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물의 속성과 위치의 변화를 관찰하는 이유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3.21 18:59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03.21 19:01

시간(時間).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를 뜻한다. 인간은 초, 분, 시의 단위로 그 시간을 쪼개었지만 정작 시간은 그 정의를 넘나든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동일한 경험을 선사하진 않는다. 오롯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다. ‘지금’을 달리 말하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경험과 경험이 교차하는 찰나일 것이다. 나아가 물체가 변화하는 과정 중 어느 한 지점이고, 꼬집어 셈하기 무색할 만큼 재빠르게 흘러가는 시점일 것이다.

이런 시간의 속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관찰하는 이가 있다. 그는 문화와 문화 그리고 국가와 국가 간에 사물의 속성과 권력이 뒤바뀔 때 생기는 기이한 힘의 배치를 관찰하고, 동시에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사물의 이미지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이를 ‘오토스포라’라고 명명한다. 이는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이라는 뜻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어원으로 한 단어다. 그는 사물에 붙어 스스로 관습을 흐트러트리고 끊임없이 변하는 자아와 주체의 이산을 상징하는 ‘오토스포라’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디아(dia-)’를 ‘오토(auto-)’로 대체하여 ‘분리/횡단(dia-)’를 ‘자기/자가(auto-)’로 바꾸었다. ‘오토스포라’라는 유기체야말로 ‘지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갈유라 작가를 네이버공연전시판이 만났다.

오토스포라1: 야곱의 사다리(Auto-spora1: Jacob‘s Ladder)_single channel video(00:12:00)_2018 |갈유라 제공

작가님을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요.

사물의 위치 변화와 속성을 관찰하고 시간과 장소에 갇힌 사물들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동국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한예종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 중이신데요. 그 사이 패션업계에 종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했고, 그 때의 경험이 이후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업계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을 했습니다. 패스트 패션은 공장에서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되는 만큼 현장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중요했어요. 때문에 세계의 원자재 공장이 위치한 광저우에 머물렀고, 재료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유럽 패션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션이 먼저 발생되는 곳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었으며, 사물이 생산되어야 패션이 생겨난다는 점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하나의 사물이 저에게 오는 과정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죠. 예를 들어 옷에 있는 단추 하나가 어떤 경로로 나에게 오는 것일지 다시 질문하게 되는 과정으로요.

그래서 사물의 위치 변화나 속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군요.

맞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쓰러진 병사들을 각국으로 이송해야 했는데 그때 쓰였던 컨테이너 박스가 이후 바나나를 세계적으로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저는 이런 사물의 움직임과 이동을 시간을 통해 관찰합니다. 최근에는 물질세계를 넘어 비물질 세계 내에서의 경로까지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일명 ‘발달린 사물’이라 부르는 ‘오토스포라’의 새로운 자아를 사물에 부여하고 있죠.

오토스포라1: 야곱의 사다리(Auto-spora1: Jacob‘s Ladder)_single channel video(00:12:00)_2018 |갈유라 제공

그간의 주요 작업들을 소개해주세요.

대표적인 것은 ‘오토스포라’ 시리즈입니다. 2018년 비디오로 작업한 ‘오토스포라1:야곱의 사다리’에는 ‘말차’라고 하는 사물이 등장하는데요. 찻잎은 가루에서 액체가 되듯 종(種)을 뛰어넘습니다. 또한 인간-신-비사물의 경계는 차를 함께 ‘나눈다’와 ‘마신다’라는 공통된 행위를 통해 겹쳐집니다. 저는 현대의 차가 다도나 기존의 관습들이 사라진 채 종이컵이나 페트병에 담겨져 사용되며 인류의 새로운 전통이 되었듯 언제 어느 때고 바뀌는 사물의 모습처럼 인간과 비인간의 형태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오토스포라1:야곱의 사다리’를 통해 말차가 홍콩, 인도, 일본, 한국 등 네 국가를 오가고 종을 뛰어넘어 인간-신-비사물의 경계를 어떤 변화를 겪으며 넘나드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오토스포라의 개념이 조금 생소하고 어려워요.

‘오토’는 ‘자가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스포라’는 ‘포자’를 의미해요. 스스로 물질세계와 비-물질세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오토스포라’는 물질의 기본 속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기본 속성(본질)은 사실 존재 하지 않으며,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물의 잠재적인 속성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 자체를 인정 하는 것이 ‘오토스포라’입니다. 말차는 과거에 말린 찻잎을 갈아 가루나 액체 형태로 만드는 등의 전통적이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보편적인 물질이 되었습니다. 유명 커피 테이크아웃 전문점의 ‘녹차 푸라푸치노’가 자연스럽게 ‘말차 프라프치노’가 되어 버린 것 처럼요. 사실 ‘오토스포라’는 ‘녹차’에서 ‘말차’로의 단어 변화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물을 우리의 삶에서 뚜렷하게 발견 할 수 있을 때 즉, 사물이 일시적으로 자아가 있는 상태에 머무를 때 특정 언어로 아주 잠시 고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시간 속에서 ‘지금’을 명시 할 수 없는 우리의 상태와도 같습니다. 사물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시간과 사건으로 인해 잠시 이름을 부여 받을 뿐입니다. 이런 미세한 사물의 속성과 위치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오토스포라’라는 개념을 사용했어요.

오토스포라1: 야곱의 사다리(Auto-spora1: Jacob‘s Ladder)_single channel video(00:12:00)_2018 |갈유라 제공

‘오토스포라1:야곱의 사다리’에서 오토스포라는 어떻게 표현되었나요.

차를 마신다는 문장이나 행위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다도를 비롯한 문화적인 것부터 차를 마시는 방법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죠. 때로는 차를 마시는 행위로 연결이 되기도 하고요. 쉽게 설명하자면 찻잎을 내리던 시대에서 티백을 사용하는 시대로 변화했잖아요. 그리고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 또한 같지 않아요. 예를 들어 중국 시안의 병마용갱을 만들던 사람과 현대의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이 같지 않듯이 말이죠. 예전에는 미국으로 여행을 가면 에스티로더나 빅볼펜 등을 사왔어요.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 코끼리 밥솥을 사왔고요. 이는 그 당시에만 구할 수 있었던 희귀 물품들이었죠. 그런데 그런 물품들이 어느 순간부터 국내 드러그 스토어에서도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어요. 저는 이것이 단순하게 사물들이 장소를 이동해 온 것이 아니라 오토스포라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봐요. 즉 물건과 물건들이 어떤 흐름으로 가고 있는 사이, 오토스포라의 과정에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찰나를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미묘한 차이들이 발생하며 변화가 이뤄지고 있어요. 우리는 그 변화의 시간 속의 한 부분에 존재하는 것이고요.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인간의 시간 중 어떤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셈이죠.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기도 하고요. ‘오토스포라1:야곱의 사다리‘에서 그 매개체는 ‘말차’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말차가 오토스포라를 거쳐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말차가 움직이게 되면서 오토스포라가 발현하게 되는 건지의 시간상의 순서도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오토스포라1:야곱의 사다리’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저는 ‘사다리’라는 물질이 갖고 있는 연결성에 주목했어요. 야곱이 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가 빛의 줄기로 하늘과 땅의 통로가 열리게 되는 성경의 구절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착안했죠. 다만 단순히 종교적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았어요. 외부로 연결하기 위한 도구로 인용했어요. 종과 종을 뛰어넘는, 인간과 신의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역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끌어왔죠. ‘오토스포라1:야곱의 사다리’에는 야곱(Jacob)이라 특정 할 수 없는 다수의 야곱들이 등장합니다. 사물과 목소리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모든 통로를 이동 할 수 있는 야곱이라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었어요.

▲ 보너스 채널_(Bonus Channel)_설치, 다채널 영상_Loop_2019

▲ 어두운 땅에 두 발이 젖기 시작했다(Their Feet Start Getting Wet on The Black Ground)_installation_loop_2019

보너스 룸(Bonus Room) 전시 도면. 기둥을 중심으로 좌측엔 ‘보너스 채널’을, 우측엔 ‘어두운 땅에 두 발이 젖기 시작했다’를 설치했다. |갈유라 제공

‘오토스포라1:야곱의 사다리’ 이후 2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함께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는다면.

2019년 갤러리 175에서 진행했던 <보너스 룸>이란 전시에요. 게임에서의 ‘보너스’가 이미 존재 하고 있던 사건이 상황과 맞을 때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활동이란 점을 착안해 기획한 전시였어요. <보너스 룸>은 숨겨져 있는 듯 보이지만 이미 존재 하고 있던 추가적인 한 개의 방을 의미합니다. ‘오토스포라’가 어떤 상태로 변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잖아요. 이 전시는 그 움직임 사이의 한 지점에 주목한 작업이기도 했어요. 전시장에는 움직일 수 없는 기둥이 있었는데 저는 그 사이에 위로 올라가서 관람할 수 있는 단을 만들어 다중 스크린 실험을 했어요. 보이지 않는 기둥 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둥 오른쪽은 12인치부터 70인치까지 모니터들을 겹쳐 한 방향에서 보이는 ‘어두운 땅에 두 발이 젖기 시작했다’를, 기둥 왼쪽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떠밀려 정박한 ‘보너스 채널‘을 볼 수 있게 설치했어요. <보너스 룸>에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사물과 이미지, 마치 끊긴 듯이 보이는 빛과 사운드의 간격을 스크린 설치와 비디오를 통해 보여주었죠.

작가님의 작품들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상황의 반복이네요(웃음). 현대미술은 표현해내는 것이 단순하지 않고,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 또한 다채로워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예술의 역할을 논할 때 앞서 나아가 예지하거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저는 시간을 쌓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작업 초기에는, 작업 간의 연결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작업량이 많이 쌓이면서 제 세계관이, 이 이야기들이 완성이 되어감을 느껴요. 저는 저의 작품을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 등장한 표현을 비유해 말하고 싶어요. 그가 인간의 시간 달력을 몇 월 며칠 중에 잠깐이라고 표시해 둔 것처럼 저는 저의 작품들이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그 순간순간에 집중해 지켜봐 봐주셨음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 이유로 한 가지 매체로 이야기 하는 것보다 필요에 따라 퍼포먼스나 설치로 표현하거나 비디오로 보여주게도 되는 것 같습니다.

‘오토스포라’는 찰나의 순간에 주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님은 그 찰나를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한다고 들었어요.

맞아요(웃음). 통상적으로 1년에 한 작품을 진행해 왔어요. 저는 작품 활동을 할 때 장소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사물들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제가 그 현장에 있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긴 시간이 필요해요. 순간을 기록한다고 했지만 그 순간은, 그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어요. 제가 기록을 하는 순간부터 틀어지는 셈이죠. 결국엔 ‘오토스포라’도 어떤 특정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이걸 매순간 기록하겠다는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한예종은 작가님께 어떤 영감을 주었나요.

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진 물음표가 많았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구심도 많았죠. 그러다 정정화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면접 당시 교수님의 강렬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웃음). 교수님께서는 필름부터 디지털까지 모든 변화 과정을 겪은 분이세요. 이런 선경험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여러모로 영감이 되었죠. 또 교수님께서 주로 가르쳐주신 기초 철학은 제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윤활제가 되기도 했어요. 이외에도 다양한 교양수업들을 통해 그 시점에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제 생각과 섞는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했어요.

작업 중인 갈유라 작가 |갈유라 제공

시간을 고민하는 예술가의 취미는 좀 남다를 것 같아요(웃음).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곤 해요. 빈티지라고 하죠(웃음). 이 물건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나, 왜 이런 색감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을까, 당시 어떻게 이런 소재를 사용했을까 등을 추적하는 것을 좋아해요.

수집한 것들이 꽤 많겠네요.

여행을 가면 컨테이너에 실어 가져오곤 했어요(웃음). 현지의 플리 마켓이나 재래시장을 찾아 할머니들이 쓰시던 물건들을 구입하면서 물건에 대한 사연도 듣고 그랬죠. 일부는 작품에 반영되기도 했어요. <보너스 룸> 스크린 중 맨 앞에 나오는 영상에 물속에 부유하듯 떠 있는 사물들이 있는데 이 또한 제가 수집한 것들이었어요. 이외의 것들은 작업실에도 일부 있고 별도로 마련된 보관용 창고에서 보관하고 있어요. 당장 풀 생각은 없고, 시간이 더 지나면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꽁꽁 가둬두고 있어요.

협업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2019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 김현신 작가님의 에 참여한 정지혜 퍼포머님이요. AI와 성, 인종이 불분명한 로봇, 휴머노이드 댄서들이 함께 모여 서로 동등하게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들을 펼친 퍼포먼스였는데, 작가의 의도를 더 명확하게 전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그분의 행적을 쫓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최근 한 전시장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고 ‘아, 이분이다’ 하면서 찾게 됐죠(웃음).

구상하는 협업이 있으신가요.

이렇게 작업해주세요, 라고 접근하진 않는 스타일이라서(웃음). 협업도 저는 긴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예요. 만남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보통은 질문을 많이 드리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나누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뒤엎고 다시 맞추게 되는데 작품의 방향성에 따라 작용되는 방식과 서로 힘의 기울기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나요. 혹은 지금 진행 중인 작업이 있나요.

2021년에는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에 머물 예정이에요. 그곳에서 ‘오토스포라’ 두 번째 이야기인 ‘오토스포라2:활영통(活靈通)’을 준비하려 해요. ‘활영통’은 명리학에 등장하는 용어인데 여기서 ‘영’은 영적인 것, 비물질 세계에 존재하는 ‘영’을 의미해요. 죽 영이 다른 사물들과 통하게 되는 과정을 담아보려고요. 또 ‘야곱의 사다리’가 찻잎이 경로를 따라 서울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렸다면 ‘활영통’은 그 찻잎이 인천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과정을 보여주려 해요. 다른 작업 하나는 책 발간인데요. ‘오토스포라’와 연결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많아요. 그걸 제시해서 관람객들이 저의 ‘오토스포라’를 볼 때 편안하게 개입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영상보다 더 상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바라면서요. 텍스트는 2016년부터 준비해 왔는데 하나의 짧은 이론서의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해요.

코로나19 또한 작가님께는 ‘오토스포라’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 작업은 바로 드러나지 않는 편이에요. 아마도 세 번째 이야기, 혹은 네 번째 이야기에는 코로나와 연결이 된 것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요. 돌이켜 보면 이런 바이러스는 우리 역사 속에서 늘 존재해 왔어요. 그래서 특정한 한 사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발생한 이슈 사이, 사이를 들춰보는 작품을 만들어 보려 해요.

끝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하나의 사상이 결국엔 그 시대의 다른 번역가를 만나 새로운 언어로 탄생하기도 하고, 오역되거나 의역되기도 하잖아요. 그럼에도 결국 이것들이 한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저도 계속 다양하고 엉뚱한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 작가는 계속 한 가지 이야기만 하고 있었구나, 라고 이야기 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사진·영상 | 갈유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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