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바로 잡고 숨겨진 글씨 찾아내고… 국외소재문화재 보존·복원 어떻게 이뤄질까?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8.19 10:46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08.19 10:47

지난 2020년 스페인에서 다소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BBC 방송 등에 따르면 17세기 바로크 시대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의 그림 ‘성모 잉태’ 수집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림의 묵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 아마추어 가구 복원 업자에게 복원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나 회화 복원과 관련된 지식이 없었던 비전문가의 손에 맡겨진 그림의 ‘애프터’가 온전할 리 만무했죠. 무려 두 차례에 걸친 복원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던 성모 마리아는 점점 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와 같은 사고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앞선 2012년에는 ‘에케 호모(Ecce homo)’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Elias Garcia Martinez)의 프레스코 예수 벽화가 ‘역사상 최악의 복원’이라는 오점을 남기며 복원됐고, 2018년에는 16세기 만들어진 성 조지 목각상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결과물로 복원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습니다.

어처구니없게 반복되는 사고들은 보존?복원의 의미를 돌아보게 합니다. 비단 예술작품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도 보존·복원이란 네 글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의 무게를 감내해온 이들이 부서지고 찢어진 채로 발굴되는 일이 부지기수고,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흐름에 따른 퇴락 역시 피할 수 없는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유산의 보수 과정은 크게 보존과 복원으로 나뉩니다. 보존은 기본적으로 문화유산이 지닌 문화적 중요성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고유의 의미를 가능한 한 손상 없이 예술적, 역사적 의미를 확고히 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무게를 둡니다. 반면 복원은 후대에 덧대어진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재료를 도입하지 않고 기존의 구성요소를 재조립함으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현재보다 이른 시기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문화재를 온전하게 보존·복원할 수 있는 이들은 우리의 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겠죠. 때문에 보존복원 전문가를 의사에 비유하곤 합니다. 여기서 의문 하나가 생깁니다. 만약 복원해야 할 문화재가 한국이 아닌 해외에 존재한다면? 소유권 또한 타국에 있다면?

궁금증의 실마리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재단은 해외에 분포되어 있는 우리 문화재를 보존·복원하고 관리하는 사업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해외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 현황을 파악하고 보수와 관리가 필요한 곳을 공모를 통해 선정,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할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긴급하게 수리와 보존이 필요한 문화재를 선정하고 보존에 필요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연구소를 박물관에 소개하기도 하죠. 환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 땅을 떠난 문화재들이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훼손된 국외소재문화재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보존·복원될까요? 박지선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의 도움말을 참고해 국외소재 서화문화재 보존처리 대상 유물의 보존·복원 사례를 정리해 봤습니다.

■ 왜, 우리가 해야 하죠?

먼저 국외소재문화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크게 불법·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와 적법하게 반출된 문화재로 나뉩니다. 전자의 경우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환 대상이지만 구입, 기증 등으로 적법한 절차에 의해 반출된 문화재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와 같은 문화재들은 현지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자원으로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죠.

“국외소재문화재는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와 같아요. 우리나라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우리 문화재들이 현지에서 더 귀하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기 위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존·복원 작업이 필요하고요.”

손상된 문화재는 면밀하게 그 상태를 분석하고 다양한 자료와 사례를 참고해 처리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계획에 따라 전문 보존가의 섬세하고 정교한 ‘치료’가 이뤄지고요.

■ 순서가 바뀌었어요! 백동자도 병풍

2019년 박 교수팀이 담당했던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한 ‘백동자도’ 병풍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백동자도’는 화려한 전각이 있는 정원에서 놀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모습을 그린 총 10폭의 병풍입니다.

‘백동자도’ 병풍 보존 처리 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백동자도’ 병풍 보존 처리 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주나라 문왕이 낳은 100명의 아들’을 주제로 삼아 그린 것으로, 장군놀이, 닭싸움, 잠자리 잡기, 새놀이(낮잠), 물놀이(연꽃 따기), 관리행차, 양 타기, 개 놀이, 원숭이 놀이, 매화 따기 장면 등을 담고 있습니다. 각 장면들은 다남(多男)을 기원하는 풍습이나 입신양명을 뜻하는 역할놀이, 그리고 각 계절의 평안과 번영을 상징하는 풍속을 담고 있죠. 조선시대 효종이 중국의 화가 맹영광으로부터 받아 여성과 아이의 공간을 장식하는데 사용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백동자도’ 병풍 보존 처리 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미국에서 발견된 ‘백동자도 병풍’은 10폭의 병풍이 둘로 나누어져 5폭의 두 개의 병풍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림의 순서도 뒤엉켜 있었죠. 아마도 소장자가 방의 크기, 가구와의 배치를 고려하여 표구사에게 의뢰를 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또 그림은 면직물에 채색되어 있었는데, 면직물은 견직물에 비해 안료와의 접착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면직물에 아교포수를 짙은 농도로 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에 박 교수의 연구팀은 잘못된 병풍의 형태를 조선시대 전통 형태로 되돌리고 그림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보존 처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 제작 당시 형태 유지했지만… 자수 화조도 병풍

고운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독일 로텐바움박물관의 ‘자수 화조도’ 병풍은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 새를 다양한 색실로 수놓은 자수병풍입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나무들과 짝을 이룬 새들의 모습 속에 자손의 번창하는 기복적 의미가 담겨 있죠.

‘자수 화조도’ 병풍 보존 처리 전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이 작품은 제작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다만 외부의 충격으로 병풍의 상부가 모두 뚫려 있었고 하부는 물 얼룩으로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또 여러 군데 비단이 들떠있었죠. 이에 박 교수팀은 기존의 활용 가능한 재료를 보존처리 후 재사용하여 병풍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기술적으로 까다로웠던 것은 자수 그림 주위를 장식하는 쪽색 상하 회장 비단과 자주색 띠 회장 비단의 보존처리였어요. 비단은 해체하고 크리닝 하면서 길이 방향으로 수축하는데, 때문에 병풍의 원래 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줄어든 부분을 같은 재질, 같은 색상의 비단으로 메워 연장하여야 했죠. 이 비단들 역시 제작 당시부터도 폭과 형태가 반듯하지 않아서 이를 바로잡는데 많은 시간과 기술을 투여했습니다.”

‘자수 화조도’ 병풍 보존 처리 후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또 병풍에서 자수 그림을 해체한 결과 인쇄된 한지가 병풍의 속 틀을 바르는 데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병풍 속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보존·복원 작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숨겨진 글씨도 찾아내… 난초도

병풍과 달리 족자는 그림을 말아서 보관하고 필요할 때 펴서 감상하고 사용하는 장황 형태로, 말려있는 동안 공기와 빛의 접촉을 피할 수 있고, 상자에 넣어 보관하므로 보관 환경도 제어할 수 있으며 이동도 간편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전통적인 사용 방법에 익숙하지 못한 소장자, 특히 서양의 소장자들에게는 말고 펴는 일이 어렵고, 잘못 다루면 쉽게 꺾이므로, 불편한 대상이었을 겁니다. 또 족자로 제작된 고려불화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식으로 개장되고, 다시 서양으로 넘어가서는 족자의 상하 부분이 잘리고 패널에 붙여진 채 액자로 전시 및 보관되고 있는 경우가 많았죠. 문화재 보존복원이 대상, 조건,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접근되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난초도’ 보존처리 작업 전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난초도’ 보존처리 작업 후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난초도’는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그린 난초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표작도’와 함께 6.25 전쟁 때 파견 온 스웨덴 의료단원의 손에 의해 북유럽으로 건너갔는데, 훼손이 심해 수장고에 보관돼 왔습니다.

“‘난초도’는 검은색 비단에 금색 안료 난을 그리고 낙관을 두 개 찍은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림이 너무 희미해서 X-ray 촬영을 하여도 거의 보이지 않았죠. 접착 불량으로 사용하면서 안료가 떨어져 나갔겠지만 더 큰 원인은 배접지의 색상이었습니다. 비단 올 틈새로 배접지의 흰색이 희끗희끗 드러나 그림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견의 먹색과 동일한 색상을 염색하고 배접하여 그림과 낙관이 조금 더 보이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또 족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일제강점기가 너무 가까워서 제작 당시의 장황인지 개장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회장에 물 얼룩과 곰팡이 흔적이 있어서 재사용 여부를 고민하였습니다.”

상축에 쓰인 연필글씨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


박 교수 팀은 보존처리 과정 중 구리 성분의 안료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습니다. 또 기존의 장황(글씨나 그림을 족자·병풍·책 등의 형태로 꾸미는 일)과 배접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본 표구사가 연필로 쓴 ‘모리카와 사마’를 발견했습니다. 한때의 소장자 이름으로 추정됩니다. 이로써 관련 연구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줬죠.


■ 최상을 위한 최선의 선택… 산시청람도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품 ‘산시청람도’는 드물게 전해지는 조선 초기 산수화입니다. 안개 낀 도시와 산촌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인데요. 당대에 널리 제작했던 소상팔경도 중 하나로, 16세기의 산수화 발전과 전개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산시청람도’ 보존처리 작업 전후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산시청람도’는 한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 농구단의 구단주였던 조지 건드 3세가 일본에서 구입하여 보관해 왔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이 작품은 몇 군데 작은 결손부가 있을 뿐 보존 상태는 양호했는데요. 다만 족자의 형태가 단순해 박 교수팀은 이 부분을 집중해 장황을 진행했습니다.

“최대 고민은 족자의 형태였습니다. 남아있는 ‘소상팔경도’는 병풍으로 그 장황 형태를 참고할 수 없었고요. 그러므로 몇 점 안 되지만 남아있는 ‘계회도’의 장황을 참고하여 복원하였죠. 새로운 장황에 사용한 비단은 평직으로 전롱기술로 제직한 수직명주입니다. 최대한 비슷한 시기의 유물을 참고하여 염색하고 고색을 입혔으며 전통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장인이 도침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작품들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문화재 소장기관 활용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국내에 들어와 보존처리를 마친 후 다시 국외 소장기관으로 돌아가기 전 복원된 모습을 잠시 선보이는 특별전 <우리 손에서 되살아난 옛 그림>(2019)을 통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보존·복원 과정을 통해 건강해진 문화재가 전시 및 연구 등을 통해 또 다른 시대, 사람들과 공유되며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은 셈이죠.

■ 차근차근 풀어야 할 과제들

안타깝게도 우리의 국외소재문화재는 타 문화권 문화재들과 비교해 알려지고 연구된 기간이 짧아 관심이 적은 편입니다. 전문 보존가 또한 희소한 상황이고요. 이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7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해외전문가 대상 보존·복원 교육 워크숍’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습 교육을 통해 해외 보존전문가들에게 한국문화재 고유의 제작 방식과 보존처리 방법 등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자 함이 그 목적입니다.

여전히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할 국외소재문화재들이 많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수치인 204,693점(2021.4.1.기준, 22개국 분포)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를 찾아내고 보존·복원하는 것 또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외소재문화재들이 온전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전 세계인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를, 활약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자료 및 사진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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