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들었는데 또 듣고 싶어” 매번 새로운 감동, 피아니스트 임주희의 음악을 만나다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09.11 17:1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09.11 17:32

피아니스트 임주희|목프로덕션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처음 관객 앞에서 연주를 했던 7세부터, 그러니까 그의 <야마하 리틀 피아니스트 시리즈> 무대부터 그를 눈여겨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이자 현대 클래식계의 ‘큰 손’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처럼요.

게르기예프는 이 7세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을 보고 그를 즉시 초청해 오디션을 제안했습니다. 실제로 만나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은 게르기예프가 유럽에서의 데뷔를 앞두고 있던 임주희 피아니스트를 러시아의 백야 페스티벌에서 데뷔시킨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게르기예프는 지난 2012년에 런던 심포니와 내한했을 때도 당시 12세였던 임주희 피아니스트를 앙코르 연주의 깜짝 협연자로 초청했을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내왔습니다. 뉴스로도 전해진 이날의 이벤트는 많은 이들이 임주희 피아니스트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SBS 나이트라인] 거장의 협연자는 ‘한국인 소녀’…어떤 인연 |Youtube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음악성과 스타성을 일찍이 알아본 이는 게르기예프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 마에스트로 정명훈 역시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13세일 때부터 그와 무려 17차례 넘게 협연해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라 불리는 피아니스트들과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했을 거장 지휘자들이, 계속해서 임주희 피아니스트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지난 7월 7일, 백야 페스티벌에서의 데뷔 이후 솔로, 실내악, 협연 무대를 오가며 학업과 연주 생활을 바쁘게 병행한 피아니스트 임주희의 첫 단독 리사이틀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렸습니다. 이날의 리사이틀에서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이 공연의 프로그램을 모두 직접 구성했습니다. 그의 폭넓은 음악세계를 예고한 이날의 연주에서 임주희 피아니스트와 그의 연주의 매력을 다시 한번 생생히 느낄 수 있었는데요.

피아니스트 임주희|목프로덕션

강렬함과 섬세함 사이를 자유롭게 줄타기 하는 연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 그는 마치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난 이런 연주도 할 수 있고, 저런 연주도 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음악을 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듯 마음껏 그의 음악을 펼쳐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이 끝난 후 관객석에서는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죠.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운 분들은 오는 8월 23일 오후 11시 25분, KBS <안디무지크>에서 그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기사 말미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오늘 8월 26일과 9월 3일에 협연 공연도 앞두고 있습니다. 방송으로 또는 공연으로 임주희 피아니스트를 만나게 될 분들을 위해 미리 보기 겸 다시 보기의 느낌으로, 지난 7월의 리사이틀에서 느꼈던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매력을 하나하나 꺼내보려 합니다.

“피아니스트 임주희, 그리고 그의 음악의 매력 포인트”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아주 빠른 속도의,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곡도, 아주 잔잔하고, 은은히 흘러가는 느낌의 곡도 자기만의 색깔로 너무나 잘 표현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특유의 아주 선 굵고, 맑고, ‘또랑또랑한’ 음색도 무척 아름답죠.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음악은 교과서적인 해석이나 연주가 아닙니다. 굉장히 자유롭고 망설임이 없죠. 다른 시기에 연주한 같은 곡이 매번 새롭고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는 그가 고난도의 곡을 소화할 수 있는 기술, 기교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표현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쇼팽 폴로네이즈 6번 ‘영웅’ |Youtube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쇼팽 녹턴 20번 |Youtube

표현력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그는 아주 작게 연주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커지거나, 크고 강하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사그라드는 구간의 맛을 정말 잘 살리는데요. 한 프레이즈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구간에서 음을 몰고 가는 능력도 탁월해서 누구나 연주에 몰입하게끔 만듭니다.

이런 ‘밀당’이 팽팽한 연주는 재미있습니다.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죠. 드라마에 비유해보면 더 이해가 쉽습니다. 드라마도 그저 잔잔하기만 하면 조금 지루하게 느낄 수 있고, 너무 긴장감만 넘치고 속도만 빠르면 피로하게 느껴지죠. 드라마도 반전이 있고, 여유와 긴장감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시청자가 끝까지 보고 싶은 것처럼, 연주도 그런 표현력이 살아있어야 재미있게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동을 느끼는 거죠. 여기에도 물론 타고난 재능과 함께 꾸준한 연습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래의 영상 인터뷰에서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연습 방법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정명훈·게르기예프가 극찬한 피아니스트 임주희, 연주부터 에튀드 연습 방법까지 대공개!|Youtube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연주 영상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에는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과 함께, 그가 올댓아트와의 지난 인터뷰에서 각 프로그램 곡에 대해 답한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첫 단독 리사이틀, 임주희가 연주하는 임주희”
◇ 카롤 베파, 6개의 에튀드 中 ‘임주희’
“갑자기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내가 12개의 에튀드를 썼는데 그중 10번이 너에게 헌정된 곡이다,
네가 꼭 이 곡을 연주해 줬으면 좋겠다’라고요.
사실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저에게 또 헌정해 주실 줄은요.
저는 이 곡을 받은 게 너무 감사해요.
저에게 헌정되었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에요.
이 곡에 작곡가가 생각한 제 모습이 담겨있는 거잖아요.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도 하고,
‘내가 이랬구나, 다른 사람, 작곡가가 보는 나는 이런 모습이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프랑스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카롤 베파와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 앙시 페스티벌에서 데니스 마추예프와 함께 공연하게 된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당시 카롤 베파가 데니스 마추예프에게 헌정했던 ‘Toccata for Piano’를 3주 만에 준비해 무대에서 연주했습니다. 공연 2일 전,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을 본 카롤 베파는 곡을 몇 마디 고치면서 임주희 피아니스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곡을 마추예프가 아니라 네게 헌정한 것으로 할게.”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Toccata for Piano’ |Youtube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카롤 베파가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 바로 이 공연의 시작을 열었던 에튀드 ‘임주희’입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직접 이 공연의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주변의 많은 이들은 이 곡을 어느 연주회의 앙코르 곡으로 연주하라고 권유했는데요. 그 순간보다는 더 의미 있는 장소와 시간에서 헌정곡을 초연하고 싶었던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이 공연의 첫 곡으로 이 곡을 연주하리라 마음먹은 것이죠.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일러스트레이팅 솜씨도 뛰어납니다. 사진은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직접 그린 카롤 베파.|목프로덕션

에튀드 ‘임주희’는 초연 후 아직 공개된 영상이 없습니다. 다만 카롤 베파가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는 걸 알고 나서 들으면, 빠르고 민첩하게 돌진하다 섬광이 ‘번쩍’하고 빛나는 듯한 구간에서는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리듬도 자유롭고,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도 쾌활합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이 곡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며, “언제 한번 기회가 된다면 카롤 베파의 에튀드 전곡을 연주해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베토벤의 소나타는 정말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발트슈타인은
가장 많이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담고 있는 소나타로 알려져 있어요.
영웅 교향곡의 피아노 버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제가 정명훈 선생님과 베토벤의 콘체르토만 17번 정도 했었는데요.
제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정명훈 선생님의 호흡과,
베토벤이 그려낸 오케스트라의 소리,
그런 것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나타가
발트슈타인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어요.
그래서 이 곡을 연습할 때 오케스트라 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워낙 그런 테마의 곡을 잘 소화하는 임주희 피아니스트이다 보니, 그리고 그런 곡들이 사람들의 기억에 잘 남는 법이다 보니,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아주 강하고 강렬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보면 깜짝 놀랄 연주가 바로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3악장의 연주입니다. 아래 영상의 12분 38초부터가 3악장인데요.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이 연주를 통해 그가 이런 곡도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15분 51초부터는 갑자기 전환되는 곡의 분위기에 어색하게 밀리지 않고, 바뀐 주제를 힘 있게 끌고 나갑니다. 3악장의 이야기를 먼저 했지만 곡이 처음 시작하는 1악장의 서두에서는 임주희 피아니스트 특유의 맑은 음색이 특히 돋보입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Youtube

이 곡은 베토벤이 자신의 후원자 중 한 명이었던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크게 전기, 중기, 후기 작품으로 나뉘는데요. 널리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26번 ‘고별’, 그리고 이 21번 ‘발트슈타인’이 베토벤의 중기 소나타 대표 명곡으로 꼽힙니다. 쇼팽은 페달을 애용한 작곡가이지만 베토벤은 그렇지 않았는데요. 그가 피아노 소나타에서 페달을 다양하게 사용한 첫 곡이 바로 이 발트슈타인 소나타입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가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굉장히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한 음악가였는데요. 아주 현란한 기교와 풍부한 화성을 피아노 소나타에 담는 것은 이 당시의 유행이 아니었지만, 베토벤은 이 곡을 통해 ‘화려한 피아노 소나타’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발트슈타인 소나타에 대해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담겨있다”고 했는데요. 여기에 “이 곡을 듣기 전에 베토벤의 교향곡을 많이 듣는 것도 좋다”, “그러면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감상할 때) 중간중간의 오케스트라 악기 소리를 찾아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아래 영상을 통해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감상한 후,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다시 한번 감상해볼까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가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지휘는 또 한 명의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입니다.|Youtube

◇ 쇼팽 발라드 1번
“쇼팽의 곡을 연주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건 ‘루바토’에요.
루바토라고 해서 그냥 연주자 마음대로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른손은 선율을 노래해나가면서도,
왼손은 언제나 마음속에 박자를 가지고 그걸 생각하면서 연주해야 하죠.”

‘루바토’란 쉽게 말해 연주자가 자신의 해석에 따라 박자를 자유롭게 조절해가며 연주하라는 연주 지시입니다. 쇼팽은 곡을 쓸 때 루바토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쇼팽의 같은 곡을 연주한 서로 다른 연주자의 연주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루바토는 “여기 루바토야!”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처럼 갑자기 늘어지지도 갑자기 성급해지지도 않습니다. 곡 전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죠. 듣는 사람 역시 어떤 규격에 딱 맞는, 박자를 맞추는 기계인 메트로놈을 켜놓고 ‘똑, 딱, 똑, 딱’에 맞춰 연주하는 음악이 아니라 연주자의 손이 건반 위를 날듯 자유롭게 연주하는 음악을 듣게 됩니다. 화음을 펼쳐 연주하는 것을 ‘아르페지오’라 하는데, 아르페지오 연주를 하면서 마지막 음을 ‘또랑’ 쳐내는 순간의 소리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워낙 유명한 곡입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애드리언 브로디가 연주한 곡으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수많은 ‘클덕’들의 플레이리스트 1번이기도 하고, ‘클알못’들이 클래식에 ‘입덕’하는 계기가 되는 곡이기도 하죠. 그만큼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의 명반도 많습니다. 이 곡 역시 쇼팽이 슈톡하우젠 남작에게 헌정한 곡인데요. 조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쇼팽이 당시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에서 일어난 반러시아 시위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느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에는 애국심, 열정, 그리고 쇼팽이 폴란드의 애국 시인이었던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시 ‘콘라트 발렌로트’에서 받은 영감이 담겨 있죠.

영화 <피아니스트> 중 유태인이자 피아니스트인 주인공이 독일인 장교 앞에서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장면.|Youtube

당시 문학과 성악곡의 영역에서만 사용되던 ‘발라드’란 자유로운 형식의, 이야기가 있는 서사시를 뜻합니다. 쇼팽이 처음으로 발라드를 피아노 음악의 영역으로 끌고 왔고요. 그래서 이 곡 역시 기본적인 피아노 소나타의 구성은 갖추고 있지만 멜로디가 고정적으로 반복되지 않고, 11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서도 다소 슬픈 느낌의 멜로디와 화려하고 격정적인 멜로디가 번갈아가며 자유롭게 변주됩니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쇼팽 특유의 화려한 피아니즘, 그리고 중반부 이후 절정으로 치닫는 감정(예를 들면 아래 영상의 4분 29초, 6분 20초, 7분 48초부터 시작되는 구간들)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곡인데요. 이날 공연에서 임주희 피아니스트 역시 이 감정을 표현할 때 정말, 에너지의 폭발(!)을 보여주었습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이 없어 아쉽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쇼팽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연주 영상을 아래에 덧붙입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Youtube

◇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
“소나타 3번은 쇼팽의 곡 중에서
가장 방대한 소리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 모든 것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싶었죠.”

쇼팽의 소나타 3번 역시 발라드 1번과 마찬가지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그리고 피아니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인 곡입니다. 낭만주의 작곡가였던 쇼팽이 고전 양식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자유로운 작곡 방식을 더해 만들어낸 걸작이죠. 난이도도 상당합니다. 쇼팽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대작으로 꼽히죠.

흔히 피아노를 ‘남성 악기’라고들 합니다. “여성 피아니스트는 생물학적으로 남성 피아니스트에 비해 타고난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이들이 강하고 중장한 느낌의 곡이나 힘이 넘치는 연주를 남성 피아니스트만큼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이 아주 고지식한 선입견이라는 것을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쇼팽 소나타 3번의 4악장 연주로 보여줍니다.

임주희 피아니스트|올댓아트 김희주

쇼팽 소나타 3번의 4악장은 특히나 엄청난 힘과 기교를 필요로 하는데요.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여성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보통 부드럽지(또는 섬세하지 또는 유약하지)”라 말하는 이들이 꼭 보았으면 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연주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타건으로 또렷하고 선명한 소리를 낼 때는 아주 섬세했죠. 그는 손가락이 바삐 움직이면서 건반을 하나씩 누르며 겨우겨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실로폰 위에 채를 굴리듯 자연스럽게 연주했습니다.

이 곡도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이 없어 아쉽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임주희 피아니스트가 정말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밝혔던)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 영상을 가져왔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4악장은 20분 57초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영상의 첫 시작부터만 들어도 이 곡이 아주 심상치 않은(?) 곡임을 알 수 있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쇼팽 소나타 3번|Youtube

피아니스트 임주희|목프로덕션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으면 그의 연주가 꼭 ‘무지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보통 7개의 색으로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무지개의 색은 100가지가 넘습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색의 스펙트럼은 훨씬 넓죠. 우리는 무지개를 반원 모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머지 절반이 지면에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큼의 무지개가 숨겨져 있는 것이죠.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연주도 그렇습니다. 그는 강렬하다, 섬세하다 등의 표현을 편의상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런 몇 개의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색채를 가진 연주자입니다. 솔로, 실내악, 협연까지.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것 이상으로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그 안에 숨어있죠.

단언컨대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앞으로 점점 더 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겁니다. 그래서 더욱 지금 그의 연주가 소중하고,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지죠.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곧 미국 줄리아드 음대로의 유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전에 한국에서의 협연 무대가 두 번 있고요. 8월 26일의 광주시립교향악단, 9월 3일의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과의 공연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장 가까운 시일에 그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건 8월 23일 밤 11시 25분, KBS <안디무지크>를 통해서입니다. 여러분도 곧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빛낼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지금의 모습, 지금의 연주를 하루빨리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료|목프로덕션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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