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들이 몰려온다! 명곡으로 예습하는 연말 뮤지컬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11.26 13:58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11.26 14:01

올 초부터 코로나19로 침체되어 있던 공연계에 오래간만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는 11월 7일부터 거리두기 1단계에선 공연장의 ‘좌석 띄어 앉기’가 해제된다는 것인데요. 지난 8월부터 좌석의 50%를 비워두며 적자를 감수하고 공연을 올렸던 제작사들은 연말 성수기를 맞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반 토막 난 좌석을 두고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하던 관객들에게도 희소식이죠. 공연계는 지금까지처럼 체온 체크와 문진표 작성, 마스크 필수 착용 등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안전한 관람 환경을 조성하려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한층 완화된 분위기에서 만날 수 있는 연말 대작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은 지난 9월 한국을 찾은 <캣츠> 내한공연이 12월까지 서울 공연을 이어갑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최첨단 영상 효과가 돋보이는 <고스트>도 10월 개막해 내년까지 공연을 계속합니다. 11월과 12월엔 <노트르담 드 파리> <그날들> <몬테크리스토> <맨오브라만차> 등 오랜 세월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들이 돌아옵니다.

그중에서 세 작품, <맨오브라만차> <노트르담 드 파리> <캣츠>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오랜 세월 한국에서 사랑받아온 작품이란 점이 있고요. 유럽 각국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도 있습니다. <맨오브라만차>는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캣츠>는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를 바탕으로 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작품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까지 사랑받은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는 점입니다. <맨오브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과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의 시대’, 그리고 <캣츠>의 ‘메모리’는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명곡이죠. 오늘은 알고 가면 감동이 배가 될 이 세 작품의 명곡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 맨오브라만차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격한 늙은 기사 이야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읽지 않은 사람도 다 알 만큼 유명한 장면입니다. 1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소설에서 이 장면이 가장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돈키호테의 무모함을 황당할 만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돈키호테의 본명은 ‘알론조 키하나’입니다. 라만차 지역에 사는 노인인데,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다 ‘과몰입’해버린 나머지 자신이 고결한 기사 돈키호테라고 믿게 됐죠. 소설에선 풍차 장면처럼 황당한 그의 모험담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 때문에 돈키호테는 오랫동안 ‘무데뽀’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했는데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2018년 공연 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돈키호테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저 착각 속에 사는 무모한 노인이 아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으로 이상을 지켜나가는 인물로 그린 것이죠. 극중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미쳤다고 비웃고, 누군가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에게 분노합니다. 그를 따르는 시종 산초마저도 때는 돈키호테의 무모함을 버거워 하죠. 그렇지만 돈키호테는 그 누구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이 세운 정의와 이상만을 좇아갑니다. <맨오브라만차>는 지하 감옥에 갇힌 작가 세르반테스가 죄수들에게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되는데요. 돈키호테는 부패한 세상을 바꾸려다 감옥에 갇힌 세르반테스의 분신이자 이상향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대표 넘버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은 이런 돈키호테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따온 가사가 고결한 이상을 추구하는 돈키호테의 비장함을 잘 보여주죠. 다소 잔잔하게 시작해 점진적으로 웅장해지는 노래가 듣는 사람의 가슴까지 벅차게 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남자 뮤지컬 배우들이 꼭 한번 불러보는 곡이기도 한데요. 2012, 2018년 공연에 이어 이번 2020년 공연에서도 돈키호테를 연기하게 된 홍광호의 버전으로 한 번 감상해 보시죠.

2018 <맨오브라만차>의 홍광호가 부른 ‘The Impossible Dream’|유튜브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많은 뮤지컬의 대표곡들이 그렇듯, ‘이룰 수 없는 꿈’에도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됩니다. 처음엔 돈키호테의 솔로 넘버로,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선 돈키호테의 이야기에 감명 받은 지하 감옥 죄수들이 세르반테스를 향해 부르는 합창으로 등장하죠. 세르반테스의 펜 끝에서 시작해 지하 감옥 죄수들을 감동시킨 이 이야기는 더 나아가 공연장의 관객들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이룰 수 없는 꿈’은 무엇이었냐고요.

2020.12.18 ~ 2021.03.01
서울 샤롯데씨어터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 윤공주, 김지현, 최수진, 이훈진, 정원영, 서영주, 김대종, 박인배, 조성지, 김호, 정단영, 김현숙 등 출연

■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우리나라에선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1482년 파리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단연 꼽추 ‘콰지모도’와 그가 절절하게 사랑하는 집시 소녀 ‘에스메랄다’입니다. 그런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는 이들이 부른 게 아닙니다. ‘그랭구아르’가 부른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죠.

그렇다면 그랭구아르는 누구일까요? 시인인 그랭구아르는 어린 시절 부주교 프롤로에게 학문을 배웠습니다. 어느 날 기적의 궁전에 발을 잘못 들였다가 집시들에게 교수형 당할 뻔했는데, 착한 에스메랄다가 그를 남편으로 삼고 구해줍니다. 주요인물인 에스메랄다의 남편이긴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이후에 비중 있는 역할을 하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많은 각색물에선 그랭구아르를 아예 삭제해 버리기도 하죠.

그런데 뮤지컬에선 그랭구아르에게 해설자라는 큰 역할을 부여하고, 오프닝 넘버까지 맡깁니다. 프롤로, 에스메랄다, 콰지모도 등 주요인물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시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이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논평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 그가 부르는 넘버들은 그랭구아르 자신이 아닌 시대상이나 다른 인물들에 대한 곡이 대부분입니다.

그중에서도 ‘대성당의 시대’는 가장 유명한 곡이자 작품의 막을 여는 넘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성당’은 1차적으론 작품의 배경이 되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말하지만, 종교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성당의 시대’는 종교가 세상의 제도와 가치관을 지배하던 중세 시대를 뜻하는 것이죠. 그러나 곡의 말미에 그랭구아르는 ‘대성당의 시대가 무너지네’라고 노래합니다. 종교를 중심으로 한 중세가 막을 내리고,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근세가 찾아온다는 의미인데요.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종교 지배자 프롤로의 위선이 그동안 억압됐던 ‘타자’인 콰지모도와 집시들에 의해 폭로되고 무너지는 작품의 내용을 이 한 문장으로 축약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상의 변화는 2막 오프닝 넘버인 ‘피렌체’에서 다시 한번 읽어낼 수 있습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중 ‘대성당의 시대’ 1분 하이라이트|유튜브

‘대성당의 시대’는 프랑스 오리지널 그랭구아르였던 브루노 펠티에의 버전이 가장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랭구아르를 연기했던 출중한 배우들의 버전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박은태, 마이클 리, 최재림, 전동석 등의 배우들이 그랭구아르를 거쳐갔죠. 작사가 박창학이 번역한 한국어 가사는 역대 뮤지컬 한국어 번안 중 최고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데요. 가수 아이유는 영어 가사로 이 곡을 커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2020년 공연은 내한 공연으로, 원어인 프랑스어로 ‘대성당의 시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0.11.10 ~ 2021.01.17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 캣츠

<캣츠>는 몰라도 ‘메모리’는 안다고 할 만큼, ‘메모리(Memory)’는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쓴 곡 중에서도 뮤지컬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입니다. 어찌나 감동적인지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고양이들도 감동시키죠. 무리에서 배척당하던 떠돌이 고양이 그리자벨라는 ‘메모리’ 한 곡으로 모두의 마음을 얻고, 심지어는 다음 생을 살 기회까지 부여받습니다.

뮤지컬 디바라면 한 번쯤 불러보는 이 노래. 지금은 ‘메모리’와 그리자벨라 없는 <캣츠>는 상상도 가지 않지만, 사실 그리자벨라는 원작 시에 없던 캐릭터였습니다. 초고에는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이 보기엔 너무 어두운 내용이라 판단되어 발표되지 않았죠. 그런데 T.S. 엘리엇의 아내가 이 미발표 원고를 뮤지컬 <캣츠> 창작진에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이 시를 바탕으로 연출가 트레버 넌과 작사가 팀 라이스가 각각 가사를 썼죠. 팀 라이스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등을 함께 만든 천재 작사가였지만, 그가 쓴 ‘메모리’ 가사는 지나치게 암울했습니다. 결국 최종 채택된 것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이 느껴지는 트레버 넌의 버전이었습니다.

그리자벨라는 캐스팅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원래 유명 영화배우 주디 덴치가 그리자벨라를 연기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개막을 앞두고 부상으로 하차하게 됐기 때문이죠. 결국 그리자벨라 역은 일레인 페이지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역할로 ‘인생 배역’을 갱신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메모리’가 더 감동적으로 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뮤지컬 <캣츠> 공연 사진|에스앤코

‘메모리’ 역시 명곡답게 극중에서 여러 번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1막 마지막의 짧은 버전으로 등장합니다. 고양이들의 무도회가 한바탕 벌어지고 난 뒤, 거기에 끼지 못한 그리자벨라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쓸쓸하게 부르죠. 2막 첫 곡인 ‘The Moment of Happiness’ 중간엔 아기 고양이 제마이마가 ‘메모리’의 한 소절을 부릅니다. 내한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만큼은 한국어 가사로 소화하니,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 보세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긴 버전의 ‘메모리’는 2막 끝부분에 나옵니다. 지금까지 감질나게만 들려주던 이 곡을 끝내 감정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까지 감상하는 그 기분은 <캣츠>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입니다.

이번 40주년 내한 공연에서는 웨스트엔드에서 활약해온 뮤지컬 배우 조아나 암필이 그리자벨라를 연기합니다. 그가 열창한 ‘메모리’ 영상으로 <캣츠>의 감동을 살짝 확인해 보세요.

뮤지컬 <캣츠>의 조아나 암필이 부른 ‘Memory’ 뮤직비디오|유튜브

2020.09.09 ~ 2020.12.06
서울 샤롯데씨어터
조아나 암필, 댄 패트리지, 브래드 리틀 등 출연

사진 | 오디컴퍼니,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에스앤코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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