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예술가’ 발레리나 박세은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각자의 답 찾길 바라요”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8.06 14:3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08.06 14:34

세계 4대 발레 콩쿠르 중 3개(잭슨·바르나·로잔) 콩쿠르 수상,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 상 수상, 세계 3대 발레단(러시아 마린스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중 하나인 ‘파리오페라발레’ 최초의 동양인 여성 에투알(etoile, 수석무용수) 승급까지. 모두 한 명의 한국인 발레리나가 이뤄낸 일이다. 주인공은 발레리나 박세은.

발레리나 박세은 ⓒ Ballet de l‘Opera National de Paris

지난 6월 그는 파리오페라발레(Ballet Opera de Paris, 이하 BOP)가 1년 만에 연 <로미오와 줄리엣> 개막 공연이 끝난 직후, 무대에서 새 에투알로 지명됐다. BOP 정단원은 카드리유(Quadrille, 군무), 코리페(Coryphees, 군무 리더), 쉬제(Sujet, 솔리스트), 프리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 제1무용수), 에투알(Etoile, 수석무용수)의 5단계로 구분된다. 세계 최고의 발레단, 그것도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BOP가 1669년 창단한 후 352년 만에 처음으로 동양인 에투알을 지명했다는 소식은 세계 발레계를 놀라게 했다. 현재 BOP의 에투알은 여성과 남성 무용수를 합해 16명에 불과하다. 외국인 단원은 전체의 5%뿐이다. ▶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소개 페이지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도 있었다. “문화적으로 개방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동양인을 에투알로 승급시킨 것 아니냐”는 것인데, 이런 일각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발레계에서는 “될 사람이 됐다”는 반응이다. 실제 박세은의 에투알 승급 이후 오렐리 뒤퐁(Aurelie Dupont) BOP 예술감독과 BOP 단원들은 한목소리로 그에게 “메리테(Meritez)!”라고 축하를 건넸다. 프랑스어로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발레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발레 마니아도, 박세은의 춤을 보면 단 몇 초 만에 빠져든다. 줄거리를 몰라도, 무슨 장면이고 무슨 의미인지 몰라도, 그는 춤으로 관객을 설득하고 작품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수많은 호평에 즐비한 뛰어난 표현력, 탁월한 테크닉, 섬세한 연기력… 여러 미사여구는 실제 그의 춤이 주는 느낌을 다 담지 못한다. 박세은의 모든 움직임 안에는 단단한 중심이 있다. 그는 자유롭되 흐트러지지 않는다. 온몸으로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표현하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그의 움직임에 누가 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의 매력은 물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타 공인 완벽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집요한 탐구, ‘피 땀 눈물’이 더해진(*박세은은 실제로 무대에서 ‘피’를 봤다. 동료 무용수의 뒷발에 채여 이마가 6cm 가량 찢어졌었다.) 혹독한 트레이닝, 여기에 특유의 긍정적이고 ‘쿨’한 성격이 지금의 BOP 에투알, 발레리나 박세은을 만들었다.

10살 때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박세은은 서울예고와 한예종을 거쳤고, 도중 국립발레단에서도 활동했다. 2006년에는 미국 잭슨 발레 콩쿠르 주니어부에서 은메달을, 2007년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2010년 바르나 발레 콩쿠르 여성 시니어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8년에는 무용수에게는 최고의 영예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 상을 수상했다. 박세은이 BOP에 처음 합류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오디션을 본 후 1년 계약의 준단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승급 시험을 통과했다. 실력이 워낙 뛰어나 쉬제일 때 에투알의 춤을 맡기도 했다. 에투알로 승급 후 맞는 9월 데필레(*defile, BOP의 시즌 개막 행사. 200명이 넘는 발레단 무용수 전원이 행진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에서는 새 에투알로서 왕관을 쓰고 행진한다.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단 음악 감독으로서 지휘를 맡는다.

시즌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휴가차 한국에 귀국한 후에도 인터뷰 등으로 쉴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박세은은 대중의 관심과 함께 달라붙는 의문, 궁금증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시원하게 답했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그는 어떤 질문에도 당당했고, 무대 위에서만큼이나 무대 아래에서도 ‘자체발광’ 빛나는 사람이었다. 이하는 발레리나 박세은과의 일문일답.

발레리나 박세은 ⓒ 에투알 클래식

6월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난 시즌의 마지막 공연이었죠. 9월 데필레 때까지는 휴가 기간인 건가요.

맞아요. 8월 중순 정도까지는 한국에서 보낼 계획이에요. 9월에는 데필레도 있고 ‘Etude’라는 작품 공연도 있어서 그걸 준비할 예정이에요.

원래도 휴가는 한국에서 보내는 편인가요.

그럼요. 제 가족들도 다 한국에 있고. 친구들도 만나요. 한국에 올 수 있는 때가 1년 중 이때뿐이거든요.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시간이 제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가족과 친구들에게 받는 긍정적인 기운이 있죠.

프랑스에 있을 때 저의 제일 친한 친구는 배우자니까, 한 사람하고만 가깝죠. 그러다 한국에 오면 친구뿐만 아니라 선후배와 선생님도 만나면서 제 이야기를 더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내가 그랬구나’, ‘내가 이랬구나’ 하면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돼요. 프랑스에 살 때는 정말 앞만 보고 달리거든요.

프랑스에서 계속 불어로 이야기하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어색할 때도 있나요. 해외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가끔 어색해 하시던데요.

저는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는 한국어로 말하는 게 제일 좋아요. 제가 처음 프랑스에 갔던 그 나이대에 새로운 언어를 완전히 소화하기란 무리가 있거든요. 다만 제 전문 분야인 발레에 관한 대화는 불어가 훨씬 편해요. 그래야만 정확한 뜻을 전달할 수 있어요. 인터뷰할 때도 불어로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정확한 단어로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음…약간 이런 거예요, 이런 느낌이오” 하고 답하게 되더라고요. 한국어와 불어로 대화하는 데 있어서는 그런 게 조금 다른 점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서도 인터뷰할 일이 많았을 텐데, 익숙해지기 전에는 고충이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10대의 제가 30대의 기자와 인터뷰하는 것과 30대의 제가 30대의 기자와 인터뷰하는 것은 다르기도 하고, 어떤 질문을 받게 될 지도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되더라고요.

10대 때의 인터뷰는 흔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기억나는 일이 있나요.

아, 제 배우자가 우연히 발견해서 보여준 영상이 있어요. 제가 만 16세 때 처음으로 미국에서 상을 받고 인터뷰 한 영상이 인터넷에 있었거든요.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너무 귀여운 게, “소감이 어때요?” 하는 질문을 받으니까 안 그래도 작은 애가 이렇게 몸을 쭈그리면서 “아… 좀 부담스럽고요…” 이러더라고요.(웃음) 지금은 “너무 좋고요. 실감이 잘 안 나요” 하죠.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 느끼는 것도 있나요.

제가 최근에 에투알 승급되고 나서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사실 저 스스로는 ‘나는 슬럼프도 없었고, 위기도 없었고, 순탄한 길을 걸어왔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에서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힘든 시간이 꽤나 많았더라고요. 옆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요. 인터뷰를 통해서도 그렇지만 한국에 와서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게 많아요. 그럴 때마다 소통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기도 해요.

발레리나 박세은 ⓒ 에투알 클래식

최근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는 답변이 어렵고 “춤이 더 쉽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정말 자연스러워요.

저는 기자간담회 기사 나온 것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너무 잘 전달해 주셔서요. 그날은 진짜 떨렸어요. 대답을 하는 중에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이럴 정도로요.

의외에요. ‘무대에 서는 예술가’라고 하면 사실 사람들 앞에서 예술을 선보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니까, 언제나 카리스마가 있을 것 같거든요.

보통 발레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실 허당이 많아요.(웃음) 저도 제가 하고자 하는 예술 말고는 진짜 허당이에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발레 무용수 중에는 정말 발레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이유가 뭘까요?

예술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술’에는 그냥 정해진 시간에만 하고 퇴근하는, 그런 게 없거든요. 예술이 제 삶에 있고, 제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제 예술로 끌어들이죠. 좋은 공연을 보든 전시를 보든, 어떤 활동을 하든 그게 다 제 예술과 연관될 수 있어요. 심지어 쉬는 시간에 드라마 한 편을 보더라도 그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그걸 분석해서 제 예술에 더하기도 해요. 잠자기 전까지도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잠을 못 잘 때가 많아요.

그 정도면, 때로는 부담이 되진 않나요.

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가지면서 답을 찾아가는 이런 과정이 저는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발레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서도 알아 가려고 노력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발레 하나만 확실하게 잘 하자는 생각이어서 오히려 부담도 없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아요.

BOP의 에투알이 되기까지,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겠다’ 싶은 일이 많았는데요. 최근의 기사에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더라고요.

아, 그게, 제 성격이 좀 단순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금방 까먹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진짜 힘들었는데, 다 극복한 일이라 담아두지 않았으니까 질문을 받아도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요. 그게 기억할 만큼 힘든 일이었나? 하고요. 성격이 이래서 그렇지 힘들 때는 힘들었죠.

갈비뼈가 부러지고… 이마가 찢어지고…

그랬죠. 부상도 있었죠. 이마가 찢어진 그 사건도 당시에는 힘들었는데 까먹고 있었어요. 성형외과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였거든요. 쉬제(Sujet, 솔리스트)에서 프리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 제1무용수)로 올라가는 승급 시험 때도 너무 힘들었어요. ‘이렇게까지 발레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을 정도로요. 캐스팅이 안 나올 때도 힘들었고요. 그런데 다 잘 극복했고 다 털어버린 일들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발레리나 박세은 ⓒ Ballet de l‘Opera National de Paris

한때 BOP 감독이었던 벵자맹 밀피예와의 에피소드도 유명한데요. 밀피예를 찾아가서 “내가 왜 캐스팅이 되지 않는지, 내 장점과 단점이 뭔지 말해달라”고 했다던데, 정말 그랬나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단장님을 만나면 그냥 “안녕” 하고 인사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성격이에요. 왜냐면 인사하고 나서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윗사람들에게 그냥 “네, 네” 하면서 커오잖아요. 저도 한국에서 자라서 똑같았어요. 어떻게 감히 어른들한테 가서 “안녕하세요~! 단장님~!” 이러나요.(웃음) 그냥 “안녕하세요…” 하고 쓱 지나가고, 피해 다녔어요. 엄청 소극적이어서 저 앞에 감독님이 있으면 다른 길로 돌아가고 그랬어요.

그런 성격인데도 ‘면담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었나요.

그때 제가 캐스팅도 잘 안 나오고, 승급도 잘 안되던 시기였어요. 제가 처음 BOP 들어갔을 때는 캐스팅도 되게 잘 나오고, 승급도 잘 됐었거든요. 처음부터 안 풀리던 게 아니라 밀피예가 감독으로 오고 난 후부터 갑자기 잘 안되니까, 그 시기 동안 감독이 좋아하는 무용수들을 보면서 ‘나는 뭐가 부족하지? 내가 더 해야 되는 건 뭐지? 왜 나를 무대에 세워주지 않지?’ 하는 그런 고민과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밀피예가 (프랑스 보르도 태생이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사람이니까 실력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에도 능숙한 무용수를 선호하나 보다, 하고 그냥 생각은 했었죠. 그런데 제가 그걸 개선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제가 그에게 은근슬쩍 가서 이야기를 했겠죠. 저는 정확하게 약속을 잡고 미팅을 신청한 거였어요. 제 성격으로는 나름 엄청 용기를 낸 거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계기가 궁금한데요.

제가 배우자에게 이야기했어요. 캐스팅이 잘 나오는 친구가 있는데, 감독과 이야기도 잘 하고 감독이 지나가는 길에 타이밍도 딱 맞게 나와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고. 어떻게 저렇게 힘들지 않게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랬더니 제 배우자가 “저것도 실력이야” 그러는 거예요. “네가 윗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실력인데, 네가 너를 드러내지 않으면 저 사람은 네가 있는지도 모를 거야. 무용수가 수십 명인데, 저 사람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실제로 어느 위치에 서는지, 네 이름이 뭔지 알려면 인사 정도는 해야지. 저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력이라도 해봐” 하더라고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고, 면담을 신청한 거군요. 밀피예와의 면담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저는 딱 두 마디 했어요. “나는 내가 왜 클래식 발레를 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클래식 발레를 더 하고 싶다”고요. 저는 승급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주역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어요. 군무를 맡더라도 클래식 발레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걸 이야기한 거예요. 저는 고전 발레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당시 발레단이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자꾸 현대 쪽으로 가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밀피예가 “걱정하지 마라. 클래식 발레도 할 거다. 너는 미래의 에투알이다”라고…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조금 부담스럽더라고요.(웃음)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클래식 발레를 한다더니 해임됐어요. 그러고 나서 오렐리 뒤퐁이 감독으로 온 건데, 사실 뒤퐁이 온 게 저한테는 제 삶의 전환점이 됐죠.

발레리나 박세은 ⓒ 에투알 클래식

오렐리 뒤퐁을 롤 모델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이유가 뭔가요. 관객 입장에서 봐도 멋진 사람이긴 한데요.

그렇죠? 저도 똑같은 이유였어요. 뒤퐁을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여자가 멋있을 수 있나? 이 여자는 정말 멋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춤을 떠나서 그 ‘사람’이 멋있는 거예요. ‘포스’도 있고. 한눈에 반한 거죠. 제가 처음에 준단원으로 들어왔을 때 뒤퐁은 에투알이었는데, 그가 그때 막 아기를 낳고 돌아왔었거든요. 그래서 몸이 완벽하게 회복이 되지 않았는데도 너무 멋졌어요. 그에게 반해서 공연마다 다 보러 다니면서 사진 찍어달라고 하고 그랬어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멋있고. 저는 발레가 돌고, 뛰고, 예술성과 감정을 표현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뒤퐁으로 인해서 그냥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예술인 그런 경험을 처음 하게 된 거예요. 그게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빛나고 아름답고 멋진, 보고 있어도 자꾸만 보고 싶은 저 사람 정말 대단한 에투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처음부터 좋아했어요.

사람 자체가 멋진데, 춤까지 잘 추고요.

물론이죠. 춤도 굉장히 잘 추죠. 뒤퐁이 했던 <돈키호테>, <잠자는 숲속의 미녀>, <마농> 이런 고전 발레 레퍼토리 영상이 유튜브에 있어요. 준단원 때는 보통 무대 설 기회가 많지 않아서 갈라 공연으로 주로 푸는데, 갈라 공연 때 <돈키호테>를 준비하면 뒤퐁 영상을 보면서 연구를 열심히 했어요. 그때도 그의 앞에서 이야기하기가 수줍었죠. “멋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들 정도로 저에게는 너무나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저를 예뻐해 주시는데, 그분이랑 이야기할 때 눈을 못 마주치겠어요. 부끄러워서요.

뒤퐁은 외적으로는 냉철해 보여요. 그의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그냥 ‘쿨’해요.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섬세(Sensitive) 하고요. 감정적 측면에서 여린 분이세요. 그런 부분이 오히려 인간적이죠. 저는 그의 그런 점도 너무 좋아해요. 뒤퐁의 춤도 좋아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어떤가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면에서 그를 존경해요. 제게 영감이 되는 사람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건 진짜 행운인 것 같아요.

(영상) 박세은의 롤 모델이자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 중 한 명인 오렐리 뒤퐁의 발레 영상. <잠자는 숲속의 미녀> 中 로즈 아다지오|Youtube

실력도 뛰어나고 인간미도 있는 분이군요. 그러고 보니 BOP의 승급 시험에서는 ‘인성’까지 반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실제로 그런가요.

그렇지는 않아요.(웃음) 저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사실 좀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는 알 것 같아요. 실제로 승급 시험을 할 때 임원/감독급(Director) 5명과 발레단 동료 5명이 심사를 하거든요. ‘당연히 춤에 대해서 평가하겠지만, 같이 발레단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격도 다 알게 되니까 그런 게 저절로 반영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도 이번에 승급 시험의 심사위원이었어요. 제가 더 이상 승급시험을 보지 않잖아요. 기회가 와서 심사위원으로서 한번 경험을 가졌는데, 인성이 평가 기준인 건 아니에요.

심사위원으로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저도 궁금한 게 있었어요. 과연 윗사람들이 ‘밀고 싶어 하는’ 무용수에 대한 언질을 줄까? 캐스팅은 단장의 몫이기 때문에 저는 단장이 필요로 하는 무용수가 승급하는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은 없었어요. 물론 모두에게 공정해야 하죠. 그렇지만 딱 그날 하루만 잘한 무용수를 뽑는 건, 저는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잘 해 왔고, 앞으로 잘 할 사람이 승급을 해야 발레단에 발전이 있는 거잖아요. 궁금하니까 물어봤어요. “혹시 승급되었으면 하는 무용수가 있냐”고요. 그랬더니 딱 한 마디 하더라고요. “전혀. 네 소신껏 해” 제가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올려주라고 하는 걸 보고, 이 승급 시험이 100% 공정한 것이라고 느꼈죠. 다만 이건 오렐리 뒤퐁이 단장일 때의 이야기니까, 그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주역으로서 수많은 무대에 섰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해요. 최근에 발레 <돈키호테>를 봤거든요. 발레리나가 32회전 푸에테를 돌기 직전의 그 순간 객석의 수천 명이 숨도 안 쉬고 오직 그 한 명의 발레리나만 보더군요. 부담스럽거나 긴장되지는 않을까 싶었어요.

그 순간의 기분은 작품마다 좀 달라요. 같은 32회전 푸에테라고 해도요. 제 장점 중의 하나가 기술이라 저는 개인적으로 기술적 측면에서는 딱히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무대 섰을 때 기술이 어려워서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보는 사람만 어렵게 생각할 뿐이군요.

그렇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무용수들이 굉장히 많이 연습하고 무대에 서요. 그래서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잘 안 할 것 같아요. 조명이 전환되는 타이밍이나, 관객 박수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요.

그 순간에 느껴지는 희열이 있나요.

있어요. 기술적인 거야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그런 것보다는 ‘뭔가 더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을 더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요. 사실은 그거 할 때 생각 별로 안 해요.(웃음) 32바퀴인지, 35바퀴인지 세지도 않아요. 그냥 음악이 끝날 때까지 도는 거예요.

(영상) 파리오페라발레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박세은의 리허설 영상|Youtube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했던 인터뷰들을 보면 ‘인연’,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린 나이에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상처를 받았던 일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의 존중과 배려, 이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어요.

그래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감독 테드 브랜드선(Ted Brandsen)도 직접 찾아간 거였나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을 못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를 찾아갔다면서요.

그런 것도 있긴 한데, 그게 그냥 사람의 도리라서 한 것만은 아니에요. 그가 저를 정말 좋아해 줬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찾아간 건 아니었어요. 맨 처음에는, 아주 예전인데, 여러 발레단에 CD를 보냈었어요. 대부분 “경제 위기라 자리가 없다”, “무용수를 안 뽑는다”, “우리 학교 출신 아니면 공개 오디션은 없다” 이런 식으로 딱딱한 답이 왔죠. 그런데 그는 저한테 “네가 너무 좋다. 자리는 없지만 단원 선택의 기회가 생긴다면 네게 제일 먼저 전화를 하겠다”라고 하시면서 저를 뽑고 싶어 했어요. 연락이 왔는데 제가 네덜란드로 가지 않고 국립발레단으로 향했어요. 그때는 이메일로 연락을 했죠. “정말 미안하다, 한국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한국 활동을 하기로 했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요.

그러면 그 이후에 다시 그와 연락이 닿은 건가요.

제가 국립발레단에 갔다가 학교로 돌아왔거든요. 졸업하고 나서는 외국에서 춤을 추는 게 저한테 조금 더 맞겠다고 생각해서,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이력서를 보내도 그전처럼 똑같은 답이 돌아왔고요. 그래서 이메일을 다시 보냈어요. “나 저번에 걘데” 하고요.(웃음) 내가 조금 더 성장했고, 그동안 이런 역할과 작품을 했고, 그쪽에 자리가 있으면 단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작품 영상도 같이 보냈죠. 그랬더니 바로 솔리스트 제안을 하더라고요. “너를 아직도 원한다. 당장 와라” 하면서요. 그래서 저도 바로 가겠다고, 계약서를 달라고 했고 사인까지 해서 계약서를 네덜란드 발레단에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 BOP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 거죠.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무작정 파리로 갔어요.

붙으면 어쩌죠.

그러니까요. 저도 파리를 가면서도 “당연히 안 되겠지~” 했어요. 안 되어야만 하고요. 이미 계약서에 사인까지 해서 보냈잖아요. 당시에는 BOP 오디션을 재미 삼아, 경험 삼아 본 거였어요. “나 거기 가봤어” 이런 거 있잖아요. “나도 거기 시험 봤는데, 거기 진짜 힘들더라” 하는 그런 걸 느끼려고 그냥 간 거예요. 워낙 외국인에게 닫혀 있는 곳이라 거기에서 3차까지 갔다는 사람이 대단할 정도였으니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1등만 합격하는 오디션이었고, 저는 3등을 했어요. 당연한 결과고 솔직히 3등도 진짜 잘했다고 생각해서 기뻤어요. 합격은 못했지만 기분은 좋았죠. 다음날 한국에 갈 계획이었고, 저녁에 언니 친구를 만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 거예요. BOP인데 1년 계약을 하고 싶다고, 하겠냐고요.

정말 깜짝 놀랐을 것 같아요.

머리가 ‘띵!’하더라고요. 이게 뭐야,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게 제 인생에서 그때 처음으로 일어났어요. 사실 콩쿠르 수상 같은 건 제가 잘하면 가능은 한 거잖아요. 그런데 BOP 1년 계약은 그런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 순간 그냥 대답을 한 거예요. 그냥 “간다. 계약한다” 그러고 나서 브랜드선 감독한테 연락을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걸 이메일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저를 그렇게 아껴주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그러네요. 이메일로 하기는 좀 그렇네요.

제가 파리에 있다고 잠깐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그의 가족도 마침 프랑스에 살고 있어서 지금 파리 아래쪽 지역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장 가겠다고 했어요. 만났는데, 그가 제일 좋아하는 찻집으로 저를 안내해 주더라고요. 끝까지 매너 있었어요.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제가 영어가 짧아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표현이 다 안 되면 편지를 주고 오려고 편지도 미리 다 써갔죠. 이야기를 듣더니 그가 이미 눈치를 챘다고 하더라고요. “네가 왜 하필 BOP의 공개 오디션이 있는 이 7월에 파리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BOP에 가면 춤도 많이 못 출 거고, 힘들 거라고,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오면 솔리스트로 추고 싶은 춤을 다 출 수 있다고 다시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저는 그래도 BOP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제 심정을 이해한다면서, (1년이 지나도 춤을 안 추고 있으면) 1년 후에 다시 오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감동이네요. 나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요.

그럼요. 너무 고마웠죠. 그런데 그 감동이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1년 후에 제가 BOP의 정단원 시험을 보기 전에 브랜드선을 극장에서 만났어요. 심사위원으로 왔더라고요. 저한테 행복하냐고 묻는데, 저는 그때 오렐리 뒤퐁에게 완전히 반하고, 무용수들 보면서 배우고 이러는 게 한참 신날 때였거든요.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죠. 그랬더니 “지금 춤 많이 안 추고 있지 않냐”면서 또 네덜란드 발레단에 오라고. 그 후에 정단원에서 다음 승급 시험을 볼 때 그를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때도 “요즘은 춤 많이 추냐”고 또 물어보고.(웃음) 세 번째 만났을 때는 2013년 겨울이었어요. 제가 코리페(Coryphees, 군무의 리더)였는데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에투알의 역할이었던 파랑새 춤을 추게 됐거든요. 브랜드선이 무대까지 와서 저한테 자기를 기억하냐고, 축하한다고 해줬어요. 제게는 정말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분이에요.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인연이 되었네요. 누군가는 ‘이제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메일로 답장했을 지도 모를 일인데, 직접 가서 이야기했고, 마지막까지 좋은 관계로 남았잖아요.

브랜드선이 제게 그 이야기를 했어요. “네가 나에게 이메일로 ‘나 BOP 됐으니까 못 간다, 계약 취소하겠다’ 통보할 수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야기를 해준 걸 높게 산다. 고맙다”고요. 그 인연이 쭉 이어진 거죠. 한 번은 오렐리 뒤퐁과 면담을 하는데 제게 “내가 방금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 알아?” 이러더라고요. 누구냐니까 테드 브랜드선을 만나고 왔대요. 그가 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요. 그때 다시 한번 느꼈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는걸요.

발레리나 박세은 ⓒ 에투알 클래식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한국인 발레리나가 있다는 사실은 예술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희망이 됩니다. 이들에게 지금의 박세은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고전 예술을 좋아해요. 제 나름의 해석을 해서 춤을 추지만, 저는 ‘윗 세대에서 전해진 것을 그대로 아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왔고요. 그런데 최근에 만난 어떤 분이 저한테 고민 상담을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예술 쪽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예술 쪽으로 가고 싶다고 하시면서, 예술은 조금 더 개방적이고 열려있고 창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인터뷰를 보고 반성했다고,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당신께서 하시는 예술이 맞는 거예요.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의 인터뷰나 이런 것을 보고 스스로의 철학이나 나의 욕심,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어요. 유명하거나 더 멀리 간 사람들의 방향이 꼭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놀랐어요. 저는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뿐이고, 제가 정답은 아니라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는 고전 예술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거예요. 예술은 보편적인 거잖아요. 답은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각자의 답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발레리나 박세은 ⓒ Ballet de l‘Opera National de Paris

듣고 있어도 계속 듣고 싶은 박세은의 이야기에서 느낀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테드 브랜드선과의 에피소드처럼, 나에게 진심을 다해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좋은 일이 아니라면 끙끙 앓지 말고 빨리 털어버리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다시 일어서서 열심히 달리다 보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가 꿈꿔왔던 그 지점에 깃발을 꽂을 수 있다는 것.

과거 한 인터뷰에서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 그는 그 바람대로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가 됐다. 특히 한국의 수많은 소년들에게, 성별, 인종, 신체 조건, 타고난 모든 것을 이유로 도전을 망설이고 스스로를 한계 짓고 있을지 모를 이들에게 박세은의 성공은 ‘희망’이다. 인간이 만든 문화에 “당연히 그런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세상 어떤 사람도 “당연히 못하는 것”은 없다. 박세은은 그것을 그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술인 발레로 증명했다. 연약하고 가냘프다는 표현으로 자주 수식되지만, 그는 여느 누구보다 강한 발레리나다.

발레리나 박세은 ⓒ Ballet de l‘Opera National de Paris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우주에서, 별이 안정적으로 빛을 낸 이후 수명은 수천만 년에서 수십억 년에 이르기도 한다. 그의 춤이 펼쳐질 시간도 한참이나 남았다. 박세은은 여러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답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넘어 세계를 비추는 ‘춤추는 예술가’ 박세은의 반짝임은 이제 시작이다.

자료|에투알 클래식, 파리오페라발레,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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