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도 가보지 못한 ‘클럽’이 온다! 앰비규어스 신작 ‘얼이 섞다’

올댓아트 변혜령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11.30 09:58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11.30 09:59

“엇쉐이~ 이노무 귀신아 듣거라 봐라!”

랩을 연상시키는 빠른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경주군 산내면 내칠리에 사는 1927년생 박수행 할머니의 ‘객귀 물리는 소리’입니다. 귀신을 호령하는 소리에 무용수들이 빠르게 뛰고 돕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신작 <얼이 섞다>의 첫 장면입니다.

판소리 <수궁가>의 범 내려오는 대목에 춤을 추었던 그들이 이번에는 전국에서 채집한 향토민요를 주목했습니다. 10년 전 우연히 ‘우리의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발단이 됐습니다. 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전국을 돌며 채집한 소리 12곡을 사용했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신작 <얼이 섞다>는 ‘얼이 썩었다’는 뜻의 ‘어리석다’를 ‘얼이 섞였다’는 뜻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입니다. 춤과 소리가 섞이고, 과거와 현재가 섞이며 서로의 ‘얼(정신)’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얼이 섞다> 중 1부 ‘만남’ | 춘천문화재단

작품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요. 1부 ‘만남’의 주재료는 ‘우리의 소리’ 향토민요입니다. 오브제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무대가 눈에 띕니다. 귀신에게 “밥 많이 줄 때 안 나가면, 네 배를 36번 기린다(?)”는 엄포와 함께 같은 시퀀스가 3번 반복됩니다. 통나무나 돌덩이를 운반할 때 부르는 ‘목도소리’, 심심할 때 함께 부르는 ‘치마 노래’와 ‘똥그랑땡’ 등이 불리면, 무용수들은 마치 음표가 된 듯 소리의 높고 낮음, 셈과 여림, 들숨과 날숨을 몸으로 표현합니다. 각자 다른 무늬의 옷을 입고 있는 무용수들은 무대 위 늘어놓인 정체불명의 오브제를 하나하나 조립합니다. 무용수들이 맞춘 오브제들이 나무가 되어 무대 위로 솟으며 2부가 시작됩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얼이 섞다> 중 2부 ‘향하다’ | 춘천문화재단

2부 ‘향하다’에서 무대는 클럽으로 바뀝니다. 무대 위 DJ가 테크노 음악과 향토민요를 리믹스하고, 평범한 무대 조명은 현란한 사이키 조명으로 변하죠. 음악에 힘입어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한층 격렬하고 흥겹습니다. 그러나 본능에 충실한듯한 이 열광의 도가니는 사실 수학적이고 이성적으로 설계된 ‘흥’입니다. 말소리의 높고 낮음, 밀고 당김을 몸으로 표현한 1부의 움직임을, 2부에서 잘 자르고 붙여서 내놓았는데요. 무음으로 이 작품을 감상한다면, 1부와 2부의 상반된 분위기의 춤들이 사실 같은 동작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안무자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연습 장면 | 고양문화재단

이 움직임이 ‘찰떡’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음악의 멜로디와 박자를 세세하게 분석해 춤에 반영하기 때문인데요. 2부의 흥겨운 군무에서 어떤 무용수들은 반복되는 루프음(반복되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고, 어떤 무용수들은 비트(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식이죠. 음악에 대한 치밀한 연구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유달리 뮤지션들과의 협업에서 빛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얼이 섞다> 연습 스케치. 음악에 맞춰 빽빽하게 들어찬 동작이 눈에 띈다 | YouTube

<얼이 섞다>는 대중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에게 기대하는 독특함과 파격에 톡톡히 부응합니다. 재기 발랄하고 유쾌한 의상들도 눈을 사로잡습니다. 화려한 원색의 보디슈트는 일상성을 제거하고 오롯이 춤에 집중할 수 있게 돕습니다. 75분 내내 쉬지 않는 무용수들의 몸짓이 뿜어내는 에너지도 관객을 붙잡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얼이 섞다> 중 한 장면 | 춘천문화재단

이번 신작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4개의 지역 극장이 제작에 합력했다는 점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춘천, 고양, 포항, 천안의 문화재단이 뭉쳤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얼이 섞다>는 12일 춘천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포항문화예술회관, 천안예술의전당에서 투어를 진행합니다. 지난 11일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프레스콜과 작품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 11월 12일부터 12월 4일까지 진행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얼이 섞다> 첫 투어는 종료되었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얼이 섞다> 중 2부 | 춘천문화재단

신작 <얼이 섞다>의 창작 배경이 궁금합니다.

김보람 예술감독 10년 전쯤, 우연히 친구 차를 얻어타고 가다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어요. 매력적인 소리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소리에 춤을 춰보면 어떨까 싶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10년 전의 짧은 순간을 작품으로 보여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듣지 못할 수도 있는 소리라는 생각에, 과거의 호흡을 움직임으로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2부에서는 과거의 호흡이 미래까지 이어집니다.

작품의 무대, 조명, 의상 등에서 참신한 요소가 돋보입니다. 어떤 창작의 과정이 있었나요.

김현정 무대디자이너 굉장히 특이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한 것 같은데요. 작품에는 다양한 재료가 등장합니다. 각각의 형태와 소재가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나무를 만듭니다. 나무는 과거와 현재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개성과 소재, 문화, 역사가 섞인 것을 상징합니다.

고희선 조명디자이너 1부에서는 음악과 춤에 맞춰 나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조명합니다. 시제의 변화를 고전적인 방법으로 표현했습니다. 2부는 클럽의 분위기이기 때문에, 나무를 중심으로 무용수들과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빛놀이의 느낌을 살려서 조명을 디자인했습니다. 관객이 같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희 의상디자이너 1부에서는 다른 4개의 종족이 등장합니다. 서로 어우러지면서도 무용수 각각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게 디자인하는 데에 중점을 뒀습니다. 클럽 배경인 2부에서는 1부와 연계되면서도 차별점을 찾는데 집중했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연습 장면 | 고양문화재단

이례적으로 극장들이 연합해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대상으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선정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보람 예술감독 공동 제작이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년에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의 일환으로 공연했던 <바디콘서트>가 인연이 되어 참여하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요.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무용가들과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에게 이런 기회가 돌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범 내려간다’나 콜드플레이와 협업 등으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저에게는 본연의 창작하는 작업이 아주 중요합니다. 미디어로 (저희를) 접한 분들의 관심이 공연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각각 다른 극장의 환경을 어떻게 활용해 연출할 예정인가요.

김현정 무대디자이너 극장마다 구조나 장비들이 모두 다릅니다. 극장 답사를 다니며 ‘어떻게 각 극장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처음 김보람 감독님과 만났을 때, 1부는 우리의 소리와 함께, 2부는 어디서도 가보지 못한 클럽의 느낌을 원하셨어요. 1부는 머리·다리막(무대 옆과 위에 걸려있는 막)을 모두 사용해 고전적인 무대의 모습을, 2부는 각 극장의 고유한 특색을 살리기 위해 완전 노출 무대로 표현했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얼이 섞다> 중 한 장면 | 춘천문화재단

<얼이 섞다>의 춤동작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김보람 예술감독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소리들은 악보를 보고 부르는 음악이 아니라, 일하며 자신의 호흡으로 만들어진 소리입니다. 굳이 제 방식대로 음악을 분석하기보다, (가창자의) 호흡을 듣고 반응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소리들이 후세에 남았듯이, 우리의 움직임도 오리지널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창작했습니다.

1부에서는 소리에 반응하며 움직였다면, 2부에서는 같은 동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정리했습니다. 같은 춤이지만 완전히 다르게, 과거의 소리를 미래적인 감성으로 볼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섞는 과정에서 목표한 궁극적인 방향은 무엇인가요.

김보람 예술감독 작업적인 지향점은 ‘오리지널’인 우리 소리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춤과 함께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드리는 건데요. 현재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클럽 문화 안에서 우리의 소리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함께 발견하고 호흡하고 싶었습니다.

이 소리에 맞춰서 춤을 춘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 시대의 어르신들이 어떻게 일해왔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소리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저희가 좋은 춤을 만들어서 관객분들이 이 소리를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이 소리 너무 좋다”고 찾아서 들어주신다면 성공이지 않을까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얼이 섞다>| 춘천문화재단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무대 위에 세운 나무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융합을 상징합니다. 이 나무는 환웅이 자리잡은 신단수일수도, 1927년생 박수행 할머니의 동네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일 수도, 우리 주변에 있는 가로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낯선 시대와 문화의 모습으로 가려진 곳에서도 귀신같이 ‘힙’의 정신을 발견합니다. 다른 것들이 섞인 것 같은 이 작품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잘 정리해놓은 ‘힙’의 연대기입니다.

그러나 작품이 말하는 메시지를 고민하면서 보지 않아도, 이들의 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내 안에 숨은 ‘힙’을 찾아 줄 <얼이 섞다>는 앞으로도 전국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입니다.

자료|춘천문화재단, 고양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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