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절기교’ 전곡 연주한 임윤찬, 피아노와 ‘혼연일체’ 되어 불타올랐다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10.21 17:01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10.21 17:03

피아니스트 임윤찬|목프로덕션

연주가 끝나고 공연장을 나설 때, 몸 안에 온기가 도는 것 같은, 정신이 맑아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 있나요?

좋았다, 정말 좋았다 하는 공연은 많았지만 이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껴보았던 것은 딱 두 번이었습니다. 한 번은 지난해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성남 공연이었고, 다른 한 번은 지난 12일이었는데요. 바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초절기교’ 전국 투어 마지막 서울 공연이 열린 날입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5개 도시 (통영 광주, 대구, 성남, 서울)에서 첫 전국 투어 공연을 열었다. 서울 공연에서는 롯데콘서트홀의 최연소 독주자 기록을 세웠다|목프로덕션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역대 최연소로 우승했던 윤이상 국제음악 콩쿠르 외에, 굵직한 해외 콩쿠르에서의 수상 이력은 아직 없는데요. ‘타이틀’을 중요시하는 국내 풍토에서 임윤찬처럼 오직 연주회만으로 입소문이 나 ‘팬덤’이 생긴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로 1천여 석만 오픈된 롯데콘서트홀의 좌석은 거의 매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가 왜 이 피아니스트에게 주목해야 하는지를 독자 여러분께 열심히 소개해 왔는데요. 요즘 임윤찬 피아니스트에 대한 관심이 왜 이리 뜨거운지 그 이유는 여기에 자세하게 담았습니다. ▶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초절기교’,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

이날의 연주는 지금 국내 클래식계가 가장 주목하고 기대하는 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한 연주’란 이럴 때나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요. 단순히 잘 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연주였습니다. 관객들 역시 한 곡 한 곡 ‘초집중’해 미동도 없이 연주를 감상했습니다. 곡과 곡 사이 잠깐의 틈에 ‘휘유~’하면서 한숨을 돌리는 관객의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공연 전 리허설 중인 임윤찬의 모습|목프로덕션

통영을 시작으로 광주, 대구, 성남, 서울까지 총 5개의 도시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리스트의 피아노 솔로 작품 중 가장 대곡인 <순례의 해> 중 두 번째 해 ‘이탈리아’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전곡(이하 페트라르카 소네트)과, 고난도의 기술과 표현력을 요구해 까다롭기로 유명한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연주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어떤 곡인지 간단하게 알아볼까요. 먼저 리스트는 누구일까요.

프란츠 리스트의 초상화. 젊은 시절 리스트의 인기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찔렀다|위키피디아

작곡가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는 쇼팽, 슈만, 브람스 등과 함께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입니다. 그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파리에서 많은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던 그 시대의 ‘인싸’였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어려운 곡’을 쓰고 그것을 너무나 쉽게 연주했다는 사실과, 화려한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화려했던 외모로도 유명하지만, 리스트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인 이유는 그의 연주 실력뿐만 아니라 그가 쓴 음악의 구성과 피아노 연주 기법이 단순히 어려운 것을 넘어 ‘진보적’이라는 데에도 있습니다. 리스트는 교향곡 <파우스트>, <단테>와 교향시 <전주곡>, 작품집 <순례의 해>, <초절기교 연습곡>, <파가니니 연습곡>, 피아노 소나타, 피아노 협주곡, <헝가리 광시곡>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고, 교향시의 형식을 완성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또 그는 실험적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형태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역사상 처음으로 연 피아니스트도, 매니저를 데리고 다닌 최초의 연주자도 바로 리스트입니다. 그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과 같은 명작 교향곡들을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하고 다니기도 했는데요. 지금과 같은 녹음 기술이 없던 시절, 리스트의 리사이틀은 교향곡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곳의 관객들이 이 곡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9세 때 첫 피아노 연주회를 연 이후 연주, 지휘, 작곡 활동을 계속해오던 그는 57세 때 성직자가 되고, 59세 때는 부다페스트 음악 학교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리스트가 어렸을 때 체르니와 살리에리는 리스트의 재능에 감탄해 무보수로 그를 지도해 주었는데, 리스트 역시 훗날 바그너, 그리그, 스메타나 등 당대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프란츠 리스트|위키피디아

그러면 이번 투어에서 임윤찬이 연주한 리스트의 작품은 어떤 곡일까요. 먼저 <순례의 해> 중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수록곡 페트라르카 소네트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순례의 해>는 리스트가 음악으로 쓴, 문학을 더한 여행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첫 번째 해 ‘스위스’, 두 번째 해 ‘이탈리아’, 그리고 세 번째 해에는 부제로 국가명이 붙진 않았지만 대부분 이탈리아를 소재로 합니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솔로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순례의 해>가 완성되는 데에는 4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만큼 리스트는 이 작품 안에 오랜 시간 만들어진 그의 다양한 음악 어법을 담았는데요.

그중 리스트 특유의 낭만적 정서가 특히 깊게 느껴지는 ‘이탈리아’는 가장 많이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입니다. 리스트의 연인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그가 받은 인상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낭만적인 감성이 더 잘 와닿습니다. ‘이탈리아’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세 곡은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인문주의자였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를 읽은 리스트가 이를 음악으로 표현한 곡인데요. 원래 1939년에 테너를 위한 리트(가곡)로 작곡되었다가 후에 피아노용으로 편곡되었습니다. 어떤 곡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리스트에게 영감을 준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일부와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을 덧붙입니다.

“나는 보았지. 지상에서 천사의 자태를 한 이를.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태양이 수천 번이나 나를 질투한다네.”

-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中

영상 ▲ 임윤찬이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콘서트에서 연주한 리스트의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전곡. 페트라르카 소네트는 14분 18초부터|Youtube

임윤찬이 페트라르카 소네트에 이어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12개의 연습곡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도 ‘초절기교’라는 이름 정도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빅토르 위고에게 헌정된 4번 연습곡 ‘마제파’가 최근 한 드라마에 삽입된 것은 이 곡이 한 번 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사실 <초절기교 연습곡>은 표면으로 보이는 “엄청나게 어려운 곡” 이상의 가치가 있는 명작입니다. 리스트는 이 곡을 통해 연주를 하기 위한 ‘기술 습득’ 목적의 연습곡을 ‘작품’의 개념으로,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올려놓았습니다. 리스트 생전에도 그가 이 곡을 연주하면 청중들이 감탄하며 경외심을 보였다고 하지요.

<순례의 해> 가 피아노로 쓴 여행기와 같았다면 <초절기교 연습곡>은 시와 같습니다. 3번 ‘풍경’, 4번 ‘마제파’, 7번 ‘영웅’ 등 12개의 연습곡에는 각각 음악으로 그리는 이미지와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스트가 가진 기술력과 음악에 서사를 담는 능력, 그리고 열정, 서정성, 낭만성이 모든 곡에 모두 담긴, 리스트 음악성의 총체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여담으로, 리스트는 평생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수정해 개정판을 내는 편이었는데요. 이 연습곡도 지금의 자비 없는(?) 형태가 갖춰지기까지 수차례의 개정 작업이 있었습니다. 이 곡은 워낙 명곡이자 난곡이라 전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드물고 녹음한 피아니스트는 더 드문데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다닐 트리포노프가 전곡을 연주한 영상이 있어 함께 소개합니다.

영상 ▲ 다닐 트리포노프가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Youtube

임윤찬은 이번 전국 투어에서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 두 번째 해 ‘이탈리아’ 페트라르카 소네트 전곡과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연주했다|목프로덕션

두 개의 대작을 연주한 임윤찬의 이번 공연은 전국 투어의 시작이었던 통영 리사이틀 전부터 화제였습니다.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인데, 인터미션(공연 중간의 쉬는 시간, 보통 15분-20분 내외)없이 전체 곡을 연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력은 기본이고 초인적인 체력과 고도의 정신력, 집중력 없이는 제대로 완주하기 어려울 것이었거든요. 임윤찬은 “작품에 녹아든 음악가의 인생을 끊김 없이 표현하기 위해 인터미션을 뺐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마지막까지 집중력과 힘을 유지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져서 연주를 소화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은 오직 관객들만의 것이었고, 그는 엄청난 체력과 그보다 더 놀라운 정신력으로 마지막까지 생명력 넘치는 연주를 보여주었습니다. 괴물, 신, 천재…이런 표현을 절로 뱉을 만큼 비인간적으로 대단한 연주였습니다. 공연 직전 이 연주를 그대로 리허설했다는 사실을 알고 감상하니 더 충격적이었고요.

이 유망주의 이번 리사이틀 후기를 찾아보신 분들이 있다면, ‘접신’(혹은 ‘신들린’)이라든지, ‘미친’ 연주라든지 하는 표현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에디터가 보기에도 그보다 더 확실하게 이 연주를 표현하는 한 단어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옛날 파가니니를 왜 악마의 연주자라고, 악마가 들렸다고 했는지 이해될될 만큼, 이날의 임윤찬은 신들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정도로 온몸을 불살랐는데요. 제스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에 완전히 몰입한 그는 때로 공연장이 울릴 정도로 왼발을 쾅쾅 내리치기도 했고, 연주하는 내내 건반 위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걸듯이, 더 풀어내라거나 여기서 완전히 멈추라는 듯한 손짓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기 자신을 지휘했습니다.

서울 공연 중 피아노를 연주하는 임윤찬의 모습|목프로덕션

임윤찬은 무대에 등장한 그에게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가 멎기도 전에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하기 전 페트라르카 소네트를 하면서 긴장과 손이 충분히 풀린 것 같았고요. 그간 몇 번의 공연에서 선보였던 레퍼토리여서 그런지 이 곡은 전에 비해 여유롭게 연주했는데요. 특히 104번 곡은 서정성의 측면에서 그동안 들었던 어떤 연주자의 연주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초절기교 연습곡> 연주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많습니다. 한 줄 요약하면 감탄을 넘어 경이로운 연주였다는 것인데요. 인터뷰에서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는 어떤 기분을 느낀다기보다 내 손이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답했던 그의 말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이날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하는 동안 그는 확실히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 같았습니다.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며 멋을 부리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요(그럴 겨를도 없어 보였습니다). 관객들은 그저 그 앞에 앉아있는 사람1, 사람2… 뿐인 듯했습니다. 특히 질주하는 구간에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틀리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자신이 틀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내재하고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혹은 틀리든지 말든지 그것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 듯합니다. 임윤찬은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겠다는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거침없고 막힘없이 스스로를 매섭게 몰아치며 불태웠습니다. 이날의 공연을 본 관객 중에는 그가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는 표현에 공감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임윤찬은 정말 몸을 사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피아노를 쳤습니다. 쓰러질까 봐 걱정될 정도로요. 곱슬머리가 생머리가 될 정도로 땀에 흠뻑 젖어 연주를 마친 그는 반복된 커튼콜에 무대로 나와 인사하던 중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일 만큼 체력을 탈탈 털어 연주했습니다.

<초절기교 연습곡> 연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임윤찬이 올해 5월부터 이 곡을 처음 배웠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연습도 연습이지만 타고난 재능이 무서울 정도라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손이 아주 먼 거리의 건반 사이를 도약해야 할 때나, 루바토(자유로운 템포로 연주)가 아니라 손가락의 물리적인 위치 때문에 지연이 생길 수밖에 없을 때마저도 임윤찬의 연주에는 그런 지연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건반을 바로 옆에 있는 손가락으로 누르듯 빠르고 정확했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지독한 훈련만큼이나 제 위치를 찾아가는 손가락의 본능적인 감각이 필요합니다. 열 개 손가락을 사용해 엄청난 속도로 또 엄청난 수의 음표를 연타하면서도 소리의 크기나 크기 변화의 폭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그 와중 음표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살리는 등, <초절기교 연습곡> 안의 다른 여러 고난도 기술도 짧은 시간 안에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습니다.

가수의 음색처럼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저마다의 음색이 존재하는데요.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표현할 수 있는 소리의 폭이 넓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자연스러운 감각 역시 훈련을 통해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한데,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3성 리체르카레’ 같은 곡을 연주할 때는 숭고하고 종교적인 느낌을 자연스럽게 살리던 그는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에서는 서정적이면서도 열정적으로, 초절기교에서는 홀연히 사라지는 소리부터 폭발하는 소리까지 모두 설득력있게 표현했습니다. 이날의 소리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강하고 선명했는데요. 그 힘든 기술을 구현하면서도 피아노의 가장 위 고음조차 전혀 약하지 않고 또렷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테크닉도 중요하겠지만, 기교를 뛰어넘는 서사를 만들어내야 진정한 초절기교”라고 답했던 임윤찬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술적인 면은 물론이고, 그의 말 그대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1번에서 힘차게 뻗어낸 음악을 12번에서 천천히, 하지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느낌으로 모아 닫음으로써 12개의 연습곡이 12개의 개별 곡이 아니라 1개의 곡 안에 있는 12개의 악장처럼 느껴지게끔 만들었고요. 9번과 11번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흥미롭게도 이 두 곡을 연주할 때는 나머지 9개의 연습곡과는 다른 특별함, 이 두 개 곡을 아끼고 좋아하는 그의 마음이 연주에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서울 공연 전 리허설 중인 임윤찬의 모습|목프로덕션

이 곡을 완주한 임윤찬의 실력과 체력만큼 감탄스러웠던 것은 그의 정신력과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였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발산하는 기가 마치 파도를 치듯이, 피아노 한 대의 진동이 객석을 휩쓸고 지나가 공연장 전체에 퍼지는 것은 처음 느껴보았는데요. 피아니스트 한 명에게 이처럼 엄청난 크기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이런 압도적인 에너지는 임윤찬이 가진 다른 모든 재능과 성실함과 더불어 그를 주목하게 만드는 그만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날 연주에서 극도의 섬세함이나 발칙한 ‘밀당’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오히려 뻔하지 않은 해석이 개성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전체적으로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인상 깊게 남은 공연이었습니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감성과 터질듯한 열정을 한 번의 공연에서 모두 표현하는 능력, 매력적이고 표현의 폭이 넓은 음색, 자연스러운 완급 조절과 완벽에 가까운 기술, 타고난 재능을 꽃피우는 음악에 대한 사랑까지, 피아노 음악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연주였습니다. 단 한순간도 머뭇거리거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던 격렬한 질주의 장면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10년 후, 20년 후 피아니스트의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동시에, 음악에 대한 이 열정과 자신감과 고집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많은 연주들이 기대됩니다.

이날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 후기를 보면 “내 손이 다 떨렸다”거나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등, 극적인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피아노를 연주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의 손이 떨리고, 심장은 왜 뛰었던 걸까요?

우리가 마주한 것은 한 명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본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무언가를 그토록 몸이 부서져라 스스로를 불태울 정도로 원해 본 적이 있었나요. 그건 도대체 언제였나요. 좌석을 채운 천 명의 관객에게는 이 피아니스트를 통해 나온 음악이, 가슴속에 그 열망을 다시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관객들이 임윤찬 피아니스트에게 보낸 박수는 그가 정말 죽을힘을 다해 눈앞에 보여준 순수한 열정에 대한, 감격에 찬 찬사였습니다.

1시간 30분의 연주로 천 명의 관객들의 마음속에 크고 작은 불씨를 심어준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앞으로도 여러 공연장을 찾을 예정입니다. 인터뷰에서 음반에 대한 의지도 활활 불태우고 있음을 밝혔으니 조만간 음반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번 서울 공연을 놓쳤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앞으로도 공연장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많이 있고 유튜브에도 그의 연주 영상이 많으니까요. 여러분도 꼭 한 번은 그의 음악을 통해 여러분이 혹시 잃어버렸을지 모를, 찾고 있던 무언가, 나의 열정을 다시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사진 올댓아트 김희주

자료|목프로덕션

참고|“[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프란츠 리스트와 최초의 리사이틀 1,2” (서울문화투데이, 2021.4.20)
“[안종도의 음악기행 44] 프란츠 리스트 ‘페트라르카의 세 개의 소네트’: 바쁜 일상 속, 이토록 투명한 사랑을 언제 느껴봤는지” (이코노미조선, 2020.10.12)
<클래식 명곡 명연주: 리스트-순례의 해>, (박제성, 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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