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클래식 음악, 정말 아름다워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클래식’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12.16 16:00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12.16 16:03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전국 투어 리사이틀, 드디어 열렸다

피아니스트 조성진|크레디아

힘든 한 해였습니다. 지난 1월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조금 잠잠해질만하면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패턴이 반복되며 수많은 공연이 취소됐다가, 재개됐다가, 다시 취소되곤 했죠. 전에 없이 침체되어 있던 클래식계가 10월에는 모처럼 활기를 띠었습니다. 더디지만 확진자 수에 하락세가 있어 잠정 중단되거나 연기, 취소된 공연들이 다시 하나 둘 열렸기 때문인데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전국 투어 리사이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이번 전국 투어 리사이틀은 원래 7월에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5월에 발매한 새 음반 <방랑자 The Wanderer> 발매 기념이었죠. <방랑자>는 그가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 후 발매한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에 이은 4번째 음반이었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직접 선택한 수록곡을 실연으로 만날 수 있어 큰 기대를 모았는데요. 6월~7월 확진자 수가 급증해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전국 투어 리사이틀 전체가 취소되었다가 이번 10월과 11월에 재개된 겁니다. 이른바 ‘클덕(클래식 덕후의 줄임말)’들의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계정도 흥분과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새 음반 <방랑자 The Wanderer>|유니버설 뮤직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그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이었습니다. 지난 2015년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후, 지금의 그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우승 자체도 당연히 대단한 일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의 음악 자체에 있습니다. 공연과 음원은 이 음악을 많은 이들에게 공유하는 매개체이지요. 이번 전국 투어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다른 명연주자와의 듀오 공연도 아닌 지난 2018년 1월 첫 전국 리사이틀 이후 2년 9개월 만의 국내 단독 리사이틀입니다. 오롯이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음악만이 관객과 만나는 시간이었는데요. 과연 이 세계적인 연주자의 이번 공연은 어땠을까요?

가황 나훈아가 그랬습니다. “진정한 슈퍼스타는 까와 빠를 둘 다 미치게 만든다”고요.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그렇습니다. 이날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진정 까와 빠를 둘 다 미치게 만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물론 조성진 피아니스트 스스로도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듯, 그리고 이날 무대에 입·퇴장하는 그의 ‘뚝딱이는’ 걸음걸이나 머쓱한 미소를 보며 느낄 수 있듯 그는 ‘우주슈퍼대스타’를 의식하는 연주자는 아닙니다.) 아래에서는 에디터가 이번 공연을 통해 느낀 조성진 피아니스트 음악의 매력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번 전국 투어 리사이틀에 함께한 여러분이 느낀 점도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공연 Re:view - 다시 보기

성남아트센터와 경기아트센터 공연에서도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사용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그는 평소처럼 손수건으로 건반을 한 번 쓱 훑더니 곧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앙코르까지) 90분간, 경기아트센터에서는 (역시 앙코르까지) 100분간 몰아친 폭풍 같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슈만 ‘숲의 정경’

“(대부분이 ‘어린이 정경’을 좋아했는데) 나는 어렸을 때 ‘숲의 정경’을 더 좋아했다. 특히 마지막 곡 ‘이별’은 곡 전체가 장조(Major)인데도, 쳐본 곡 중에 슬프기로 Top 5 안에 드는 것 같다.”
- 조성진 피아니스트

1곡 ‘숲의 입구’의 도입부 첫 음부터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음색에 놀랐던 곡입니다. 영상으로만 보던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음색은 실제로 들으니 훨씬 맑고 영롱했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마치 여러 편의 시리즈 영화나 여러 점의 시리즈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인데요. 9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숲의 정경’의 각 곡 부제를 음악으로 그려내는 표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 곡 연주 후 느낌이 전혀 다른 다음 곡을 연주할 때 순식간에 감정이 바뀌어 몰입하는 모습도 신기했는데요. 유튜브나 네이버TV 같은 영상 공유 플랫폼에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남아있지 않아 (연주의 느낌은 달라 아쉽지만)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연주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Sviatoslav Richter - Schumann - Waldszenen (Forest Scenes), Op 82

■ 에디터 Pick ‘킬포’

1곡 ‘숲의 입구’ (0초~1분 59초)
역시 도입부입니다.

2곡 ‘잠복 중인 사냥꾼’ (2분~3분 8초)
도입부에 음이 빠르게 흐르다 ‘딴!’하고 잠시 멈추는 부분이 있는데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이 부분을 ‘낚아채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숲속 덤불 사이를 빠르게 왔다 갔다 하다 점프해 숨는 사냥꾼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2분 30초~3분 같은 구간에서는 속주와 순간적인 강약 조절 테크닉이 인상깊었습니다.

3곡 ‘고독한 꽃’ (3분 9초~5분 9초)
곡 전반의 섬세한 여린 음 표현!

4곡 ‘저주받은 장소’ (5분 10초~8분 27초)
(어떤 지시가 또 함께 붙어있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스타카토’는 보통 ‘짧게 끊어서 연주’하라는 뜻인데요. ‘저주받은 장소’ 악보에는 이 스타카토 지시가 있는 음표에 ‘이음줄’이 같이 표시되어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5분 41초~5분 50초처럼요. 이음줄은 ‘음을 이어서 연주하라’라는 뜻입니다. ‘끊어치면서 이어 쳐라’? 이게 무슨 ‘모던하면서 빈티지한’ 같은 말일까요? 그런데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그것을 실제 연주로 들려주었습니다. 들어보면 정말 묘하게, 묘하게 끊어치는 것 같은데 이어지는 느낌이었는데요. 이 곡은 화음이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귀에 딱 들어오지도 않고요. ‘불협화음’들이 이어지는 곡이어서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저주받은 장소’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나요?

5곡 ‘기분 좋은 풍경’ (8분 28초~9분 37초)
곡 자체가 ‘킬포’입니다. ‘숲의 정경’을 이미 알고 있다면 5곡 ‘기분 좋은 풍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물결처럼 흘러가는 선율이 아주 아름답거든요. 5곡은 페달을 쭉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저분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페달은 예쁜 여운을 만들었고 소리는 맑았습니다.

6곡 ‘숙소에서’ (9분 38초~11분 59초)
이 곡에서는 같은 음을 빠르게 두 번 타건 하는 구간이 있는데요. 예를 들면 9분 43초~9분 45초의 그 ‘따단’ 같은 부분입니다. 자칫 ‘땡’하게 들릴 수 있어 곡이 뚝뚝 끊기는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 이 부분은 말 그대로 한 번 더 귀를 기울이게 하는 ‘포인트’였습니다.

7곡 ‘예언의 새’ (12분~14분 43초)
5곡처럼 마냥 아름다운 느낌의 곡은 아닙니다. 신비로운 느낌의 이 곡은 언뜻 동화 원작 판타지 영화의 ‘BGM’ 같은 느낌도 듭니다. ‘킬포’는 12분~12분 3초 구간처럼 마치 진짜 새소리 같은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모든 구간입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는 특히 끝음 처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정말 음이 흩어지며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연주를 하다가 ‘마스크’에서 정반대의 연주를 보여주었으니!)

8곡 ‘사냥의 노래’ (14분 44초~16분 54초)
‘예언의 새’가 끝나자마자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바로 앞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힘이 넘치는 행진곡 풍의 음악이 흐르는데요. 이 곡은 2곡보다 강약 조절의 간극이 커서 더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면 14분 58초~59초처럼 아주 크고 강하게 연주하다가 순간 사그라드는 구간도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이 영상과 확연히 다르게, 더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이 곡의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거리며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객석에서도 같이 몸이 들썩거린 관객이 있지 않았을까요?

시마노프스키 ‘마스크’

“시마노프스키가 폴란드의 드뷔시라고 불렸던 만큼 이 곡은 음색이 다채롭지만, 드뷔시보다 드라마틱 하고, 귀에 확 꽂혀서 못 잊을 것 같은 멜로디는 없지만, 듣다 보면 계속 생각이 나요.”
- 조성진 피아니스트

3곡으로 이루어진 시마노프스키의 ‘마스크’는 실연으로 접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70억 인구의 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에도 연주 영상이 몇 개 없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처음 리사이틀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도 ‘마스크’를 선택한 이유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리사이틀을 기다려왔던 팬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곡도 ‘마스크’가 아닐까 싶은데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속뜻을 알 수는 없겠습니다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는 이 곡이 있었기에 이번 리사이틀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곡 하나로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팬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왕자님’ 이미지를 단숨에 벗어던졌거든요.

경기아트센터에서 ‘마스크’ 연주를 감상한 한 관객은 “부산 공연에서도 ‘마스크’ 연주를 들었는데 그때보다 더 미친(?) 것 같았다”라며 “갈수록 더 미친(?) 것 같은 연주다. 마스크 연주가 가장 좋았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마스크 연주에 관객이 완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연주로 표현한 긴장감과 광기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에디터 역시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실황 연주로 다시 듣고 싶은 곡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마스크’입니다. (아니, 방랑자 판타지입니다. ...아니,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입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마스크’ 연주를 감상한 한 관객은 “부산 공연에서도 ‘마스크’ 연주를 들었는데 그때보다 더 미친(?) 것 같았다”라며 “갈수록 더 미친(?) 것 같은 연주다. 마스크 연주가 가장 좋았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마스크 연주에 관객이 완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연주로 표현한 긴장감과 광기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에디터 역시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실황 연주로 다시 듣고 싶은 곡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마스크’입니다. (아니, 방랑자 판타지입니다. ...아니,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입니다.)

Piotr Anderszewski: Karol Szymanowski - Masques, Op. 34

■ 에디터 Pick ‘킬포’

1곡 ‘셰헤라자드’ (12초~11분 20초)
조성진 피아니스트야 당연히 집중력이 엄청나지만 귀에 꽂히는 주제 선율이 없는 곡에 관객이 집중하기란 쉽지 않은데요.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연주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관객까지 모든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킬포’를 꼽아보라면 5분 23초부터 한 프레이즈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8분 30초부터 또 한 프레이즈가 끝날 때까지입니다. 음악에 몰입한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연주 도중 건반을 누르는 반동으로 의자에서 몸을 살짝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2곡 ‘광대 탄트리스’ (11분 22초~17분 10초)
도입부에 왼손으로 건반을 연타하는 구간이 있는데요. 손에 모터를 단 마냥 아주 빠르면서도 강한 소리가 났습니다. 또 다른 ‘킬포’는 14분 15초~16분 9초입니다. 1곡도 그렇지만 2곡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 같은 작품에 쓰여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15분 전 ‘숲의 정경’을 연주하던 모습은 없었습니다. 관객은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완전히 빨려 들어간데 반해 조성진 피아니스트에게는 이 시간과 공간에 오직 피아노와 자기 자신만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달까요?

3곡 ‘돈 후안의 세레나데’ (17분 12초~23분 43초)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공연 사진을 보면 곧은 자세를 하고 있는데, 사실 ‘돈 후안의 세레나데’ 뿐만 아니라 ‘마스크’ 전곡을 연주할 때 그의 자세는 한 60~70% 정도 구간에서 거의 건반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정도였습니다. 유튜브로 ‘마스크’ 연주 영상을 먼저 찾아본 이들은 ‘마스크’ 연주가 끝난 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거 내가 유튜브로 본 마스크가 아닌데?”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이 곡의 가장 어려운 점은 테크닉이 어렵다는 것이지만... ‘테크닉이 어려운 걸 감추는 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이 곡이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조성진 피아니스트

소위 ‘근육맨’ 정도는 되어야 나올 것 같은, 도대체 어디서 저 힘이 나오는 건지 궁금한 괴력의 연주와 동시에 손가락에 뼈가 없고 물만 차 있나 싶을 정도로 물 흐르듯 유려한 연주까지,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이 한 곡으로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질주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곡을 쓴 슈베르트조차도 “너무 어려워서 칠 수 없다”라고 했던 이 곡을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2018년 말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는데요.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편해진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공연에서의 연주는 아래 영상의 연주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습니다.

눈빛으로 건반을 뚫을 기세였던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마스크’와 정반대 느낌인 이 곡에서도 ‘마스크’를 연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젖히거나 건반에 파고 들어갈 듯 몸을 움직이며 음악에 몰입한 모습이었는데요. 흡사 접신(?)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은 소나타 형식이지만 다른 소나타 곡처럼 악장과 악장 사이 잠깐의 쉼이 없습니다. 다른 곡들도 그렇지만 방랑자 환상곡의 ‘킬포’를 고르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아래는 특별히 ‘킬포’ 라기 보다, 유튜브에 많은 “바쁜 사람은 ㅇㅇ초 부터”라고 생각해 주세요.

Seong-jin Cho - Schubert : Wanderer Fantasy in C major

■ 에디터 Pick ‘킬포’

1악장 (6초~6분 10초)
5초~15초 구간의 주제가 36초~47초에 한 번 더 반복될 때, 처음보다 더 작게 연주되는데요. 40초의 화음에서 가장 위의 ‘레’가 사라지는 부분은 그 찰나의 순간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2악장 (6분 11초~12분 57초)
10분 48초, 16분 58초를 보면 일명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립니다. 옥구슬이라기보다는 아주 투명한 유리구슬이 더 적절한 비유일지도요.

3악장 (12분 58초~18분 1초)
13분 55초에서도 조성진 피아니스트 특유의 청아한 음색을 느껴보세요! 바로 이어지는 구간의 테크닉까지 완벽합니다!

4악장 (18분 2초~21분 33초)
18분 1초부터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구간이 있는데요. 왼손 하나로 이런 정도의 볼륨이 가능하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19분 17초부터 곡이 끝날 때까지는 어느 한 부분을 따로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멋진 피날레입니다!

쇼팽 스케르초 (1번, 2번)

“어느 호텔에서 있었던 행사에서 조성진이 쇼팽 스케르초를 쳤어요. 그때 듣고 ‘여태까지 이렇게 재주 있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고 판단했죠.”
- 마에스트로 정명훈

또렷하고 맑은 음을 작지만 고르게 내는 것은, 크고 강하고 단단한 소리를 내는 것만큼 쉽지 않습니다. 팔은 물론이고 개별 손가락 마디 마디의 근육이 아주 잘 단련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요.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스케르초 연주에서 온몸을 이용해 내는 강하고 힘이 넘치는 소리부터,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면서도 섬세한 소리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스케르초’ 연주를 감상한 한 관객은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며 “쇼팽의 스케르초를 배웠는데 악보만 읽는 수준이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보고 나니) 저게 ‘스케르초’구나 싶었고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는지 신기했다. 연습 방법이 궁금하다.”라며 미소를 보였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다른 관객들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Seong-Jin Cho ? Scherzo in B flat minor Op. 31 (third stage)

앙코르!

피아니스트 조성진|크레디아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지난 2018년 1월 국내에서 열렸던 첫 전국 리사이틀에서 한 공연 당 평균 4-5곡을 앙코르로 연주했습니다. 앙코르 연주만 40여 분이 이어졌는데요. 이에 팬들 사이에서 “올해 전국 투어 리사이틀에서도 앙코르 연주를 하지 않을까”라는 은근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이번 투어의 첫 공연이었던 광주 문화예술회관 오후 공연에서는 슈베르트의 곡을 리스트가 편곡한 ‘세레나데’와 쇼팽의 스케르초 3번을, 저녁 공연에서는 리스트의 ‘위안’ 3번과 쇼팽의 스케르초 1번을 연주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요. 이어진 대구 공연에서는 쇼팽 스케르초 1번, 2번, 3번, 4번과 쇼팽의 녹턴 20번을, 부산 문화회관 저녁 공연에서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앙코르로 연주하는 등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이번 전국 투어 리사이틀 모든 공연에서 거의 ‘3부 공연’을 했는데요.

이에 팬들의 관심이 “오늘 공연도 앙코르 연주를 할까?”, “오늘 앙코르 연주는 무슨 곡일까?”로 쏠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번 성남아트센터와 경기아트센터 공연에서도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곳곳에서 앙코르 ‘궁예(’예상한다‘는 뜻의 신조어. 예언자(?) 궁예의 이름에서 따 왔다.)’가 이어졌습니다. 결론은, 정말 팬들의 예상대로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두 공연에서 앙코르 연주를 했는데요.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저녁 공연의 프로그램이자 엄청난 테크닉과 체력을 요하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경기아트센터에서는 드뷔시의 달빛, 슈베르트의 즉흥환상곡 2번,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습니다.

리뷰를 위해 보통 공연을 보면서 프로그램북에 메모를 하는데 이번에는 메모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감동이 덜 해도 좋으니 영상으로라도 오늘 연주를 꼭 다시 보고 싶다”고요. 공연을 보았을 때만 해도 그저 바람이었는데 현실이 되었다가,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시 바람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추가된 서울에서의 앙코르 공연이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상향으로 무산되고, 온라인 생중계도 함께 취소되었기 때문인데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더 많은 이들이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26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잠시 국내를 떠났다가, 내년에 다시 돌아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알려주는 클래식 음악

앙코르까지 마지막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눈빛은 환희로 가득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상기된 얼굴로 오늘 조성진 피아니스트 연주의 어떤 점이,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는지 일행과 진지하게 (그리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본 한 관객은 벅찬 마음에 “너무 좋아서 그런다”라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이번 전국 투어에서, 그리고 수차례의 온라인 공연과 해외 공연, 연주 영상, 음반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또 얼마나 큰 감동을 선사했을까요.

사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미치는 영향의 가장 긍정적인 면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몰랐던 사람이 알게 하는 것. 그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알게 된 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다시 알리고, 이에 대해 서로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이 점점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것. 그래서 클래식 음악이 더 이상 어려운 것이 아닌 아름답고 멋진 예술이라는 인식이 더 넓어지는 것 말이죠. 이전에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존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꼭 대중음악을 편곡한 클래식이나 클래식 음악을 편곡한 곡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클래식 음악도 아름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밝힌 적 있습니다. 자신이 여기에 하나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요. 이번 리사이틀에서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그 역할에 충실해 많은 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합니다. 한 번의 큰 기쁨보다 여러 번의 작은 기쁨이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요. 이 ‘월클’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직접 보면 정말 좋겠지만 한 번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이면 몇 번이고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이 리뷰에 담은 영상 말고도 유튜브와 음원 사이트에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과 음원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 손쉬운 방법으로 ‘클덕’은 한 번 더, ‘클알못’은 첫 시도로, 여러 번의 기쁨에 한 발 더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기회가 되었을 때 그의 공연을 실제로 본다면 더 좋겠습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클래식 음악으로 모두가 많은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길 바라며 그의 연주를 처음으로 한번 들어보고 싶은 이에게는 누구나 좋아하는 이 영상을 추천합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中) |Youtube

자료 | 크레디아, 성남아트센터, 경기아트센터, 유니버설 뮤직, Youtube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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