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고 섹시하게…19금 ‘일탈’을 훔쳐보다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10.23 13:11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10.23 13:13

“사랑을 말했고, 사랑을 적었네
이게 잘못이라면, 이게 나쁜 거라면
야한 여자야, 나는 야한 여자.”
-뮤지컬 <레드북> 넘버 ‘나는 야한 여자’ 중

뮤지컬 <레드북> 주인공 안나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금기이던 시대에 자신의 성적 욕망을 주저 없이 상상하고 표현한다. 삶이 무기력해진 할머니에게는 야한 이야기로 활기를 불어넣는가 하면, 여성들만의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을 알게 된 후에는 자신의 판타지를 바탕으로 야한 소설을 쓴다.

여성의 욕망을 전면으로 드러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와 <미스터쇼>.

성적 욕구에 솔직한 여자는 문란하고 쉬운 여자인가? 우리가 접하는 많은 매체 속에서 여성들의 욕망은 그 자체로 대상화되거나, 어딘가에 귀속되길 원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앞으로 소개할 두 개의 공연은 ‘욕망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욕망의 대상에서 주체가 된 <레드북>의 안나처럼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당당한 내면의 모습을 마주하라고, 욕망의 주인이 되라고 말이다.

“오늘 연예계 은퇴하는 날이냐고요?”
①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티켓 오픈 5분 만에 매진된 화제의 공연, 높은 별점과 잘 어울리는 ‘더럽다’라는 호평(?) 일색인 국내 최초 여성 스탠드 업 코미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가 지난 10월 1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포스터. | 넷플릭스

*스탠드 업 코미디란 오로지 마이크 하나에 의지해 말로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 쇼로, 국내에서는 흔히 볼 수 없지만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대중화된 장르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이미 토크 쇼 호스트 엘런 디제레너스, 희극 배우 에이미 슈머 등의 스탠드 업 코미디를 선보인 바 있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코미디언 박나래가 자신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풀어놓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지난 2019년 5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성남, 전주 등에서 지방 투어를 진행한 다음, 10월 다시 서울 앙코르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방송으로는 담을 수 없는, 부끄러워할 새 없이 치고 들어오는 도발적이고 야한 멘트는 관중을 웃음으로 인도한다.

“오늘은 저에게 있어서
의미 있는 날입니다.
왜냐면 제가
첫 경험을 하는 날이거든요.”

박나래는 오늘 한번 더럽게 놀아보겠다는 선언으로 쇼를 시작한다. 때론 은근하게, 때론 적나라한 단어들로 채워지는 박나래의 발언들은 위험함을 넘어 솔직하고 통쾌하다. 거기에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나 오고 갈 비속어까지 더해져 진정성과 친근함을 전한다. “언젠가는 여자도 웃통 까고 다니는 날이 와야 한다”라고 말하질 않나, “닳고 닳은 게 뭐가 어떠냐며” 너스레도 떤다. 코미디언이 아무리 망가지는 데 스스럼이 없다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수위의 멘트가 날아든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스틸 사진. | 넷플릭스

2006년 KBS 21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경력 14년 차 코미디언이 된 박나래. 그가 대중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빛이 들지 않는 자리에서도 묵묵하게 활동을 이어온 그는 관찰 예능, 공개 코미디, 디제잉 등을 통해 자신만의 입지를 꾸준히 다져왔다. 애주가적 면모나, 몸을 사리지 않는 분장, 아슬아슬한 야한 농담 등을 통해 솔직함과 당당함을 무기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든 그는, 나이나 외모, 말투, 사생활 등 대중에게 보다 깐깐한 평가를 받게 되는 여성 코미디언, 연예인으로서 독보적인 자리를 잡고 있다.

완벽한 싱크로율로 분장 개그 1인자의 면모도 있지만, DJ로 변신해 색다른 모습도 보여준다. | 박나래 인스타그램

박나래는 한 인터뷰에서 코미디언을 작은 연출가에 비유한 적이 있다. 연극을 전공한 그는 언젠가는 초현실주의 연극을 연출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그런 박나래의 경력과 꿈을 해소할 수 있는 무대가 된 듯하다. 직접 각본과 프로듀싱까지 맡을 정도로 열정과 내공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농염주의보>의 콘텐츠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갈린다. 생각보다 야하지 않았다, 사생활을 개그 소재로 사용하는 게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방송에 나와 애교를 부리지 않아서, 셀카를 찍을 때 속옷을 입지 않아서, 책을 읽어서, 말투가 친절하지 않아서 어떤 연예인들은 욕을 먹는다. 선을 넘는 농담을 잘해서, 너저분한 라이프 스타일이 친근해서, 죄는 지었지만 반성했으니까 어떤 연예인들은 지지 받는다. 박나래의 ‘더럽게’ 솔직한 성적 농담과 경험담, 필터링 되지 않은 비속어가 난무하는 원 맨 쇼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 국에 공개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지점에서 묘한 통쾌함을 준다.

관객들은 박나래의 말 마디마디에 환호를 보낸다. | 넷플릭스

“아니 무슨 여자가 그런 얘기를 해. 박나래 연예인 안 해? 은퇴하는 거야?”라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 박나래는 이렇게 되받아친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그냥 시원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살자고.

판타지로 채워진 어른들의 테마파크
② 19禁 공연 <미스터쇼>

“레이디스 앤 레이디스, 웰컴 투 미스터 쇼”

극장에 들어서면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단 한 명의 남자도 만날 수 없다. 미스터는 오로지 쇼 안에서만 존재한다. 음악감독이자 공연 연출가 박칼린이 구성과 연출을 맡은 버라이어티 쇼 <미스터쇼>가 새 시즌으로 돌아왔다. 오직 성인 여성들만 관람 가능한 19금 판타지 쇼를 콘셉트로 2014년 시작된 <미스터쇼>는, 육체미 넘치는 미스터들이 선사하는 판타지 쇼에 MC의 입담과 관객 소통을 더해 꾸미는 공연이다.

2019 <미스터쇼> 공연 사진. | 할리퀸크리에이션즈(주)

8명의 미스터들은 모두 9개의 콘셉트로 구성된 무대를 펼친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부터 바텐더, 무사, 제복까지 “뭘 좋아할지 몰라 일단 다 준비해봤어”의 뉘앙스로 다양한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콘셉트에 충실했던 의상이 무색해질 정도로 옷을 벗고, 육체미를 과시한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만화에서나 볼 법한 근육질의 몸은 이들이 눈앞에 실제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더욱 환상의 공간으로 만든다.

미스터들은 웨이터, 무사, 마초 등 다양한 콘셉트로 등장한다. | 할리퀸크리에이션즈(주)

<미스터쇼>의 판타지 세계는 보는 데서 그치지 않다. 본무대와 돌출형 무대 사이에는 미스터들을 보다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레이디스 존’이라는 36개의 특별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미스터들은 공연 도중 수시로 레이디스 존 바로 앞까지 와서 춤을 추고 퍼포먼스를 한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이 좌석들은 순식간에 매진되므로 구하기 힘든 것이 사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관객 참여형 공연인 만큼 미스터들과 소통할 기회는 많다. 바텐더, 학생으로 변신한 미스터들과 무대 위에서 춤을 출 수도 있고, 공연 중간 깜짝 선물로 받은 코인으로 미스터에게 맥주를 서빙 받을 수도 있다. 부끄러움을 화끈하게 벗어던질수록 쇼는 더 즐거워진다.

2019 <미스터쇼> 공연 사진. | 할리퀸크리에이션즈(주)

처음에는 조금 민망할 수도 있다. 미스터들은 맥락 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객석까지 드리우는 화려한 조명에 광대가 아플 정도로 웃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벌거벗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나, 객석 가득한 관객들과 함께 웃고 환호하고 손뼉을 치다 보면, 그들과 묘한 시스터후드가 형성되면서 쇼를 바라보는 내 모습에 솔직해지고 당당해진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스터쇼>를 찾는 관객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사람부터, 딸과 함께 온 어머니까지. 극장 안에서 이들은 쇼 MC의 말처럼 어떤 역할에 구애받을 필요 없이 ‘언니’로만 존재한다.

2017년 <미스터쇼>를 관람한 유튜버 박막례.

<미스터쇼>를 향해 일부 비판의 시각도 있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단순히 관음증적인 퇴폐 공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스터쇼>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남성을 대상화하지만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 준비된 무대와 객석의 호응은 그들을 프로페셔널한 쇼맨으로 비추면서, 여성도 성적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부각시켜줄 뿐이다.

2019 <미스터쇼> 공연 사진. | 할리퀸크리에이션즈(주)

박칼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음지 속에 묻혀있는 여성의 본능을 이끌어내고자 이 공연을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인간이라면 필히 갖고 있을 욕망이 누구에게는 본능이고, 누구에게는 문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 <미스터쇼>
2019.09.20 ~ 2020.02.02
서울 신한카드 FAN [판] 스퀘어 라이브 홀
만 19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75분
문용현,민정기,노진욱,김사홍,정윤호,이희중
김동희,김시우,김준석,최혁진,민태식,이주형 등 출연.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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