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좀 내주오~” 200년 전에도, 지금도 베스트셀러! 오페라 ‘리골레토’ 이모저모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12.27 15:36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12.27 15:37

여러분, 오페라 음악 들어본 적 있나요? 없는 것 같다고요? 아뇨! 분명히 들어보았을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페라 음악은 우리가 보는 수많은 드라마, 영화, 예능에 숨어 있거든요.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밤의 여왕의 아리아오페라·오라토리오·칸타타 등에 나오는 노래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 오르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이 CF의 음악도 대표적인 예지요.

CF를 위해 만들어진 CM송이지만 원곡은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입니다. <리골레토>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바람둥이 공작 만토바가 여인을 유혹하며 부르는 곡인데요. 세계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오페라 <리골레토>에 출연해 불렀던 ‘여자의 마음’을 감상해볼까요? 우리가 이것이 오페라의 음악이라는 걸 몰랐다 뿐이지, 알고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오페라 음악을 생활 속에서 접해왔답니다. 그중에서도 베르디의 오페라는 특히 전 세계에서 사랑 받는 ‘베스트셀러’지요.

조반니 볼디니가 그린 주세페 베르디의 초상화ㅣ위키피디아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이다>, <일 트로바토레>, <오셀로> 등 수많은 명작 오페라를 남긴 주세페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입니다. 그가 없었으면 지금의 오페라는 없었을 것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는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데요. 오늘은 그의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인기작 <리골레토>를 소개합니다.

■ 오페라 <리골레토> 줄거리
※ 이하 내용은 오페라 <리골레토>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귀족의 아내와 딸을 농락하는 호색한 만토바 공작, 공작의 저속한 취미를 돕는 궁정 광대 리골레토, 리골레토가 애지중지하는 딸 질다입니다. 그 외에도 만토바 공작을 죽여주겠다며 리골레토에게 접근한 자객 스파라푸칠레, 그의 동생이자 아름다운 무희 마달레나, 공작에게 농락당한 체프라노 부인과 그의 배우자 체프라노 백작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김없이 궁정 파티를 연 만토바 공작. 파티에 참석한 손님 체프라노 부인을 남편의 면전에서 유혹해 침실로 데려갑니다. 체프라노 백작은 공작보다 낮은 신분이기 때문에 ‘찍’ 소리도 하지 못하죠. 리골레토는 백작을 비웃으며 조롱하고 백작은 리골레토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이들은 늘 이런 식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스파라푸칠레라는 자객이 리골레토에게 접근합니다. “돈만 주면 누구든 없애 주겠다”고 하면서요. 리골레토는 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스파라푸칠레는 언제든 자기를 찾아오라고 하면서 사라집니다. 한편, 공작은 리골레토의 딸 질다마저 겁탈합니다.

질다가 공작에게 능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리골레토는 딸을 데리고 스파라푸칠레의 집, 주막으로 향합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곳에 공작이 또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스팔라푸칠레의 동생 마달레나를 유혹하러 온 것이었는데요. 문틈으로 마달레나에게 접근하는 공작을 본 질다와 그런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 리골레토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이때 공작이 부르는 노래 ‘여자의 마음’과, 이 상황을 지켜보는 질다, 리골레토, ‘밀당’에 한창인 공작, 마달레나의 사중창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가씨여’가 <리골레토>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지요.

분노가 치민 리골레토는 스파라푸칠레에게 공작을 죽여달라고 부탁합니다. 한참 후 스파라푸칠레는 리골레토에게 공작을 죽였다며 시신을 담았다는 자루를 넘겨주는데, 풀어보니 자루 안에는 사랑하는 딸 질다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알고 보니 정말로 공작을 사랑하게 된 질다가 그 대신 죽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질다를 보며 리골레토는 괴로워하고 절규합니다. 공작에게 희롱당한 여성과 그 가족인 귀족들을 농락하며 쾌감을 느끼던 리골레토는 그 죄값을 딸의 목숨으로 갚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오페라 <리골레토> 탄생기 이모저모


요즘 웬만한 ‘막장 드라마’ 뺨치는 충격적인 이야기지요? 그런데 사실 이 오페라는 베르디가 음악만 만든 것으로, 극본을 쓴 사람과 원작자는 따로 있습니다. 오페라 <리골레토>의 원작은 프랑스의 유명한 극작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입니다.

빅토르 위고(왼쪽)와 주세페 베르디의 사진ㅣ위키피디아

<환락의 왕>은 여색을 밝히는 것으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왕 프랑수와 1세와 당시 궁정광대였던 꼽추 트리불레를 소재로 삼은 연극입니다. 이 연극은 1832년 초연되었다가, “왕이 여성을 능욕하고 광대가 왕의 살해를 도모하는 내용이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 해 상연 직후 금지 처분을 받게 됩니다.

10여 년 후 이 작품을 오페라로 되살린 인물이 베르디입니다. 당시 베르디는 20대 중반부터 오페라 작곡가로 꽤 이름 날리고 있었는데요. 평소에도 소설과 희곡에서 소재를 찾는 것을 즐기던 그는 <환락의 왕>을 오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대본작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와 함께 두 달만에 <리골레토>를 완성합니다.

<리골레토>는 1851년 베네치아 초연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유럽 일대에서 호평받은 이 작품 덕에 베르디는 유럽 전역을 다니며 더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지요. 사실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는 처음에는 이 작품이 오페라로 만들어지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다고 합니다. 오페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내용이 다소 바뀌었거든요. 그러나 직접 <리골레토>를 관람한 뒤에는 이 작품을 극찬했는데, 특히 앞서 언급한 사중창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가씨여’에 대해 “나도 희곡에서 등장인물 4명이 동시에 말하게 하고 싶다.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감정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텐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 그리고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초연 바로 다음날부터 당대의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추천 공연 실황!
<2019 브레겐츠 페스티벌>
& <드레스덴 젬퍼오퍼 - 디아나 담라우 &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오페라도 “어떤 버전을 따르느냐”, “연출이 누구냐”,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무대와 의상이 많이 다릅니다. 내용에는 큰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 씩의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아래 공연 실황 영상에서는 번역된 대사가 조금 다른데요. 줄거리의 큰 줄기는 위에서 설명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오페라 관극의 최대 장벽이라 할 수 있는 언어의 문제가 자막으로 해결된다는 것은 큰 장점이죠!

2019 브레겐츠 페스티벌 <리골레토>의 한 장면|자료제공 UNITEL

2019 브레겐츠 페스티벌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리고 2019 시즌의 <리골레토>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특별한 무대 세트와 연출이 특히 흥미로운 실황 영상입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유럽의 유명한 오페라 축제 중 하나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브레겐츠에서 개최되는데요. 호수 가운데에 떠 있는 ‘초대형’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명작 오페라 공연의 화려함, 야외 공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훌륭한 음향마이크를 사용으로 세계 클래식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기 축제입니다.

2019 브레겐츠 페스티벌 <리골레토>의 한 장면|자료제공 UNITEL

2019 브레겐츠 페스티벌 <리골레토>의 한 장면|자료제공 UNITEL

<2019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리골레토>는 마치 오페라와 서커스를 동시에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야외 공연이다 보니 의상의 색상이나 장식도 눈에 띄게 화려하고 과장되어 있습니다. 메인 무대의 초대형 조형물은 시즌마다 달라지는데요. <리골레토>가 공연된 2019년 시즌의 조형물은 <리골레토>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듯 기괴하면서도 큰 얼굴과 손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에서 볼 수 있는 배경 세트가 없는 대신 조형물의 눈, 코, 입, 손 모양을 조정해 장면에 극적인 효과를 더했습니다. 현장의 관객들은 배우들의 표정을 아주 잘 볼 수는 없었겠지만, 이 영상에서는 양질의 음향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표정 연기까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 디아나 담라우 &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드레스덴 젬퍼오퍼 <리골레토>의 한 장면|자료제공 Medici tv

독일 드레스덴에 위치한 젬퍼 오페라 하우스는 1878년에 세워졌습니다. 건축 이론가인 고트프리트 젬퍼의 이름을 딴 이곳은 독일의 권위있는 오페라 공연장인데요. 독일 작곡가이자 ‘악극’의 창시자 리하르트 바그너의 초기작들이 공연된 곳이기도 합니다.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곳이지만 세계 건축사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로, 아름답고 화려한 내외관이 특징입니다. 드레스덴 젬퍼오퍼에서 공연된 <리골레토>에서는 동시대 최고의 소프라노, 테너로 꼽히는 디아나 담라우(질다 역)와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만토바 공작 역)이 주역을 맡았습니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리골레토>의 한 장면|자료제공 Medici tv

최근 유행한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대사로 유행했던 “완벽한 피치의 하이에프야!” 이 말처럼 질다 역의 디아나 담라우는 교과서와 같은 정확한 음정,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화려한 기교, 훌륭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입니다. 그리고 만토바 공작 역의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페루 출신의 클래식계 스타 테너로, 특히 로맨틱한 역할을 맡았을 때 빛을 발하는 인물이지요. <리골레토>에서 대개 드라마티코 테너들이 아주 강렬하고 매혹적인 연기를 펼치는데 반해 플로레즈는 유혹적이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연기를 톡톡히 해냈습니다. 레제로 테너인 그의 매력 역시 화려한 고음입니다.

담라우와 플로레즈가 주인공을 연기한 드레스덴 젬퍼오퍼 실황 영상에서는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노래, 연기 실력과 드레스덴 젬퍼오퍼의 화려한 무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진·자료|LG유플러스, UNITEL, Medici tv
참고|[오페라 명작 이야기 ②] ‘시간 좀 내주오~’ 알고 보면 베르디의 오페라 음악? (올댓아트, 2020.10.16)
어린 자식들 잃은 베르디의 트라우마, ‘베르디 바리톤’ 아버지 역으로 승화되다 (올댓아트, 2017.10.16)
2020년은 베토벤의 해, 2021년은? 올 한 해 빛낼 ‘클래식 음악가 3인’ (올댓아트, 2021.1.18)
베르디, 리골레토 (이용숙,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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