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동안 극장을 지킨 광대들이 있다?

올댓아트 변혜령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10.27 14:14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11.03 10:14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포스터 | 국립정동극장

100년 전의 공연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한국 최초 근대식 극장 ‘원각사’의 예술정신을 계승해 설립된 국립정동극장이 선보이는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다. 이번 공연은 최초 근대식 유료공연이었던 ‘소춘대유희’를 모티브로 제작된 실감형 콘텐츠 공연으로, 정동극장 예술단 창단 후 두 번째 정기공연이다.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는 1902년의 ‘소춘대유희’를 재현하려던 공연이 코로나로 취소되어 의기소침한 단원들 앞에 100년간 공연장을 지키며 살아온 백년광대와 오방신(극장신)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가무악극 형식으로 판소리, 민요, 한국 무용, 전통기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인다. 멀티 프로젝션 맵핑, 메쉬 홀로그램, 딥페이크 기술 등 다양한 미디어 아트 기술이 적용됐다.

이번 공연에는 무용과 전통예술을 주력으로 연출해온 안경모 연출, 국립 국악원 <붉은 선비>, 남산국악당 <남산골 허생뎐> 등 전통 콘텐츠를 선보여온 강보람 작가가 참여했다. 평창올림픽 테마공연 <천년향>의 안무가 김윤수, BTS, 블랙핑크, 싸이의 무대와 미디어를 만들어온 아트디렉터 유재헌도 합류했다.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예술감독의 신창렬, 조명디자이너 구윤영, 의상디자이너 김지연 등 제작진 라인업이 화려하다.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중 오방신 장면 | 국립정동극장

지난 5일 개최된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제작발표회는 제작진의 작품 소개와 주요 장면 시연으로 이뤄졌다. 김희철 대표이사는 제작발표회를 통해 이번 공연을 “전통공연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정동극장 예술단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10월 22일 개막하는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는 11월 7일까지 약 보름간 국립정동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오간 이야기를 재구성.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제작발표회 현장 | 국립정동극장

정동극장의 정기공연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제작 및 기획의도가 궁금합니다.

김희철 대표이사 작년에 정동극장 예술이 창단되며 정기공연 체제로 재편되었고요. 정동극장 예술단도 국립예술단체로서 한국의 전통예술인 ‘연희’를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는 저희 예술단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연희는 춤, 노래, 연기를 통틀어 선보이는 총체극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전통 연희를 얼마나 현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묻어 있습니다. 반년 이상 머리를 맞대고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 고민해 왔습니다.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수현 총괄 프로듀서 국립정동극장은 상설 공연부터 시작해 <적벽>, 얼마 전 성료한 <청춘만발>까지 전통 위주 콘텐츠에 특화된 제작 노하우와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는 1900년대 정동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전통-근대 예술이 담겼습니다. 지리적, 역사적, 예술적 탐구들로 새로운 연희 장르를 탄생시키고자 했습니다. 기존에 보실 수 없었던 새로운 전형의 콘텐츠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새로운 공연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정동극장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을 담아내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정동극장 예술단이 출범한 이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수현 총괄 프로듀서 전통 콘텐츠의 제작에 있어, 초점이 과거의 복원과 계승에만 맞춰져 있는 경향이 많은데요. 정동극장이 목표하는 전통 콘텐츠는 복원과 계승보다는 현재와 함께 숨 쉬는 변화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많은 ‘전통’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되고, 실험되고, 표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음악을 많이 변주한다는 것, 전통적인 의상을 쓴다는 것, 의상이나 스토리텔링에 현대적인 요소를 입히는 것이 오직 현대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예술을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표현했느냐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전신인) 협률사나 원각사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어 공연을 하고 있다면 이런 일들이 충분히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맥락에서 기획과 제작이 시작됐습니다.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안경모 연출, 강보람 작가의 발언 모습 | 국립정동극장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는 어디에 중점을 두어 연출했나요.

안경모 연출 ‘소춘대유희’는 국립정동극장의 전신인 협률사의 레퍼토리로, 당시 궁정에서 민간조직으로 이양해가는 과정에서 당대 최고의 광대들을 모아 만든 하나의 버라이어티 쇼였습니다. 공교롭게 그 당시에도 호열자(콜레라) 때문에 공연을 무한 연기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과거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재의 관객과 만나는 공연으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소춘대유희’라는 제목이 낯설 텐데요. 우리말로 풀면 ‘웃음이 만발한 무대에서 즐기는 놀이’라는 뜻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웃음을 잃어가고 답답함과 갈증이 많은 요즘, 한껏 웃고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예술인으로서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준비하며 ‘웃음’에 대해 가장 먼저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또 주목했던 부분은 기술적인 면인데요. 공연예술에서도 최근 기술의 도입이 늘어나고 있는데, (기술이) 스스로 미디어성을 드러내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다채로운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강보람 작가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를 의뢰받았을 때 두 가지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소춘대유희라는 역사적인 공연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였고, 둘째는 ‘정동극장 예술단의 정체성과 공연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당시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칭경 예식을 위해 재주를 가진 광대들이 모였는데, 전염병이 돌아 하루아침에 공연이 없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전염병으로 관객을 만나지 못한 광대들이 어떤 기분이었을까’라는 상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공연은 2021년 복원된 <소춘대유희>의 연출과 도창을 맡은 이순백이 신입단원 두리와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 사태로 공연이 취소되면서 시작합니다. 실망한 마음에 텅 빈 공연장에 앉아있던 인물에게 100년 동안 극장에 살고 있던 극장신들과 신비한 아이가 나타나고, 밤새 아이를 따라 극장을 돌아다니며 많은 광대들을 만나는 한바탕 소동극입니다. 작품을 통해 거창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서로 만날 수 없는 객석과 무대, 광대와 관객에 대한 고민, 함께 웃고 즐기며 서로를 치유하는 광대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야외에서 주로 진행되는 연희의 특성상 생기는 공간적 제약을 어떻게 해결했나요.

안경모 연출 과거의 <소춘대유희>도 야외 공연을 실내 공연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번 공연은 실내화하는 작업뿐 아니라 미디어를 활용하면서 생기는 효율성을 이용했습니다. 때로는 극장을 물길로 만들기도 하고, 야외로 만들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공간을 여행하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제작발표회 중 시연 모습 | 국립정동극장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에는 다양한 미디어 아트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어떤 시각적·음악적 연출이 있었나요.

유재헌 아트 디렉터 이번 공연은 ‘무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는 개념을 가지고 전체 극장 구조를 변형했습니다. 갤러리 구조를 추가해 무대와 객석이 섞일 수 있게 했고, 관객이 이머시브 효과를 느낄 수 있게 움직이는 거대한 브릿지를 추가했습니다. ‘100년 전의 협률사가 계속 유지되어 왔다면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공연을 하고 있을까’라는 상상으로 가상 역사에 대한 세계관을 축적해 나갔습니다. 당시 역사적 상황은 격변기나 산업혁명처럼 큰 변화와 사건이 한 시대에 중첩되어 있는 시기였는데요. 재미있는 요소를 섞어 미장센을 만들어 봤습니다. 조명과 영상을 섞어서 조명이 영상의 역할을 하고, 영상이 조명의 역할을 하는 표현 방법을 차용했습니다.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을 혼용해서 쓰는 기법을 사용해, 관객이 가상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도록 연출했습니다. 매체나 미디어가 많이 쓰이지만 기술이 앞으로 나서지 않고 작품에 녹아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메이킹필름에 무대와 미디어아트 연출 과정이 담겼다 | YouTube

신창렬 음악감독 작품이 이야기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음악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먼저는 전통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고민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전통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근대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발전되고 있던 것들이 많습니다. 작품의 주를 이루는 판소리도 조선 후기 때부터 발전을 거듭하며 진보하고 있던 음악인데, 일제강점기 단절을 겪으며 ‘전통음악’의 카테고리에 편입됐고요. 시간의 개념을 뒤바꿔 ‘오히려 100년 전의 예술인이 더 진보적인 표현을 했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여러 음악적인 질감을 사용했습니다. 극장의 삼면을 사용하는 비주얼 아트에 맞춰 7.1채널 사운드 디자인으로 입체적인 음향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김윤수 안무가, 이규운 지도 위원의 발언 모습 | 국립정동극장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는 어떤 안무 콘셉트로 진행되나요. 연습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윤수 안무가 처음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안무 제안을 받았을 때, 정동극장이 이 시대에 어떤 역할로 기능할 수 있는지 심도 있게 고민한 영리한 대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이 지난한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예술을 통해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고, 위로했는지를 잘 녹여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고전주의적 춤 양식을 구현하고, 작품의 후미에서는 정동극장의 예술적 정체성을 춤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난도가 높은 작업이었지만, 대본과 음악 등 여러 조건들이 동기부여가 되어 즐겁게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규운 지도 위원 작품에는 농악의 상모 놀음이 등장하는데요. 음양오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상모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상모의 초리만을 이용해 연출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 정동극장이 처음 선보이는 연출일 것 같습니다.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2021. 10. 22 ~ 11. 7
화~금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
국립정동극장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이상화 외

자료|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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