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드리는 청첩장의 무게가 무겁습니다…역병과 함께 해온 사람들의 이야기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12.06 10:57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12.06 10:58

“억겁의 마스크를 벗겨 미소 어린 네가 보고프다!”


영상 속 “별 것이 아닌 게 제일 소중한 것”이라는 말이 유난히 더 강하게 마음에 머무는 날들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 19로 일상은 무너졌고, 우리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 기세가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하루 확진자 수가 5천 명을 넘어서고 오미크론이란 새로운 변이까지 등장하면서 우리는 또 한번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정부는 12월 6일부터 4주 동안 사적 모임은 수도권은 최대 6인, 비수도권은 최대 8인까지만 허용하고, 카페와 식당 등으로 ‘방역 패스’를 확대시키는 등 방역조치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전시장 내부 풍경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세균 ·원충 ·스피로헤타 ·리케차 ·바이러스 등으로 일어나는 질환 중, 급성의 경과를 거치며 전신적인 증세를 나타내고 집단발생(유행)하는 전염병을 뜻한다. 인류와 꾸준히 함께 해 왔으며,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역병, 일상> 특별전이 2022년 2월 28일까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 전통 사회를 휩쓴 역병과 그 속에서 일상을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크게 3부로 구성됐으며 우리 땅을 휩쓸고간 역병과 이를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역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치료와 치유 행위, 역병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온 일상생활의 의미를 각각 조명한다.

묵재일기(默齋日記), 1535~1567 한국학중앙연구원(이택진 기탁) 조선 중기 묵재默齋 이문건李文健, 1494~1567이 1535년부터 1567년까지 17년 8개월간 쓴 일기로, 조선 중기의 역병의 모습을 포함한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1763~1829 국사편찬위원회(노용순 기탁) 조선 후기 서산와西山窩 노상추盧尙樞, 1746~1829 가 1763년부터 1829년까지 67년간 쓴 일기로, 조선 후기의 역병의 모습을 포함한 일상생활은 물론, 무관(武官)의 관점에서 바라본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먼저 첫번째 섹션에서는 우리 삶에 들어온 역병과 이를 보내려는 노력이 담긴 자료들을 둘러볼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역병을 지칭하는 많은 단어와 이를 알리는 여러 소식이 존재했다. 그리고 역병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은 일기, 회화, 판소리 등에 고스란이 녹아 들었다. 이번 전시에 최초 공개되는 「묵재일기」와 「노상추일기」도 그 중 하나다. 이는 조선 시대 역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법 등이 기록되어 의학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결국 죽었으니 비참하고 슬픈 마음을 어찌하겠는가!”

조선 시대의 한 아비는 역병으로 아이를 잃은 참담함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처럼 정사와 일기를 넘나드는 역병의 기록은 그로 인해 고단했던 인간 생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인류는 여경을 어떻게 치료하고 예방했을까. 인간은 역병에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또한 역병이 지나가면 일상에 다시 오지 못하도록 방비했다.

짚말, 2021 마마배송굿 중 마부거리에 사용하는 짚으로 만든 말로, 두창신痘瘡神을 보내는[傳送] 역할을 한다. 말 등에 음식을 담은 광주리를 실어놓고 축원을 한다. 굿을 모두 마치면 무구와 함께 불태운다. |국립민속박물관

조선 시대에는 두창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흔했다. 두창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은 손님, 마마로 모시는 행위로 표출되었다. 이것이 바로 마마배송굿이다. 마마배송굿은 마마신을 달래어 짚말에 태워 보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여타 다른 굿과 특이점을 갖는다.

콜레라의 마귀에게는 다도 이색적이고 적대적인 방법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단순히 집 대문에 고양이 그림만 붙여 놓는 것이다.?그 이유인 즉, 콜레라와 경련이 쥐가 물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니 쥐가 무서워할 게 고양이 밖에 더 있겠냐는 것이다.?-19세기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의 「조선기행」

1821년 조선 땅을 흔들었던 콜레라는 처음에 ‘괴질’로 불렸다. 당시 민간에서는 이를 두고 쥐에게 물린 통증과 비슷하다고 하여 쥐통이라 부르기도 하고, 몸 안에 쥐신이 들어왔다고도 여겼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에도 역병이 발생하면 지인의 집으로 피접을 가고, 집 안의 외딴곳에 자신 스스로 격리하는 일 등이 빈번했다. 현재의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생활의 원형이다.

자가격리자의 그림일기, 2020 송기성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하여 집에서 격리 생활을 했던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그림과 글로 표현한 것이다. 격리 생활 동안의 경험과 감정이 드러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이 시국에 드리는 청첩장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2020년 청첩장을 봉한 봉투의 문구

역병 속 일상을 지속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큰 고난이다. 그러나 인간은 새로운 역병을 마주하며 살아갈 방법 역시 끊임없이 찾아왔다. 고난임을 알기에 서로를 생각하고, ‘다시’, ‘함께’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대면 조사가 어려운 상황에도 시민 100여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료를 제공받아 전시에 추렸다. 그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다시’, ‘함께’, ‘같이’였다. 전시장에는 ‘다시 함께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려진다.

재택근무, 배달앱 등 2021년 코로나19로 달라진 모습을 담은 작품들 |올댓아트 김지윤

재택근무, 배달앱 등 2021년 코로나19로 달라진 모습을 담은 작품들 |올댓아트 김지윤

전시장 높이 솟은 벽 넘어 이적의 노래 ‘당연한 것들’이 들린다. 2020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현재는 누릴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 억겁의 나날들, 이를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곧 민속이다.

당연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려 조선 시골 양반은 역병으로 흉흉한 마을 안정을 위해 여제문을 짓고 여제를 지냈다. 동네를 돌며 방역활동하는 자율방범대의 마음도 다른 바 없다. 모두 ‘함께하는 당연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해법이다.

켜켜이 모인 일상은 곧 민속이 된다. 전시장은 이를 건축 자재로 표현한다. 부식된 철판 느낌의 구조물과 썩은 목판은 역병으로 인해 무너진 사회와 일상이다. 그리고 유물 앞뒤에 여러 형태로 교차한 비계는 치료와 치유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잇는다. 이를 담아낸 전시장은 민속을 상징한다.

또한 전시장 천장 아래서 바라본 관람객의 동선은 ‘∞’을 띤다. 이는 역병과 일상의 무한한 반복을 의미한다. 역병은 인류의 역사에서 반가운 존재는 분명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역병, 일상>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Ⅰ

2021. 11. 24.(수) ~ 2022. 2. 28.(월)

매일 09:00 - 18:00

17시 입장 마감

1월 1일, 설·추석 당일 휴무

무료 관람


자료 및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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