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충만한 가을, 뮤지컬 넘버 한 곡 어때요?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9.10.17 10:19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10.17 10:23

가을에 어울리는 뮤지컬 넘버 5선

지구의 온난화에 따른 기후 이상 때문일까. 올해는 유난히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유례없던 폭우를 쏟은 18호 태풍 미탁이 가고, 그다음 태풍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벌써 들려온다. 본디 추석이 지나고 나면, 더위도 한풀 꺾이고, 시원하고 높은 가을바람에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면서 가을을 맞이하는 것인데, 올해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비, 바람 때문에 가을을 느끼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달라진 아침, 저녁의 공기는 서서히 겨울을 준비하라고 일러주고 있는 듯하다. 라디오를 켜면 새삼스레 오래된 낯익은 음악들이 가을의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부터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까지 가을만 되면 유난히 자주 들려오는 익숙한 노래들이 있다. 뮤지컬 넘버 중에도 가을이 되면 유난히 ‘나만의 갬성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재생하게 되는 노래들이 있는 법. 가을과 잘 어울리는 뮤지컬 넘버 베스트 5를 뽑아보았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뮤지컬 <그날들>”

쓸쓸함을 목소리로 표현한다면 가수 김광석을 따라올 자가 없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故김광석의 음악은 계절을 따지지 않고 사랑받기로 유명하지만, 그의 쓸쓸하고 덤덤한 목소리는 가을 하늘 아래에서 더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의 노래들로 만들어진 뮤지컬 <그날들>은 2013년 초연되어 올해까지 여러 시즌에 걸쳐 공연되며 관객들을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작품이다.

가수 김광석의 음악으로 채워진 뮤지컬 <그날들>.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른 즈음에’ ‘부치지 않은 편지’ ‘먼지가 되어’ 등 유려한 김광석의 명곡을 배우들의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강점. 가을이면 떠오르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뮤지컬<그날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2막 마지막 장면을 마무리하는 넘버로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곡이다.

뮤지컬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가을이 오면
-뮤지컬 <광화문 연가>”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로 시작하는 이문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자동 연상되는 노래로, 첫 소절만 들어도 벌써 가을 아침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곡이다. 그간 유리상자, 서영은, 케빈 오 등 쟁쟁한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와 커버를 선보였다. 이 곡은 뮤지컬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2011년 초연 이후 여러 요소를 다듬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올해에도 공연되었다.

이문세의 목소리로 익숙한 이영훈 작곡가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광화문 연가> | CJ ENM

이문세와 오랜 세월 함께 히트곡을 제조한 작곡가 故이영훈의 노래로 엮어진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사랑이 지나가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옛사랑’ 등 주옥같은 곡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듯 과거와 현재를 음악 중심의 이미지적 서사로 풀어가며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커튼콜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싱어롱앙코르는 이색적인 광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Falling Slowly
-뮤지컬 <원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뮤지컬이 겨울만큼은 많지는 않다. 그래도 베르테르의 애절한 마음이 녹여진 뮤지컬 <베르테르>의 ‘발길을 뗄 수 없으면’이나, 최근 초연을 올린 가수 김현식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사랑했어요>의 ‘비처럼 음악처럼’같이, 가을이면 생각이 나는 서정적인 넘버들이 가득한 뮤지컬은 바로 <원스>일 것이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원스> | 신시컴퍼니

동명의 히트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연출가 존 티파니가 처음에는 고사했을 정도로 무대화에 대한 고심이 듬뿍 담겨 있다. 모든 배우가 악기를 연주하고, 큰 무대를 음악만으로 가득 채우며 2012년 토니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지컬상으로 포함한 8개 부문을 석권한다. 거리의 기타리스트와 꽃을 파는 체코 이민자의 운명 같은 만남을 음악으로 표현한 만큼 주옥같은 넘버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곡 ‘Falling Slowly’는 가을의 산책길을 나서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곡.

국내 공연에서는 윤도현과 이창희가 가이 역을 맡으며, 이 곡을 불렀다. 주인공 가이와 걸이 각자의 길을 떠나며 함께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전하는 넘버로, ‘난 널 몰라. 허나 원해. 어쩌지 못해’라는 가사로 시작해 ‘널 사랑해 하지만 넌 떠났어’로 끝나는 애절한 이별의 노래이다.

뮤지컬 <원스> ‘Falling Slowly’ 한국어 버전 뮤직비디오. 가이 역에 윤도현, 걸 역에 전미도가 노래를 불렀다.

“조안나
-뮤지컬 <스위니 토드>”

복수와 광기가 난무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캐릭터들 중에서 유일하게 로맨틱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 안소니가 부르는 뮤지컬 넘버 ‘조안나’. 이 곡은 주인공 스위니 토드의 딸이자, 터핀 판사의 집착을 견뎌내고 있는 조안나를 향한 젊은 선원 안소니의 마음을 담고 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 속에서 러빗부인이 부르는 ‘By the Sea’와 함께 몇 곡 안되는 로맨틱한 노래.

뮤지컬의 대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 | 오디컴퍼니

스티븐 손드하임 작곡가 특유의 불협화음 속의 하모니가 가득한 넘버들 중에서 ‘조안나’는 짧게나마 관객에게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을 안겨주는 곡이다. 이 곡은 1막과 2막에서 한 번씩 나오는데, 그 변주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안소니가 조안나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져, 내가 꿈꾸던 사람은 바로 조안나라며 감금된 그녀를 훔칠 것이라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전한다.

“Time Stops
-뮤지컬 <빅 피쉬>”

미세먼지와 황사가 가득한 봄, 더위에 지치게 만드는 여름, 집 밖에 나오기 싫은 한파의 겨울. 요즘 사계절 중에서 데이트하기 좋은 시기를 찾는다면, 가을만큼 좋은 것이 없다. 좋은 공기와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까지 완벽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를 거닐기만 해도 사랑이 퐁퐁 샘솟는 계절이다. 뮤지컬 <빅 피쉬>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순간을 노래하는 넘버 ‘Time Stops’은 이런 가을에 제격인 곡이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 <빅 피쉬> | 브로드웨이프러덕션 Photo by Paul Kolnik

뮤지컬 <빅 피쉬>는 2003년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그 속에서도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과 어머니 산드라 블룸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바로 이 넘버가 함께한다. 그녀를 본 순간 ‘나의 작은 세상이 갑자기 크게 변화되고, 시간이 멈추고 꿈이 이뤄진다’라는 그의 고백에, 그녀 역시 ‘떨리는 손과 달리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된’ 사랑에 빠진 마음을 함께 부른다.

뮤지컬 <빅 피쉬>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Time Stops’. 에드워드 블룸 역에는 노버츠 레오버츠와 샌드라 블룸 역에 케이트 볼드윈이 연기했다.

12월 국내 초연을 앞둔 이 작품은 산드라 블룸 역에 배우 구원영, 김지우와 에드워드 블룸 역에 남경주, 박호산, 손준호가 캐스팅되었다. 이들이 사랑이 빠지는 순간 들려올 ‘Time Stops‘의 마법과도 같은 무대가 기대된다.

<김효정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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