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결국 통해…세계인을 아우르는 곡 쓸 것” 한국을 빛낸 작곡가 김택수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06.26 11:1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06.26 11:24

‘한류’하면 드라마, K-팝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K-클래식’ 열풍도 대단하다.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클래식의 위상을 드높이는 연주자의 이름은 솔리스트부터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의 단원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최근 미국에서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국 작곡가의 곡이 세계적인 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해외 청중을 만난다는 것(그리고 만났다는 것!) 내년까지 다른 여러 해외 오케스트라의 연주 일정도 예정되어 있다. 뉴욕 필하모닉은 지난 2017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코리안심포니)에 의해 초연되었던 ‘더부산조’를, LA 필하모닉은 ‘코오’를 연주한다. 곡의 주인은 작곡가 김택수다.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의 곡이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공연에 초청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부산조’가 현대음악의 지표와도 같은 곡임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전통 음악의 색채를 녹여낸 곡이기에 이 초청은 더욱 뜻깊다. ‘더부산조’는 작곡가 김택수가 우리 전통의 가야금 산조를 관현악 편성으로 써 내려간 곡이다. 한국 관객들은 6월 3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낭만의 해석> 공연에서 새롭게 개작된 ‘더부산조’를 만날 수 있었으나,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아쉽게 공연이 무산되었다. 코리안심포니 연습실에서 만난 김택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웃었고,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그 후를 위해 지금의 시간을 ‘알차게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위대한 작곡가에 우리는 고뇌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어 한다. ‘작곡가’라고 하면 대개 베토벤의 초상화와 같은 그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이미지는 미디어가 ‘가장 잘 팔리는 형태’로 만들어낸 것일지 모르겠다. 과거 많은 유명한 작곡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인정한 작곡가인 김택수 역시 소탈하고 솔직했으니! 그에게서 어떤 가식이나 허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스로도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택수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그만의 ‘음악 실험’을 연구하고, 고민하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세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직접 만난 그가 들려준 ‘더부산조’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웠다. 아래 인터뷰에서는 ‘더부산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만큼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이하는 김택수와의 일문일답.

작곡가 김택수|올댓아트 송지인

축하 인사를 먼저 드리고 싶어요. 뉴욕 필하모닉이 올해 말 내년 초에 ‘더부산조’를 연주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김은선 지휘자가 함께 하시죠. LA필하모닉이 선생님의 또 다른 곡 ‘코오’를 무대에 올리고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물론 너무 기쁘고 감사했죠. 그런데 그 소식을 막 들었을 때는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한국인은 너무 좋은 일이 생기면 외려 자제하려는 경향이 좀 있잖아요. 오히려 저보다 주변에서 더 축하해 주시면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상기시켜주셨죠. 저는 스승이신 진은숙 선생님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저한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뉴욕필하모닉의 단원들이면 정말 세계적인 음악가들이잖아요. 그들의 손에 내 곡이 연주된다는 게 정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도 했었고요. 지난 1월에도 제 곡인 ‘스핀-플립’을 뉴욕 필하모닉이 연주했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LA 필하모닉이 연주할 ‘코오’는 진은숙 선생님이 프로그래밍하셨어요. 성시연 지휘자와 이유라 바이올리니스트가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고요.

원래는 ‘더부산조’를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로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6월에요. 그런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공연이 취소됐죠. 많이 아쉬우실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봄에 교향악축제 참여하려고 했었던 것도 취소가 되었고, 여름 시즌 스케줄도 하나 취소되었고요. 그다음 스케줄이 이번 코리안심포니 공연이었는데, 이렇게 되었네요. 다음 연주는 10월, 11월인데 아직까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한국이든, 해외든요. 아쉽긴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저만 힘든 상황이 아니잖아요. 이 어려운 시기의 문제가 안전하게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2017 코리안심포니 라이징 스타 Ⅵ part 1 공연에서 초연된 김택수의 ‘더부산조’, 연주는 1분부터 |Youtube

‘더부산조’는 가야금 산조를 관현악 악기로 그린 곡이죠. 제가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리랑의 ‘아리, 아리랑’ 하는 그 멜로디가 들리는 것 같아요.

일부러 아리랑의 선율을 넣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느끼셨다면 제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공했네요(웃음). 우리 전통 민요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 있어요. 국악 하시는 분들은 몸에 다 배어 있고, 국악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자라면서 접하는 국악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그 패턴이요. 방금 그 ‘아리, 아리랑’ 처럼 딱 들으면 누구나 아는. 근데 그게 추상적으로는 그려지는데, 저는 정확하고 분명한 패턴을 발견하고 싶었어요. 너무 궁금하잖아요. 그리고 그 패턴을 발견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패턴을 알고 그 원리를 알면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걸 발견하는 실험을 음악적으로 계속해나가고 있어요.

우리 전통 음악의 패턴을 발견하는 실험을 관현악으로 하신다는 게 정말 독특해요.

“국악을 국악답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 이 질문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것을 어디까지 변형했을 때 청중이 ‘어? 국악 같네!’라고 생각할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들이요. 음악으로 실험을 하면서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고 있고요. ‘더부산조’ 편성에는 국악기가 없어요. (정말 신기하네요. 저는 이 곡을 들으면서 ‘관악 쪽에 피리가 있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악기만의 문제는 아닌 거죠. 현악기 군에도 가야금이 없거든요. 그런데도 국악의 선율이나 악기가 있는 것처럼 느끼셨다면 제가 잘 만든 거겠죠. 이런 시도를 계속해나가려고 해요. 기술이나 약품을 개발할 때처럼 문화를 가지고 하는 실험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저뿐만이 아니라, 물론 결은 조금 다르지만, 악단광칠이나 이날치처럼 국악을 ‘힙’한 것으로 승화시키는 분들도 있고요. 모든 세대가 이런 시도를 여러 곳에서 하고 있죠.

디즈니 초기 작품, 예를 들면 <판타지아> 같은 1940-195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의 느낌도 들어요.

정확해요. 제가 그런 오케스트레이션을 굉장히 좋아해요. 디즈니에서 쓰는 오케스트레이션, 그러니까 관현악법은 제가 좋아하고 모델로 하는 작곡가들의 관현악법을 따오는 경우가 많아요. 라벨이나, 드뷔시 같은 작곡가들이요. 물론 듀카스의 음악이긴 하지만 <판타지아>의 음악도 그렇고요. 디즈니가 이런 관현악법을 자주 쓰는 이유는 이게 만화, 애니메이션 용으로 너무 좋기 때문이에요. 시각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든요. 조금 더 할리우드 무비 쪽으로 가면 존 윌리엄스 같은 작곡가가 쓰는 것은 바그너, 말러의 웅장한 관현악법이고요. 디즈니의 영화 음악은 색채감이 있어요. 매 장면, 장면을 컷 하면서 30초, 10초, 5초, 이렇게 다음 화면으로 ‘탁’ 넘어갈 때 그 순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그런 오케스트레이션을 좋아해요. 그리고 이런 것에 한국적인 부분도 있다고 봐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세요?

K-팝 같은 경우도 1초, 정말 그 찰나의 순간, 한 단어, 단어마다 맞춰서 화면이 휙휙 전환되잖아요. K-팝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디테일에 대한 관심이 특히 호감을 부른 것 같아요.

디즈니 영화 음악에는 음악의 흐름이 스토리와 맞붙는데, ‘더부산조’에도 스토리가 있나요?

있어요. 차마 민망해서 말하지 못하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죠(웃음). 우리 전통 민요를 보면 구슬픈 남도 민요가 있고, 밝은 경기 민요가 있잖아요. 경기민요에서 주로 쓰는 조들을 ‘경드름’이라고 하는데, 그게 약간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도 민요가 사실은 조금 더 한국에서만 볼 수 없는 분위기이긴 하죠. 그래서 ‘더부산조’의 ‘경드름’ 부분을 쓸 때는 한복 반, 중국옷 반을 입은 여성, 또는 여성이 아니어도 상관없고요. 춤을 추는 장면 같은 것도 생각했고요.

개작을 조금 하셨다고 들었어요. 2017년 초연 당시와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앞부분의 반 정도가 느리고 나머지 반 정도가 빠른데, 그렇게 하니까 서곡으로 하기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처음에 그렇게 작곡했던 이유는 기본적인 산조 비례, 길이비가 그래서 그걸 지킨 거였어요. 그런데 청중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지점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보다는 국악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굳이 힘들게 지루하게 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2분가량을 그냥 들어냈어요.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외국에서 연주할 때도 그래요. 한국에서는 느린 부분도 음미하시면서 들으시는데, 외국 공연에서 외국인 청중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어서요.

2017년 초연은 코리안심포니에서 하셨었죠.

코리안심포니에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상주 작곡가로 있었어요. 상주 작곡가로 선정되었다는 것도, 훌륭한 단체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감사한 일이죠. 저는 제가 천운을 타고난 작곡가라고 생각해요. 좋은 기회를 많이 잡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셔서 또 다른 많은 분들이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니까요. 너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작곡가 김택수|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주 작곡가가 되면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요.

관현악단과 정기적으로 꾸준히 같이 작업을 하게 되죠. 곡을 발표하기 전에 초안을 완성하면 악단과 실험 연주를 한 번 해요. 연주는 아니고 리허설이죠. 그렇게 한 번 흐름을 볼 수 있는 거예요. 음악의 균형을 잡는 능력은 특히 경험이 많이 필요해요. 상주 작곡가는 본인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닌 경우가 많잖아요. 정부 기관이나 단체에서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시는 건데, 저는 코리안심포니에서 그 기회를 만들어주셨으니까, 너무 감사한 일이죠. 후배 작곡가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죠. 기회가 있다고 해도 상주 작곡가의 수도 한정적이에요. 보통 단체에 상주 작곡가는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만 있어요. 1년 단위로 하게 되고요. 저는 상주 작곡가로서의 경험도 물론 중요하고 귀하지만, 상주 작곡가가 되기 전에도 이미 어느 정도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지금의 상황까지 될 수 있었던 것 중에서 편곡 작업을 하면서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까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의 앨범에서도 편곡을 맡으셨었잖아요.

그런 분들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겪은 일련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 편곡자나 상주 작곡가가 되기까지의 문턱이 너무 높은데 어떻게 극복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해요. “친구를 많이 만드세요, 제발!” 요즘은 모든 것들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작곡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정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저 혼자 작곡을 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편곡 작업을 했던 많은 음악가분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도움이 컸어요. 보통 작곡가에 대해 생각하고 또 기대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는 저도 알아요. 외롭고, 고독하고, 음악과의 사투, 나 자신과의 싸움…(웃음). 물론 저도 그렇게 포장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정말 중요해요. 서로 돕고, 공동체를 만들고 그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요. 당연히 그 관계를 둘러싼 사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작곡은 늦게 시작하시는 분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대학 다닐 때 원래 전공이 작곡은 아니었어요. 4학년 때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나서 음악 수업을 들었고, 작곡과에 편입했어요.

원래 작곡에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어릴 때를 회상해보시면, 어떤 것 같으세요?

피아노랑 바이올린을 배웠었어요. 제가 어릴 때 어떤 놀이를 했냐면, 요즘 유튜브로 그런 영상을 많이 만들잖아요.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녹음해서,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을 같이 띄우는. 그런 것을 그 시대 버전으로 하고 놀았어요. (굉장히 시대를 앞서나가셨는데요?) 그때는 유튜브 영상 같은 기술이 없었으니까 혼자서 녹음해 놓고 이중 녹음하고. 그러다 중학교 때 집에 있는 컴퓨터에 미디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걸 알게 됐어요. 예전에 오락실을 가면 오락실 음악이 단선율 음악이 나오는데, 선율 2개가 나오면 최첨단 음악이라고 하는, 그런 것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요. 그 프로그램에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소스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그런 기술과 프로그램이 있었군요.

나름 최신식이었죠. 드럼 채널을 찍으면 드럼 소리가 나오고, 베이스 소리, 브라스 소리, 그런 다채널 기능이 있었어요. 제가 그때 룰라를 좋아했는데, 그때가 또 하우스 음악, 레게 음악, 이런 것들이 또 한국에 들어오던 시기였어요. 저는 그런 리듬이 재미있다고 느꼈죠. 그래서 그런 리듬을 카피해서 컴퓨터 음악으로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가서는 친구들이랑 같이 그 작업으로 음반을 하나 만들었어요. (음반이요?) 말이 음반이지 저희끼리 그냥 컴퓨터로 만든 소리를 CD를 구워서 “음반이다!‘하고. 오케스트라처럼 관현악 소리도 넣고, 차이콥스키 왈츠 같은 곡이요. 아니면 뉴에이지 곡도 넣어보고요. 그렇게 해서 음반을 만들어서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돌리고, 심지어 팔았어요(웃음).

작곡가 김택수|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돌이켜보면 작곡 인생의 시작이었네요.

그때만 해도 작곡이라는 전공이 있는 것도 몰랐던 때였어요. 그때 같이 했던 친구가 훨씬 저보다 기술적인 지식이 많았고 게임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저는 중학교 때 미디 프로그램으로 그러고 놀던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너는 음악을 잘하니까 이런 것 한번 해보자”고, 말이 권유지 강요를 해서 시작했던 거예요. 재미있었어요. 재미있는 추억이죠.

그런데도 왜 작곡을 전공하지 않으셨어요?

제 초등학교 때 꿈이 입신양명(웃음). 나라를 빛내고, 가족을 빛내고, 그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세대적인 측면을 무시 못 하죠. 저희 세대가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 이런 것 하면서 한창 전 국민의 애국심이 고취되던 시기에 태어났잖아요. 거기다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나라의 미래는 과학이 책임진다’ 이런 분위기가 되게 강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과학을 선택했던 거고요. 그런 생각이 더 깊게 제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화학 올림피아드 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경험을 한번 하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그 길에서 입신양명하겠다, 생각하게 된 거죠.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고요.

종교적인 이유라면?

그때는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종교 동아리로 밴드 활동을 했지만 그것도 종교 활동의 연속선까지 만으로 한계를 두고 있었고요. 그러다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1년 정도 다녀왔어요. 그 경험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갈 때는 아무런 계획 없이 갔어요. 불어도 하나도 몰랐고요. 그런데 프랑스에 가서 경험을 쌓으면서 제가 그동안 고민해왔던 것들이 ‘꼭 그럴 필요가 없는 것들이구나’하고 깨닫게 됐어요.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그때 가서 매듭 지어진 거겠죠. 그러고 나서 갑자기 음악적으로 일이 풀린다거나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의 문제가 매듭을 지었던 게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작곡을 시작하신 거네요. 작곡가 진은숙 선생님을 사사하셨는데, 진은숙 선생님께서 올해 레오니 소닝 음악상도 수상하셨잖아요.

대단하시죠. 점점 더 대단해지시는 것 같아요. 워낙 엄격하세요. 근데 그게 학생들에게만 그러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엄격하시고요. 저하고 추구하는 음악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선생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존경하는 분이죠. 음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태도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고, 신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자세,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태도를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요.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요.

지금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봄 학기까지는 시러큐스 대학에서 가르쳤고, 이제 가을 학기 부터는 샌디에이고 주립 대학으로 옮기게 되었고요. 대학 때 종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곁다리로 재즈를 많이 배웠는데, 라틴 재즈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멕시코에 갈 계획으로 스페인어도 배웠었고요. 이제 곧 샌디에이고를 가면 그곳이 멕시코 국경이니까, 좀 기대를 하고 있어요.

세계 최고 악단과 연주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인 작곡가. 정말 음악으로 ‘입신양명’하고 계시잖아요. 음악가로서 선생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에 있나요?

클래식의 저변 확대는 지금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것 중 하나죠. 거기서 제 역할을 다하고 싶어요. 다양한 방법이 있겠죠. 저는 작곡가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새로우면서도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작곡을 하는 거예요. 한국인, 미국인, 유럽인, 아니면 클래식 마니아, 대중, 누가 들어도 거부감 없고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거죠. 위대한 생상스, 차이콥스키, 드보르작의 작품이 몸에 밴 연주자들이 보았을 때도 괜찮은, 세계 음악 시장에 내놓을 만한 음악을요. 좋은 음악이라는 건 결국 통한다고 생각하고 믿어요. 그런 믿음 안에서 지금처럼 작곡 활동을 할 수 있는 거고요. 세계 안에서 한국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담론화를 시키는 것, 그 화두를 던지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던지는 질문에 정답은 없겠죠. 이런 것들을 해내는 것이 다 제 역할이고, 책임이라고 믿고 있어요.

지금 이 시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코로나19’인데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백신이 빨리 개발이 되어서, 안전하게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었으면 좋겠고요. 모두가 서로를 응원하면 조금 더 힘내서, 포기하지 않고,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라이브 음악이 줄 수 있는 큰 기쁨은 온라인으로 아무리 해도 대체가 안 되는 것들이 있는 게 사실인데요. 이 시기를 잘 극복해내는 동안의 지금 이 시간을, 이 시기를 극복한 이후의 시간을 위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곡 쓰는 이들은 곡을 쓰고, 연주를 하는 이들은 연주를 연습하고, 좀 더 힘내서 포기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해요. 글로벌 커뮤니티에 앞으로 음악이 이바지할 수 있는 길들을 우리는 분명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료|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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