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조선의 ‘발레·오페라 공연 리뷰’? 한국인 최초로 ‘볼쇼이 극장’에 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입력2021.06.09 11:55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06.09 11:56

러시아 볼쇼이 극장에 처음 방문한 한국인의 기록

“정은주의 클래식 수다 : 쉽고 가볍고 즐거운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나눠요”

1896년 5월 14일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성당에서 열린 차르 니콜라스 2세의 대관식 모습입니다. 라우리츠 툭센 作 ⓒ위키피디아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볼쇼이 극장 갔던 사람은?

어느 나라이든 그들의 역사에는 슬픔과 기쁨이 절반씩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날이 있었다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고요. 그 순환이 물 흐르듯 이어지며,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봐도 그렇고요. 그러나 필자도 한국 사람이기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역사는 억울했던 순간이 더 많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1896년 4월 1일 조선 제물포에서 상하이, 요코하마, 밴쿠버, 뉴욕, 리버풀, 런던, 플리싱언, 베를린, 바르샤바, 모스크바로 떠났던 ‘모스크바 대관식 조선 사절단’의 간절했던 마음처럼요.

1896년 5월 14일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차르 니콜라이 2세와 행렬 모습입니다. ⓒwww.pastvu.com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 1868년 5월 18일~1918년 7월 17일)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약 56일간 4만 2900여 리를 다녔던 조선 사절단. 그들은 대관식 참석 이외에도 고종이 러시아 황제에게 전달하려던 친서를 비밀리에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선 땅에 을사늑약이 시행되었죠. 이후의 일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아픈 역사가 펼쳐졌고요. 앞으로 이런 일이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책임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 모스크바 대관식에 참석했던 조선 사절단은 출발부터 귀국까지의 여정을 자세히 기록했는데요. 각자의 일기장이나 편지 등을 통해서요. 그중 제가 흥미롭게 읽은 내용은 대관식을 기념해 볼쇼이 극장에서 열렸던 오페라와 발레 공연에 대한 조선 사절단의 후기였습니다. 그들의 감상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거든요. 클래식 공연을 본 후 감상평을 자신의 SNS에 올리는 요즘의 클래식 덕후들만큼은 아니지만요. 왜냐하면 조선 사절단은 그때 평생 처음으로 오페라와 발레를 봤으니까요. 그것이 오페라와 발레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로요!

■조선 사람 최초로 볼쇼이 극장에 가다

1896년 5월의 볼쇼이 극장 전경입니다. 대관식을 기념해 이곳에서 글린카의 오페라 작품이 공연되었습니다. ⓒwww.pastvu.com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기념해서 1896년 5월 29일 오후 8시 볼쇼이 극장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 공연에는 차르 니콜라이 2세 부부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귀빈들이 참석했는데요. 조선 사절단도 이 귀한 공연에 초청받았지만, 윤치호와 김득련만이 참석했고요. 그들은 조선 사람 최초로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을 본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민영환도 조선 사절단으로 모스크바에 체류 중이었는데요. 그는 명성황후의 장례 기간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볼쇼이 극장에 가지 않았고요. 이날 볼쇼이 극장의 무대에서 글린카의 <이반 수사닌>과 드리고의 발레 <진주>가 공연되었는데요. 윤치호와 김득련이 남긴 공연 후기가 재미있더라고요. 김영수(동북아 역사재단) 작가가 쓴 『100년 전의 세계 일주』 80~81쪽 일부를 발췌해 소개해드릴게요.

“혹 혼인하고 시집가는 모양도 있고 혹 전쟁하는 형상도 있었다. 사실적이고 하나도 틀리거나 한 것이 없으니 기이한 구경거리였다. 둥근 집에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황제가 친히 임하여 새벽까지 연극을 즐기네. 옛일을 공연하는데 마치 참모습 같아 순식간에 변하고 홀리니 다채롭고도 새롭구나”

-김득련-

“음악은 아주 훌륭했다. 러시아 역사의 한 장면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 훌륭한 발레가 이어졌다. 발레는 아름답고 우아한 청춘의 향연이었다. 그러나 귀여운 10대 소녀들이 나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춤췄다”

-윤치호-

1776년 개관한 볼쇼이 극장은 올해 246번째 시즌을 맞아,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표 공연장입니다. 몇 차례의 화제와 리모델링 등을 통해 현재 무척 아름다운 공연장으로도 정평이 자자한 곳이고요. 당시 윤치호과 김득련은 “둥근 지붕이 7층이었고, 매 층의 둘레는 가히 500, 600칸이나 되었다. 매 칸마다 여덟 명이 앉아 모인 사람이 모두 1만여 명에 달했다”라고 당시의 볼쇼이 극장을 묘사했는데요. 그들의 눈에 비친 볼쇼이 극장과 무대에서 본 오페라와 발레는 일종의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귀국 후 김득련은 조선의 선교사들이 발행하던 영자 신문 <코리안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에 볼쇼이 극장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는데요. 남성 성악가들의 힘찬 발성을 두고, 서양에서 군자 노릇하려면 저렇게 소리를 질러야 하느냐고 반문했고요. 또 무대 위 발레리나들을 향해서는 벌거벗은 소녀들이 까치발을 하고 뛰어다니는 것이 꼭 학대받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조선의 예법으로 보자면,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야 하고, 또 발레리나들의 옷은 어린 소녀들뿐만 아니라 여성 그 누구라도 입을 수 없는 옷차림새였으니까요. 또한 조설 사절단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이 열리던 성당에 입장하지 않았는데요. 성당에 들어가려면, 모자 즉 갓을 벗어야 한다는 러시아의 규칙을 지켜야 했거든요. 이러한 이유로 조선 사절단은 대관식을 직접 보지 않고, 성당 밖에서 3시간이나 서 있었다고도 합니다.

■러시아 음악의 자부심 글린카

하일 글린카는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5인조의 음악적 바탕이 되는 등 러시아 음악사에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위키피디아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기념해 열렸던 오페라는 모두 미하일 이바노비치 글린카(1804년 6월 1일~1857년 2월 15일)의 작품이었는데요. 당시 러시아에서 글린카가 가장 인기 있었던 음악가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는 러시아 5인조 등 러시아 음악사에 큰 뿌리를 심은 음악가입니다. 러시아의 음악가들은 글린카의 영향을 받아, 각자의 작풍을 완성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거든요. 반면 글린카는 러시아 이외의 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지 못했고요.

글린카의 대표 오페라인 <이반 수사닌>은 러시아 어로 쓰인 최초의 러시아 오페라입니다. 차르 니콜라이 1세가 아낀 작품으로 ‘황제를 위한 삶’으로도 불립니다. 그림은 콘스탄틴 마코스키 作 ⓒ위키피디아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이후 연주된 글린카의 오페라는 <이반 수사닌>과 <루슬란과 류드밀라>인데요. 모두 볼쇼이 극장 무대에서 공연되었고요. <이반 수사닌>은 러시아 어로 쓰인 최초의 러시아 오페라로, 초연 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요청으로 이 오페라는 ‘황제를 위한 삶’으로 더 잘 알려졌고요. 실존 인물인 이반 수사닌은 1613년 로나모프 왕조의 미하일 1세를 차르에 오르게 한 국민 영웅인데요. 이러한 배경으로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기념해 선정된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마노프 왕가는 새로운 차르의 가문이기도 하니까요.

또한 함께 공연된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쓴 동명의 시를 기초로 한 오페라인데요. 원래 푸시킨이 이 오페라의 대본을 직접 각색하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참여하지 못한 작품입니다. 키예프 대공의 딸 류드밀라는 난쟁이에게 납치를 당하는데요. 자신의 딸을 난쟁이에게서 구해오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키예프 대공의 말을 듣고 루슬란이 무사히 딸을 구해 결혼한다는 내용입니다.

미하일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난쟁이에게 납치당한 자신의 딸 류드밀라를 구해오는 남자를 사위로 삼겠다는 키예프 대공의 말에서 시작하는 오페라입니다.

조선 사절단은 대관식의 모든 환송연이 끝난 후 모두 조선으로 안전하게 돌아갔습니다. 민영환, 김득련, 김도일은 8월 19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해, 10월 21일 오후 6시 돈의문에서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회답 친서를 고종에게 올렸고요. 프랑스 어를 배워보고자 했던 윤치호는 베를린을 거쳐 파리로 들어간 후 석 달을 지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샤를 구노의 <파우스트>를 보기도 했고요. 1897년 1월 27일 제물포에 도착했습니다. 조선 사절단의 대관식 관련 행적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해외 출장은 인생을 걸고 떠나는 길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목숨과 맞바꿀 만큼 어려운 걸음이었겠지만, 조선 사람 최초로 볼쇼이 극장에서 오페라와 발레를 볼 수 있었던 경험은 그들의 마음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참고|『100년 전의 세계 일주』(2020), 김영수 지음, EBS북스 펴냄, <여성신문> 2015년 10월 2일 자 “119년 전 모스크바에 휘날렸던 태극기의 감동”(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볼쇼이 극장(www.bolshoi.ru)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국내 여러 포털 사이트와 각종 매체 등에 클래식 음악 콘텐츠를 기획·연재 중이다. 카카오페이지 신인작가 공모전 2기 당선작가(2019)로, 영국 현악 전문지 <스트라드> 한국판과 <더 트래블러>, <톱클래스> 등에서 에디터·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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