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이 펼친 클라리넷의 세계! 마티네 공연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으로 만나다

올댓아트 이민정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3.19 17:2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03.19 17:24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ㅣ 크레디아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소울풀한 세션과 보컬, 센스 있는 가사.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스팅(Sting)의 대표곡 중 하나인 ‘잉글리쉬맨 인 뉴욕’의 가사입니다. 시끌벅적한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떨어진 나, ‘잉글리쉬맨’의 모습을 ‘합법적 이방인’이라고 표현하는 내용이 재치있으면서도 사랑스럽죠. 평일 오전 11시 30분, 국내외 클래식 스타와 전문 해설진이 펼치는 마티네 콘서트 시리즈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 2021’ 3월 공연 테마가 바로 ‘잉글리쉬맨 인 뉴욕’입니다. 주인공은 국내 대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이죠.

김한은 다소 생소했던 클라리넷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왜, 그 <스폰지밥>에 나오는 징징이가 부는 악기 있잖아.’ 라고 불리던 클라리넷이 김한의 연주를 통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죠. 세계 최고의 클라리네티스트라 단언하는 자비네 마이어의 제자이자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부수석이기도 하니 그 실력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최근엔 금호아트홀의 상주 음악가로도 선정되었고요.

그런 그가 마티네 공연에서 클라리넷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하니 보러가지 않을 수 없었죠! 오늘은 에디터가 보고 듣고 느낀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클라리넷의 매력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번 공연에는 특별한 게스트도 함께 했는데요. 듀오로 함께한 피아니스트 원재연은 2017년 부조니 콩쿠르 준우승을 차지한 후 유럽 각지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 무대를 누비는 아티스트입니다. 해설로는 월간 SPO 편집장을 역임하고 유튜브로 관객들과 소통을 이어나가는 동아일보 유윤종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강의와 연주가 함께하는 무대’라고 하니 혹시 어렵거나 낯설진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요. 유익한 토크쇼가 함께하는 연주회처럼 느껴지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간략하지만 스토리가 담긴 곡 설명과 아티스트와 함께 나누는 QnA 타임, 그리고 무엇보다 뻔하지 않은 레퍼토리! 클래식부터 재즈, 팝까지 다양한 곡들을 들어보며 익숙한 즐거움보다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즐거움을 만나는 현장이었죠. 클라리넷과 친하지 않았던 관객분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시간이었으리라 확신합니다. 에디터 역시 이번 기회로 클라리넷과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아래에서는 김한·원재연 듀오의 연주를 관람하고 온 후기와 QnA, 렉처 일부를 소개합니다.

‘잉글리쉬맨 인 뉴욕’ 포스터 ㅣ 크레디아

‘마티네 렉처 콘서트’답게 무대의 첫 시작은 가볍지만 알찬 강의로 시작합니다. 이번 무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 클라리넷이 강의의 테마죠.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의 악기에 비하면 클라리넷은 여전히 낯선 축에 속하는 악기인데요. 유윤종 기자는 먼저 우리가 클라리넷과 친해지기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구조가 까다로운 관악기인 클라리넷은 서양 음악에 좀 더 특화되었고, 그 제작도 쉽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고요.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자주 보이는 플루트, 바순, 오보에, 클라리넷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플루트, 바순은 클라리넷과 연주 모습이 다르죠. 플루트는 악기를 옆으로 들어 연주하고, 바순은 바닥에 지지대를 두고 있고요. 그런데 오보에와 클라리넷은 겉으로만 봐서 잘 구분이 안 갑니다. 소리의 차이점도 잘 모르겠고요. 가장 큰 차이점은 ‘리드’(목관악기에서 소리를 내는 얇은 진동판)에 있습니다. 오보에는 리드가 얇고 길죠. 클라리넷과 모양이 다릅니다.”

-‘잉글리쉬맨 인 뉴욕’ 중 유윤종 기자의 강연 내용-

■요셉 호로비츠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 제럴드 핀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바가텔’ & 프란츠 리스트 ‘발라드 2번 b단조 S.171’

- 요셉 호로비츠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아닌, TV 드라마 <타잔>의 OST를 썼던 요셉 호로비츠의 작품입니다. 처음은 흐르는 물결처럼 잔잔한 멜로디로 시작해, 마지막인 3악장에서는 리드미컬한 재즈 같은 선율을 연주하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 클라리넷의 매력을 표현하기 좋은 곡입니다. 김한은 그 특유의 온몸으로 연주하는 듯한 ‘필 충만한’ 흥겨움으로 곡을 소화했습니다. 원재연 피아니스트의 물 흘러가듯 유려한 연주가 뒷받침되어, 주변의 관객들이 모두 무대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는 것도 느꼈고요. 연주 중 두 사람이 악장이 바뀔 때마다 눈을 마주치며 합을 맞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만난 듀오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 제럴드 핀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바가텔’

‘바가텔’은 소품곡을 뜻합니다.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바가텔’은 5개의 작은 곡이 모인 작품인데요. 활력, 애환, 순수함과 여유 등 다양한 감상을 남기는 5개의 주제가 매력적입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지막인 5번 곡이죠. 5번 곡 ‘푸게타’는 클라리넷에 의한, 클라리넷을 위한 레퍼토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윤종 기자의 곡 소개말을 빌리자면 ‘관객들이 듣기엔 아름답지만 연주자가 소화하기엔 무척이나 까다로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에디터는 이 곡을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됐는데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가 가진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한 곡으로 모두 느껴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프란츠 리스트 ‘발라드 2번 b단조 S.171’

세 번째 레퍼토리는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독주였습니다. 연주 시작 전 유윤종 기자가 덧붙인 해설과 팸플릿 설명에 따르면, 이 곡은 그리스 신화의 헤로와 레안드로스를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연인인 헤로와 레안드로스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았다. 레안드로스는 헤로를 만나기 위해 매일 밤 바다를 헤엄쳤고, 어느 날은 불운하게 헤로를 만나러 가던 도중 숨을 거두고 만나. 이 사실을 한 헤로는 그의 뒤를 따라 함께 숨을 거두었다.”

이 애틋하고 슬픈 스토리는 곡 안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기교의 끝판왕’ 리스트의 레퍼토리답게 화려하게 이어지는 타건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고요. ‘발라드 2번 b단조’가 리스트의 레퍼토리 중에서도 유명한 곡은 아니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많은 관객들이 이 레퍼토리의 아름다움에 빠졌을 것이란 예상을 해 봅니다. 연주를 마치자마자 곳곳에서 ‘브라보!’가 쏟아져 나왔죠.

■잠깐! 연주자와 해설자의 QnA 타임

세 곡의 연주를 마친 뒤에는 유윤종 기자와 김한의 QnA 타임이 이어졌습니다! 분위기는 ‘스몰토크’였지만 내용은 알찼습니다. 앞으로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 시리즈를 감상하러 갈 관객분들, 그리고 당일 무대를 찾지 못해 아쉬웠던 분들을 위해 QnA 내용 일부를 글로 공유해 봅니다.

*아래 내용은 QnA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ㅣ 크레디아

앞서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리드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요. 오보이스트 같은 경우는 리드를 깎는 게 정말 중요하고 시간도 많이 들죠? 클라리네티스트인 김한 씨는 어떤 편인가요? 어떤 리드를 쓰는지요?

제가 아는 분도 오보에를 하시는데, 한두 시간 동안 연습한다고 하면, 그 이후 세 시간을 리드를 깎는데 쓰더라고요(웃음). 클라리넷도 리드가 중요하죠. 연주자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저는 공장제 리드를 써요. 보통 한 갑을 사면 10개 정도가 들어있는데, 그중 한두 개는 정말 좋은 리드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길을 들여서 씁니다.

선택받지 못한 남은 8~9개는 버리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리드가 나무 재질인데, 나무는 온도, 습도에 따라서 많이 변해요. 첫날에는 굉장히 좋았던 리드가 다음날이 되면 이상하게 변해있을 때도 있고, 반대로 포장을 뜯은 날엔 너무 별로였는데 며칠 뒤에 보니까 ‘어, 괜찮은데?’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한 갑에서 세 개, 네 개 정도는 쓰게 되는 것 같아요.

클라리넷 조이개(리가춰)도 종류가 여러 개지요?

여기를 보시면, 이게 리드고, 이게 조이개예요. (김한이 직접 악기 리드와 조이개 부분을 분해해서 객석을 향해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금속도 있고, 가죽, 나무도 있어요.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서 음색이 바뀌죠. 예를 들어서 금속제를 쓰면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날카롭고 쨍한 밝은 소리가 나는 편이고, 가죽제를 쓰면 무겁고 따스한 느낌의 소리가 나요. 연주하는 콘서트홀의 음향도 다 다르다 보니, 오늘 내가 어디서 무대를 하느냐에 따라 바꾸어 끼기도 하죠.

QnA 이후에 두 곡을 더 연주할 예정이죠. 저는 오늘의 마지막 곡인 ‘랩소디 인 블루’의 도입부에서 들리는 음을 끌어올리는 듯한 소리(글리산도)를 클라리넷으로 어떻게 내는지 늘 궁금했어요.

직접 보여드릴게요. 이렇게 악기에 손가락 운지하는 곳이 있어요. 손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 여러분이 들으신 이 클라리넷 소리가 나는 거죠. 그런데 이 운지하는 곳을 쓸듯이 하면 음을 끄는듯한 연주가 가능해요.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직접 옆으로 돌아 연주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호흡 같은 걸 더 조절하는 거죠.

아직 클라리넷을 낯설게 느끼는 분도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처음에 클라리넷을 접했을 때 ‘얄밉다’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물론 듣다 보니 점점 깊이 있는 악기란 걸 알게 됐고요. 김한 씨가 생각하는 클라리넷의 매력이란 뭘까요?

클라리넷의 매력은 ‘모호함’이죠.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클라리넷은 어떤 옷을 입어도 자기 옷처럼 소화해낼 수 있는 악기에요. 관악기지만 아주 작은 소리부터 저만치 울리는 우렁찬 소리까지 낼 수 있고, 음색도 설명하신 것처럼 약 올리듯 발랄한 음색부터 따뜻하고 무거운 음색까지 다 낼 수 있고요.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라이히 ‘클라리넷을 위한 뉴욕 카운터포인트’ &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QnA를 마친 후 이어진 후반부 연주는 관객들이 기다려 온 하이라이트 레퍼토리 두 곡으로 꾸며졌습니다.

- 스티브 라이히 ‘클라리넷을 위한 뉴욕 카운터포인트’

남은 두 레퍼토리 중 첫 곡은 스티브 라이시의 ‘클라리넷을 위한 뉴욕 카운터포인트’입니다. 시끌벅적한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을 반복되는 작은 주제로 묘사했는데요. 곡의 형식이 독특합니다. 무려 3명에서 12명에 이르는 클라리넷 연주자들이 파트를 나누어 한 곡을 연주하죠. 유윤종 기자는 ‘이 공연에서 클라리네티스트는 한 명인데?’ 라는 의문을 가질 관객들을 위해 사전에 녹화된 김한의 클라리넷 연주 영상/음성으로 무대를 채울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총 9명의 김한이 곡을 소화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죠.

-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약 90분가량 진행되어 온 무대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레퍼토리, ‘랩소디 인 블루’는 아마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건반악기, 현악기, 오케스트라 등으로 소화한 곡이기도 하고요. 이번 무대에선 클라리넷과 피아노의 듀오로 만났습니다. 자유롭게 춤을 추듯 흘러가는 클라리넷 선율과 재즈 카페 한곳에 와 있는 듯한 피아노 연주. 앞선 QnA에서 말했던 ‘음을 끌어올리는 듯한’ 글리산도도 들어볼 수 있었고요. 2019년에 김한이 이 곡을 연주한 영상이 있습니다. 이날 공연을 찾지 못했던 관객이라면 꼭 한번 감상해 보세요. 어느 순간 익숙했던 방 한편이 뉴욕의 재즈클럽처럼 느껴지죠.

관객들의 아쉬움을 느꼈는지 두 연주자는 여기에 마지막 앙코르 곡도 더했는데요. 이번 공연의 제목이었던 스팅의 ‘잉글리쉬 맨 인 뉴욕’을 클라리넷과 피아노로 연주했습니다. ‘I don’t take coffee, I take tea, my dear, I like my toast done on one side‘... 한 번 들으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중독성 강한 재즈 멜로디가 절로 떠오르지 않나요? 김한은 “원래 프로그램 곡이 아니라 아주 조금은 이상할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는데요.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기쁨의 환호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쉽게도 김한이 이곡을 클라리넷으로 연주한 영상은 없습니다. ’크클클‘ 현장 무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연주였죠. 대신 아래에 ’잉글리쉬맨 인 뉴욕‘ 라이브 영상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굳이 라이브 영상을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죠! 이 곡은 스튜디오 레코딩보다 현장에서 관객들의 환호, 박수와 함께 할 때 더 매력이 넘치니까요. 이날 김한의 공연처럼요! 역시, 공연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껴야 가장 짜릿한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잉글리쉬맨 인 뉴욕’을 통해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클라리넷의 매력에 빠진 관객분들, 그리고 공연장을 찾진 못했지만 글을 읽고 나니 그의 연주가 궁금해진 독자분들을 위해 김한의 연주 영상 몇 편을 준비했습니다. ‘잉글리쉬맨 인 뉴욕’ 무대를 앞두고 올댓아트와 함께 진행했던 인터뷰는 <이곳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영상)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의 브람스 ‘클라리넷 소나타 2번 2악장’. 유윤종 기자는 이 곡이 ‘얄밉다고만 생각했던 클라리넷 속에서 깊이를 찾게 해준 레퍼토리’라고 전했습니다.

(영상) 생상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E 플랫 장조 Op.167. 클라리넷의 유려하고 따뜻한 매력, 김한의 섬세한 감정 표현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영상) 피아니스트 김재원과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의 바씨 ‘리골레토 환상곡’. 오페라 <리골레토>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소름 돋는 강약 조절에 절로 빠져듭니다.

자료|크레디아, Youtube

<올댓아트 이민정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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