 출연할 수 있는 배우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장치도 제한적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많은 상상력의 공간이 된다. 흰 천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드라마 주인공의 말처럼,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무대와 객석만 있다면 어디로든 향해 갈 수 있다. 오늘은 대학로에서 찾은 사랑의 ‘트라이앵글’, 세 명의 배우로만 서사를 채우는 3인극 세 편을 준비해봤다.

“발랄한 로맨스가 필요할 땐?
<김종욱찾기>”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2005년 초연해 롱런 중인 대학로 대표 오픈런 공연이다. 임수정, 공유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은 ‘김종욱’이라는 이름 석 자만 가지고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를 찾은 여자와, 첫 고객의 첫사랑을 찾아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동명의 영화가 임수정과 공유의 로맨틱한 키스신으로 유명해졌다면, 뮤지컬은 이 작품을 거쳐간 수많은 스타들과 1인 22역을 선보이는 멀티맨으로 유명하다.

(왼쪽부터) 뮤지컬 <김종욱찾기>에 출연했던 배우 오나라, 오만석. | jtbc, 오디컴퍼니

오나라, 오만석, 김무열 등 드라마와 영화, 무대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배우들부터 강필석, 민우혁, 최수진, 안유진 등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며 굵직한 존재감을 보이는 배우들까지 모두 <김종욱찾기> 출신이다. <김종욱찾기>에서 주인공 여자와 남자의 이름은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음원 사이트에서 뮤지컬 넘버를 찾아보면 초반 캐스트였던 오나라, 오만석, 엄기준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여자의 첫사랑 김종욱 역은 남자 역의 배우가 1인 2역으로 소화한다.

[미공개] 장나라의 뮤지컬 공연 풀버전 대공개♪ 《황후의 품격 / 스브스캐치

올 초에 방영한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김종욱찾기>가 나와 화제가 됐다. 극중 장나라가 맡은 오써니 역은 뮤지컬 배우로 <김종욱찾기>에 출연한 것. 장나라는 직접 넘버 ‘여자의 결심’, ‘Destiny’, ‘한양서 김서방 찾기’를 선보였다. 극중 남편 역을 맡은 신성록이 실제 <김종욱찾기>를 거친 배우이기도 하니 스타 등용문이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한 듯하다.

<김종욱찾기>에 멀티맨으로 출연한 배우 진선규. | CJ ENM

<김종욱찾기>에서 멀티맨은 그야말로 일당백이다. 1인 22역을 소화하는 멀티맨은 배역 이름도 멀티맨인데 공연의 해설자이자 감초, 다양한 역할로 무대를 채운다. 점쟁이, 택시 기사, 집주인 아줌마, 동명이인의 김종욱들, 노인, 인도 현지 가이드 등을 해낸다. 영화화되면서 멀티맨의 역할은 사라졌지만, 무대에 섰던 주연 배우들이 카메오로 등장해 재미를 더했다.

■ 뮤지컬 <김종욱찾기>
2016.06.17 ~ 2019.09.30
서울 컬처스페이스 엔유
전석 4만 5천 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힐링극
<너를 위한 글자>”

창작 초연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는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 캐롤리나를 위해 최초의 타자기를 만든 이탈리아 발명가 펠레그리노 투리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바닷가 마을 마나롤라를 배경으로 투리와 캐롤리나, 스타 작가이자 캐롤의 오랜 친구 도미니코가 얽히면서 각 인물들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너를 위한 글자> 공연 사진. |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너를 위한 글자>는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기자기한 무대를 다방면으로 활용해 볼거리를 더한다. 무대는 객석에서 바라보는 방향으로 왼쪽은 캐롤의 집, 오른쪽은 투리의 집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 이들이 가는 식당이 있다. 그리고 세트는 모두 이층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작은 무대를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꽉 찬 느낌을 준다. 또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현악 3중주로 연주되는 넘버는 극의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왼쪽부터 투리 역의 강필석, 캐롤리나 역의 이정화, 도미니코 역의 에녹.

세 명의 캐릭터의 균형도 잘 맞는다. 3인 극의 경우 두 명의 주요 배역에게 서사가 몰리고, 나머지 한 명의 캐릭터는 이들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너를 위한 글자>에서는 마음의 문을 닫은 채 까칠하게 살아가는 너드 발명가 투리, 밝고 긍정적이지만 시력을 잃어가면서 꿈이 좌절되는 캐롤리나, 인기 작가지만 딜레마에 빠진 도미니코라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서 세 남녀는 애정관계로 엮이게 되지만 사랑 이야기보다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로 발전하면서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퍼즐처럼 세 사람이 맞춰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강필석, 이정화, 정동화, 에녹 등 현재 대학로 인기 배우가 다수 출연하면서 창작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2019.07.06 ~ 2019.09.01
서울 예스24스테이지 1관
기본가 4만 4천 ~ 6만 6천 원

“이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사의찬미>”

<사의찬미>는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1926년 8월 4일 대한 해협에 투신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2013년 <글루미데이>라는 이름으로 초연 후 5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 <사의찬미>는 대학로 대표 인기 작품으로 손꼽힌다. 실제 인물인 윤심덕과 김우진에 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의문의 존재 ‘사내’라는 인물을 더해 두 사람의 비극적인 운명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내’는 마치 뮤지컬 <엘리자벳>의 토드(죽음)처럼 죽음을 형상화한 인물이다.

뮤지컬 <사의찬미> 콘셉트 사진. | 주식회사 네오

20세기 최고의 스캔들이었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조선 최고의 가수이자 신여성 윤심덕은 김우진을 사랑했지만 그는 이미 가정이 있었고, 두 사람의 사회적 위치도 달랐다. 이들의 동반 자살 스캔들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인 동시에 현생에서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신세계 행을 택한 청춘 남녀의 사랑을 은유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1991년 장미희 주연의 영화, 2018년 신혜선, 이종석 주연의 드라마로도 탄생했다.

<사의찬미> 영화 스틸컷(왼쪽), 드라마 포스터(오른쪽). | 네이버영화, SBS

<사의찬미>의 인기 요인으로는 매력적인 인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일제강점기 신여성의 대표 주자 윤심덕은 뮤지컬 안에서도 기존의 극에서 다뤄지는 수동적이고 평면적인 여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모두 마음속으로 생각만 할 때
난 그냥 행동할 뿐이야.
모두 막연하게 동경만 하던 삶을
난 직접 살아갈 뿐이야.”
-뮤지컬 <사의찬미> 속 심덕의 넘버
‘난 그런 사랑을 원해’ 중

자신이 원하는 것, 사랑을 위해서는 죽음도 감수하는 그의 의지와 사내와 우진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보면 김우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윤심덕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윤심덕은 그 시대 여성들이 흔히 갖고 있었던 남자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아버지뻘 되는 남자들에게도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모를 말을 썼다고 한다. 그래도 미움을 사지 않았던 인기 최고의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뮤지컬의 제목이 된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는 루마니아 음악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 물결’을 편곡해 윤심덕이 직접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다. 영화 <해어화>에서 배우 천우희가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 뮤지컬에서도 윤심덕이 ‘사의 찬미’를 부른다.

영화 <해어화>에서 천우희가 부르는 ‘사의 찬미’

■ 뮤지컬 <사의찬미>
2019.07.06 ~ 2019.10.20
서울 대학로 TOM(티오엠) 1관
기본가 4만 4천 ~ 6만 6천 원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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