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必주행’ 하면 좋을 영화 ‘소리꾼’ TMI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09.28 16:51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09.28 16:54

※ 이 글에는 영화 <소리꾼>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소리꾼’ 스틸 컷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영조 10년. 조정은 어수선했고 민심은 흉흉했다. 가난했지만 평화로웠던 소리꾼 학규(이봉근 분)의 가정에도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에 아내 간난(이유리 분)과 딸 청(김하연 양)이 납치된 것.

구사일생으로 청은 학규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충격으로 시력을 잃었다. 학규와 그의 고수 대봉(박철민 분)은 간난을 찾기 위해 전국을 떠돈다. 여기서 잠깐, 익숙한 이름이다. 심학규. 맞다. ‘심청전’에 등장하는 아비의 이름이다. 밥벌이를 위해 소리를 내어야 했던 학규는 눈먼 딸을 보며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더해진 소리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학규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가락은 서글픈 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분노로 가득한 시대를 시원하게 긁었다. 이들과의 인연으로, 하나 둘 뭉친 이들 광대 패의 흥은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영화 ‘소리꾼’ 예고편 | Youtube

학규의 무리처럼 ‘소리’와 ‘이야기’만으로 화제를 남긴 영화 <소리꾼>의 줄거리다. 지난 7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개봉한 이 영화는 평점 8.66(네이버 영화 기준), 8만 2천명의 관객몰이를 했다. 한 누리꾼은 “내가 판소리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릴 줄이야”라고 리뷰를 남겼다. 어쩌면 이 한 문장이 영화의 모든 것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영화는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토록 잔잔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휴대전화만 열면 쏟아지는 자극적인 콘텐츠 덕분에(!) 권선징악을 골자로 하는 이 심플한 줄거리가 반갑게 다가왔다. 마치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전통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저마다 답답한 시간을 위로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혹자는 그럴 때 고전을 찾는다고 했다. 정석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생각이 가벼워진다고 했다. 극장 나들이가 쉽지 않은 요즘, ‘必주행’하면 좋을 영화로 <소리꾼>을 꼽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기왕 보는 영화, 조금 더 재미있게 파고들 수 있도록 <소리꾼>의 TMI를 정리해 봤다.

■ <소리꾼>은 <서편제>후속이다?

영화 ‘소리꾼’ 스틸 컷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귀향>으로 주목받은 조정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판소리 영화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 치는 사람)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장르다.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표현력이 풍부한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아니리(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너름새(몸짓) 등으로 구연된다. 판소리의 창자는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터득하고 복잡한 내용을 모두 암기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친다. 이야기와 소리가 함께 하는 구성 때문에 <소리꾼>은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라고 소개됐다.

영화에서 ‘소리’는 마치 공기같다. 학규의 소리 외에도 다양한 소리들이 등장하는데 이 곡들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이야기를 거든다. 소리가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조 감독의 영향이 컸다. 영화학을 전공한 그는 고 성우향 명창에게서 고법(북 치는 방법)을 배워 고수로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는 판소리 전문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첫 영화인 <두레소리>나 자신의 이름을 알린 <귀향>의 음악이 대부분 국악으로 채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서편제>라는 영화를 1993년도에 제가 봤는데 굉장히 좀 방황하던 시절이었어요. 제가 영화를 전공했지만 실은 굉장히 자퇴를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서편제>라는 영화를 통해서 저의 인생이 바뀌면서 우리 영화도 해야겠고 우리 전통소리도 배워야겠다는 그런 결심을 가지게 됐죠.”
-영화 <소리꾼> 기자간담회 중

스스로를 ‘서편제키즈’라 지칭한 조 감독은 대학 시절 <서편제 2> 시나리오를 써 선보이고 싶었을 만큼 임권택 감독을 존경해 왔다고 한다. 그 마음으로 쓴 <회심곡>이 이번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극 말미 롱 테이크로 잡히는 신 역시 임 감독에 대한 오마주라고.

■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조 감독은 준비 단계부터 대한민국 정통 음악의 영화적 구현을 위해 전문 국악인을 주인공으로 낙점하겠노라 결심했다. 주인공을 넘어 소리꾼으로 활약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기와 소리, 두 마리 토끼가 되어줄 배우는 흔치 않았다.

오디션 결과 선택받은 이는 배우 이봉근이었다. KBS-2TV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판소리 명창의 면모를 드러내며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지만 사실상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연극 무대에 오른 것이 전부인 ‘신인’이었다.

‘불후의명곡 2’에서 이봉근이 부른 ‘사랑의 굴레’ | Youtube

하지만 “소리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조 감독의 말에 방점을 찍고 보면 이봉근은 최선의 적임자였다. 그는 26년 경력의 베테랑 소리꾼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들 미심쩍어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연기하는 눈빛에서 학규와 비슷한 눈빛을 발견했다더라. 그것 때문에 발탁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또 그는 “계급이 천민인데 너무 잘 먹은 것 같지 않냐”는 이야기에 체중을 10kg이나 감량했을 정도로 역할에 몰두했다. 참고로 그가 이번 영화에서 연기한 가장 ‘긴 소리’ 신은 심봉사 눈을 뜨는 대목으로, 무려 8분이었다고.

영화 ‘소리꾼’ 중 딸 청이로 등장하는 김하연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영화 ‘소리꾼’ 중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김철민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영화 ‘소리꾼’으로 사극에 도전한 김동완|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조연들의 활약 또한 두드러진 작품이다. 청이 역할의 아역 김하연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이어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로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또 ‘국민 감초’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배우 박철민 역시 이 영화에서 안팎으로 ‘익숙한 얼굴’로 제 몫을 한다. 특유의 언어 유희 개그는 조선시대에도 변함이 없다. ‘뺑덕’의 캐릭터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이외에도 행색은 초라하나 속을 알 수 없는 몰락 양반(김동완 분)과 땡중 (임성철 분) 등이 간난을 찾는 여정에 동행하게 되는데, 극 중 ‘반전’을 담당하는 김동완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뜻밖의 관전 포인트다. 사극에 대한 갈증으로 이 영화에 함께 했다는 김동완은 15분 정도의 적은 출연 분량에도 이 캐릭터를 자처했다. 알고보면 극 중 등장하는 ‘얼쑤’ 등의 추임새를 위해 전문가를 찾아 소리를 배웠을 정도로, 숨.겨.왔.던 전통 음악 ‘찐’ 팬이라고.

■ 감독은 영화를 위해 팔도를 유랑했다?

영화 ‘소리꾼’ 스틸 컷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정통 우리 소리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의 소리들이 낯설지 않도록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했다.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리더인 박승원 감독을 섭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감독은 한자가 주를 이루는 내용을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으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장단을 사용하여 대중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작업했다. 또 촬영 현장에서 녹음된 배우들의 노래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가이드 음악과 키를 맞추는 작업을 현장에서 진행했다. 통상적으로 후반 작업으로만 진행되던 기존의 음악 작업과는 다른 지점이다.

영화 ‘소리꾼’ 스틸 컷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모든 것이 순탄치는 않았다. 시나리오가 갖고 있던 스케일을 제작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다 보니 제약이 많았다. 이 부족함을 채운 사람은 최용진 촬영 감독이다. 그는 색감과 채도, 화면 질감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샷의 길이와 화면 사이즈의 차별화를 통해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최 감독은 조선 팔도를 유랑하는 소리꾼의 이야기를 담아낸 로드무비를 형식이 돋보일 수 있도록 대한민국 곳곳을 돌며 절경을 찾아냈다. 그 결과 서민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해지는 저녁노을’까지 담았다고. 민초들의 삶을 다룬 영화인만큼 시대적 구현을 위한 세심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영화 ‘소리꾼’ 스틸 컷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한편 간난을 납치한 이들은 일부 관료와 결탁해 힘없는 천민 부녀자들을 노비로 만드는 무리인 ‘자매 조직’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탐관오리 김태효(한인수 분)와 김준(김민준 분)이 있었다. 간난은 자매 조직에 끌려다니며 때로는 양반집 종으로, 때로는 역적으로 몰리게 된다.

학규 역시 자신들의 소리를 탐탁지 않던 김준에 의해 선동죄로 잡혀왔고 마침내 부부는 옥에서 재회한다. 절체절명 위기에 선 학규 일행은 김태효의 만찬 연회 무대에 선다.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학규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울리면 풀어주겠다”는 제안에 ‘효녀 심청’의 결말을 노래한다. 조 감독은 여기서 또 다른 판소리인 춘향가의 한 대목을 교차시킨다.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로 말이다.

끝으로 에디터 사심으로 꼽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학규가 부르는 ‘심청전’의 일부를 액자 구성으로 연출한 것으로, 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을 뮤지컬 무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표현했다. 확인은 영상으로!

영화 ‘소리꾼’ 인당수 뮤직비디오 | Youtube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 사랑한 영화감독 (한겨례, 2020.08.27)

[황승경의 Into the Arte ⑩] 판소리 영화 ‘소리꾼’(신동아, 2020.07.25)

김동완 “‘소리꾼’, 어른들의 동화…연기 갈증 많다” (뉴시스, 2020.06.25)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별별예술 기사 더보기

이런 기사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